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
김 순 이
예전에 살던 아파트 정원을 지나는데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몸통 윗부분이 뭉텅 잘려있고 가지치기로 심하게 훼손되었지만 분명 그 나무였다.
새 아파트 일 층을 분양받았더니 꽃밭이 생겼다. 아파트를 홍보할 때 화단은 일 층 세대가 마음대로 가꿀 수 있다고 했다. 베란다에는 화단과 연결된 쪽문도 있었다. 입주하고 나니, 장미 묘목 두 그루와 사오십 센티쯤 되는 대추나무 한 그루뿐이어서 수선화․ 팬지 등 화초를 사다가 심고 수시로 드나들며 가꾸었다. 꽃밭은 평지보다 일 미터 이상 지대가 높고 옆집과도 경계가 나뉘어 있었다. 주위로는, 꽃이 피면 은은한 향기를 뿜어내는 쥐똥나무 울타리가 둘러쳐 있고 돌담을 내려서면 목련 나무 두 그루와 단풍나무가 자리 잡고 있어 나는 아늑한 정원을 가진 집에서 사는 기분이 들었다.
이사한 지 삼 년이 되자 그늘 때문인지 내가 심은 화초들은 시들하지만, 대추나무는 쑥쑥 자랐다. 봄이 되면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늦게 기지개를 켰다. 가지에 천천히 푸른 물줄기를 올리고 나무초리까지 부드럽고 연한 잎새를 뾰족뾰족 내밀다가 봄이 다 갈 즈음에야 별 모양의 노랗고 앙증맞은 꽃을 피웠다. 칠월쯤에는 꽃이 진 자리에 연두색 열매가 몇 개 달리니 보물이라도 되는 양 신기했다. 아이들과 함께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오가며 매일 들여다보고 즐거워했다. 태풍이 올 때는 가지가 부러지거나 열매가 떨어질까, 마음졸이기도 했다.
가을이 오고 선선한 바람이 불자 탐스럽게 자란 대추가 어느덧 주황빛을 띠고 여물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열매는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듬해에는 꽃이 질 무렵 아이들과 웃거름을 주며 보살폈더니 싱싱한 이파리를 살랑이며 전보다 훨씬 많고 실한 열매가 달렸다. 더위가 물러가고 첫서리가 내릴 즘에는 파란 하늘 아래에서 주홍색으로 알알이 변해 가는 대추가 햇살을 튕겨내는 루비처럼 빛났다. 그 모습을 오래 지켜보고 싶었다. 하지만 며칠 안 가 열매는 또 사라져서 경비실에서 재미 삼아 따갔겠거니 했다.
대추는 해마다 열렸고 어느 해엔 가지가 휠 정도로 많이 달릴 때도 있었다. 호기심에 열매를 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달래며, 조금만 지나면 달콤한 과육을 즐길 수 있으리라고 즐거운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뿐이었다. 빨갛게 익기를 기다리다가 주말에 외출하거나 어느 날 회사에서 돌아와 보면, 탐스럽고 오동통한 열매들은 감쪽같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훼손된 울타리와 휑해진 대추나무를 마주하면서 불편한 마음이 쌓이기 시작했다.
다음번에는 나무에 더 정성을 들였다. 시기에 맞춰 거름을 주고 가지도 쳐주었다. 한여름의 뙤약볕과 태풍을 충실히 이겨낸 나무는 어김없이 튼실한 열매로 보답했다. 그것들을 바라보며 이번에는 기어이 열매를 사수하겠다는 의지까지 불탔다.
그러나 어느 날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이번에도 열매를 다 털린 대추나무만 초라하게 서 있었다. 아침에만 해도 통통한 연둣빛 열매와 살짝 붉은 기가 도는 결실이 뒤섞여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는데, 엉성한 나무 아래엔 수북이 떨어진 잎들과 부러진 가지들만 어지럽게 나뒹굴었다. 또 경비실에서 그런 줄 알고 이번엔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대추나무 앞에서 궁싯거리고 있자 지나가는 이웃이 말하기를, 어떤 부부가 긴 장대와 자루를 들고 화단에 들어가더라고 했다. 다른 아주머니는, 두 부부가 이곳에서 장대로 대추나무를 터는 걸 여러 번 봤다며, 그날도 수확한 열매를 경비실과 옆 라인의 아래층 세대에 한 줌씩 나눠주고 엘리베
이터를 타더라고 했다. 같은 라인도 아니면서 울타리를 넘어와 주인 행세를 하다니.
다른 곳과 달리 우리 아파트는 층별 구분 없이 분양가가 똑같았기에 일 층 세대는 집이 어두운 대신 화단 프리미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집에서 14년을 보내는 동안 단 한 번도 대추를 수확하는 재미를 누리지 못했다. 원인이 그 부부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당장 경비아저씨에게 가서 대추나무를 턴 사람에 관해 물었다. 아저씨는, 옆 동에서도 과실수(果實樹) 때문에 주민끼리 큰 다툼이 있었다며 사실을 말하면 자기 처지가 너무 난처해진다며 곤란해했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니 대추나무를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경수가 아니던가. 하지만 왠지 억울하고 아이처럼 유치한 감정에 휘말리다 보니 가뜩이나 낮은 층인데 나무까지 해를 가려 집안이 더 어두워 보였다. 관리사무소에 전화해서 집안이 어두워 불편하니 대추나무를 옮겨달라고 했다. 다음날 관리소 직원이 화단 중앙에 있던 나무를 가장자리로 옮겨 주었다.
대추나무를 보내고 나자 나도 나무도 서로에게서 멀어진 듯했다. 곧바로 눈에 띄지 않으니 불편하던 마음도 사라졌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불과 몇 미터 더 멀어졌을 뿐인데 마음이 그렇게 바뀌다니.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내가 주인이란 생각을 버렸다. 그러고 나니 발갛고 예쁘게 여물던 열매에 대한 미련도 없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나도 모르게 대추나무로 발길이 갔다. 나무는 왠지 풀이 죽은 듯 새들해 보였고, 그간 내게 서운했던지 가지도 우리 집과 반대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려 잘 자라라고 대추나무에 서너 번 물을 흠뻑 주었다. 이후 직장 일로 바빠 신경 쓰지 못하다가 이듬해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십오 년이나 지나서 나무와 마주한 것이다. 건물과 가까이 자라면서 아래층 세대의 일조량을 방해했을까. 마구잡이로 잘린 형상을 보니 그사이 천덕꾸러기가 된 것 같았다.
내 것으로 생각해서 지키지 못했다고 마음 상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전에 내가 바라보며 즐거워했을 때는 대추나무도 열심히 뿌리내리며 알토란 같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기쁨도 컸는데 열매에만 집착하여 나무를 밀어냈었다. 거칠게 변한 대추나무에서 내 마음의 결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김순이
2022년 《에세이문학》 등단. 2022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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