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과 권신(權臣)과 내란(內亂)
이자겸(李資謙)은 인종(人種)의 외조(外祖)로서 왕(王)의 어둠을 이용(利用)하여 두 딸로서 왕후(王后)를 삼고 점점 반역(反逆)을 꾀하다가 척준경(拓俊京)에게 멸(滅)한 바 되고 승(僧) 묘청(妙淸)은 인종(仁宗)을 꾀어 서경(西京)에 도읍을 옮기면 36국이 와서 조회한다 함으로 왕(王)이 그 말을 신청(信聽)하였더니 13년에 묘청(妙淸)이 서경(西京)에서 반(叛)하거늘 평장사(平章事) 김부식(金富軾)이 쳐 멸(滅)하였고 광종(光宗)은 시부(詩賦)로써 선배를 뽑아 쓰니 시인(詩人)들이 세(勢)를 얻어 나라 일을 마음대로 하며 일반(一般) 무인(武人)을 천대(賤待)하는지라. 이에 무신(武臣) 정중부(鄭仲夫) 이의방(李義方) 이의민(李義旼) 등이 서로 꾀하여 보현원(普賢院)에서 예종(睿宗)을 폐하여 죽이고 명종(明宗)을 세우며 정사를 오롯이 하거늘 서경(西京) 유수(留守) 조위총(趙位寵)이 군사를 일으켜 정이(鄭李) 제적(諸賊)을 친다 하니 절령(岊嶺) 이북(以北) 40여 성(城)이 응(應)한지라. 평장사(平章事) 윤린담(尹鱗膽)이 쳐 평정(平定)하였으나 인심(人心)은 오히려 불평(不平)하더니 장군(將軍) 경대승(慶大升)이 용사(勇士)를 거느리고 정이(鄭李) 제적(諸賊)을 쳐 멸하니 나라 사람들이 다 통쾌(痛快)히 여기더라. 조금 후(後)에 경대승(慶大升)이 병(病)으로 죽고 이의민(李義旼)이 또 명종(明宗)의 어둠을 타서 조정(朝政)을 그릇하거늘 장군(將軍) 최충헌(崔忠獻)이 토멸(討滅)하여 이후부터 4세(世) 63년간은 최씨(崔氏)의 천하(天下)가 되고 임금은 오직 허위(虛位)에 있을 뿐이더라.
- 한글
이자겸은 인종의 외조부로서 두 딸을 왕비로 삼아 점차 반역을 꾀하다가 척준경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또한 승려 묘청은 인종을 설득하여 서경으로 도읍을 옮기면 36국이 조회하리라 주장했으나, 평장사 김부식에 의해 반란이 진압되었습니다.
광종은 시부로써 선비를 등용하여 시인들이 세도를 누렸고, 일반 무인들을 천대했습니다. 이에 무신들인 정중부, 이의방, 이의민 등이 예종을 폐위하고 명종을 즉위시켰습니다. 서경 유수 조위총이 이들을 토벌하려 했으나, 40여 성이 가담하여 평장사 윤린담이 진압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불만이 컸고, 장군 경대승이 정이와 이의민을 토벌하자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경대승이 병으로 죽자 이의민이 다시 명종을 농락했으나, 장군 최충헌이 이의민을 토벌했습니다. 이후 63년간 최씨 가문의 세도가 계속되었고, 임금은 허위의 존재에 불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