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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선악과 타락의 3대 개악>의 줄거리: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따라 기여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채 선악과를 따 먹은 결과, 이제 사람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주체성은 밀려나고 스스로 주체성을 발휘하는 삶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에 의해 뒤 덮혀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변화가 크게 3가지로 나타나는데, 첫째는 인격적 하나님을 원수로 대하게 되었고 둘째는 사탄을 아비삼아 따라하여 마음의 배를 땅으로 채우려 하게 되었으며 셋째는 노동이 그 본질을 잃고 타락하게 됩니다.
선악과 타락의 3대 개악
(창3:8~21)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선악과 타락의 3대 개악>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선악과 타락의 3대 개악’
뱀인 사탄의 말을 듣고 아담과 하와는 생각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스스로 내 삶에서 주어지고 있는 문제들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알아서 좋은 쪽으로 삶을 개선하기 위하여 방향을 잡고, 그 방향으로 좋다고 생각하고 믿고 의심하지 않아서 그것들을 목표로 삼고 달려가 쟁취하는 삶이 참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예요. 그냥 단순하게 먹으라고 해서 선악과를 따먹고 벌 받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향상을 확신하고 바랬습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먹고 타락의 결과 세 가지 개악이 일어나게 됩니다, 개선이 아니라.
첫 번째 개악이 무엇이냐?
하나님이 원수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오해하면 안 될 것은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원수로 삼으셨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실 수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원수로 생각하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에 스스로 좋고 나쁨을 판단하게 된 인간이 하나님을 원수 취급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개악이 무엇이냐?
마귀가 사람들의 아비가 되었습니다. 아비가 되었다는 것은 그로부터 배움을 받고 그로부터 삶의 방향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본질을 따라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원수 취급하게 되었고, 두 번째는 마귀를 아비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개악은 여자의 모든 인생의 활동, 남자의 모든 활동과 노동이 근본적으로 변질이 되어 버렸습니다.
노동과 활동이 변질되었다는 것은, 노동과 활동을 하면 할수록 삶은 점점 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덮여있는 깊음이라는 바다에 빠지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결국 선악을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내 마음 안에서 하나님의 주체성을 완전히 밖으로 내몰아 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주체성이 내몰릴 때에, 피조세계의 바탕 설계인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덮여있는 깊음이 우리의 삶을 점령하게 됩니다.
백합화가 이러한 혼돈과 공허를 벗어날 수 있는 이유는, 백합화는 생래적으로 하나님의 주체성이 수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소원이 수용되고 있기 때문에 혼돈과 공허를 벗어날 수 있고 바다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주체성이 받아들여져야만 우리는 이 참담한 카오스를 극복할 수 있는데,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스스로 자기 삶에 대해서 주체가 되고, 주체성을 발휘하게 되면서 삶은 혼돈과 공허와 바다에 빠지는 일로 뒤덮여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하나님을 원수 취급하고, 사탄을 아비 취급하고, 활동과 노동이 변질되어 버렸다는 것으로 나타나고, 이 사실은 태초에 있었던 일이지만 바로 지금 오늘날도 우리의 삶에서 내가 경험적으로 확증할 수 있는 내용들로 이 타락의 3대 개악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한 번 살펴봅니다.
오늘 본문에 이해하기가 좀 어려운 얄궂은 곳이 한 군데 있습니다.
10절에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기척을 눈치 챈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 숲에 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면서 찾게 됩니다.
이때 아담이 대답한 것이 뭐냐 하면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합니다.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이 말이 우선 갸우뚱해지는 것은 벗지 않고 있었습니다.
바로 앞 7절에서 보면 아담과 하와가 눈이 밝아져서 서로의 나체를 보고 부끄러워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중요한 부분을 가렸어요. 그러니까 벗었다는 얘기는 신체상 나체가 아니에요.
그리고 벗었으면 부끄러워하거나 수치심을 느껴야지 왜 두려워합니까? 이것도 문제에요.
결국 벗었다는 것은 신체상의 벗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에 마음이 어떤 상태가 되었기에 벗은 것이 두렵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느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뭐냐?
내가 벗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원수 취급합니다.
이 내막이 무엇일까요?
먼저 ‘벗었다’라는 내용을 알려면 우리가 얼마 전에 요한계시록에서 봤어요.
요한계시록 3:17절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 주님이 말씀하실 때에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러니까 라오디게아 교회 사람들의 생각은 자기들이 부자 됨으로 옷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돈으로 옷을 입고, 명품으로 옷을 입고, 엘리트 의식으로 옷을 입고, 권력으로 옷을 입고…
다시 말해 이 세상에서 선악을 판단하게 된 인간들이 좋다고 여기는 것들로 옷을 입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보시기에는 벌거벗었다는 것이죠.
