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움을 사랑한다는 애한정기(愛閑亭記), 유유자적하고 여유로운 삶. 2편>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앞 글에 이어--
원본출처 : https://story.kakao.com/yhkoh85hanmail/BPBV5v0FSH0
1) ‘한가로움을 사랑하다’ 애한정기[愛閑亭記] / 이정귀(李廷龜 1564~1634)
(1) 괴산군 괴탄(槐灘)의 상류는 땅이 외지고 아름다워 푸른 벼랑과 맑은 물, 높은 소나무와 긴 대나무의 빼어난 경치가 있다. 나의 노우(老友, 오랜 벗) 박익경(朴益卿)이 그곳에 집을 짓고 살면서 정자 이름을 ‘애한정(愛閑亭)’이라 하고 사대부들에게 그 기문을 지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오봉(五峯) 이호민(李好閔 1553~1634) 이상공(李相公)이 맨 먼저 문(文)과 시(詩)를 지어 이 정자의 이름을 ‘한한정(閑閑亭)’이라 바꾸었으니, 그 뜻은 대개 ‘나 스스로 한가로워야 하는 것이니, 한가로움을 사랑한다(愛)고 하면 오히려 한가로움을 외물(外物, 외계의 사물)로 인식하는 것이 된다.’라는 것이다. 익경(益卿)이 오봉(五峯)의 시문을 소매 속에 넣어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 주면서 그 뜻을 알지 못하는 듯 말하기를, “정자의 이름은 무슨 뜻입니까? 그대의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하였다. 이에 내가 그 뜻을 풀이하였다.
(2) 이른바 한가로움이란 것은 아무 일 없이 자적(自適)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스스로 한가로운 뒤에 남이 그를 보고 한가롭다고 여기는 법이니, 한가로움에 일부러 마음을 두는 것은 참으로 한가로운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한가롭기로는 백구(白鷗)만 한 것이 없으니, 날고 울고 물을 마시고 먹이를 쪼며 자기 본성대로 자적할 뿐 한가로움에 뜻을 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백구를 보는 이들은 한가롭다고 여기니, 백구 스스로 자기가 한가롭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이것이 오봉이 ‘한한(閑閑, 조용하고 한가로움)’이라고 한 까닭이다.
비록 그렇지만 한가로움이란 공물(公物, 공공물)이요, 사랑만은 개인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실로 그 한가로운 경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비록 연하(煙霞, 안개와 노을)가 어린 수석(水石) 사이에 있더라도 그 마음은 오히려 사물에 끌려다닐 것이다. 저 파리나 개처럼 염치없이 애걸하고 세리(勢利, 세력과 권리)를 차지하고자 밤낮으로 세사(世事)에 속박(卯酉, 묘유)되어 사는 자들은 진실로 한가로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한가로움을 사랑할 겨를인들 어디 있겠는가.
(3) 익경은 대대로 서울에 살았으니, 당초에 사환(仕宦, 벼슬아치)에 뜻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번화한 것을 멀리하고 한가로운 것을 사랑하여 정갈한 일실(一室)에 거처하며 노년이 곧 다가오는 줄도 모른다. 아침에는 해 뜨는 것에서 한가롭고 저녁이면 달 뜨는 것에서 한가로우며, 봄에는 꽃을 보며 한가롭고 겨울에는 눈을 보며 한가로우며, 거문고를 타면서 그 흥취를 사랑하고 낚시를 드리운 채 그 자적(自適)을 사랑하며, 다닐 때는 시를 읊고 누워서는 책을 보며,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조망하고 물가에 다다라 노니는 물고기를 구경하는 등 어떠한 경우이건 모두 한가로우니, 사랑한다(愛)는 것으로써 정자 이름을 짓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4) 사랑해 마지않아 마침내 스스로 자기가 한가로운 줄 모르는 경지에 이르면 ‘한한(閑閑)’의 뜻 또한 그 가운데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면 진실로 한가로움과 내가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라 하겠다. 익경은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이 정자 주위, 호산(湖山, 호수와 산)의 경치로 말하자면 내가 눈으로 본 적이 없기에 익경이 명명(命名)한 팔경(八景)을 시로 읊노라.
