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호텔 밖으로 나오니 호수 근처 산은 흰 눈을 덮어 쓰고 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가로등이 켜 있는 마을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고 호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크라이스트처치를 향해 출발한다. 데카포 호수 동쪽 구릉을 따라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을 달려가도 역시 구릉을 따라 양과 소가 풀을 뜯는 초지가 이어진다. 30분 쯤 지나 버스가 정차한 곳은 페얼리(Fairlie)라는 작은 마을의 언덕이다. 높은 구릉인 이곳에서 바라보니 역시 구를 풀밭에는 소와 양들이 풀을 뜯고 있고 하천 옆으로 이어지는 밭에는 노란 유채 꽃밭이 한 없이 이어지고 멀리로는 눈 덮힌 산들이 굽이쳐 흐르고 있어 마치 스위스의 목가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정말 꿈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풍경이고 아무 곳이나 카메라를 들이대면 멋진 풍경이 찍힌 그림엽서가 될 것 같다. 그래서 이 길을 “Inland Sceinic Route”라 부른단다.
10여분 휴식을 취고 다시 버스로 50분 쯤 달려 제랄딘(Geraldine)이란 꽤 큰 마을에 도착한다. 이곳은 크라이스트처치와 데카포 중간 쯤 되는 지점으로 여행객들이 많이 쉬어 가는 곳인지 기념품가게를 비롯하여 가게들이 상가를 형성하고 있고 숙박시설도 보인다. 버스에서 내려 Town Board Office라 쓰여진 작은 건물로 들어가니 자원 봉사하는 할아버지가 입구에서 반갑게 맞이하는데 마을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다. 박물관 내부에는 이곳으로 이민와 정착한 유럽인들의 생활용품과 농기구, 옷 등이 전시되어 있고 당시의 생활상을 담은 그림과 사진들을 진열하고 있어 유럽인들의 뉴질랜드 개척사를 보는 듯하다. 비록 작은 박물관이지만 마을 주민들의 자긍심이 느껴진다. 박물관 옆 상가에는 이 마을에서 생산하는 각종 치즈와 낙농제품,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가 있는데 치즈를 시식할 수 있다. 블루베리 등 농산물을 파는 가게에는 여행객들이 많이 몰려 있는데 각종 건과류, 과일주, 각종 베리류를 전시판매하는 가게로 시식도 하면서 구입하고 있다. 이 가게 한 켠 바닥에는 돌 쯤 돼 보이는 아이가 바닥에 앉아 병을 굴리며 놀고 있는데 어찌나 예쁜지 인형인 줄 착각할 정도다. 갑자기 손주 지호 녀석이 보고 싶다.
버스는 이제 구릉지역을 벗어나 지평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대평원을 달린다. 이 대평원은 켄터베리(Canterbury) 대평원이란 곳으로 남섬의 동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392만ha로 뉴질랜드 전체 면적의 14.5%를 점하는 대평원으로 크기가 충청남북도를 합친 면적과 비슷하다고 한다. 라카이아 강이 흐르는 이 평원은 193km 길이에 해발 300m 평지의 비옥한 옥토로 대부분 양 목장으로 사용되는데 사실 이 평원이 처음부터 초지로 있던 것이 아니라 원래 모두 삼림자원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던 이 지역에 유럽인들이 들어오면서 모든 나무를 벌목하여 목재로 팔고, 평지를 개간하여 소와 양을 방목하기 위한 평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의 이런 과거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곳이 인위적으로 느껴진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뉴질랜드 개척의 역사를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찌되었건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과 함께 가슴이 탁 트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목장으로 많이 사용하나 일부는 밀과 보리 등 식량작물과 토마토 등 채소를 재배하는 경작지로 사용된다고 한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소나무로 보이는 침엽수가 일렬 횡대로 심겨져 있는데 이는 혹한기 바람으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가도 가도 끝없는 대평원이다. 그 넓은 평원을 빈틈없이 방목 초지다. 한마디로 부럽고 경이롭다. 풀을 뜯고 있는 가축들이 한가롭다. 주인은 어디 있는지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젖소들은 시간을 맞추어 젖을 짜러 스스로 줄을 지어 가고, 1km도 넘어 보이는 대형 스프링클러는 쉴 새 없이 혼자서 물을 뿌리고 있다. 우리나라 축협 이사들이 뉴질랜드로 연수를 왔다 농장 몇 군데를 둘러보고는 우리나라와 뉴질랜드는 소를 사육하는 방식이 너무나 달라 배울 게 없다고 하면서 돌아갔다고 한다.
