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GDP의 43%가 수출에 의존하는 수출주도형 국가이다. 그런데 최근 4대 주력산업(전자, 자동차, 조선, 정유)이 과잉설비, 과잉생산에 다른 경쟁과 수출부진으로 몸살을 알고 있다. 즉 이윤율이 줄어들고 적자가 쌓여가고 있다. 그러한 한편 720만 명의 베이비부머의 은퇴로 연금지급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형편이다. 따라서 어떻게든 연금지출을 줄이고 지급시기를 늦추기 위해 불가피하게 정년연장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연금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정년을 연장한 결과 청년실업과 자본가의 추가부담이 늘어나게 되었다. 항상 그랬듯이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고 하고 있다.
자본이 무슨 요술을 부리려 하든 임금피크제 도입은 자본의 위기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가와 정부는 결코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 거세게 노동자들을 쥐어짤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전과 같이 ‘실리는 자본가가, 명분은 노조가’ 나누어가지는 실리주의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따라서 이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을 막아 내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총단결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것이 총파업 선언을 한다거나 자본의 공격이 있다고 자동으로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노동의 대응과 한계
자본의 공격에 대해 노동의 대응 또한 한창이다. 한국노총은 노사정위를 탈퇴하고, 조합원 총파업 찬반투표를 6월 30일까지 실시하였다. 민주노총은 4・24 선제총파업에 이어 7월 15일 총파업을 예정하고 있다.
그러나 각 단위의 현실과 셈속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장이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는 상태에서 조합원들은 위기의식에서 현재의 민주노총지도부를 선택했다. 그리고 양대노총의 총파업 전선이 형성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한국노총은 잘 알다시피 노사정위에서 자신들의 말이 통하지 않자 양대노총 공투본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고 결국은 자신들의 작은 이익을 챙기고 바로 투쟁에서 빠질 것이 뻔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도 4・24선제총파업 승리의 흐름을 가지고 노동법구조개악(임금피크제 포함) 저지를 위한 7・15일 2차 전조직 총파업을 성사시키자 하지만, 일종의 ‘정신승리법’으로만 보인다.
내가 속한 건강보험공단 노조를 보면, 지역과 직장으로 나뉘어져있던 기간 동안 노조상층부는 ‘마치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이비 종교에 빠져들 듯이’ 지치고 힘든 조합원들의 심리를 악용 현실적 투쟁(노동통제와 평가, 각종 복지후퇴, 의료영리화 투쟁)을 모두 회피하는 수단으로 통합을 외쳤다.
통합 후에는 노조설립신고 과정에서 노동부 지청에서 노조 규약에 ‘해고자 조합원 자격조항’ 삭제 및 ‘직권조인 ’삽입을 요구하자 아무런 투쟁도 논의도 없이 곧바로 조합원 투표에 부쳐 가결시켰다. 또한 통합 후 첫 보충협상에서 노조활동시간 축소 합의가 조합원총회에서 부결되자, 대의원대회를 열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다시 협상할 것을 강변함으로써, 조합원총의와 분노를 앞장서서 희석시켰다. 즉 집행부가 사측을 대신하여 조합원의 분노를 잠재웠다. 그리고 2달여 만에 약간의 문구만 수정하여 같은 내용을 조합원 투표에 부쳐 통과 시켰다.
투쟁의 제언
이와 같이 거의 20년에 걸쳐서 노조의 기본이 무너져왔고 어디서도 투쟁의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는 이미 싸우기 전에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도 평화의 시기, 성장의 시기에 젖어 지금까지 얼마나 무너져왔는지를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당장 힘들고 어렵더라도 다음의 두 가지를 반드시 해결해야만 새로운 투쟁을 만들 수 있다.
첫째, 지금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모두 자본주의가 만들어 내는 모순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각성하고, 이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을 갖고 그 대안에 기반한 구체적 투쟁을 만들어야만 현실의 투쟁도 승리 할 수 있다. 둘째,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고, 조합원들에게 구체적 내용을 교육하고, 토론을 통해 조합원 스스로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노동자 민주주의를 되살려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