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4: 12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 - 벧전 4: 13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3. 성도의 고난 ( 4: 12 – 19 )
⑫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⑬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⑭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⑮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⑯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⑰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⑱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⑲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벧전 4: 12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 -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
성도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고난들이 있다. 그것은 때때로 금광석을 제련하는 용광로의 불같은 고통스런 것도 있다. 용광로에 넣어진 금광석에서 불순물이 제거되고 마침내 순금이 나오듯이, 성도들이 당하는 불시험도 성도의 죄악성과 연약성을 제거하고 더욱 경건하고 거룩하며 선하고 진실한 인격이 되게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에서 불시험을 당할 때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욥기 23: 10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말하고, 사도행전 14: 22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확증하고 있다.
성도에게 닥친 고난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든지, 순수한 시련의 고난이든지 간에, 고난은 성도에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1] 사랑하는 자들아.
베드로는 본 절부터 다시 핍박 받는 자들에 대한 권면을 한다.
본문은 수신자를 향한 베드로의 애정어린 마음을 나타내며(2: 11) 동시에 새로운 권면의 시작을 알리기도 한다.
2] 너희를 연단(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본 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오는 시련은 '불시험'으로 묘사된다. '시련하려고'(프로스 페이라스몬)은 진위(眞僞)를 가리는 것으로 유혹이 아니라 시험(test)을 의미한다. 이 '시련'은 본 절에서 '불 시험'과 동일시되고 있다.
'불 시험'(테 엔 휘민 퓌로세이)는 문자적으로 '너희 중에 타고 있는 불'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고통스럽게 타는 불'로서 소돔성을 심판하실 때의 불로 묘사되며(Josephus) 또한 종말에 '바벨론 성'을 멸망시킬 불로 나타나기도 한다.
* 계 18: 9, 18 - ⑨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⑱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퓌로세이'는 순수한 금속을 얻기 위해 제련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시련이 불같이 뜨거울 것을 상징한다.
* 시 66: 10 -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 잠 27: 21 -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 계 3: 18 -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이러한 시련을 끝까지 믿음으로써 견디는 자는 저주로부터 구원을 얻을 것이다.
'오는'(기노메 네)는 현재분사로 베드로나 수신자가 이미 경험했고 또한 현재에도 고난을 당하고 있으며 장차 계속 다가올 시험임을 시사한다.
연단, 단련(鍛練, Refine) : 쇠붙이를 불에 달구어 두드려서 단단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비유적으로는 몸과 마음을 굳세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단련하다’라는 의미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는 ‘바한’(bachan), ‘차라프’(tsaraph), 헬라어는 ‘퓌로오’(pyroo)이다.
바한(bachan)은 히브리어 동사로서, '살펴 본다, 시험해 본다'(examinne, test)를 뜻하는데, '연단한다'(렘 9: 7)로도 번역되고, '단련한다'로도 번역(욥 23: 10)되었다.
차라프(tsaraph)]는 '녹인다, 세련한다'(Smelt, refine)는 동사인데, '연단한다'(사 48: 10 기타), '단련하다'로도 번역(시 12: 6, 26: 2, 56: 10, 렘 6: 29). 렘 6: 29에서는 고난을 통하여 백성이 순화되는 것을 형용하고 있다.
헬라어 푸로(puroo)는 명사 푸-르(pur)에서 나온 동사로, '불을 통과한다' 뜻이다(계 1: 15, 3: 18). 제련한 금속과 같이 빛나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3]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이상히 여기지'(크세니제스데)는 실제적인 박해에 의해서 '사람을 마비시킬 정도의 충격'을 의미한다(Beare).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 앞에 다가오는 시련을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그 시련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그 고난의 동참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쁨과 영광에 참예케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Stibbs, Blum).
벧전 4: 13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성도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은 2천 년 전 십자가 위에서 이미 완성되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고난들은 성도에게 남아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셨고 의로우셨으나 성도들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다. 이와 같이 성도는 의롭고 선하게 살지라도 고난을 당할 수 있다.
마태복음 5: 11은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하였고,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 1: 24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므로 성도는 의의 고난을 당할 때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인 줄 알고 즐거워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 우리가 참 성도로서 그를 영접하며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오히려(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고난을 당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여러 가지 핍박과 치욕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겪을 때와 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영광의 승리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즐거워하라'(카이레테)는 현재분사로 그 즐거움이 일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을 때는 후에 주어질 영광의 승리를 바라보며 항상 어떤 조건하에서도 즐거워해야 한다.
고난(苦難, Suffering)은 영과 육신이 겪게 되는 어려움을 의미한다.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한, 고난은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현실이다. 사람마다 고난의 상태는 다르지만 모든 자에게 고난은 주어진다. 그러나 그 고난은 생각하기에 따라 크게, 또는 작게 작용할 수 있다.
고난 문제는 성경 중에서도 예리하게 추구되어 있고, 그 중에도 욥기는 '의인의 고난' 문제를 취급하고 있는 대표적인 글이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인간에 대신하여 친히 고난을 받으신 것을 전하고 있다
* 막 8: 31 -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 히 2: 10 -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이 그리스도의 고난이 인간의 고난을 이해하고, 높이며, 뜻있게 하는 열쇠이다. 사람마다 자기의 악으로 고난 받는 일이 없도록 마음 가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나, 그리스도를 믿는 때문의 고난이라면, 이것은 적극 짊어져야 할 자기의 십자가이다.
* 벧전 4: 15-16 –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을 통하여 사람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과 영광에 참여하는 자로 되기 때문이다.
* 롬 8: 17 -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 고후 1: 5 -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 빌 3: 10-11 –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 8: 18)고 했다. 소망을 가지고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라는 것이다.
2]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본 절은 '히나'(...위하여')로 시작하는 절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때 즐거워하는 목적이며 마지막 때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갖게 한다.
현재에 당한 고난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견디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지만 그날의 영광을 생각하면 능히 이기고도 남을 만한 것이다.
'기뻐하게'(아갈리오메노이)는 너무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극도의 기쁨을 나타내는 단어로(Lenski)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과 극명한 대조를 통해 고난보다 즐거움과 기쁨이 훨씬 큰 것임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