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루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溫氣)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우리 집 바깥 베란다 화단에는 작년 여름부터 알록달록 예쁜 꽃이 피기 시작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우리 집 베란다 화단에 씨앗이 와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는지 알 수 없지만 작은 수국을 연상하게 하는 모양에 색깔은 알록달록한 것이 너무 예뻤다. 인터넷으로 그 꽃을 검색해보니 란타나라는 꽃이었다. 그런데 그 꽃은 예쁘기는 하지만 열매와 잎에 독성이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겨울이 오면서 꽃은 사라지고 나무만 덩그러니 남아있더니 올 해 여름이 되자 줄기가 더 굵어지고 가지가 많아지더니 작년보다 꽃이 훨씬 더 많이 피기 시작했다. 어차피 우리 가족은 그쪽 베란다 화단에 나갈 일이 없었기에 창을 통해서 꽃을 보며 신기해했다.
그런데 지난주에 그 란타나 나무가 팔을 벌려 줄기와 꽃을 이룬 나무의 밑에 두 개의 하얗고 작은 알이 있는 것을 남편이 발견했다. 아마도 나무가 무성한 그 밑이 안전하다고 생각해서 비둘기가 알을 깐 모양이었다. 조금 있다 다시 가보니 엄마인지 아빠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비둘기가 와서 그 알을 품고 있었다. 우리는 비둘기가 놀라지 않도록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비둘기 두 마리가 번갈아 가며 알을 품고 다른 한 마리가 먹이를 구해서 가지고 오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알을 품고 있는 비둘기는 꼭 인형처럼 꼼짝도 않고 알을 품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 같았다.
나는 사실 평소에는 비둘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비둘기는 가정의 평화를 상징하는 다정함의 대명사였는데 어느 사이엔가 비둘기는 거리의 음식들을 주워 먹고 사는 왠지 불결한 존재들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 집에 알을 깐 비둘기를 보면서 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희생하는 모습은 너무나 숭고하구나 싶었다. 요즘 뉴스를 통해서 보면 자기가 낳은 아이인데도 차마 인간으로써는 믿기 힘든 일을 저지르는 부모들을 보게 된다. 한낱 비둘기도 그렇게 자기 새끼를 저리도 소중히 여기는데 그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그런데 나는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겼다. 그것은 비둘기는 잡식성이라서 무엇이든 먹는다는데 혹시나 비둘기가 란타나 나무의 열매나 잎을 혹시 먹게 되어서 아프게 될까봐 걱정이다. 검색을 통해 살펴보니 비둘기 알은 2주일정도 지나면 부화가 된다고 한다. 아마도 다음 주쯤이면 새끼가 태어날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 집 베란다에 둥지를 틀고 알을 깐 비둘기 가족이 무사히 새끼를 부화시켜서 날아갔으면 한다. 성장한 비둘기들의 일상이 또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될지라도 말이다. 인간과 비둘기가 서로 공존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