여기서 아담이 벌거벗었다고 느끼는 것은, 이제 선악을 판단하게 되니까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를 스스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자기가 좋다고 여기는 것들 돈, 인기, 명예, 권력, 명품, 일류 대학, 일류 회사… 이런 좋다고 여기는 것들이 자기한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벌거벗었어요.
그래서 이제부터 자기가 좋다고 여기는 것들을 추구해 들어가고 쟁취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이 딱 나타나신 거예요.
우리는 잘 모르더라도 아담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압니다. 하나님은 인격자이십니다.
인격자이신 하나님이 가까이 온다는 것이 뭘 뜻하느냐?
내 마음 안에 하나님을 받아들여야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그냥 와서 말만 붙이고 가실 분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아담은 자기 마음속에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자기가 판단할 수 있는 자가 되면서 돈이 좋다고 마음에 갖고 있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큰 빌딩을 하나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명품 자동차를 사고 싶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식을 일류대학에 넣고 싶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인격적인 하나님이 다가오신 다는 것은 그 마음에 담고 있는 모든 것들을 다 내보내야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돈을 좋아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마음으로 돈을 좋아할 수도 없고, 실제로 돈을 소유할 수도 없게 되어버립니다.
그러니까 돈을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하나님은 내 원수가 되는 거예요.
내가 지금 돈을 좋아하고 있고, 이 세상에서 자식의 출세를 좋아하고 있고 내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승진을 좋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인격자로서 가까이 오신다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을 더 이상은 좋아하지도 말고 소유하지도 말라는 의미가 되어버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소유하고 하나님으로 만족해야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좋아하는 동안에는 하나님과 원수 관계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지금 벌거벗고 있다고 생각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위해 뛰어나가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가까이 오시니까 하나님을 받아들이면 자기가 좋다고 여기는 것들을 다 놓쳐버려야 하는 거예요. 다 놓아버려야 하는 겁니다.
마19:16-22절에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여 가니라”라고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을 가까이 못 합니다. 예수님이 원수가 되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재산을 당신에게 가져오라는 것도 아니고 가난한 자들에게 줘버리라고 하시니까 이게 원수지요.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아니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이 세상에서 선악을 판단해서 마음에 이런 것 좀 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생기는 이런 상태에서는 인격적 하나님은 원수가 되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원수로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그 하나님은 피해가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부르고 있지 않느냐?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그건 종교적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인격적 하나님은 인격체이시기 때문에 내 마음에 모셔 들여야 하는데 내가 이 세상에서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마음에서 밀어내시는 원수로 취급해서 등을 돌리고 안 보려 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종교적 하나님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심지어는 강대상에서 나오는 설교 속에서도 하나님이 인격적 하나님이 아니라 종교적 하나님으로 둔갑되어 버립니다. 종교적 하나님으로 둔갑돼 버리면 하나님은 인격자가 아니라 우상이 되어버립니다. 우상이 되어버릴 때에는 내가 하나님 말고 이 땅에서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마음대로 추구하고 그것들을 달라고 기도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하나님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좋아하는 것들을 기도해서 얻게 되면 그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 되어버립니다.
제가 단언하건대 불상에게 절하면서 돈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돈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덜하지 않게 그 불상이 돈 벌게 해줄 겁니다.
그리고 고목나무에 정화수 떠놓고 자식 잘 되게 비는 것과, 교회 나와서 새벽기도 하고 철야기도하고 40일 금식기도하면서 우리 자식 잘 되게 기도하는 것과 어느 것이 결과가 더 좋을지 아무도 장담 못합니다.
정화수 떠 놓고 기도하는 것이나 40일 금식기도하면서 예수님 이름 부르고 하나님이름 부르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이거는 100% 맞는 이야기입니다. 확신합니다.
종교적 하나님은 하나님을 우상시하는 겁니다.
내가 이 세상 것을 좋아하고 이 세상 것을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다면 하나님을 우상시하는 것이고, 종교적 하나님으로 둔갑시키는 것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식의 믿음을 갖고 있으면서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하고 한 번 믿으면 성도의 견인의 교리에 따라서 끝까지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세상 것을 좋아하면 인격적 하나님은 나의 원수가 되십니다.’
이걸 놓기 전에는 절대로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셔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고향 땅과 친척 아비 집을 다 버리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그 예쁜 아내인 사라를 버리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 사탄이 아비가 됩니다.
