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1-16
무미건조하고 헛헛한 날은
콩나물국이나 북어국처럼
말갛고 담담한 맛은 성에 안차고
뚝배기에 오들거리는 고기가
무더기로 듬뿍 들어간
순대국이 먹고 싶어진다
이제 나와 화해한 순대국은
이태전 만 해도 입덧하는 새댁처럼
생각만 해도 비위가 거부하는 음식이었다
앞뒤 안맞게 순대는 잘도 먹으면서
돼지 냄새가 누릿하게 날거라는
선입견으로 순대국은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미리부터 안좋은 선입견을 갖고 있다면
겪어보기도 전에 지레 멀리하게 된다
그것은 사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선입견이 다 가 아닐 수도 있어
미리부터 경계하며 대하는 건 지양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알고도 모르는 체 믿어 주면
내 편이 된다는데
돌도 옥석으로 만들 수 있다는데
선입견으로
종종 그르치고 놓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못 먹었던 순대국
어쩌다 일행들 손에 이끌려
'신의주 찹쌀 순대' 집에 가게 되었다
지인이 순대국 집에 왔으니
한번 먹어보라며 권하는데
사양하다 더는 어쩔 수 없어
내 앞으로 나온 순대국에
고기 한점을 맛 보았다
''괜찮지?''
지인은 어떤지 조심스레 물었지만
의외로 고기가 느끼하지 않고 담백해서
웃으며 괜찮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다음은 순대국 국물에 도전했는데
내가 갖고 있던 선입견과는 다르게
돼지 냄새 나지 않고
국물이 진하면서도 시원했다
순대국은 삶의 험한 질곡을 넘느라
거칠고 투박하지만 속 정 많은
나이 지긋한 아낙이 만들었음직한
넉넉하고 구수한 맛이었다
대강 못질해 만든 허름한 탁자
소박한 나무 의자에 앉아 먹어야
제 격일것 같은 소탈함이 있다
이 또한 선입견이여서
첫 만남의 순대국집은
흑과 백색만으로만 꾸며진
모노톤의 세련된 인테리어에
통일된 유니폼 차림의
젊은 종업원들의 서비스는 풋풋했다
둥근 테이블에 앉은
희끗희끗한 은발에 초로의 신사들은
순대국과 함께 소주가 흥을 돋구고
바빳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순대국으로 휴식하며 담소하는 직장인들
찻집에 찻잔 대신 뚝배기로 식사하며
데이트중인 상큼한 젊은 연인
내가 못 먹는다 치부해 버린
순대국집에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순대국에 새우젓 간은
감칠 맛을 더 하고
뽀얀 국물에 파와 청양고추를 넣는다
붉은 고추 다대기가
기호에 맞게 풀어 먹도록
한 숟가락 국에 넣어 있다
소화를 돕는 무 생채와
깍뚜기가 곁들여 나오는데
순대국 먹다가 물리면
새큼한 깍두기 국물로
중화하면 좋다
순대국은 어쩐지 까탈스럽지 않고
제 멋대로 생겼지만
한없이 받아주던 아저씨를 닮았다
이제 공허한 날에는
제 발로 순대국 집에 찾아 간다
뚝배기에 담긴 뜨거운 순대국이
무기력 했던 몸과 마음을 차오르게 해
계산대 위에 놓인 박하사탕도
챙기지 않을 만큼 포만감으로
마음까지 넉넉해져
세상사 모두 좋게만 보인다
카페 게시글
2007년
순대국이 좋은 날
산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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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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