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열
거리에 나서면 상쾌한 바람이 인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가로수엔 흙먼지가 눈곱처럼 매달렸다.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모두가 낯선 사람이다.
그러다가 몇 천 몇 만의 하나.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수도 있지만 거의 기계적으로 내 생각에만 골몰하여 걷는다.
가다가 눈이 마주치는 사람도 있다.
전혀 모르는데도 꼭 아는 사람같이 익숙한, 그런 얼굴도 있다. 어떤 사람이 내게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던진다.
나도 웃을 듯 말 듯, 얼굴을 구기며 참으로 짧은 순간에 나와 연결된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많은 시간과 장소에 그 얼굴을 놓아본다.
알 수 없다.
아는 사람 같기도 한데 생각나지 않는다. 안타깝다.
연(緣)줄을 더듬던 내 노력을 얼른 포기하기가 미안하다. 그러는데 그 사람이 얼른 시선을 인파 속에 던지더니 어깨를 멋적게 으쓱하며 사라져간다. 무엇을 잃은 것처럼 허전하다.
길을 걸으면서 으레 쇼윈도우쪽으로 눈을 돌린다. 물건을 보기도 하지만 유리창에 비치는 내 모습을 훑어보기도 한다.
내가 갇혀 살았는가? 세상이 어느새 이렇게 변하여 가고 있었구나. 저 유리문에 비친 내 모습도 아주 많이 변했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 있는 내 모양과는 매우 다르다. 약간 화가 나려고 한다. 앞으로 나는 또 어떻게 변해 갈 것인가? 옷 빛깔이 탁하다.
이렇게 하늘이 잿빛일 때에는 붉은 빛 계통의 옷이 어울릴 것이다. 저쪽에서 버스가 뒤뚱거리며 온다. 50m밖에서도 내가 탈 차는 분별할 수 있다.
내 눈이 밝은 것이 얼마나 보배로운 일이며 자랑스러운 일인가. 내 젊은 날의 시력이여!
그러나 내 집으로 가는 차를 알아본다는 것은 시력 이상의 것이다.
이것을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오관으로 알아내는 것이며, 경험으로 알아내는 것이며, 믿음으로 알아내는 것이며, 기류로 알아내는 것이라고나 할까?
정신없이 뛰어서 겨우 올라선다.
버스를 쫓아 이리뛰고 저리 뛰고 마치 농락 당하는 것 같다. 비집고 들어서서 버스 내부의 한 부분을 붙잡고 의지한다. 피로가 일시에 몰려온다.
모르는 사람과 손이 부딪치고 어깨가 스치고 머리칼이 헝클어지기도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내 중량과 가치를 따져본다. 보잘것없다.
만원버스에 실렸을 때처럼 내 존재가 하찮게 여겨질 때는 없다.
불쾌한 얼굴을 짓지 말아야지.
「온화하게」, 「기품있게」내 소리가 나에게 타이른다.
나는 하마터면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할 뻔하였다. 나는 그를 여러 번 만났다. 그도 나를 알 것이다.
새벽의 스케이트장에는 요즘 며칠을 두고 그의 가족과 우리 가족밖에는 없다. 그는 아들인 듯한 꼬마를 데리고 와서 스케잍를 가르치곤 한다. 우리는 왜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피하는 것인가? 왜 본심을 숨기고 자연스러운 인정을 억지로 막는 것인가?
몸을 옆으로 비껴서 멀리 밖을 내다본다.
버스 밖으로는 수많은 간판들이 지나간다. 복덕방. 구두수선, 약국, 육체미학원, 언어교정연구소(초심자 환영), 라디오 TV수선, 당구장, 의상실, 다방....
닥지닥지 붙은 저 간판들이 몇 년이 지나도 거기 그렇게 붙어 있는 게 용하다. 이 대 도시에 흡반 같은 그 입술을 대고 생명을 빨아들이는 저 끈질기고 성실한 노력이 놀랍다. 그리고 거침없이 당당하게 간판을 내다건 그 용기가 부럽다.
나로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일이다. 간판들이 형형색색의 깃발처럼 나부끼는 것 같다.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버스를 내리면 다시 흙먼지를 둘러쓴 가로수를 보며 쇼윈도우를 지나 나는 바삐 바삐 걸을 것이다.
황량한 들판을 지나는 것 같이 나는 조금 쓸쓸함을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