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시내에 있는 바티칸은 단순한 지역 명칭이 아닌 '바티칸 공국'이라는 국명으로 지도책에 등재되어 있다. 면적 0,44㎢, 인구 809명, 국가원수 프란치스코 교황 그리고 외국과 정식 외교관계도 갖고 있다. 바티칸 공국은 영토와 인구를 내세울 수 없을 만큼 유명무실할 정도인데다 경제력과 군사력도 갖고 있지 않다. 속세적 기준의 국가로서 내세울 만한 것이 전무한 허울뿐인 국가다. 그러나 모나코 왕국(61㎢)보다 작은 바티칸 공국 국가 원수인 교황은 국력에 정비례하지 않는 특급(?) 국가원수 대우를 받고 있다. 가히 'Little big man' 또는 'King of the kings' 같은 존재다.
'시끄럽지 않게 쎈' 교황의 강력함의 원천은 무엇일까? 전 세계에 걸쳐 있는 14억 명에 달하는 '순도 100%'짜리 가톨릭 신자들이다. 최신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기독교 인구는 24억 5천만 명으로 세계 인구의 33%를 점하고 있다. 이 가운데 60%가 가톨릭 신자다. 가톨릭을 제외한 나머지는 프로테스탄트와 정교다. 이 그룹은 가톨릭처럼 '일체화'되어 있지 않다. 프로테스탄트는 루터파와 칼뱅파 영국 교회 등으로 나누어지고, 칼뱅 파는 다시 개혁파와 장로파로 '갈가리' 찢겨 있다. 가톨릭의 라이벌인 정교(Othodox)는 전통적으로 '지방분권화'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집권화'를 채택하고 있는 가톨릭처럼 파워가 집약되어 있지 않다.
14억 명이라는 가톨릭 신자는 중국 인구와 맞먹는 숫자다. 그러나 교황을 중심으로 뭉치는 화학적 응집력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가톨릭 신자 소속국의 특정 정책과 교황청의 방침이 충돌할 경우 가톨릭 신자는 예외 없이 맹신적으로 교황청 방침을 따를 것이다. 조선 시대 천주교가 박해받은 가장 큰 이유는 교황청 '방침'이 조선조 방침과 배치(背馳)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 신자들은 유교적 전례인 제사를 철저히 부정하지만 같은 크리스천인 천주교 신자들은 긍부정하지 않고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교황청이 조선조의 강경함에 굴복하여 당초의 (제사 지내면 안 된다) 방침을 선교를 위해 특례적으로 묵인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 방침이 (제사를 지내선 절대 안 된다) 당초의 방침으로 환원된다면 가톨릭 신자들도 즉각 개신교 신자들처럼 제사를 거부할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
서양사에서 '중세'라는 말을 빼놓곤 역사 기록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중세 또는 중세 암흑기라고도 하는데, 가톨릭에서 '암흑기'라는 말은 금기어로 되어 있고, '중세'라는 말도 애써 피하는 것 같다. '중세(中世)'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부터 르네상스가 시작된 14세기 후반까지의 천년을 지칭한다. 중세는 교황청이 유럽 전체를 '불법적(?)'으로 지배하던 시기다. 이 시기 세속의 황제들이 황제가 되기 위해선 교황의 '윤허'가 필수였고, 재임 중에도 교황에 반하는 행위를 했다간 파문(破門/Excommunication)이라는 극형을 당하기 일쑤였다. 카노사에서 하인리히 4세가 파문을 모면하기 위해 교황 앞에서 무릎을 꿇고 싹싹 빈 이야기나, 헨리 8세가 교황청에서 금하는 이혼을 하고 파문당한 이야기는 서양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꽤 알려진 이야기다. 중세 교황은 문자 그대로 'King of the kings'였다.
세속 황제들에 대한 교황의 '갑질'뿐 아니라 손쉽게 통치하기 위해 철저한 우민화 정책을 펼쳤다. 뜻도 알 수 없는 라틴어로만 적혀있는 성경을 일반 신자들이 맹신하도록 대중을 우중화(愚衆化) 했다. 로마시대에 화려하게 꽃피운 그리스 로마 문학은 교황청의 우중화 과정에서 멈추어 있어야 했다. 결국 르네상스를 맞아 부활되고, 교황의 실효적 속세 지배는 막을 내리기 시작한다.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콘스탄티누스가 국교화하면서 기독교의 효율적인 보급을 위해 로마, 콘스탄티노플, 안티오크,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에 대교구를 설치했다. 바로 이 다섯 개 대교구 가운데 하나가 로마 대교구이며, 이를 한자권에서 로마 교황청으로 번역한 바람에 대교구보다 황거(皇居) 이미지에 더 가깝다. 로마 교황청 정명(正名)은 여전히 로마 대교구, 즉 쿠리아 로마나(Curria Romana: 발음은 필자식)다. 교황을 지칭하는 라틴어도 로마 국교의 최고 사제인 '위대한 신관' 즉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이다. 애칭으로 Pope가 널리 사용되지만 두 단어 어디에도 황제란 의미는 없다.
AD 476년 로마 대교구의 보호자인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독자적인 생존 방법을 찾아야 했다. 공성(攻城)엔 성공했으나 수성(守城), 즉 행정능력이 턱없이 모자란 오도아케르가 그 일을 '별생각 없이' 로마 대교구, 즉 교황청에게 맡겼다. 어물전을 맡게 된 고양이처럼, 교황청은 이 기회를 천 년간 이어진 '유럽 제국(帝國)'의 토대로 만들어냈다.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으로 자신들의 속세적 위선이 만 천하에 밝혀지자 교황청은 즉각 새로운 생존 방식을 모색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세암흑기에 체득한 통치 노하우가 풀가동되었을 것이다. 그 결과 골치 아픈 현실 정치에서 손 떼고 인간들의 심리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따뜻하고 엄숙하고 감동적인 말을 통한 불멸의 영향력을 통해 '직접 통치하지 않는 이데아 통치'라는 수단을 개발한 게 아닐까 추정해 본다. 교황청의 새 '황제'가 등극하면 '뜬금없이' 굴뚝에 연기를 뿜어내어 속인들을 갸우뚱거리게 한다. 세속의 국가들과는 뭔가 달라 보인다. 사각 유리상자형 방탄차 속에 앉아 있는 교황을 바라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하느님의 가호 대신 인간이 만든 방탄차의 가호를 받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면, 가톨릭 신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느님의 가호를 받는 인간이 만든 방탄차 거든..." 교황청=국가+종교단체/2 이외에 다른 답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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