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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5: 2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 요일 5: 4 세상을 이기는 승리
요일 5: 2-3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 - ②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③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 2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것임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 형제 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 가능하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계명들은 결코 무겁지 않다. 우리가 중생치 않았을 때 즉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기가 심히 무거웠으나, 우리가 중생한 후에는 하나님의 씨가 우리 속에 심겨졌고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속에 계셔서 역사하시므로 우리는 비록 연약함이 있어 때때로 넘어질지라도 하나님의 법을 즐거이 지키며 또 지킬 수 있다.
로마서 8: 4, 14은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말씀하셨다. (마 11: 29-30).
요일 5: 2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
1]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본서는 전반적으로 형제 사랑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라는 형식으로 기술되고 있으나 본 절에서는 그 표현이 반대 형태로 되어 있다. 그래서 혹자는 본 절에 나타난 역설적 표현의 어색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로써'가 앞 절에 설정된 원리를 가리키며, '우리가 ... 사랑하는 줄을'을 '우리가 사랑해야만 한다'로 해석한다(Marshall, Dodd).
그러나 '이로써'가 앞 절을 가리킨다고 해석할 이유는 없다. '이로써'는 본 절을 가리키는 것으로 형제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근거함을 나타낸다. (4: 8, 16, 19, Smalley).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형제 사랑은 불가분리의 관계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며 형제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입증된다.
요일 5: 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
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 즉 순종과 불가분리의 관계를 맺는다. 모든 계명 중 가장 우월한 계명이 사랑 계명인 바 그 안에 하나님의 계명이 내포되어 있으며(Smalley) 그 계명에 대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게 된다.
그의 계명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이미 예수께서 모범을 보이신 것이다.
* 요 14: 31 -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 요 15: 10 -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2]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무거운 것'(바레이아이)는 바리새인과 랍비들이 주장하는 무거운 또는 가벼운 율법이라는 사상을 반영한 것이다(Smalley, Schnackenburg).
* 마 23: 23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주장한 율법과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었다.
* 마 23: 4 -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 눅 11: 46 -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 도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멍에는 쉽고 가벼운 것이다.
* 마 11: 30 -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셨고(4: 19)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사랑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허락해주셨다.(Dodd)
설사 그 계명을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용서해주시기 때문에(Calvin) 하나님의 계명은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인 순종을 통해 계명을 지키는 것이므로 그것은 가벼운 것이다.
요일 5: 4-5 세상을 이기는 승리 - ④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 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
대저[이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이김이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하나님의 계명이 무거운 짐이 아닌 것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긴다는 말은 죄와 사망과 마귀의 세력을 이긴다는 뜻이다. 즉 죄를 짓지 않는다는 말이다.
요한은 3: 9에서도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계속]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말하였다.
우리 속에는 성령께서 계시고 또한 그의 생명 원리가 심겨 있기에 우리는 죄와 세상을 이길 수 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 사역은 우리를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로부터 건져내어 주셨다.
바울도 로마서 6: 14, 18, 22에서,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라고 말했다.
요한은 덧붙여서 말하기를, 성도가 세상을 이기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믿음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믿음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영생을 얻었고 부활을 소망하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로써 마귀와 그 세력들은 성도들 앞에 완전히, 영원히 패배하고 말았다.
이 귀한 사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복음 진리와 그 은혜 안에 다 들어 있다. 죄는 죽음과 불행을 가져왔으나 의는 생명과 영원한 복과 영광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5: 1-2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라고 하였다. 믿음의 결과는 기쁨과 확신이다.
요일 5: 4 세상을 이기는 승리 -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
1]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여기서 '난 자마다'(판 토 게겐네메논)은 중성이다. 계속 남성 명사를 사용하다가 갑자기 중성 명사로 바꾸어 쓴 것은 이 말씀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원리이기 때문이다.
2]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인간적 욕망을 가리킨다. Smalley).
* 요일 2: 15-17 –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역사하는 이러한 악에 대해 부활하신 예수를 통해서 승리한다(18-20).
* 요일 2: 13-14 –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이기느니라'(니카)는 현재 직설법으로서 계속해서 이겨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의 투쟁 속에서 이러한 계속적인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기신 이김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 요 16: 33 -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요 19: 30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사도 요한은 본 절에서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삶을 말하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주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3]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요 16: 33)를 우리가 믿고 고백할 때 그 이김은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는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게 된다.
* 롬 8: 37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여기서 '이긴'(니케사사)는 부정 과거 능동태로 한 개인의 회심과 같은 개별적인 경험을 표현할 때나 공동체의 역사에서 특별한 한 순간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시제이다(Brooke).
