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5년 3월 11일(화), 19:00~21:10
T전화 그룹통화 참석: 이진흥 선생님, 고미현, 곽미숙, 김미숙, 김용순, 박수하, 박유경, 배정향, 양다연, 전영숙, 정해영, 황석주, 박경화
토론 작품: (작품 평은 ‘작품 토론방’ 참고)
1. 혁명과 사랑 · 김미숙
2. 이른 봄 · 정해영
3. 사람 사는 이야기 · 곽미숙
4. 쓸모를 잃은 · 전영숙
5. 3월 계곡 · 황석주
6. 봄, 부엌 · 배정향
7. 엄마의 자리 · 양다연
8. 어둠 속 묻어둔 · 박경화
984회 물빛 토론의 첫 작품은 김미숙 선생님의 ‘혁명과 사랑’이었다. 시를 읽기도 전에 진부한 듯 역동적인 제목에 먼저 가슴이 잠시 뛰었고, 한때 푹 빠져 읽었던 민중운동의 혁명가였던 김남주 시인이 생각나 시집 『조국은 하나다』, 시선집 『꽃속에 피가 흐른다』를 다시 읽어보았다. 그의 시 속에 깃든 조국애와 열정, 눈물, 피와 땀, 사람 냄새 푹푹 나는 진정성은 언제 읽어도 가슴 벅찬 떨림을 준다.
그의 시들은 내게 무엇을 쓰려고 하는지,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지를 명확히 할 것을 가르쳐주며 취미가 아닌, 자아도취의 낭만이 아닌, 이력서의 액세서리가 아닌, 얼마만큼 진정성 있게 시를 쓰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했다. 오랫동안 시를 공부하며 쓰고 있지만, 너무 안일하게 시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틀에 갇혀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에 대한 열정과 사랑, 혁명적인(?) 자세를 다시 점검하게 했다. 나에게 이번 토론은 시 제목 하나에 많은 생각을 하며 공부하게 된 날이었다. 김미숙 선생님과 함께 읽고 싶은 김남주 시인의 시를 몇 편 옮겨본다.
*
나는 나의 시가
김남주
나는 나의 시가
오가는 이들의 눈길이나 끌기 위해
최신유행의 의상 걸치기에 급급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바라지 않는다 나의 시가
생활의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순수의 꽃으로 서가에 꽂혀
호사가의 장식품이 되는 것을
나는 또한 바라지 않는다 자유를 위한 싸움에서
형제들이 피를 흘리고 있는데 나의 시가
한과 슬픔의 넋두리로
설움 깊은 사람 더욱 서럽게 하는 것을
나는 바란다 총검의 그늘에 가위눌린
한낮의 태양 아래서 나의 시가
탄압의 눈을 피해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기를
미처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배부른 자들의 도구가 되어 혹사당하는 이들의 손에 건네져
깊은 밤 노동의 피곤한 눈들에서 빛나기를
한 자 한 자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그들이 나의 시구를 소리내어 읽을 때마다
뜨거운 어떤 것이 그들의 목젖까지 차올라
각성의 눈물로 흐르기도 하고
누르지 못할 노여움이 그들의 가슴에서 터져
싸움의 주먹을 불끈 쥐게 하기를
나는 또한 바라 마지않는다 나의 시가
입에서 입으로 옮겨져 노래가 되고
캄캄한 밤의 귓가에서 밝아지기를
사이사이 이랑 사이 고랑을 타고
쟁기질하는 농부의 들녘에서 울려퍼지기를
때로는 나의 시가 탄광의 굴속에 묻혀 있다가
때로는 나의 시가 공장의 굴뚝에 숨어 있다가
때를 만나면 이제야 굴욕의 침묵을 깨고
들고 일어서는 봉기의 창끝이 되기를
*
탁류
김남주
탁류에 휩쓸려
하류로 하류로 떠밀려가는
수천 수만의 고기떼를 보네
어떤 놈은 아가리를 벌리고
탁류에 욕을 퍼붓기도 하고
어떤 놈은 대가리를 쳐들고
탁류를 거슬러 오르려고도 하네
그너나 그때마다
누가 던지 작살에 찍혀
땡볕의 모래밭에 내던져지네
나는 보네
튀어나온 물고기의 눈에서
한 시대의 분노를
나는 보네
흙탕물로 가득 찬 물고기의 입에서
한 시대의 저주를
*
강
김남주
봄이 와도
풀리지 않는 강 풀 길이 없음인가
발이 시리는지 어떤 이는 발만 동동 구르고
손이 시리는지 어떤 이는 손만 호호 불고 있네
봄이 오고 또 오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강 영영 풀 길이 없음인가
어떤 이는 강 건너 마을에 봄이 왔음을 시새워하고
어떤 이는 왔던 길 되돌아가고
어떤 이는 추위를 이기지 못해 주막을 찾고
그는 금방 붉은 달이 되어 낮게 낮게 엎드려 울기 시작하네
풀리지 않는 강
아
과연
정말
영영
풀 길이 없음인가 벗이여
나에게 다오 철의 규율을
나에게 다오 불의 열정을
나에게 다오 바위의 조직을
얼어붙은 강을 으깨어놓을 테다!
이렇게 노래하는 사람은 없음인가
이 봄에 한두 사람 없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