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서늘함이 담겨졌다.
계절의 변화 앞에 느껴지는 씁쓸한 여운이 있다.
공원으로 향하는 길에
방치된 공간을 만났다.
도심이지만 건물을 올리지 못한채
자동차공업사가 운영된 듯하고
그마져도 오래 방치된 ~
그래서 동네주민들이 주차하는 자리가 되었다.
건널목 앞 신호대기 중 옆 사람의 대화가 들린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준 땅
자식간의 다툼으로 쪼개져서 주인이 여러명이라는
그렇게 서로 맘이 맞지 않으니 방치되었단다.
저절로 주인이 여러명인 삶이 묵상되어졌다.
신앙인이라면 주인이 한분일텐데
잠시 빌려쓰고 나눠 쓰는 것을 아는 자들인텐데
그것을 자주 잊는다.
내것이 아닌 그분 것임을 다시 머리에 주어 담았다.
도착한 공원은 생기가 넘쳤다.
강아지도 뛰어놀고
아이들도 뛰어놀고
모래 놀이도 하고
산책도 하고
농구도 하고
그렇듯 공원도 함께 사용하는 곳이다.
근데 빌려쓰지 못하고 방종부리는 것들도 있다.
음악을 크게틀고 걷는 할배
개똥을 치우지 않는 자들
케이지 속의 똥을 주차장 바닥에 버린 이들
도착과 함께 목격되어졌다.
저들은 감각이 없는자가 되 버린 것일까
신앙인은 어떤 삶을 살아야할까.
새사람을 입은 모습은 어떤 것일까.
고민과 걸음이 함께했다.
전도가 되지않는다고한다.
수돗물 틀면 물 나오듯 말씀을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데
신앙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욕망의 현장에는 신앙인들이 있고,
어제 스치듯 본 방송에도 신앙인들이 사고친 것이 소층출됐다.
그렇게 변화된 이들이 없고 자기 욕심만 내세운다.
신앙인의 이름은 가졌지만 주인을 몰랐기 때문이겠지
그러니 저러겠지~
분쟁은 내것인양 착각에 빠질 때
그 잘난 우김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도 그렇다.
그제 잠시 남의 삶을 나와 비교하며 답답함을 느꼈다.
각자에게 허락된 축복이 있고,
나의 자리에 십자가는 주어진 것인데,
그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인데
하나님께로 이끄시는 방법인데...
주께서 나를 지키시로 약속한 말씀이 변치 않은데
나는 내 걱정에 세상을 부러운 맘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다 괜찮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내가 누리는 엄청난 은혜가 있음에도
다른이와 비교를 하는 어리석음이 있었다.
의와 진리 그리고 거룩함 모두 어렵다.
새 사람이 되지못하니 더 그럴 것인가.
쉽다면 그게 정상일까.
완벽에 이를 수 없지만 기억하자.
주인이 누구인지를 말이다.
이성으로 기억하고
감성으로 가슴에 새기고 살다보면
삶까지 이어지는 변화가 있을 것이다.
내가 혼자 할 수 없으니 더욱 의지할 수 밖에....
카페 게시글
이렇게 들었네요.
새사람을 입으라
주방지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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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06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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