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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나 만달레이 왕궁으로 향한다. 만달레이 왕궁은 호텔에서 걸어서 20분 거리로 아침시장이 열리는 76번 도로를 따라 30번 가에 있는 만달레이 인민병원으로 직진한 후 우회전하여 세 블록을 가 73번 도로에서 좌회전해 조금 만 가면 만달레이 왕궁 남문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시간임에도 아침시장에는 벌써 상인들이 길가에 좌판을 펼쳐 놓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미얀마에서는 쌀쌀하게 느껴지는 아침인데 엄마를 따라 나온 젖먹이 아이들이 좌판 옆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인민병원 앞길에는 부랑자 또는 병실이 없어 입원하지 못한 환자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담요 하나를 덮은 채 길바닥에 누워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차마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다.
만달레이 왕궁 앞에 도착하니 높다란 성벽과 해자가 날 기다리고 있고 해자 변 도로를 따라 조깅 또는 산보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보인다. 남문 앞 다리를 건너 해자를 건너가니 왕궁을 지키는 초소에 초병이 총을 들고 서 있고 초소 뒤로는 검문소가 보인다.
▶ 만달레이 왕궁 남문
▶ 만달레이 왕궁 남문을 지키는 군인
1859년 민돈(Mindon) 왕에 의해서 도심의 가운데에 정사각형으로 왕궁이 만들어진 이 왕궁은 외곽 성의 높이가 8m, 두께가 3m에 이르는 매우 견고한 성으로 외곽 성곽의 길이는 한 변이 2km에 이르며, 성벽 바깥쪽으로는 깊이 3m, 폭이 70m에 이르는 해자를 만들었고 동서남북 네 개의 문 앞에 다리를 놓은 매우 견고한 형태로, 외부 적으로부터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민돈 왕이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은 띠보 왕 시절인 1885년 제 3차 버마-영국 전쟁을 일으킨 영국군에게 점령당하고 띠보 왕을 인도로 추방한다. 추방당한 띠보 왕은 머나 먼 인도에서 30년의 유배생활을 한 끝에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인도에 잠들어 있다고 한다. 왕궁을 점령한 영국군은 왕궁을 주지사 관저와 영국인 클럽으로 이용하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일본군에게 왕궁이 함락되고 일본군은 왕궁을 군사보급창으로 사용하다가 1945년 3월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일본인들의 잔인함과 무지함이 이곳에서도 들어나다니! 그러고도 사과 한 번 제대로 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본성은 무얼까? 여행을 하다보면 늘 느끼는 게 해적 출신인 섬나라 사람들은 남의 나라를 침략하고 약탈하는 것이 본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만달레이 왕궁의 해자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왕궁은 1990년 미얀마 정부가 복구작업을 시작해 지금에 이르고 있으나 총 114개의 건물 중 64개 만 복구되었는데 지금도 왕궁은 군사시설로 이용되고 있어 왕궁을 보려면 외국인은 이름과 국적, 여권번호를 적은 후 여권검사를 마쳐야 들어갈 수 있다. 여권을 가지고 나오지도 않았지만 가이드북에 의하면 관광객은 동쪽 문으로 만 들어갈 수 있는데 들어가도 33m 높이의 나선형 전망대에서 왕궁의 전체 모습을 관망하는 것 외엔 볼 게 별로 없다고 해 포기한다.
▶ 복구된 왕궁 건물들<펌>
▶ 33m 높이의 나선형 전망대<펌>
호텔로 돌아 와 아침식사를 한 후 바간으로 향한다. 만달레이에서 바간으로 가는 정기노선버스는 쮀세칸 버스터미널에서 하루에 5차례 있는데 오전에 출발하는 버스는 모두 예약이 된 상태라 할 수 없이 OK Express라는 비정기노선버스를 이용하기로 한다. 20명 정도 탈 수 있는 이 소형버스는 호텔까지 와 손님을 태워가기 때문에 짐을 가지고 쮀세칸 버스터미널까지 가지 않아도 되지만 여행객의 배낭이나 여행 가방을 실을 공간이 부족해 버스 위에 싣고 밧줄로 묶어야 만 하며 예약된 손님이 있는 곳을 찾아 만달레이 시내를 서너 곳을 돈 다음에야 바간으로 출발한다. 또한 좌석 사이 간격이 좁아 다리가 긴 승객들은 고통스런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다행히도 난 맨 앞 좌석에 앉아 다리를 펼 수는 있었지만 수시로 승객과 짐을 싣는 바람에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가만히 보니 이 소형버스는 수하물 택배도 겸하는 버스로 바간으로 가는 도중 조수가 전화를 받거나 걸기도 하면서 수시로 수하물을 내리고 싣는다. 또한, 운전기사와 조수가 마얀마의 씹는 담배 꽁야를 씹으면서 수시로 창문을 열고 빨간 침을 아무데나 뱉는 모습이 보기에 좋지 않다.
