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山四友 봄나들이
청산사우 3월 답사는 한강과 산수유꽃을 중심으로 봄나들이했다.
도미나루, 배알미마을, 파사성, 양평산수유마을, 남한산성 침괘정(枕戈亭) 들을 돌았다.
도미나루와 배알미마을은 하남시 팔당댐 아래에 있다. 도미 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백제에 도미(都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부인이 행실도 바르고 매우 아름다웠다.
소문을 들은 개루왕이 도미와 내기를 하여 부인의 절개를 시험해 보려 했다.
도미는 궁궐에 머무르게 한 다음, 신하에게 왕의 옷을 입혀 부인과 동침하도록 했는데, 부인은 하녀를 들여보냈다.
속은 것을 안 왕이 도미의 눈을 빼버리고 배에 태워 멀리 보냈다. 도미 부인과 강제로 동침하려하니 생리 중이라 속이고 도망 나와 배를 탄 곳이 도미나루로 불린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에 천성도(泉城島)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으로 가서 남편을 만나 고구려로 넘어가서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천성도는 현재 오두산통일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한강 바로 앞에 있는 배알미마을의 이름인 배알미(拜謁尾)의 유래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검단산의 비탈 끝이라는 의미를 지닌 우리말 배알에다 한자어인 미(尾) 붙어서 되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궁궐을 향해 절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 번째는 단종이 영월로 유배갈 때 배를 타고 이 앞을 지나갔는데, 백성들이 배의 뒤에서 절을 했다고 해서 생겼다는 것이다. 우리 정서로는 세 번째 것이 심금을 울린다. 강변에 있는 조금만 마을이다.
파사성(婆娑城)은 이포나루와 이포보가 있는 바로 옆으로 천서리에 있는데, 축대와 우물자리, 포루, 벽 등이 남아 있다. 전설에서는 신라 제5대왕인 파사왕(재위기간 80-112)이 쌓았다고 하는데, 이때는 신라의 영토가 이곳까지 미치지 못했다. 발굴 조사 결과로는 500년대에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전략적으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오르면 한강과 그 너머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양평 개군면 산수유마을은 추읍산(趨揖山) 남동쪽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다. 오래된 산수유나무가 마을을 덮고 있는데, 개군저수지를 중심으로 주읍리와 내리 두 군데로 나누어져 있다. 아직 꽃이 활짝 피지는 않았지만 봄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남한산성은 청나라와의 싸움에서 임금이 병자호란의 굴욕을 당한 현장이다. 인조 대에 남한산성을 쌓을 때 백제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터를 발견했는데, 군기 창고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한다. 그 뒤 영조 때인 1751년에 이기진(李箕鎭)이 그 터에 건물을 지어서 침과정이라고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침괘정으로 읽게 되었다고 한다. 창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으로 병자호란의 치욕을 되새기면서 잊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남한산성 행궁터 입구 해설사가 있는 바로 뒤편 언덕에 있다.
첫댓글
쌀쌀한 날씨에 피어난 노란 봄꽃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