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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 7 강림하시기까지 참으라. - 약 5: 9 서로 원망하지 말라.
2. 인내에의 권면 ( 5: 7 – 11 )
⑦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⑧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⑨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⑩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⑪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약 5: 7 강림하시기까지 참으라. -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
세상에서는 악한 부자들이 의인들을 핍박할지라도, 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시기까지 오래 참아야 한다.
농부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바라며 씨를 뿌리고 추수의 때를 오래 기다리듯이, 우리는 오래 참고 마음을 굳게 하여 주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고 기다려야 한다.
1] 그러므로 형제들아
'그러므로'라는 말은 부자들의 불경건하고 방탕하고 불의하고 의인을 핍박하는 환경 속에서도 이 교훈을 받으라는 뜻이다.
'형제들아'라는 말은 악한 부자들과 대조하여 순종하는 진실한 신자들을 가리킨다. '형제들아'는 부자들의 죄악을 지적하는 부분에서의 '들으라'(1절, 4: 13)는 명령조와는 대조적으로 사랑이 어린 어투이다. 야고보는 다시금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권면을 한다(1: 2,19. 2: 1,14. 3: 1,12. 4: 11).
2]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주의 강림'(테스 파루시아스 투 퀴리우)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심판자로 다시 오실 것을 반영한 종말의 사상을 나타낸다.
* 마 24: 3, 27, 37, 39 - 3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9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 고전 15: 23 -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 살전 2: 19 -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 살전 3: 13 -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살전 4: 15 -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 살전 5: 23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 살후 2: 1, 8 -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 벧후 1: 16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 벧후 3: 4 -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 요일 2: 28 -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길이 참으라.'(마크로뒤메사테)는 '길다'는 의미를 가진 '마크로스'와 '분노' 혹은 '성냄'을 의미하는 '뒤모스'와의 합성어로 분 냄을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압제나 박해 아래서 자신을 포기하거나 성급한 보복을 삼가하고 고통을 참고 자제하는 것을 시사한다.(Trench, Blue, Light foot, Martin, Manton).
* 롬 2: 4 -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 벧전 3: 20 -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3]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야고보는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농부의 경우를 예로 들어 앞서 언급한 인내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당시의 기후를 반영한 것으로 '이른 비'는 10월에서 11월에 오는 비를 가리키며 '늦은 비'는 4월에서 5월간에 오는 추수 직전의 비를 말한다.
이른 비는 파종기에 내리는 비로 건기 동안 메말랐던 땅이 부드럽고 촉촉하게 되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데 좋은 환경이 된다.
늦은 비는 곡물의 추수기에 내리는 비로 이 비가 제때 와야 농작물의 결실이 풍요롭게 된다. 따라서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때를 따라 적절하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상징하고 있다.
농부가 생명과도 같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주시리라는 약속을 굳게 믿어 기대하고 인내하는 것처럼 불의한 자들의 압제와 핍박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완성을 소망하며 심판하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려야 한다.
* 렘 5: 24 -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 욜 2: 23 -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 슥 10: 1 - 봄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 빌 4: 13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기본적 진리이며 그리스도인들의 확실한 첫 번째 소망이다. 현실은 악할지라도 성도는 주의 재림하시기까지 오래 참아야 한다.
마치 농부가 열매를 바라면서 파종할 이른 비와 결심케 할 늦은 비를 참고 기다리는 것과 같이, 우리는 오래 참고 마음을 굳게 하고 기다려야 한다. 주의 재림이 가깝기 때문이다.
재림의 임박 의식은 모든 시대, 모든 성도들에게 필요하고 유익하다. 만일 이런 의식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해이해질 것이다. 곧 오시려는 것은 실상 하나님의 심정이다. 주의 재림이 지체되는 것은 단지 모든 택한 자들을 다 구원하시기 위함일 뿐이다.
약 5: 8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
주의 재림의 날은 점점 가까워졌다.
요한계시록 22장은 주께서는 '내가 속히 오리라.'고 반복해 말씀하셨다. 7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20절,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그런대도 그의 재림이 지체되는 것은 주께서 우리를 포함해 하나님의 택하신 모든 영혼을 다 구원하시기 위함일 뿐이다.
1]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굳게 하라'(스테릭사테)는 '받침', '지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특히 70인 역에서 출 애굽한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울 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받쳐 주고 지지하던 것을 가리킨다.
* 출 17: 12 -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따라서 본문은 확실한 신앙에 온전히 서서 핍박 가운데서도 인내할 뿐만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내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함을 시사한다.
* 시 112: 8 - 그 마음이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이라. 그 대적의 받는 보응을 필경 보리로다.
* 롬 4: 20 -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 히 6: 19 -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
* 살후 3: 13 -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2]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본문은 의로운 자들이 인내하고 흔들리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그리스도의 재림 사상은 신약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심되는 사상 중의 하나이다.
* 롬 13: 11 -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 고전 15: 51-54 -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 살전 4: 13-15 -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 요일 2: 18 -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는 그리스도인들이 열매, 즉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때이며(7절) 동시에 온 세상에 대한 심판의 때이다.
'가까우니라'는 재림과 심판의 시기에 대한 불확실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세상의 존속 기간이 영원과 비교할 때 짧은 시간임을 시사한다. (Mayor, Manton).
* 시 90: 4 -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 이다.
* 벧후 3: 8-9 -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약 5: 9 서로 원망하지 말라. -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
고난의 현실 가운데서 성도들은 서로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고난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지 말아야 한다. 고난의 현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겸손케 하시고 믿음 있게 하시기 위해 고난의 현실을 주신다. 그러므로 성도는 남을 원망하지 말고, 우리의 모든 현실의 배후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1]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원망하지'(스테나제테)는 현재 능동태 명령형으로 '신음하다' 또는 '탄식하다'는 의미이다.
* 롬 8: 21-23 -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 고후 5: 1-4 -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2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3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스테나제테'는 금지를 나타내는 '메'와 연결되어 '탄식'을 지속적으로 금지해야 함을 의미한다(Burdick, Robertson).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동기에서 일어나는 불평과 핍박 자들을 향한 원한의 탄식을 하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온전히 기뻐하고(1: 2) 그리스도를 소망해야 한다.
2]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히나 메 크리데테)는 단순과거 수동태 가정법으로 문자적으로는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도록 하라'는 의미이다.
* 마 7: 1-2 -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 눅 6: 37-38 - 37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이는 원망을 하는 자나 받는 자 모두가 정죄를 받아 함께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강조 조건적 명령이다.
3]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서 서 계시니라.
본문은 8절의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는 권면을 보충하는 경고이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경고를 통해 심판의 임박성을 강조하여 수신자들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Manton, Burdick).
* 마 24: 32-33 -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 막 13: 28-31 - 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눅 21: 29-33 - 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 계 3: 20 -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 눅 13: 25 -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심판자이신 그리스도는 이미 심판하실 모든 준비를 갖추시고 문밖에 서서 기다리신다.
고난의 현실 가운데서 서로 원망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면서 현실의 어려운 문제들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현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고난도 그가 주셨고 악한 현실도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겸손케 하시기 위해, 즉 우리의 유익을 위해 고난의 현실을 주셔서 우리를 단련시키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남을 원망하지 말자.
우리는 모든 현실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 원망하는 것도 죄가 된다. 심판자 하나님께서 문밖에 서 계시니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을 그의 의롭고 완전한 판단에 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