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50-60대여, 아세안 대신 농촌으로 와라.
“일자리를 못 가진 20대와 은퇴한 50 60대는 헬조선이라 불평하지 말고, 할 일 없이 등산이나 다니지 말고, 뉴스 댓글 달지 말고, 아세안국가로 가보라” 며칠 전 청와대 김현철 경제보좌관이 한 말이다. 이분이 아세안 국가에서 살아 보고 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서울대 교수출신 고위관료가 갖고 있는 한국 경제와 아세안 경제에 대한 무지가 그대로 들어난 말이다. 지금 한국 농촌에 사는 사람으로서 50-60대의 은퇴한 사람들이 아세안에 가는 것보다 농촌에 오는 것이 개인 또는 국민경제 측면에서 얼마나 좋고 필요한지를 설명하겠다.
먼저 아세안국가에 가서 일을 하면 얼마나 받을까? 박항서 감독처럼 능력있고 운이 좋아 지도자나 숙련기술자 등으로 초빙되어 가는 사람은 한국과 비교해서 나쁘지 않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또한 돈을 갖고 나가 사업을 하는 분은 쉽지는 않겠지만 한국보다 돈을 더 벌 기회는 많을 것이다. 이들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한국보다 높고 기술과 영업 능력 등은 한국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맨몸으로 돈 벌러 가는 사람은 아세안국가의 노동자 급여조차 받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언어 소통이 안 되고 문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현철보좌관이 가라고 한 한국의 국문학과 출신 젊은이가 아세안국가에 가서 한국어를 가르치면 월 40-50만원정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국민소득이 낮은 나라에서 일반 노동자로 많은 돈을 벌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아세안 국가의 고학력자도 한국에 공장노동자 농촌노동자 가사도우미 등으로 오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끝내고 요즘 잘 나간다는 베트남의 대학교수로 채용이 되었음에도 베트남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며 돈을 버는 베트남유학생도 있다. 베트남대학 교수의 월급은 70-80만원에 불과해 한국에서 200만원을 벌 수 있다면 한국에서 돈을 버는 것이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맨몸으로 해외로 나가야 하는 사람은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로 가야 돈을 벌기도 쉽고, 무엇을 배울 기회도 많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노동을 통해 한국인의 생활비 이상을 벌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가족이 있는 사람이 관광이 아니고, 가족을 동반해 아세안 국가에서 맨몸으로 돈을 벌며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개발도상국에 한국 봉사요원을 파견할 때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에서 국민세금으로 보수를 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선교사를 파견할 때도 비슷하다. 대형 교회에서 현지 노동자의 급여 보다 훨씬 많은 선교사의 생활비를 보조해 준다. 정부나 기업 등의 지원이 없거나 사업할 돈이 없는 사람은 아세안이나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가로 돈 벌러 나가는 것은 피해야 하는 일이다. 또한 이들이 아세안 국가 등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한국에는 도움이 안 된다. 아직 한국에도 사람이 필요한 분야가 많다.
반면 농촌에 오는 것은 아세안국가로 가는 것 보다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장점이 있고, 도시에서 그대로 사는 것 보다 그리 나쁘지도 않다. 그리고 국민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한국 농촌 생활의 장점들을 살펴보자.
첫째, 농촌에 오면 갑자기 젊어진 기분이 들어 좋다, 한국의 농촌은 고령화가 아주 심각해 50- 60대 사람도 젊은이 취급을 받는다. 실제 나이가 변하지 않더라도 젊은이로 분류된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법륜스님이 30대 초반 취업이 안되 고민하는 젊은이와의 즉문즉설에서, 많은 것을 이룬 60대 중반의 법륜스님과 30대 초반의 실업자 중 어느 한 쪽 선택해야 한다면 30대 실업자를 택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미래가 있는 젊음이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세안 국가는 한국보다 훨씬 젊은 국가이다. 나이 60만 되어도 노인 취급을 받는다. 중국의 경로우대 기준 연령은 60세이다. 50-60 대의 한국 사람이 아세안국가로 일하러 가면 갑자기 늙은 기분이 들 것이고, 나이 많다고 일자리를 주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
둘째, 한국 농촌에는 다양한 일자리가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하는 최저임금 수준의 일자리는 넘쳐 나고, 일한 사람은 충분치 못하다. 일부는 최저임금을 줄 수 없어 불법노동자만을 찾기도 하지만, 불법노동자의 임금이 최저임금과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고, 이마저도 아세안국가들에서 일하는 것보다 임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농촌의 최저임금 일자리는 도시의 편의점 알바 등보다는 훨씬 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점심과 새참, 교통편 등이 제공되는 혜택도 있고 농사일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집수리와 건축, 농기계 수리 등의 기술 인력은 농촌에서 크게 부족하다. 이들 일자리는 도시에 비해 수입은 적겠지만, 전문성이 좀 떨어져도 경쟁이 적어 살아남기는 쉽다.
