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전 자 승(母傳子承)
훌륭한 아버지 밑에는 훌륭한 자식이 나오는 부전자전(父傳子傳)이 있다.
또한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훌륭한 자식이 나온다.
(모 전 자 승母傳子承)
오늘은 우리가 금전 거래 시 사용하는 화폐에 모자(母子)의
사진이 들어 있음을 발견한다.
한 분은 오 천 원 권 지폐에 율 곡 이 이 선생의 사진이요,
오만 원 권의 사임당 신 씨(이름은 仁善) 율 곡 선생의 어머니이시다.
두 분이 얼마나 훌륭했으면 한 집에서 한 국가의 국민이 거래의 최고의
수단인 화폐(돈)에 등 재 되었을까?
그래서 두 분의 시를 읊어 봅시다. 먼저 사임당의 시를 올려봅니다.
"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한양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 평은 아 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산 첩 첩 내 고향 천 리 건 마는 자나 깨나 꿈속에서도 돌아가고 파
한 송 정 가 에는 외로 히 뜬 달 경 포 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톱에 헤어 졌다 모이고 고 깃 배 들 바다 길을 동서로 오가네
언제나 고향 땅에 다시 돌아가 색 동 옷 입고 앉아 바느질 할 고."
이 시는 율 곡의 어머니 사임당 신 씨가 북 평(오죽 헌) 친정에서 용인 이 씨(친모)를
모시고 자식 오남 매를 키우며 살다 시집인 파 주 율 곡 리 사시는
시어머니 홍 씨 부인이 노쇄 하여 가정 살림을 할 수 없자 시가로 가면서
대관령 고개에서 오 죽 헌 을 바라보며 친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읊은 시이다.
사임당은 고대 중국의 주문 왕(周文王)의 어머니 태임 부인에서 따온 이름이라 하네요.
율 곡 선생의 시를 읇 어 봅시다
" 숲 속 정자에 가을이 깊어 나그네의 가슴에 물결이 이네
멀리 하늘과 강이 맞닿아 푸 르 르 고 찬바람 속 단풍은 어이
이리 붉을 고 산은 둥근 달을 토해 내는데 가을은 먼 데서
부는 바람 머금었구나 변방의 기러기 떼는 어딜 가는지
울음 소리 방울 방울 구름에 잠기네."
어는 가을 날 사임당이 자녀들을 데리고서 화석 정 (율 곡 선생의 5 대 조 부
이 지돈 이 지은 임 진 강가에 있는 정자)에 올라 주변을 살펴보니 울 긋 불 긋한
낙엽이 바람에 딩 굴 고 사임당이 언덕 넘어 유유히 흐르는.
임 진 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때 주변을 둘러보던 아들인 율 곡이
시 흥이 일어나 " 어머니 시 한 수 읊어도 되겠습니까?
그래 누구의 시가 떠올랐느냐?
제가 제 머리 속에서 지은 시 입니다."
그때 누나와 형들이 놀라서 동생(5 째 인 율 곡)을 돌아다 보았고,
어머니 사임당께선 " 어디,
우리 현 룡 (율 곡의 아명ㅡ용 꿈인 태 몽 서 따옴)의 시한 수를 들어보자"
하여서 율 곡이 읊은 시다.
화석 정은 훗날 관료로서 율 곡 이 임금에게 10만 양 병 설을 주장하고
왜적이 침략할 것을 예상하여 극히 건의했으나
반대하는 신하들로 관철되지 않았다.
그러나 혜안을 갖 인 율 곡은 틈만 나면 오 대 조부 가 지은 화석 정 에다
기름 통을 가지고 올라와 기름칠을 했다.
율 곡 선생은 그후 사망하고 후일 임진 년에 왜 란이 일어나 불과 몇 일 만에
한양까지 쳐 들어 오니 선조 임금은 북으로 몽진 을 한다.
선조와 함께한 대신들이 임진 강을 건너려니 때마침 비는 오고 어둠이 드리워 강을
건널 수 가 없었다. 할수 없이 화석 정을 불태워 그 불빛으로
강을 무사히 건넜다고 한다.
이처럼 예지 의 혜안을 기를 수 있었음은 어린 시절 부 터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어머니의 가정 교육에 철저한 어머니 상으론 서예의 대가인
한 석 봉 의 어머니와 한말의안중근의사의 박 마리아의 교훈이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오늘날은 이런 가정 교육이 없어져 사회가 범죄의 소굴로 변하고 인간의
기본인 보금자리 가정 마 져 파 탄 나는 서글프고 안타까운
세상을 어찌 원망 하리 오 .~받은 글/청 목
모 전 자 승(母傳子承)
훌륭한 아버지 밑에는 훌륭한 자식이 나오는 부전자전(父傳子傳)이 있다.