60년대 고 박정히 대통령이 뉴질랜드를 방문하였을 때 당시의 홀리오크 총리와 승용차를 타고 둘러보는데, 박대통령이 창 밖 만 보고 아무 말이 없어, 총리가 대통령 보고 “어디 불편하시냐?”고 물으니 아니라면서도 또 아무 말이 없어, 다시 “그럼 왜 그러시냐?”고 재차 묻자 그때 박 대통령께서 하시는 말씀이 “여기 가축들도 평화롭게 배불리 풀을 뜯고 있는데, 내나라 내국민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다.”고 울먹이는 표정으로 대답하자, 홀리오크 총리가 그 후 우리나라에 젖소 500마리를 보냈다는 일화를 가이드로부터 들으면서, 서독에서도 파견 광부, 간호사들과 목메어 울었다는 눈물겨운 나라사랑 이야기기 생각난다. 그분의 나라와 국민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 만큼 잘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을 달리는 버스에서 일행들이 지루해질 무렵 가이드는 뉴질랜드 복지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뉴질랜드 정부에서는 비영리 단체인 Plunket를 통하여 보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이 단체는 전국적으로 각 동네마다 운영되고 있으며, 뉴질랜드 내 어린이들의 사망률, 사고, 질병 등을 줄이고 어린이들의 건강을 개선시키기 위해 설립된 단체이다. Plunket 서비스와 함께 미드 와이프(Mid wife) 서비스도 활성화되어 있어 여성들의 출산과 육아교육을 함께 돕고 있다. 여성들이 임신을 하면 미드 와이프를 구한 뒤 출산 후 2주~6주까지 자신과 태아의 건강상태를 검진 받을 수 있다. 여성들은 임신 중 규칙적으로 미드 와이프를 찾아 가서 태아와 산모의 건강을 확인하고, 출산 후에도 미드 와이프가 직접 집으로 방문해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돌봐 준다. 출산 약 4주 후부터 영, 유아 보건서비스는 Plunket이 맡는다. 자격증을 갖춘 전문 간호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각 지역의 Plunket 서비스에서 육아와 건강정보를 제공한다. Plunket의 전문 간호사들로부터 5세 미만 아기들이 예방접종 및 정기검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초보엄마에게 육아정보 및 건강정보를 제공해준다. 또 출산 후 힘들어 하는 여성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산모들 간의 정보를 공유하는 등 산모와 아기에게 다양한 정보를 주고 있다. 임신 후부터 아기가 만 5세가 될 때가지 여성들은 정부에서 운영하는 미드 와이프와 Plunket 서비스 혜택을 무료로 받을 수 있으며, 육아부담을 덜고 자신과 아기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생활 할 수 있다. 여성의 지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높은 뉴질랜드에 Plunket과 같은 아동보건서비스가 있어 여성들이 일터에 나가 일하고 경제활동에 참여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Plunket은 5세 미만의 아기들에게 장난감과 아동용 카시트를 대여해주기도 하며, 오전 7시부터 자정까지 상담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의료복지제도는 정말 잘돼 있는데 가이드가 아는 교민의 아들이 암 판정이 받은 이후로부터 병원비, 교통비 지원은 물론 그 교민이 가게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게 집 청소를 해주는 자원 봉사자들의 도움이 있었으며, 멀리 오클랜드 병원에 입원해야 할 땐, 아이와 엄마의 항공료까지 모든 걸 다 지원해 주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교민이 지금은 영주권자지만, 그땐 영주권자도 아니었지만 호스피스에서 아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모든 지원을 다 해주었단다. 또한, 이곳은 각 가정마다 주치의 제도가 있는데 주치의의 소견서가 스페셜 닥터(특수 의사)한테 보내져서 종합병원에서 스페셜 닥터를 만나게 되면 그때부터 모든 비용을 정부에서 지원을 하게 되며 환자에겐 환자 수당, 보조 장비지원은 물론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집의 진입로, 화장실을 개조해 주고 환자 침대와 간병인까지 지원해 준단다. 이런 의료혜택은 뉴질랜드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사고를 당해도 지원된다니 뉴질랜드는 그야말로 복지의 천국인 것 같다.
20세 이후 10년 이상 뉴질랜드에 거주하고 그중 절반인 5년을 50세 이후에 거주했다면 누구나 대상이 된다. 65세부터 가구형태에 따라 정해진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지급액은 매년 물가상승률 등에 따라 뉴질랜드 가구 평균 수입의 65% 수준으로 정해진다. 혼자 사는 노인은 한 달에 우리 돈으로 약 140만원을 받는다. 정부가 돈 걱정 없는 노후생활의 발판을 마련해준다면 비영리 시민단체들은 질 좋은 실버문화 확산을 담당한다. 노인복지만을 담당하는 사회복지단체가 뉴질랜드에 100여 개나 되지만 이들 비영리기관은 정부 보조금보다는 일반 시민들의 기부 비중이 높다. 실제로 1년 운영예산 중 정부 보조금은 20% 정도며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해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