[槐灘上流 地僻而佳 有翠壁澄潭長松脩竹之勝 吾老友朴益卿 築室而居之 名其亭曰愛閑 求記於薦紳間 五峯李相公 首爲文若詩 易其名曰閑閑 其意蓋以吾自閑之 曰愛則猶外也 益卿袖以示余 若有不解者然 曰亭名何居 願聞子之說 余就而繹之 夫所謂閑者 無事而自適之謂 人必自閑而後人閑之 役志於閑 非眞閑也 物之閑者 莫鷗若也 飛鳴飮啄 自適其性 非有意於閑 而見者閑之 夫豈自知其閑哉 此五峯之言所以發也 雖然 閑 公物也 惟愛者能有之 苟不愛焉 則雖處煙霞水石之間 其心猶役役也 彼狗苟蠅營 昏夜乞哀 乾沒勢利 卯酉束縛者 固不知閑之爲何事 奚暇於愛乎 益卿世家京洛 初非無意於仕宦者 今乃謝紛華而樂寛閑 一室蕭然 不知老之將至 朝於旭而閑 夕於月而閑 花於春而閑 雪於冬而閑 琴焉而愛其趣 釣焉而愛其適 行吟詩臥看書 登高望遠 臨水觀魚 隨所遇而皆閑 則名之以愛 不亦宜乎 愛之不已 終至於不自知其閑 則閑閑之意 亦在其中矣 斯固一而二 二而一者也 益卿何擇焉 乃若湖山之勝 余未嘗寄目 竊就君所命八景者而爲之詠]
[주1] 괴탄(槐灘) : 느티여울, 충북 괴산군 괴산읍에 흐르는 달천(한강의 지류)을 말함. 괴산군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지르는 괴산군 최대의 하천이다.
[주2] 이호민(李好閔 1553~1634) : 조선시대 예조판서, 대제학,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오봉(五峯) · 남곽(南郭) · 수와(睡窩)이다. 지례(知禮)의 도동향사(道東鄕祠)에 제향되었다. 그는 <한한정기(閑閑亭記)>를 따로 지었다.
[주3] 자적(自適) : 무엇에도 속박(束縛)됨이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생활함
[주4] 묘유(卯酉) : 관청에 출근하여 직무에 종사하는 것을 말한다. 관리들이 묘시(卯時)에 출근하여 유시(酉時)에 퇴근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4년4월18일 기사에, “각사(各司)의 관원은 묘시에 출사하여 유시에 퇴근하고,해가 짧을 때에는 진시에 출사하여 신시에 퇴근하는 것이 법전에 실려 있습니다.”하였다.
[주5] 팔경(八景)을 시로 읊노라. 칠언절구 8수(首) : 박익경(朴益卿) 지겸(知謙)을 위해서 지은 〈애한정 팔영(愛閑亭八詠)〉이다. 송악의 맑은 날 산기운(松嶽晴嵐), 연꽃 핀 연못에 비친 달(荷塘夜月), 연꽃 핀 연못에 비친 달(荷塘夜月), 외딴 마을의 저녁 연기(孤村暮煙), 푸른 벼랑에 지는 낙조(蒼壁落照), 돌길을 가는 행인(石磴行人), 강 포구에 떠 있는 상선(江浦商船), 절에서 승려를 찾다(佛寺尋僧), 괴탄에서 낚시하다(槐灘釣魚)이다.
● 다음 ‘東’ 운의 칠언율시 <애한정운(愛閑亭韻)>은 조선후기 『백곡집』, 『종남총지』 등을 저술한 시인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 1603~1684)의 작품이다. 김득신(金得臣)이 세운 서재(독서당) 취묵당(醉黙堂)은 ‘술에 취해도 침묵한다’는 뜻으로, 현종(顯宗) 3년(1662년)에 건립했으며, 애한정(愛閑亭)의 북쪽 약4Km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에 있다. 이 글의 내용을 보면, 애한정은 높은 언덕에 우뚝 솟아 있고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정자에는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의 글이 전해오고 있고 어진 고을 수령의 도움으로 정자를 잘 보존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2) 애한정운[愛閑亭韻] /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 1603~1684)
縹緲飛亭聳碧穹 표묘히 날아오를 듯한 정자가 푸른 하늘로 높이 솟았고
登臨豪氣太凌虹 높은 곳의 호기로운 기운이 무지개를 심히 업신여긴다.
邱原錯綜東南闊 언덕 위엔 묘소가 뒤섞여 있고 동남쪽은 트여있으니
江漢澎磅上下通 한강의 물 흐르는 소리가 아래위에서 들려오네.
月老詩篇傳後遠 월로(月老)의 시편이 후세에 전하는데
窓翁翰墨至今工 지게문 밖 노인의 한묵(翰墨)이 오늘까지 이어온 솜씨인걸.
與君交誼懽娛地 옛날 그대가 서로 교분을 나누며 기쁘게 즐기던 곳에서
賴我賢侯勸相功 우리의 어진 제후에 힘입어 서로 권장하고 일을 돕는다네.
[주1] 표묘(縹緲) : 끝없이 넓거나 멀어서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어렴풋함.
[주2] 착종(錯綜) : 사물 따위가 뒤섞여 엉김.
[주3] 월로(月老) : 부부의 인연을 맺어 준다는 전설상의 늙은이. 중국 당나라의 위고(韋固)가 달밤에 어떤 노인을 만나 장래의 아내에 대한 예언을 들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여기서 월로는 <애한정기(愛閑亭記)>를 쓴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 1564~1634)를 말한다.
[주4] 한묵(翰墨) : 문한과 필묵이란 뜻으로, 글씨를 쓰거나 글을 짓는 것을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