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一竹 / 이필형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지상의 빛들이 가장 낮은 곳으로 뉘엿뉘엿 기울고
바람이 나무의 마지막 온기를 거두어 갈 때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침묵처럼 고요한 여백 위에
그대라는 아득한 이름을 첫 문장으로 적어 내립니다.
창밖엔 괴테의 노을빛이 지평선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떨어지는 나뭇잎마다 예세닌의 서글픈 노래가 바스락거립니다.
어둠이 지붕을 나지막이 감싸안는 이 서늘한 시각
나는 랭보의 투명한 계절을 지나
오직 그대라는 무한의 깊이를 향해 가만히 펜을 듭니다.
어찌하여 가을은 이토록 모든 결실을 비워내며
손끝마다 베어드는 아련한 눈물을 불러오는지요.
단풍잎 하나에도 지독한 사랑의 흔적이 새겨지고
강가의 갈대조차 파블로 네루다의 고백처럼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목 놓아 서럽게 흔들립니다.
차마 다 쓰지 못한 그리움은 문장 사이에 눌러 담고
보내지 못할 편지를 봉투에 가만히 접어 넣습니다.
모든 스러지는 것들이 땅으로 낙하하듯
내 긴 사랑의 기도 역시 그대라는 거대한 온기 안으로
끝없이, 가만히 스며듭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사랑”
一竹 / 이필형
어둠이 다시 내 머릿속을 갉아먹을 때
나를 이 세상에 묶어준 단 하나의 닻
주머니 가득 차가운 돌멩이를 채우며
가장 깊은 행복을 준 당신을 생각합니다.
나의 광기가 당신의 빛을 갉아먹지 않도록
차가운 강물 속으로 나를 완전히 포개어 끕니다.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서글픈 구원
더 이상 그 무엇도 덧붙일 수 없는 완벽한 마지막.
함께 걸었던 수많은 봄날과 깊은 침묵 속에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 찬란히 행복했노라고
수면 위로 떠오르는 마지막 숨결을 모아
흐르는 물결 위에 나직이 띄워 보냅니다.
모든 아름다움이 이 아늑한 수심 아래 잠들어도
당신이 내게 남긴 그 온기만은 영원히 반짝이리니
어둠 속으로 녹아드는 나의 마지막 순간까지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나의 단 하나뿐인 사랑.
첫댓글 이필형 시인님 토요일 새벽시간 시화작품 좋은글 잘 감상했습니다 멋진 시화작품 되시길 바라며 오늘도 건강유의 하시고 가족과 함께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 🧡
넵 선생님 격려 감사합니다^^*
일죽 시인님,
가을에 읽어야 할 시
가을의 빛깔과 내음과, 고요히 잦아드는 한숨이 번지는 아름다운 시
이필형시인님 시화 2작품 접수되셨습니다
이필형시인님 멋진 시화작품 감상 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