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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근원님이 육체로서의 "나 자신 "으로 부터 自由함을 얻으셨다고
생면부지의 길수에게 담대히 간증할 수 있는 내면의 건강을 되찾은 점
진심으로 감축 드립니다.
아래 글은 길수의 온 우주를 향한 고백이 담긴 글들입니다.
양심의 자유를 잃지 않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하늘의 왕으로서
,중보자로서 , 하늘을 바로 안 선지자로 印침 받은 자로서의
복의 근원님만의 길을 가시는 데 도움과 위로가 되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癸巳年 夏至節 순창에서 金吉守 拜上
http://team.hani.co.kr/wisdomlove/51899
( http://team.hani.co.kr/wisdomlove/51844 댓글에 대한 답글)
나의 님을 처음 대하던 날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님이여!!
나는 당신을 만나서 비로소 나의 존재가 얼마나
값어치 있는 지를 알았습니다.
님을 만나기 전 방황의 늪 속을 헤매며
나는 속깊은 울음을 많이도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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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어여쁜 모습에서 나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보게 되었습니다.
님의 부르시는 소리에 화답하는 나의 목소리가
그토록 영롱할 수 있음을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님의 향기에 취해서야 비로소 나의 향기가 님을
취하게 함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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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쁘고 어여쁜 나의 님!!
나는 님을 만나 눈이 멀었습니다.
님의 소리에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님의 향기에 나의 코는 마비되었습니다.
님의 입슬에 입맞추는 순간 나는 말을
할 수 없는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휘황찬란한 빛이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소리가 귀에 더 이상 들리지를
않은 까닭입니다.
세상의 향수 냄새를 더이상 맡지 못하는 코가
되어서 입니다.
세상에서 배운 말들을 할 수 없는 혀가 되었기에
입이 얼어붙은 소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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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앞에 선 나는 두려움을 모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부끄러워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유가 무었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가진 것 없어도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는 것 없어도 지헤자가 되었습니다.
힘없이도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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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
님을 처음 본 순간 나의 눈은 열렸습니다.
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의 귀가 뚫렸습니다.
님의 향기가 나를 감싸는 그 때 나의 코가
트였습니다.
곱디 고운 나의 님!!
이젠 내 형제들의 모습에서 님의 모습을 봅니다.
내 자매들의 목소리에 섞여있는 님의 소리를
듣습니다.
이제는 만나는 낯선 이들의 체취에서 님의 향기를
맡습니다.
작은 일 큰 일에서 님의 손짓 솜씨를 배웁니다.
머무르는 곳곳마다에서 님의 품에 안기는 법을
배웁니다,
사람 사람의 자태에서 님의 아름다움을 닮을 수 있습니다.
신묘년 십일월 초엿새 아침에 무궤.
나의 님과의 만남
나는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나의 조상이 아메바요, 원숭이라는 억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전존재全存在가 진흙덩이에 불과하다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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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하고는 더이상 살 수가
없었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한 걸음도 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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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나'라는 존재의 뿌리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숨을 쉬기 위해 그때까지 내게 주입된 모든 것을 뒤집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앞을 향해 걸음을 내딛기 위해 뒤로 돌아 지나온 족적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나'를 찾는 이 일에 나의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도중에 내 존재 자체가 허무로 돌아간다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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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과연 존재하느냐 묻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누구인지 끊임없이 파고 들었습니다.
女子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없애줄 답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이 세가지 질문에 대한 답에 가까워 가면 갈수록
그만큼 세상에서는 뒤쳐진 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완전히 잊혀진 자가 될 즈음 하늘의 빛이
답으로 임하여 왔습니다.
하나님, 나,여자에 대한 답은 셋이 아니라 하나였습니다.
셋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뿌리였습니다.
여자란 내가 몰랐던 '나'라는 존재의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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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도리가 곧 하늘의 도리였습니다.
인심人心과 천심天心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자' '남자'이기 전에 사람이 되어야 함도
알았습니다.
나는 원숭이의 진화물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조물주가 흙덩이로 빚어 만든 존재,
창조주의 장난감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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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에서는 실패한 인생입니다.
하지만 나의 전존재를 던져 하고 싶은 일을 하여
꿈을 이룬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늘이 낸 시험을 통과한 성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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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무명聖人無名신인무공神人無功
지인무기至人無己(장자 소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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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님의 소원
하늘 마음을 가진 이들의 오직 한 가지 소원
사람의 마음 속엔 만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 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 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깍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 하리요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 없어라
자식이 자기보다 더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 마음이
절절히 드러난 어머님의 은혜(양주동 시)
3절 가사 내용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의 마음이 어찌 인간 부모의 마음보다
못할 수가 있곘습니까?