본 절에서 사용된 '니케사사'는 과거에 성취된 명확한 승리와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기신 세상에 대한 승리를 그리스도인이 공유하는 것을 시사한다(Haas, Smalley).
4] 영권력을 소유한 자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마다 세상을 움직여 나아가는 여러 가지의 힘이 있다. 육체에서 나오는 체력이 있고 돈에서 나오는 금권이 있으며, 정치에서 나오는 권세가 있다.
알렌 토풀러는「권력 이동」에서 후기 산업사회에는 많은 정보를 가지고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진 자에게서 힘이 나온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후기 산업 시대에 가장 강력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로 떠오르고 있다. 특별히 미국과 일본학계에서 앞으로 미국과 대결할 수 있는 나라가 중국이 아니라 통일한국이라고 말한다. 한국을 지식 정보화의 시대에 세계를 제패할 수 있는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정보화 시대에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으로 난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또 하나의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이며,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은 세상을 이기는 능력이 주어진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우리는 영력(영권력)이라고 한다. 영력(靈力)은 신적인 힘(spiritual power)으로 이 은사는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주어지는 영력 "카리스마"다.
(1) 영력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여기에서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세상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이긴다는 의미이다. 영력있는 사람은 세상 것들을 지배할 수 있는 존재로 세상의 판단을 받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것에 얽매이지 않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지는데, 세상에 있는 것들에게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초월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세상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우리들에게 위임해 주신 곳이다.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것이 많이 있다. 세상에서 돈을 벌고, 명예를 얻고, 권세를 세상에서 얻는다. 지식과 정보도 세상에서 획득한다. 이런 것들을 누가 사용하느냐? 어떻게 사용하느냐? 가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을 섬기도록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위임해 주신 세상의 권세를 어둠의 자녀들에게 빼앗겨 버리고 아들이 종처럼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주인처럼 세상에서 일하시오.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지 말고, 세상의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사용하시오. 영력이 있는 사람은 세상 것들을 나를 위하여 사용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
(2) 영력이 있는 사람은 자기를 이길 수 있다.
하나님 중심적인 것에 반대되는 것이 "자기 중심적" 신앙이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자기 중심적 신앙 때문이다. "나"라고 하는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서보시오. 나를 과감하게 십자가에 못박아 보십시오. 막힘없이 하나님의 능력이 내 속에 뚫고 들어올 것이다.
내가 육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 자기 사랑에서 벗어나면 제한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 육신의 소욕 때문에 성령의 소욕을 채워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영적 세계를 체험한 자는 육신의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다. 자기를 괄호 안에 넣어서 처리할 수 있고, 육체의 지체 속에 들어 있는 죄의 근성을 이길 수 있다. 성령 충만하면 육신의 죄를 지배할 수 있어 영적 세계에 들어가 성화할 수 있다.
(3) 영력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다.
하나님의 계명은 완전하다.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지킬 수 없다. 예수님의 윤리는 너무나 고상하고 완전하여 지키기 어려운 완전 윤리이다. 이를테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원수까지 사랑하라".이 명령은 인간적 사랑(=박애주의)으로는 불가능한 주님의 명령이다.
Rein hold Niebuhr는 이와같이 "impassible"한 것을 "pasibility" 하게 하는 힘이 영력이다. 주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의 능력을 받은 자는 주님이 모범으로 보여주신 아가파오 사랑을 우리들도 할 수 있다. 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나에게서 난 것이 아니다. 은사로 주어지는 것이다.
위로부터 은사가 주어지면 하나님의 완전한 명령은 지키기 어려운 짐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내 생애 속에 개입해 들어오시면 저절로 시키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절대적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생애 속에 개입하게 하십시오. 내 사업에 개입하게 하십시오. 내 생애가 어떻게 변화하겠는가? 내 사업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이 개입하신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믿으면 나와 같은 일을 할 것이요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내 속에서 나타나시도록 하는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내가 사용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권능을 내 삶 속에 투입하게 한다. 믿음의 비결을 깨달은 바울은 빌 4: 13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 믿음의 능력을 소유하기 위하여 절대적 기도생활이 필요하다. 절대적 기도에 들어가 하나님의 능력을 마음대로 사용한 사람이 엘리야 선지자이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능력을 절대적 기도로 이끌어 낸 사람이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신 선지자 사백오십명과 싸워 이겼다.
엘리야가 전지전능한 능력을 사용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완전한 믿음과 절대적 기도이다. 왕상 18: 41,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늘의 불을 끄집어 내렸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비를 쏟아 붓게 하였다. 엘리야는 청청한 하늘에서 큰비의 소리를 들었다.
믿음의 귀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귀가 열린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기도한다. 엘리야는 이 믿음을 가지고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땅에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