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망식 리스크 관리 강조했으나 금융사고엔 여전히 수수방관 금융사고 계기로 농협중앙회와 금융지주 간 편가르기 싸움 비화 우려도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 [사진=농협금융지주]
농협은행의 지난 23일 발생한 대형 금융사고에 대해 개선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농협은행의 지주회사인 농협금융지주의 이석준 회장은 계속 침묵하고 있다.
농협은행의 금융사고가 올해들어 벌써 4번째 터졌지만 상부감독기관인 농협금융지주는 손을 놓고 있는 듯 하고 농협금융지주가 금융사고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면서 농협의 금융사고가 근절될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016년 1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국무조정실 실장을 역임한 후 서울비전 2030 위원회 위원장,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특별고문, 서울장학재단 이사장, 국제회계기준재단 이사회 이사를 거쳐 지난해 1월부터 임기 2년의 NH농협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임될 당시에는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을 받았고, 농협금융지주의 불투명한 회장 승계 프로세스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농협중앙회를 피감기관으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이 회장에 대한 낙하산 인사가 논란이 됐고, 농협금융지주의 임원후보추천위원회 규정 개선을 요구하는 의원들의 요구도 나왔다.
이 회장은 취임 이후에도 ‘낙하산’ 꼬리표를 떼지 못한채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으나 자회사의 금융사고 개선에 지나치게 안이한 태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농협금융이 올해 가야할 방향은 명확하다"면서 "우선 존재의 근간인 리스크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것도 선제적·시스템적·촘촘한 그물망식 리스크 관리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회장의 주문과는 달리 자회사인 농협은행의 금융사고는 올해들어 네 번째나 발생했고, 그의 신년사는 허공을 맴도는 메아리로 전락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 [사진=농협중앙회]
문제는 이 회장의 금융사고에 대한 미온적인 모습과는 달리 농협중앙회의 강호동 회장은 금융사고 발생 시 관리 책임자에 대한 연임 제한 방침을 밝히면서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농협중앙회는 지난 5월 7일 내부통제 및 관리책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중대 사고를 낸 계열사 대표는 연임을 제한하고 사고 발생 시 관련 책임자도 즉시 업무를 정지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사고가 발생한 농·축협에 대해서는 자금지원과 업무 지원도 제한키로 했다.
농협중앙회의 이같은 내부통제 및 관리책임 강화 방안은 사실상 이 회장과 이석용 농협은행장을 겨냥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회장과 이 행장은 오는 연말 2년의 임기를 마치게 된다.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농협은행 등 계열사 대표에 대한 인사권은 농협금융지주 이사회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가 갖고 있다. 그러나 농협금융지주의 지분은 농협중앙회가 100%를 갖고 있어 농협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인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 농협중앙회는 언제든지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농혐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을 해임할 수 있다. 상법상 이사의 해임에는 발행주식수의 3분의 2를 넘으면 가능하다.
농협금융지주 이사회에는 광주비아농협 조합장(현)인 박흥식 씨가 비상임이사로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 속해 있다. 박흥식 비상임이사는 강호동 회장이 추천한 인사로 알려졌다.
농협은행의 금융사고는 농협의 지배구조 특이성으로 인해 자칫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 간 편가르기 싸움으로 비화될 수 있고, 국회 상임위 소관 문제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금융권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지난 3월초 제25대 회장으로 공식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농협은행의 배임 사고가 터지면서 금융감독원의 농협금융 계열사 지배구조를 겨냥한 ‘칼날’에 곤혹을 치른바 있다.
금융감독원은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에 대한 수시 검사에 들어가면서 농협은행의 배임 사고뿐 아니라 농협중앙회의 낙하산 인사 관행도 함께 들여다본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농협은행 금융 사고를 계기로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에 대해 수시 검사에 나섰고 농협의 지배구조까지 문제시되면서 강 회장으로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제작=필드뉴스]
농협중앙회는 농협금융지주의 지분 100%를 갖고 있으나 농협금융지주에 대해 문책성 인사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고, 금감원으로부터는 지배구조 문제까지 들춰지는 ‘수모’를 당한 셈이다.
반면 농협금융지주는 금융사고가 난 농협은행의 지분 100%를 갖고 있으면서 농협은행에 대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놓고 있다.
금감원은 금융사고를 일으킨 농협은행과 농협은행의 지주사인 농협금융지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인 제재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농협은행에는 금감원 은행리스크업무실 실장 출신인 고일용 씨가 상근감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금감원에서 은행리크스 업무를 맡아온 고위 공직자가 농협은행의 리스크 관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농협은행의 금융사고는 농협은행의 내부 통제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농협의 지배구조 문제로까지 확산될 기미를 보이면서 금융권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중앙회의 내부통제 강화방안을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