우리가 읽지 않은 부분 14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라고 하십니다.
‘배로 다니고 흙을 먹는다.’
원래 생물학적인 의미에서 뱀은 흙을 먹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날름거리는 혀로 파리도 잡아먹고 턱이 발달해서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짐승도 잡아먹고 그러지 않습니까?
흙을 먹는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죠.
그러니까 사탄이 배로 다닌다는 것은 이 땅에 마음을 붙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뱀의 후손’ 사탄의 후손이 누구예요?
요한계시록에서 봤던 바다짐승, 땅 짐승입니까? 아니에요.
사탄의 후손은 바로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8:44절에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욕심이 뭡니까?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어요. 타락하기 전의 아담에게도 있어요.
이 땅의 것으로 마음을 채우려고 할 때에 욕심이 되는 겁니다.
배로 다니고 흙을 먹는다는 것은, 마음을 땅에 붙이고 이 땅의 것으로 마음을 배불리려 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뱀인 사탄의 유전자가 유전되어서 인간에게 나타난 일이 이 땅에 마음을 붙이고 이 땅의 것들로 비어있는 마음을 채우려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본문 11-13절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열매를 먹었느냐고 물었더니 하와 때문에 먹었다고 해요. 하와한테 가서 너 왜 그랬냐고 하시니 하와는 뱀 때문에 그랬다고 합니다.
이것은 책임을 전가하는 나쁜 죄적 습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의미는 이렇게 전가가 되는 것은 소급됩니다.
소급된다는 것은, 이제 나는 내가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내 마음이 연합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이 세상에서 하게 되는 모든 말과 행동과 계획과 소원 모든 것들이 다 나에게서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소급되고 소급되어서 결국은 마귀 사탄에게로 소급됩니다.
내가 이 땅에서 사업을 한 번 잘 해보면 만족할 것 같죠?
그 사업을 잘 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어디서부터 연유된 줄 아십니까?
여러분이 만들어 낸 것입니까? 대학교 시절에 교수님께 강의 듣다가 감동 받아서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겁니까? 아버지가 비즈니스를 잘 했기 때문에 아버지께 배운 겁니까? 아니에요.
다 중간 과정들이고 궁극적으로 소급해보면 마귀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겁니다.
하여간 이 땅에서 무엇인가를 좋아하면서 무엇인가를 이루겠다는 마음이 왜 생겼느냐?
그 근원을 따져서 들어가면 마지막으로 소급되는 곳이 바로 마귀라는 거예요. 마귀로부터 그 생각과 소원이 주어진 겁니다.
어차피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판단과 소원과 생각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타락 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스스로 하나님처럼 판단하는 자의 자리에 섰다고 마귀가 유혹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끝까지 소급해 들어가 보면 마귀가 준 생각입니다.
돈이 왜 좋아요? 돈이 좋다고 누가 그랬습니까?
사람이 망하는 게 돈이 없어서 망하는 것보다, 돈이 있어서 망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십니까?
추석날 형제들이 모여서 칼부림으로 서로 죽이는 이유가 뭐예요? 돈 때문이에요.
왜 자식이 아버지를 죽입니까? 돈 때문이에요.
왜 아버지가 자식을 죽입니까? 돈 때문이에요.
돈 없어서 망하는 법은 없습니다. 돈이 없으면 형제들끼리, 가족들끼리 더 위하고 애를 쓰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요. 돈이 많아서 망하는 겁니다.
그런데 돈, 돈 하고 있는 것은 마귀로부터 발산되어지는 모든 가르침을 아비로 인정하는 마귀 친화적 생각을 갖게 된 겁니다. 마귀하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친합니다.
시진핑 주석과 아베 총리가 서로 악수하면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 시진핑 주석 얼굴이 완전히 굳었어요. 그런데 시진핑 주석과 박근혜 대통령이 FTA를 타결하고 악수하며 찍은 사진이 있는데 얼굴에 희색이 가득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달라요?
일본 사람들이 보면 속상하겠더라고요. 그런 거예요.
비유적으로 아담은 하나님을 껄끄러워 해요. 원수예요.
그런데 대놓고 마귀와 친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마귀로부터 오는 가르침과 마귀로부터 모든 소원과 계획 같은 것들과는 얼마나 친한지 몰라요. 이게 바로 개악의 상태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지금 여러분이 아내와 남편, 자식, 사업에 대해서 죽고,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다시 이 세상을 살게 되는 이 복음의 삶이 있기 전에는, 여러분이 소원을 갖고 계획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의 근원은 마귀에게로 소급됩니다. 꼭 잊지 마셔야 돼요.