▶ 만달레이에서 바간으로 가는 소형버스
▶ 미얀마인들이 즐겨 씹는 담배 '꽁야'
만달레이 시 외곽을 벗어난 버스는 이내 톨 게이트에서 통행료를 내고 고속도로 같은 곳으로 진입하는데 가만히 보니 고속도로가 아닌 것 같다. 왕복 2차선 도로인 도로 변에서는 사람들이 가축들을 몰고 다니며 풀을 뜯기고 있고 대나무와 야자수로 지은 집들도 군데군데 보이며 차량들도 시속 70km를 내지 못한다. 이 도로를 한 20분 쯤 달렸을까? 버스는 도로 옆 주유소에 정차해 주유를 하는데 주유를 끝내고 나자 차량 세차를 한다. 버스에서 내려 흔들의자에 앉아 잠시 쉬는데 흙이 잔득 묻은 오토바이와 트럭들이 주유소로 들어와 주유를 하더니 그들도 세차를 한다. 비포장도로가 많은 미얀마에서는 주유소가 아마 자가 세차장인 모양이다. 한 시간 반쯤 달리자 시골길로 나오더니 주차장이 제법 넓은 식당 앞에 차를 세워 점심을 먹고 간다고 한다. 우리나라 70년대 시골 음식점처럼 허름해 보이는 이 식당 주차장에는 꽤 많은 차량들이 정차해 있고 식당 안에도 손님이 꽤 많다. 난 점심 생각이 없어 식당 주위 만 서성거린다.
▶ 만달레이에서 바간으로 가는 도중 들른 휴게소
▶ 따나카를 칠한 엄마와 풍선을 받아 들고 좋아하는 아이
30분 정도 쉰 버스가 다시 출발하고 버스는 시골길을 달리는데 얕으막한 야산과 들판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농작물이나 과수를 재배하지 않고 숲과 잡풀 만 무성하다. 이곳이 위도 상으로 보면 중국의 사솽반나나 태국의 치앙마이, 말레이시아 등과 비슷한 열대지방이고 에야와디 강이 가까워 수상운송도 무난하며 수량도 풍부할 뿐만 아니라 인구도 많은 편인데 말레이시아처럼 팜유나무를 재배해 기름을 추출해 수출하면 외화도 벌고 국민 고용도 창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황무지처럼 버려 둔 땅이 아깝다. 정치인들이 권력만 탐하지 말고 국민들의 배를 채워 줄 생각을 해야하는데.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겉으론 국민을 위함네 하지만 제 뱃속을 채우는데 만 열중하니 참으로 한심하다.
밍잔(Mingyan)이라는 도시를 거쳐 만달레이에서 다섯 시간이 좀 넘게 걸려 바간 인근 냥우의 호텔에 도착한다. 역시 택배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 버스라 승객이 요구하는 호텔 앞까지 데려다 준다. 냥우(Nyang Oo)는 올드바간에서 북동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곳으로 저렴한 숙소와 식당, 여행사들이 밀집되어 있는 바간 관광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 냥우 지도
호텔에서 대충 짐을 던져 놓고 걸어서 15분 거리인 냥우 재래시장으로 향한다. 냥우는 에야와디 강변에 위치하고 있어 거리를 걷노라면 차들이 달리면서 일으키는 바람에 고운 모래 먼지가 많이 날린다. 시장이 보통 오후 4시경이 되면 문을 닫기 시작한다고 하니 서둘러 걸어가는데 모래 먼지가 앞을 가려 걷기가 힘들다.
▶ 냥우시장으로 가는 길
시내 메인로드 한가운데에 위치한 재래시장으로 건기(겨울)에는 이른 아침(새벽 6시)부터 활기차게 열리고 우기인 여름에는 낮 시간에만 소규모로 열리는데 신선한 과일, 채소, 정육 등 다양한 농산물이 거래되고 있어 현지인들의 삶을 구경하기 좋아하는 나 같은 여행자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곳이다. 냥우시장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좀 넘었는데 벌써 농산물시장은 폐장 분위기다. 농산물 시장 옆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칠기와 목각, 인형, 건과일 등을 파는 곳과 론지, 티셔츠 등 옷을 파는 곳 등은 아직 가게를 열어 놓았는데 역시 손님은 별로 없고 관광객도 우리뿐이라 썰렁하다.
▶ 냥우시장 입구
▶ 냥우시장 농산물 가게들
▶ 칠기를 파는 상점
▶ 냥우시장 잡화 골목
▶ 미얀마 전통 인형가게
▶ 목공예품 상점
▶ 미얀마 톱 연예인 브로슈어를 파는 상점
예전에는 무척이나 소박하고 순수한 상인들이 많았는데 최근 여행자들이 급증하자 바가지가 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일행 중 한 분이 론지와 티셔츠를 사려고 상인과 가격 실랑이를 벌인 끝에 론지 1장과 티셔츠 2장을 10달러에 구매한다. 10달러면 우리 돈으로 13,000원 정도인데 물가는 정말 싼 것 같다.