또한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어머니 밑에서 훌륭한 자식이 나온다.
(모 전 자 승母傳子承)
오늘은 우리가 금전 거래 시 사용하는 화폐에 모자(母子)의
사진이 들어 있음을 발견한다.
한 분은 오 천 원 권 지폐에 율 곡 이 이 선생의 사진이요,
오만 원 권의 사임당 신 씨(이름은 仁善) 율 곡 선생의 어머니이시다.
두 분이 얼마나 훌륭했으면 한 집에서 한 국가의 국민이 거래의 최고의
수단인 화폐(돈)에 등 재 되었을까?
그래서 두 분의 시를 읊어 봅시다. 먼저 사임당의 시를 올려봅니다.
"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외로이 한양 길로 가는 이 마음
돌아보니 북 평은 아 득도 한데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산 첩 첩 내 고향 천 리 건 마는 자나 깨나 꿈속에서도 돌아가고 파
한 송 정 가 에는 외로 히 뜬 달 경 포 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톱에 헤어 졌다 모이고 고 깃 배 들 바다 길을 동서로 오가네
언제나 고향 땅에 다시 돌아가 색 동 옷 입고 앉아 바느질 할 고."
이 시는 율 곡의 어머니 사임당 신 씨가 북 평(오죽 헌) 친정에서 용인 이 씨(친모)를
모시고 자식 오남 매를 키우며 살다 시집인 파 주 율 곡 리 사시는
시어머니 홍 씨 부인이 노쇄 하여 가정 살림을 할 수 없자 시가로 가면서
대관령 고개에서 오 죽 헌 을 바라보며 친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읊은 시이다.
사임당은 고대 중국의 주문 왕(周文王)의 어머니 태임 부인에서 따온 이름이라 하네요.
율 곡 선생의 시를 읇 어 봅시다
" 숲 속 정자에 가을이 깊어 나그네의 가슴에 물결이 이네
멀리 하늘과 강이 맞닿아 푸 르 르 고 찬바람 속 단풍은 어이
이리 붉을 고 산은 둥근 달을 토해 내는데 가을은 먼 데서
부는 바람 머금었구나 변방의 기러기 떼는 어딜 가는지
울음 소리 방울 방울 구름에 잠기네."
어는 가을 날 사임당이 자녀들을 데리고서 화석 정 (율 곡 선생의 5 대 조 부
이 지돈 이 지은 임 진 강가에 있는 정자)에 올라 주변을 살펴보니 울 긋 불 긋한
낙엽이 바람에 딩 굴 고 사임당이 언덕 넘어 유유히 흐르는.
임 진 강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때 주변을 둘러보던 아들인 율 곡이
시 흥이 일어나 " 어머니 시 한 수 읊어도 되겠습니까?
그래 누구의 시가 떠올랐느냐?
제가 제 머리 속에서 지은 시 입니다."
그때 누나와 형들이 놀라서 동생(5 째 인 율 곡)을 돌아다 보았고,
어머니 사임당께선 " 어디,
우리 현 룡 (율 곡의 아명ㅡ용 꿈인 태 몽 서 따옴)의 시한 수를 들어보자"
하여서 율 곡이 읊은 시다.
화석 정은 훗날 관료로서 율 곡 이 임금에게 10만 양 병 설을 주장하고
왜적이 침략할 것을 예상하여 극히 건의했으나
반대하는 신하들로 관철되지 않았다.
그러나 혜안을 갖 인 율 곡은 틈만 나면 오 대 조부 가 지은 화석 정 에다
기름 통을 가지고 올라와 기름칠을 했다.
율 곡 선생은 그후 사망하고 후일 임진 년에 왜 란이 일어나 불과 몇 일 만에
한양까지 쳐 들어 오니 선조 임금은 북으로 몽진 을 한다.
선조와 함께한 대신들이 임진 강을 건너려니 때마침 비는 오고 어둠이 드리워 강을
건널 수 가 없었다. 할수 없이 화석 정을 불태워 그 불빛으로
강을 무사히 건넜다고 한다.
이처럼 예지 의 혜안을 기를 수 있었음은 어린 시절 부 터
어머니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어머니의 가정 교육에 철저한 어머니 상으론 서예의 대가인
한 석 봉 의 어머니와 한말의안중근의사의 박 마리아의 교훈이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오늘날은 이런 가정 교육이 없어져 사회가 범죄의 소굴로 변하고 인간의
기본인 보금자리 가정 마 져 파 탄 나는 서글프고 안타까운
세상을 어찌 원망 하리 오 .~받은 글/청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