이와 함께 사무직 출신이 할 만한 일도 꽤 있다. 농촌지역에는 정부지원 사업이 아주 많다.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사업 내용보다 사업계획서가 중요한데 농민들은 사업계획서를 잘 만들 수 없어 외부 컨설팅업체에 돈을 주고 맡기기도 한다. 규모가 큰 사업은 대학 교수나 연구소 등을 끼워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농민에게 돌아가는 실제 혜택은 크지 않을 뿐 아니라 사업 자체의 성공 가능성도 높지 않다. 사업계획을 만드는 컨설팅업체나 교수들이 산업 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없고 사업계획서만 그럴 듯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일하던 사람이 농촌에서 살면서 농민과 같이 현실성있는 사업계획서를 만든다면 농민에도 도움이 되고 정부 지원사업의 성공 가능성도 높아진다.
셋째, 농촌에는 빈집과 노는 땅이 많다. 빈집은 낡은 농가주택 뿐 아니라 잘 지어진 전원주택도 있다. 우리 동네만 해도 전원주택의 20%정도가 매물로 나와 있다. 일부는 사람이 거의 오지 않고 관리되지 않아 빠르게 낡아가고 있다. 대지 200-300평에 건평 40-50평, 지은지 10년 내외의 전원주택이 우리 동네에서는 3억원 정도이다. 서울의 아파트 전세값보다도 크게 싸다. 서울 등 대도시에 있는 집을 반전세 등으로 세놓고 농촌에 오면 더 넓은 집에서 경제적으로 여유있게 살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서울이나 대도시에서 꼭 살아야하는 사람은 전세 매물이 늘어나 좀 더 싼 가격으로 세를 살 수 있어 좋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농촌에는 자기 논밭이 없어도 작게 농사지을 땅은 많다. 경지정리가 안 된 조그만 논이나 자투리 밭은 트랙터 등 농기계 사용이 불편해 방치된 곳이 늘고 있다. 방치된 곳은 곧 잡초 밭이 되고, 칡이 자라게 되면 나중에 돈을 들여 포크레인 작업을 해야 농지로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우리 동네에도 여기저기 빈 밭이 많아 힘만 있으면 얼마든지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일부 밭주인은 방치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사용 못하게 하지만 대부분의 밭주인은 대신 밭을 경작해 주면 고마워한다. 밭이 밭으로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넷째, 한국의 농촌은 일할 사람뿐 아니라 살아줄 사람마저 크게 부족하다. 아세안 국가로 사람을 보낼 것이 아니라 한국 농촌에 사람이 와야 한다. 젊은 사람이면 더 좋겠지만 나이 든 사람도 좋다. 한국은 농업 생산물을 늘려 식량자급률을 높여야 식량위기가 왔을 때 그나마 대응이 쉽다. 한국의 자영업자는 대부분 어렵지만 농촌지역의 자영업자는 더 어렵다. 농촌지역에 5명 정도가 도시에서 들어와 1인당 월 100만원도 소비해준다면 자영업자 1명의 생계가 해결될 수 있다.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부자가 오면 더 좋다. 농촌에서 살고 소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균형발전을 통해 국민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농촌에서 살면서 골프치고 등산 다니는 사람이 서울에서 국민세금으로 고액연봉 받고 헛소리하는 정책당국자보다 국민경제에 훨씬 더 기여하는 것이다.
한국경제가 점점 어려워지고 젊은이들의 희망과 꿈이 사라지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책당국자의 무능과 무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1997년 IMF 사태 때 증권회사 직원 윤정학(유아인분)이 정책당국자의 무능과 무지에 베팅해 큰돈을 버는 것으로 나온다. 정책당국자의 무능과 무지는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