살과 뼈를 깎아서 자식들인 우리에게 바치는 하늘님 마음을 닮은
부모님, 스승님, 선배님을 가진 이들이 복받은 자들입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하느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 김구 先人의 '나의 소원'은 오직 하나 대한의 독립이였듯이
하늘의 가장 큰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세째도
하나님 당신이 낳으신 천사들과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꼭 닮는 것입니다.
하늘의 자식들인 사람과 천사들이 하나님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하늘스승인 보혜사,萬軍의 하나님 여호와,
우주 만국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차원에 까지 우리가 도달해
하늘의 마음을 가진 제자요.
하나님의 친구로서 함께 교제하고
함께 왕노릇하고
함께 온 우주의 제사장으로 우주 만국 백성을 섬기고
만세의 스승으로 함께 천사와 인간의 모범이 되기를
하늘님은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길을 가렵니다.
나의 하늘 나의 님 예수여!!
나는 당신을 정말로 사랑하기에 당신의 종이
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팔아 양식을 사지 않았습니다.
돈벌이 수단으로 당신을 섬기는 체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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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나의 예수님!!
나는 당신을 위해 내 목숨을 드릴 수 있지만
나의 양심까지 희생하면서 당신을 사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양심의 자유를 잃게 되면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요
짐승에 불과하니까요.
사냥개의 충성, 진돗개의 사랑을 요구하는 예수는
나의 님이 아닌 까닭입니다.
사무치게 아프게 당신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나의 님 당신을 닮고자 함이지
당신의 소유, 당신의 도구가 되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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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하나님 나를 사모하시는 나의 님이시여!!
내가 당신을 미워할 수 있기에 그만큼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게 당신을 핍박하고 모욕을 줄 수 있는 능력과
당신을 버리고 당신을 떠날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기에
나는 나의 하나님 당신을 버릴 수도, 떠날 수도 ,
욕되게 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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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핍박받고 버립받고 죽임당한
나의 하나님 나의 예수님!!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당신이 가지 말라고 애원하며 붙잡아도
나의 길, 내가 깨닫고 나의 의지로 내 스스로의
자유로 선택한 이 양심의 길을 가려합니다.
양심의 도리에 어긋나는 경우라면
비록 당신의 이름으로 발해지는 명령, 부탁일지라도
단호하게 거절할 것입니다.
양심의 법도에 맞는 경우라면
내 하나님 당신을 욕되게 하는 자,
당신을 미워하는 당신의 원수로 취급을 당한다 할지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그 길을 갈 것입니다.
이런 나를 하나님 당신이 설혹 벌주고 버린다해도
나는 내 양심의 길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당신의 겉모습이 아닌 당신의 속마음을 닮고자
힘쓰고 애쓰고 있는 까닭입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양심을 버린다면 나는 과감히
당신에 대한 사랑을 끊을 것입니다.
아무리 아리고 아무리 쓰려도 당신을 떠날 것입니다.
양심의 도리를 행하는 이 길이 내 하나님이신 예수님
당신을 향한 나만의 사랑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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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왕 나의 구주 예수여!!
남과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당신은
영원한 나의 친구, 나의 벗, 나의 지기知己입니다,
내 육체를 창조한 나의 하나님 당신의 극기의 생애는
나의 모본이요, 사표요, 귀감입니다.
당신은 진실한 마음으로 존경할 수 있는 나의 스승입니다.
당신의 둘도 없는 벗답게 나 역시 자랑스럽게
나와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는 나의 길을 가렵니다.
당신의 흉내만 내는 자가 아닌 당신께 배운 학생답게
목숨 걸고 나의 良心을 지키는 자가 되렵니다.
나를 당신의 꼭두각시,당신의 앵무새,당신의 원숭이,
당신의 장난감이 아닌
당신의 하나님으로 사랑하고 존경하시는
당신의 기대, 당신의 신뢰, 당신의 바램을 어찌 져버리고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연출하는 배우,
당신의 모조품, 당신의 짝퉁으로서의 삶을 살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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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하나님 나의 사랑이여!!
남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
내가 예수님 당신의 하늘이요,
내가 예수님 당신의 하나님임을.
예수님 당신이 피흘리고 목숨바쳐
사랑한 사랑임을.
당신의 양심은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良心은 당신의 하나님이심을
사람들도 천사들도 알지를 못합니다.
내 영원한 친구요, 스승이요, 선배인 당신이
하나님 당신 자신의 양심을 지키고 드러내기 위해
가시면류관을 쓰고,누더기 홍포를 입고,
갈대 홀을 잡은 그 형극의 길을 가셨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내게 말해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내 하나님 당신 양심의 그 길이
당신의 제자요,당신의 후배요, 당신의 知音인
내가 가야할 本이었습니다.
