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때는 보리고개라는게 있었다
보리가 누랗게 익기도전에 감자가 알이 차기도 전에
먹을것이 없어서 배고프고 춥고
그런시절을 거처서 우리는 자랐다
학교갔다오면 우리 엄마는 가마솓에
꽁보리밥 한그릇을 넣어 놨었다
배고픈 딸을위해서 넣으논 것이다
허급시급 책보는 마루에 던져놓고
보리밥한그릇을 들고 장독대로 가서
고추장항아리를 통째로 열어놓고
고추장에 밖힌 마늘쫑을 빼내면 고추장은 하나도 한묻고
마늘쫑만 쏙 올라왔다
순식간에 보리밥 하그릇은 사라지고
빈그릇은 게수대에 담가놓고
고추장항아리는 꽁꽁 싸메서 놓고 들로 소 풀을 베려가야했다
그 한그릇의 꽁보리밥이 내겐 아주 요긴한 영양소 였다
힘이 절로 났었지
어린시절부터 일에 묻쳐서 살아서 지금은 일이 겁이 안난다
그것도 우리는 조금 넉넉한 편이라
늘상 학교갔다오면 밥이 가마솓에 있었다
그냥 허기진 배를 물한그릇으로 체우는 애들이 허다 했으니까
내 친구는 그 꽁보리밥에 마늘쫑 장아치가 먹고 싶어 자주 나를 따라서
집으로 같이 오곤 했었다
친구는 지금도 말한다
그때 먹었던 그 마늘쫑 장아치는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고
엄마 순희가 같이 와서 밥이 좀 작아 조금 더 넣어두면 안돼
하고 주문을 하면 엄마는 그 다음날을 더 많은 밥을 넣어두곤 했었다
나는 그래도 유년시절을 배골지 않고 자랐다
부지런 엄마 덕분이 였다
잠시도 쉬지않은 우리 엄마
장날이면 온갖 채소를 이고 시장에 가서 팔아서 돈을 만들어 왔었다
돈에는 아주 인색하셧지만 먹을것에는 너무 좋았다
그래서 유년시절은 행복했었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