마지막 개악은 16-17절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얼굴에서 땀을 흘려야 먹고 살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리고 여자는 아이를 낳는 고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낳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낳았으면 길러야 되는 것이 포함되는 것이죠. 여자가 할 수 있는 대표적인 활동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고통이 따른다는 거예요.
여자의 고통이 뭡니까? 자식 키우는데 일평생 고통이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남자가 직업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이 남자의 활동도 생계형 노동으로 변질이 되어버립니다.
그 전의 노동은 어떠한 노동이었는가?
노동은 여자건 남자건 공통적인 것은 행위가 나타나기 전에 마음으로 하나님과 연합하게 되어서 마음이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행복한 상태에서 더 이상 땅에 대해 바랄 것이 없게 되면, 하나님의 주체성이 이 땅에 있는 내 몸을 통해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체성이 꽃피워지는 것이 인간의 노동이고 활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선악을 판단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모든 노동이 생계형 노동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노동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직업도 타락해 버린 것이죠.
원래 직업을 갖는 이유는 그 직장에 가서 내 주체성을 주체적으로 부인하는 거예요.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거예요. 타락하지 않았다면 직장 생활이 어땠을까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직장에 가서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내 주체성인 판단이나 소원이 다 죽어버려요. 승진에 대한 소원도 없고 사장님에 대한 비판도 없고 죽어버려요. 그러면 하나님의 주체성이 나타나는 겁니다.
그러면 왜 직장 생활을 하느냐?
그 직장에 가서 하나님의 주체성이 나를 통해서 꽃 피워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소속된 이곳에 하나님의 주체성이 표현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려고 직장을 주신 거예요.
그런데 타락한 뒤에는 직장에 가서 나와 내 가족이 먹고 살려는 돈을 벌려고 가게 됩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일은 혼돈과 공허예요. 얽히고 섥혀요.
제가 어느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100명이 창업을 하면 2~3명도 성공을 못한대요.
이게 바로 땅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100명이 창업하면 100명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 뭐냐?
원래의 타락 이전의 노동이고 활동이었습니다.
100명이 창업하면 100명이 어떻게 다 성공합니까?
100명의 직장 생활이 어떻게 완전한 성공적인 직장 생활이 됩니까?
돈 벌려고 직장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주체성, 하나님의 뜻이 꽃 피워지는 일을 위해서 직장을 구했기 때문이고, 그 직장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당신의 주체성을 꽃 피우라고 믿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주체성을 꽃 피우시기 위해, 당신의 뜻과 생각과 소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러이러한 일을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거기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그런데 타락 이후에 나타나는 엉겅퀴와 가시덤불에 덮여 버립니다.
돈 버는 걸 성공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돈 벌었다고 해요.
그런데 공허합니다. 그리고 혼돈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사업에 바다처럼 깊이깊이 빠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헤어나지를 못합니다. 되게 하려고, 이익을 내려고 온갖 악행이 거기서 나오기 시작합니다.
뭣 하러 이렇게 살아요?
이제는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으니까, 십자가 사건은 선악과나무와 다르게 매일 따먹으라는 거예요.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의 살과 피를 매일 먹으라는 거예요.
그 주님의 죽음을 매일 나의 죽음으로 받아들이라는 거예요.
이 땅에 대해서 나의 주체성이 죽으면 하나님의 주체성이 나타납니다.
3대 개악이 다 극복될 수 있다는 거예요.
이 3대 개악이 완전히 극복된 삶을 날마다 살 수 있게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으므로, 십자가 사건의 생활화를 통하여 날마다 개악이 멈춰지고 하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에덴의 회복이 경험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주님의 십자가나무에서 주님의 죽음을 날마다 따먹음으로써 선악과 따먹어서 생긴 3대 개악을 능히 이기고 하늘나라가 이 땅에 실현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은총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목사님의 설교는 명쾌합니다. 말씀을 마음에 담습니다. 교회에서 전교인 대상으로 중보기도 스케줄을 만들어 한달 동안 매주마다 교인들에게 기도제목을 작성하여 재출하라고 합니다. 교인들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중보기도를 합니다. 제출된 기도제목이 개인이 소원하는 내용들입니다. 집을 팔게하는 내용, 전세를 놓는 내용, 자식들 결혼문제, 질병문제등 모두가 사적인 개인들의 바람입니다. 평소에 이런 중보기도는 문제가 있다고 여겼지만, 목회자가 한다는데 뭐라 할 수 없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되는지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