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20년의 세월과 내일
-새 문예 한류 디카시가 선 자리와 갈 길
김종회 (문학평론가. 한국디카시인협회 회장)
디카시 문예 운동이 20년에 이르면서 그 대중적 확산의 열기가 놀라울 정도로 뜨겁다. 지난해 황순원문학제의 일환으로 진행된 <황순원 디카시 공모전>의 응모는 무려 2,000편에 이르러, 예년의 2배에 달했다. 이와 같은 통계 수치는 한국디카시인협회를 비롯한 여러 디카시 추진체의 노력에서 비롯된 바가 없지 않으나, 더 중요하게는 디카시 자체의 자가발전이 이제 하나의 단계를 넘어 자율적인 사회현상으로 정착되고 있음을 뜻한다. 그만큼 디카시에 대한 관심이 높고 그 창작에 합류하는 이들의 숫자가 증폭되고 있는 것은, 이제 디카시의 문학 마당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는 말이다. 예술의 길이 아득히 멀게 느껴지던 사람이, 일상의 예술이요 예술의 일상을 만나는 것이다.
익히 알다시피 디카시는 남녀노소 갑남을녀 누구나 쉽게 접근합 수 있 는 '시 놀이 문학'이다. 어린아이까지 손에 쥐고 있는 소우주 핸드폰과 그에 내장된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여 순간 포착의 사진을 찍고, 그에 부응하는 몇 줄의 시를 부가한다. 그리하여 사진과 시가 한 몸이 되어 작품 창작을 완성하고, 이를 동시대의 첨예한 SNS 통신망을 활용하여 디카시 이웃들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영상문화 시대에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식으로 최적화된 문예 형식이다. 다만 누구나 쉽게 쓸 수 있으나, 읽는 이가 무릎을 치며 탄복하도록 잘 쓰기가 쉽지 않다는 데 숙제가 있다
디카시를 '잘 쓴다'는 것은, 그 작품이 미학적 가치 곧 예술성을 담보하는 수준에까지 이른다는 의미와도 같다. 미상불 이 대목은 디카시 뿐만 아니라 모든 글쓰기 예술의 한결같은 과제이자 목표다. 값있는 장면을 담은 사진과 이에 결부된 촌철살인의 시 몇 줄이 읽는 이에게 공여할 수 있는 공감과 감동은 그 작품이 순간적이고 짧은 소재에서 착상했다고 해서 허약해져서는 안 된다 예컨대 일본의 독특한 짧은 시로 세계적인 공유에 이른 하이쿠는,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을 거치고도 여전히 살아있는 문학으로서의 위세를 자랑한다. 17세 기스페인의 작가 벨타사르 그라시안은 "좋은 것은, 짧다면 두 배로 좋다"라고 언명했다.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영상이 없이 문자만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일이 어색하고, 수용자 또한 문자만의 메시지에 혼연히 호응하지 않는다. 이는 한 시기의 잠정적 현상이 아니라 한 시대를 구동하는 정신적 흐름이 된 형국이다. 그래서 디카시다. 이처럼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의 삶을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데 디카시를 따를 자가 없는 형편이다. 다만 문제로 남는 것은 여전히 예술성'이다. 작품으로서의 예술적 가치률 가진 디카시를 강조하여 말하는 이유다. 그래야만 디카시가 떳떳하게 어깨를 펴고 본격문학의 반열에 들어설 수 있다. 그래야만 평범한 디카시 동호인이 수발한 디카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이 다. 이는 20년 세월에 이른 디카시의 가장 큰 숙제다.
첫댓글 디카시가 시처럼 노동시나 참며시처럼 사회적으로 더 나아가는 디카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