내게 더 이상 없는 귀감이요,
지극한 은헤요,
구원이었습니다.
이젠 두려움없이 당신의 길이 아닌 내 양심의 길을
가겠습니다.
내 하나님 당신을 위한 길도 아니요
나의 부모 형제, 내 민족을 위한 길도 아니요
인류나 우주를 위한 길도 아닌
나의 良心을 위한 가시밭 길을
어떤 수치를 무릅쓰고라도
피눈물을 흘리면서라도 가겠습니다.
일찍이 당신이 하신 말씀
"내가 나를 위하여 내가 나를 위하여
이 일을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영광을 욕되게 하리요"그대로
숨기웠던 당신 양심의 영광
지성소의 쉐카이나 그 빛을 드러내셨듯이
당신이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아프게 기다리는 당신의 하늘인 나 역시도
내 양심의 영광을 욕되게 하지 않기 위해
당신의 십자가가 아닌
나의 십자가를 지는 이 일을 이룰 것입니다.
그 길이 당신과 인류를 위한 영광, 구원, 은혜, 축복이 될지
수치,저주,해악이 될지는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극기의 길을 가는 이들에게는 축복이 될 터이지요.
당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기 육체를 섬기며
육체를 자랑하며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극약이,
비할데 없는 저주가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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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나의 하늘, 나의 하나님이요.
나는 님의 하늘, 님의 하나님이다.」이라 깨닫고
良心의 道를 행하는 우리의 님들은
어디에 얼마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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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年 小滿節을 일주일 앞두고 无匱
http://blog.daum.net/mugue/18320521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달콤한 이 애정고백과「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엄숙한 이 신앙고백은 동일한 마음의 다른 표현이다.
'믿음 없는 사랑'은 음란이지 사랑이 아니다.
'사랑 없는 믿음'은 두려움이 따르는 거래이지 믿음이 아니다.
두려움이 따른다는 말은 계약을 위반할 때에는 벌금(형벌)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음란이 사랑이란 포장지로 포장되었다 해서 진짜 사랑이 될 수는 없다.
형벌이 정의(正義=믿음)란 이름으로 불린다 해서 참 믿음으로 바뀌지 않는다.
믿음이란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 그대와 그대가 믿는 나는 하나입니다.」가 사랑관계의 의미라면
믿음관계란 「내가 사랑하는 그대는 여전히 자유로운 그대요, 그대가 사랑하는
나 역시 그대와는 구별되는 여전한 나입니다.」이다.
맹신(盲信 =맹종), 우상숭배, 음란한 사랑(?)이 참된 믿음(사랑)이 될 수 없는
이유는 한 쪽이 자유(믿음의 다른 표현)를 잃고 노예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꾼 사이의 거래(信用)가 믿음으로 바뀌기 어려운 이유는
서로를 향한 사랑(희생=상대를 책임지려는 마음)이 처음부터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를 믿습니다.」 이 고백은 어떠한 경우에도 그대르 향한
신의(절개)를 잃지 않겠으니 ,그대도 나에게 언제까지나 그대 스스로의 자유로운 선택
=그대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으로) 나에 대한 지조(정조)를 지켜주오 라는
은근한 협박(?)이다.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 달콤한 속삭임 속에는 '그대도 나에게 헌신해주고,
나를 책임져 주시오' 라는 참으로 무거운 멍에(=족쇄=반지=커플링) 즉 스스로 좋아서
지는 희생의 십자가를 상대에게 지우겠다는 뻔뻔함(?)이 녹아있다.
罪란 절개를 잃는 것이다.
사랑의 약속(믿음)을 깨뜨린 것이다.
서양인들이 흔하게 사용하는 cheating( 딴 남자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갖는 것=오입)은
죄의 개념을 쉽게 알게 해주는 예이다
惡이란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방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쉬운 말로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자기는 상대를 책임지지 않는 자유만을 누리고 상대의 자유를 박탈하고 책임만을 지우는
것이다.
잘못된 믿음(맹신)은 나를 상대를 위해 희생만 하는 노예로 만든다.(자유 없는 책임)
잘못된 사랑은 상대를 나의 소유, 노리개로 삼는 것이다.(책임지지 않는 자유=상대를
존중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사랑)
참된 믿음(사랑)이란 나의 마음과 그대 마음이 같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그 마음 변치말고
계속 유지해 나가자는 상대방에게 한 약속이자 스스로에게 한 다짐, 맹세라 할 수 있다.
자유, 믿음이 없는 사랑 .희생은 감옥이요 족쇄이며 노예이지 진정한 사랑이 아니듯
서로(상대)를 책임지지 아니하는 자유란 독재요 고립이요 단절이지 믿음이 아니다.
