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간략하면서도 그 속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을 때, 우리는 그 발화자를 경외한다.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최대한으로 축약하고 이를 운율에 실어서 표현하는 시에 있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항차 시는 인류 역사에 예술의 효시이자 '짧은 예술'의 발원에 해당한다. 우리 문학의 옛 선조들은 짧은 시의 문면文面에 진중한 생각을 담는 데 능숙했다. 한시에 있어서 절구絶句나 율시律詩의 형식이 그렇고, 시조 또한 기본이 3장 곧 3행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 짧은 분량에 우주 자연의 원리와 인생 세간의 이치를 수용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랜 시조집 『청구영언』에 전하는 조선조 기생 황진이의 시조들은, 시대적 한계와 신분의 제한을 넘어서는 절창이다. 그 기량에 있어 사대부 선비의 시조에 굴하지 않는 기생들의 시조가 많은 것은, 이 문학의 형식이 난해하지 않고 길지 않다는 데 일말의 이유가 있다. 그런데 짧고 쉬우면서 깊은 뜻을 안고 있는 시나 글이 결코 만만할 리 없겠다. 조금 범위를 넓혀서 보면, 인간을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종교의 경전은 그 가르침의 언술이 어떤 경우라도 길지 않고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물론 쉬운 시가 좋은 시라는 등식이 그대로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문학, 더 나아가 세계의 문학에는 의미 해독이 어렵고 상징성이 강한 명편의 시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문학의 수용자가 점점 작품으로부터 멀어지는 오늘의 현실에 비추어, 근자의 독자 친화를 지향하는 서정시 선호 경향과 그 효용성은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 그렇게 세상이 변하고 시대정신도 바뀌어 가는 마당에, 이제는 문자문화 활자매체의 시대에서 영상문화 전자매체의 시대로 문화와 문학의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이와 같은 때에 한국에서 짧고 감동적인 시의 새로운 유형으로 부상한 것이 '디카시'이다. 디카시는 디지털가케라와 시의 합성을 말하는 새로운 시형식이다. 오늘의 한국인이면 누구나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순간 포착의 사진을 찍고, 그 사진에 조응하는 짧고 강렬한 몇 줄의 시를 덧붙인다. 일상의 삶 가운데 가장 가까이 손에 미치는 영상 도구를 활용하여 쉽고 공감할 수 있으며 감각적인 시의 산출에 이르는, 현대적 문예 장르라 할 수 있다.
한국 남부 지역의 시인들로부터 시작된 이 시운동은, 누구나 디카시인이 될 수 있다는 보편성과 개방성이 장점이다. 짧고 강하고 깊이 있는 시, 거기에 생동하는 영상의 조력을 함께 품고 있는 시의 모형이 폭넓게 확산되는 경과를 보이는 것은 매우 당연할 일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간에, 이처럼 손쉽게 독자와 만나고 교유하는 시의 방식이 시드는 법은 없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생각으로는, 이 짧은 시들의 행렬이 보람을 다하도록 하는 것은 결국 그 시에서 삶의 깊이를 읽은 우리 마음의 수준이 아닐까 한다.
[출처] 43호 김종회/ 짧은 글, 긴 생각|작성자 dpoem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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