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독일 캠프힐 탐방
2011년 3월 독일 캠프힐 탐방 보고대회
2012년 3월 입학식
2012년 3월 큰나무 사무국 오픈
2012년 5월 큰나무가족 한마당
2012년 11월 큰나무캠프힐 부지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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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길동에 2009년 12월 입주 후
오래지 않아 정부는 학교부지 인근 지역을 2차 보금자리 주택지구 지역으로
확정을 짓습니다.
터전의 존치를 요구하며 장애학생의 교육기본권리를 주장했지만
일방적인 힘의 논리에 따라 학교는 다시 이사를 준비하게 됩니다.
먼 미래를 내다보며 계획해 놓았던 많은 것들이 보금자리 개발로 인하여
취소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터전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컸지만
다시한번 힘을 모으게 됩니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로 주어집니다.
학령기에 필요한 학교를 도시에 두고서
그 이후 성인이 되어 살아갈 캠프힐을 농촌지역에 정하기로 결정을 내립니다.
2013년 9월, 학교는 부천시 옥길동에서 시흥시 계수동으로 이전합니다.
한명으로 시작한 정규과정은 이미 4개의 반으로 확장이 되었고
고등부를 졸업한 학생들 중심으로 전공과를 구성하게 됩니다.
3살에 엄마 손잡고 활동실 들어오던 그 아이는 이제 스무살이 넘었습니다.
거뭇한 콧수염, 훌쩍 커서는 나보다 한참 위가 되었고,
얼굴도 그 뽀얀 것에 주름이 져있습니다.
장애가 있든 없든 일정한 연령이 되면 그 살아온 만큼의 것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얼의 굴이 져있다는 것은 우리 속에 들어있는 얼, 그 얼이 이땅을 거치면서
부딪히고 스치고 거치는 그 것들로 하나하나 파이면서
전면에 드러나는 거지요.
계수동에 들어가면서 전공과과정을 신설합니다.
두개의 반을 구성하였고
성인기 캠프힐 바로 직전 단계의 직업훈련을 중점으로 교육을 하게 됩니다.
먹고 입고 자고, 의식주를 기본으로 하면서
각자의 삶의 기술을 습득해 나가는 것을 과정으로 하였습니다.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고
농사지은 식재료를 가져와서 음식을 만들어내고
필요한 가구와 소품을 직접 만드는 거였습니다.
강화캠프힐 농장에 자주 갔습니다. 영농시범단을 꾸려서
정기적으로 농사를 짓고, 캠프를 하면서 살아내는 방식을
실험해 나가는 과정이었습니다.
2013년 9월 학교 이전
2013년 10월 학교 설명회
2014년 12월 캠프힐 건립을 위한 벽돌한장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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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5년을 맞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