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87:1-7
제목: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오늘은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시편 87편은 시온시이며 찬양시로 분류되지만 예언적인 성격을 띤 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되어 돌아온 후 예루살렘을 재건하는데 온 힘을 다합니다. 그러나 그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난관을 겪게 되는데 이 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낙심하게 됩니다. 이것을 본 시인은 이 시를 기록하게 됩니다. 시인은 성전을 다시 짓고, 무너진 성벽을 다시 세우고, 불타버린 가옥들과 삶의 터전을 다시 재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낙심하지 말라고 위로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아서 죄의 포로에서 해방된 후에 우리는 잃어버린 평강과 기쁨을 되찾게 되었지만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면서도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에 여러 가지 많은 일들로 인해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5절 말씀에서 시인은 그 해답을 우리에게 줍니다.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재건은 그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역시 하나님이 세워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무너진 것을 세울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편 87편을 통해서 시온을 세우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몇 가지 교훈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둔 그곳을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시편 87:2)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시인은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야곱의 모든 거처는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는 가나안 땅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 땅보다 시온의 문 즉 예루살렘 성의 문들을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신명기 12장 5절에 보면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이유는 앞으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민족들이 섬기고 있던 신들의 제단과 신상들을 불사르고 찍어 버려서 그 이름을 멸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가나안 땅 한 곳을 택하여 중앙 성소로 삼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곳에 예루살렘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이름을 둔 장소, 여호와께서 계시는 곳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 성전을 세우고 매 절기만 되면 그곳을 향해 나아갔던 곳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예루살렘만을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는 만유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편에서 말하는 시온이라는 곳은 하나님이 그 이름을 둔 장소입니다. 당시 시온은 지리적으로는 예루살렘을 말하지만 영적으로 이 시온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그런데 왜 이 예루살렘을 사랑하셨을까요? 이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었고 그 성전 안에는 언약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 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기에 그곳이 시온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으로 맺어진 하나님의 백성이고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아주 쉬운 말로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구원 받은 우리에게 두셨고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구원 받은 이후의 삶은 나 혼자서 세워갈 수 없는 삶입니다. ‘나’라는 존재 즉, 인간의 노력으로 세워가다 보면 실패하고 넘어져서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워가는 우리의 삶은 아름답게 세워지고 그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 받은 자를 특별히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우리에게 두시려고 우리를 택하고 그 이름을 우리에게 두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교제하며 복된 삶을 사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은 세계 모든 민족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시편 87:4)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8장 1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하셨고,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제일 먼저 나오는 이름이 라합이라는 이름입니다. 이 라합은 고대 근동의 신화에서 나오는 바다 속에 사는 신비한 괴물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라합은 교만하고 사악한 자를 뜻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애굽으로 비유됩니다. 바벨론은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이스라엘의 적입니다. 또한 블레셋, 두로, 구스는 모두 이스라엘과 전쟁을 했던 이방족속들입니다. 이런 민족들 모두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호세아 2:23).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미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민족이었습니다. 반면에 애굽이나 바벨론 그리고 블레셋과 이방 민족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민족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계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셨다는 이 메시지는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로운 분인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 시대의 애굽과 바벨론 그리고 블레셋 같은 이방 민족인 우리는 구원 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입니다. 이런 우리를 향하여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는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은 우리 삶에 근원이 되십니다.
(시편 87:7)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이방인들입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었으나 하나님께 구원 받은 이후에는 하나님을 노래하며 기뻐 뛰어논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삶의 변화입니다. 이들의 삶의 변화가 이렇게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의 삶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대적할 때에는 삶의 근원이 세상과 세상에 존재하는 내가 근원인 줄 알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빼앗으려고 했고, 가지려고 했고 그로 인해서 남에게 아픔을 주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이들은 삶의 기쁨이 없었습니다. 기쁨이 없다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이후에는 삶의 근원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로 인해서 그들은 기뻐하고 자신들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흥망성쇠’라는 말이 있습니다. 흥하고 망하고 성하고 쇠한다는 뜻입니다. 모두 누가 주관할까요?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흥하기를 원하고 성하기를 원합니다. 망하거나 쇠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흥과 성은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고 우리를 춤추게 합니다. 그러나 망과 쇠는 우리를 슬프게 하고 우리를 근심하고 걱정하게 합니다. 그래서 흥과 성을 가리켜서 행복이라고 말하고 망과 쇠를 가리켜서 불행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 복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하나님입니다. 가장 큰 복은 어떤 복일까요? 하나님의 자녀가 된 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죄로 죽은 자가 살아난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받은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기뻐하고 노래하며 춤을 추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복을 주셨을까요? 마지막으로 신명기 28장 1-6절 말씀까지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삶에 근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새로운 삶을 열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삶의 모든 에너지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복된 삶을 열어가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기뻐하며 찬송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둔 그곳을 특별히 사랑하십니다. 그곳은 바로 저와 여러분이며 우리 모임인 족자카르타 한인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세계 모든 민족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 삶에 근원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새 삶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