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헐버트 옹(翁)을 조(弔)함
8월 4일 청량리 위생(衛生館)에서 장서(長逝)
헐벝(헐버트 Hulbert) 박사는 미국 아세류 주 스프링필드의 인으로 일찍이 1895년경에 한국에 와서 조선 민족의 전도를 위하여 여러 가지 교육 급 전도로 도와주려고 노력하였으며 겸하여 고종황제의 신임을 받아 황제의 고문 격으로 있으며 해외 소식을 많이 들으시고 황제의 수금출납(을 살펴 본 일까지 있었고 그때 일적(日賊)들의 조선침식(朝鮮侵食)을 꾀하는 줄 아는 박사는 힘 있는 대로 한국 일에 충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1905년에 이르러 보호조약이 성립됨에 일적들이 박사의 한국주재를 허락이지 않으므로 부득이 귀국하였으나 무슨 기회든지 이용할 수 있으면 힘써 조선정형(情形)을 설명하였다. 해아밀사 사건이 있을 때에도 박사는 일부러 해아에 가서 한국의 보호조약은 황제의 본의가 아닌 것을 역설하였고 또 미국에 있는 한인에게도 많은 원조가 있어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하였고 자나 깨나 박사는 한국을 위하여 끊임없는 운동이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 한인들은 헐벝 옹을 한국독립의 은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옹은 항시 원하기를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 원한다 한고로 우리들은 그 말을 듣고 그가 별세한 후에 동상을 세우고 추모회를 하는 것보다 우리 국회와 정부에서 그를 청하여 국빈으로 대접하고 여생을 조선서 마치게 하는 것이 좋다 하여 이대통령은 그에게 청장(請狀)을 발송하였고 또 헐벝 박사 기념회를 조직하여 종로 청년회 안에 두고 1월에 기념연설회를 열고 감사의 메시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 헐벝 박사에게 발송하였다.
그 다음 달 2월에 헐벝 박사로부터 감사의 회답이 왔는데 이대통령 각하를 위시하여 국회와 민간유지 여러분이 본인을 불러 주시니 오직 감격할 뿐이며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는데 도리어 부끄럽습니다. 나는 해아밀사사건 당시에 고종황제께서 막대한 내폐금(內嬖金)을 해외에서 독립운동 자금으로 본인에게 위탁한 것이 있어서 상해 국제은행에 예금하였는데 그 후 왜적이 그것을 알고 송두리째 몰수해 갔으니 이로 말미암아 고종황제의 거룩한 뜻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고 한국은 일제의 말발굽 밑에 36년 동안 유린을 당하고 말았는데 이 사실은 고종황제와 본인만이 아는 비밀인데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기어이 이 일을 결말지어야 하겠습니다. 그때에 은행에 맡긴 증서나 모든 관계서류는 지금까지 내가 잘 보관하였으므로 이번에 한국으로 가면 즉시 일본정부에 재판하여 배상을 받아 내겠습니다. 이것이 꼭 나의 해방된 한국에 가야 하겠다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지난 7월 8일에 와싱톤을 출발하였는데 헐박사가 이대통령의 초청에 의하여 한국으로 발향(發向)하였다는 것과 일단 한국으로 가면 여생을 한국에서 보내겠다는 소식을 AP전파가 왔다. 그리하여 박사는 7월 29일 인천(仁川)에 도착하여 정부 고관들과 조선지명인사들의 환영을 받으며 당일에 서울로 와서 피곤한 노구를 쉬기 위하여 바로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하였다가 8월 4일 하오 0시 15분에 의식이 몽롱해지며 걷잡을 수 없이 병원에서 별세하였다. 향년 87세이시고 일생을 한국 독립을 위해 헌신하시고 한국 땅에 묻히시기 원하신 대로 목적을 이루었으나 박사의 제2고향인 한국에 오셔서 우리들로 더불어 뜻깊은 포주(抱主)를 만나 예전 이야기도 하고 장차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도 가려 주시고 얼마 후에 떠나시면 하고 모두들 애석(愛惜)하여 마지않는다.
헐 박사가 한국에 대하여 각절한 용무와 심심(深甚)한 인류애에 불타고 있는 우리 동족에도 보기 드문 인물이거든 하물며 외국 사람이랴. 나는 숨어 드러나지 않은 헐 박사와 조금도 다름없는 노보을(魯普乙) 박사를 보았다. 그는 3.1운동 때 직접 간접으로 많이 활동 하였고 일적들이 수원 제암 교회에 교인 급 민중을 불러 놓고 불을 놓아 태워 죽게 할 때 노 박사 친히 현장에 보고 사진을 박아 친구 급 와싱톤에 전송한 일 있고 그때 노박사는 나더러 말하기를 내가 죽어서 조선독립이 된다면 나는 죽음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였으니 나는 지금까지 그 말을 생각할 때 다시 격연(激然)을 금치 못하였다. 헐 박사는 8월 11일 사회장으로 결정.
_____
* 참조 :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사정보자료실 외국인선교사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