한국인의 끈끈한 情이란 달리 표현하면 어머니의 사랑이다.
한국 가정의 아이 교육은 어머니가 도맡아 한다.
어머니가 사랑(헌신, 희생)이란 이름으로 아이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희생도 헌신도
참된 사랑도 아니다.
어머니의 소유욕이니 자식을 노예로 맹신 맹종자로 공부기계로 만드는 원흉이다.
자식들을 믿고 아이들 각자가 가진 적성을 스스로 살리도록 도와준 신사임당 같은
어머니들이 한국을 살리고 의자왕의 어머니나 낙랑공주 같은 여인들이 한국을
망치고야 말 것이다.
율곡 이이가 5000원 짜리에, 그의 어머니가 오만원권 지폐로 상징되고 있음은
한국인의 의식 속에 어머니(사랑=情)란 신성한 분이다 는 이미지가 심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가 아닐런지?
한국의 基督敎가 이 점을 악용하여 맹목적 믿음(무조건 믿으라)을 요구하고
자기를 위해 희생한 어머니 같은 神의 노예(종)되기를 강요하여 왔다.
기독(基督)이란 그리스도를 한자의 음으로 표기한 단어이다.
기독교인(基督敎人)이란 그리스도의 믿음(基督의 사랑)을 가진-닮은- 이들을
일컫는 칭호이다.
以信得義(이신득의) 이 구절 속의 '信'과 '義'는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信'은 성령의 율법(양심의 율법)에 합치하는 義요, '義'는 십계명에 들어맞는
행위 상태를 가리키는 義로 쓰인 점이 다를 뿐이다.
基督의 믿음을 가지게 되면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게 되면) 십계명이
요구하는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는 자, 즉 넉넉하게 십계명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중생자 )로 만들어 주겠다는 새언약 내용을 네 글자로 요약해
놓은 것이 바로 以信得義이다.
종교단체로서의 基督敎의 믿음(以信得義 교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는
基督의 믿음(그리스도의 양심)과 비교해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믿음이 그리스도의 義(신령한 양심의 義)= 성령의 율법에 일치하는
義를 가리키고 신앙생활이란 십계명에 일치하는 의로운 생애를 사는 것이
以信得義의 의미라면
양심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믿음과 십계명은 예수 외에는 그 누구도 지킬 수
없다고 가르치는 基督敎는 基督(예수 그리스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종교임이 분명하다.
참된 신앙생활, 수도인의 삶, 종교인의 생애란 하늘의 마음(=하나님의 믿음=
그리스도의 양심)을 닮은 이들이 자기 앙심을 십계명에 일치하는 도덕적 행위로
표현하는 것임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를 않으니 ... ... .
오늘날 기독교회의 믿음은 야고보서에 언급된 귀신들의 믿음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음란(基督의 義, 그리스도의 믿음이 빠진 사랑)의 神이 基督의 사랑을 설교하고
전도하는 한국 교회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말았다.
책임이 사랑의 다른 이름이듯 자유는 믿음의 다른 표현이다.
상대를 소유하려 하는 자가 사랑하는 자가 아니듯
상대를 지배 조종하려는 자 역시 상대를 믿고 자유하게 하는 자가 아니다.
생명은 소유나 지배의 대상이 아니다.
생명은 사랑이자 믿음이다.
생명은 자유이며 동시에 책임이다.
생명은 소유하고자 해도 가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생명을 지배 조종하려고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도 로봇으로 바꿀 수는 없다.
독재자들은 자기 백성들을 결코 사랑하지 않는다.
종교교주들도 추종 신도들을 전혀 존경하지 않는다.
백성이나 신도들을 노예(괴뢰)로 맹신자(광신자)로 만들려는 의도 외에는
사랑도 믿음도 없다.
상대를 위한 헌신이 없는 , 상대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자유를 가진 특권자(우상)와
자유가 없는 사랑(희생 헌신)만 강요받는 희생양(종들 ,피조물들)의 기형적 결합이,
믿음 없는 사랑들과 사랑 없는 믿음들의 혼합체가 한국종교계의 실상이다.
믿음(信)에 대해 참전계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信은 義요, 約束이며,忠이자 節(절개=정조 지조)이고 循(춘하추동 사계절의 순환처럼
끊임없이 게속 유지해야 하는)이다.
예수의 믿음을 가진 자 =예수의 마음을 가진 자=예수의 영을 영접한 자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진 자= 그리스도의 율법을 지키는 자=성령의 율법을
좇아 행하는 자=믿음의 義를 가진 자=믿음을 율법을 행하는 자
=하나님의 믿음(faith of the God)을 본받은 자 =하나님의 양심을 닮은 자
=하나님의 義를 가진 자가 참 기독교인이다.
임진년 입추절 무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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