어느덧 해가 서산에 지고 주위가 어두워질 무렵 냥우시장을 나와 메인로드를 따라 쉐지곤 파고다 쪽으로 걸어가는데 역시 바람에 날리는 모래먼지로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렵다. 메인로드는 양쪽에 게스트하우스와 여행사, 음식점 등이 대부분인 여행자 거리인 듯하다. 그 길을 따라 걷다 ‘난향’이라고 한글로 쓴 간판을 단 가게가 보이기에 가보니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가게로 염주, 진주, 나무화석 등을 판매하는 가게다. 미얀마 여인과 결혼한 한국인이 운영하는 염주공방이나 한국인 사장님은 외출 중이다. 대신 미얀마 여인이 우리를 맞는데 한국어나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걸 보면 한국인 사장과 결혼한 부인은 아닌 것 같다.
▶ 바간 유일의 한국인 상점 '난향'
메인로드를 걸어 따나카 박물관에서 좌회전하니 레스토랑이 많이 보인다. 목조로 지어진 1층의 아담한 규모의 따나카 박물관은 이미 문을 닫았고 배가 출출하기도 하고 저녁때이니 저녁식사를 하러 음식점을 찾아 가다보니 좌측에 목공예공방이 있어 들어 가 본다. 목공예를 위해 쌓아 둔 나무 사이의 작은 공간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나무를 다듬어 조각 작품을 만드는데 얼마나 정신을 집중하는지 우리가 들어 간 것도 모르고 열중하고 있다. 공방에서는 각종 목공예 작품들을 전시 판매하고 있어 시간이 충분하다면 여유를 가지고 둘러보면 좋을 듯하나 배고픔을 못 이기고 그곳을 나와 식당으로 향한다.
▶ 문이 닫힌 따나카 박물관
▶ 목공예품 제작 판매장
▶ 목공예품 제작에 열중인 장인들
미얀마 맥주를 곁들여 미얀마 음식으로 배를 채운 후 쉐지곤 파고다로 향한다. 아까 호텔에서 카운터 아가씨가 오늘 밤 7시에 쉐지곤 파고다에서 불교행사가 있으니 꼭 가보라는 이야기를 하기에 무슨 불교행사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쉐지곤 파고다 야경을 구경하기도 할 겸해서 지도를 보며 쉐지곤 파고다로 걸어간다. 파고다 앞에는 야시장이 열렸는데 의류, 골동품, 길거리 음식, 불교용품, 장난감, 잡화 등을 파는 노점이 길게 형성되어 있는데 손님은 별로 없어 쓸쓸해 보인다. 야시장 한쪽 작은 규모의 야외경기장에선 축구 비슷한 경기를 하고 있는데 경기장 주위를 둘러싼 많은 관객들의 응원 열기가 높다.
▶ 저녁식사를 한 NOVEL RESTRANT
▶ 쉐지곤 파고다 입구 야시장 한편에서 열리는 축구 비슷하
백색 사자상 두 마리가 입구를 지키고 있는 쉐지곤 파고다 회랑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야간 조명을 받아 더욱 금빛으로 빛나는 파고다가 나를 반긴다. 밤에도 많은 미얀마인들이 이곳을 찾아 곳곳에서 꽃과 공물을 부처님께 바치며 정성스럽게 기도를 하고 있고 일부는 사원 곳곳에 가족끼리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걸 보면 미얀마인들의 부처님에 대한 신심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 쉐지곤 파고다의 야경
불교행사가 시작된다는 오후 7시가 다 되어 파고다 옆 넓은 건물로 가니 이미 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건물 바닥에 앉아 기도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행사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앞쪽에는 커다란 의자가 놓여 있고 의자 아래와 옆으로는 꽃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앞 좌측에는 여성 사회자가 마이크를 대고 미얀마 말로 행사 내용을 소개하는 것 같은데 미얀마 말을 하나도 모르는 난 무슨 소린지 전혀 알아 들을 수 없다. 우측에는 이 행사를 중계하려는 건지 뒤쪽에 있는 신자들에게 보여 주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비디오 촬영을 해 중간에 설치된 TV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바닥에 앉아 한 시간을 기다려도 행사는 시작되지 않는다. 옛날 우리나라에서 보통 30분 정도 늦는 걸 코리안 타임이라고 했는데 미얀마 타임은 얼마나 늦는 걸까? 그래도 미얀마 사람들은 짜증내는 사람 하나 없이 묵묵히 기다리는데 마음에 수양이 덜 돼 참다못한 난 일어나 파고다를 빠져나와 호텔로 향한다.
▶ 쉐지곤 파고다 불교행사장
오늘 하루 많이 걷기도 했고 만달레이에서 냥우까지 다섯 시간 넘게 좁은 소형버스에서 시달린 난 큰 길까지 걸어 나와 택시로 호텔까지 가려 했으나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택시도 무척 드믄데다 방향도 맞지 않아 결국 저녁을 먹었던 식당까지 걸어와 승용차를 빌려 타고 호텔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