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1장2막(1부)
"수구초심"이란 사자성어가 생각난다.
여우가 죽을때 자신이 태어난곳을 향하는 것을 말하는 사자성어.
하물며 미천한 짐승도 자신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죽건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은 고개돌리고 생을 맞이하는 이는 듣고 보지도 못하였다.
우리의 고향은 2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산천초목과 넓은 들판과 시골오두막집 소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닭들이 앞마당에서 뛰어놀고 개울가에는 가재와 다슬기가 맑은 물에서 노닐며,
저녁나절 달빛아래 반딧불이 반짝이는 그모습이 우리가 생각하는 고향은 아닐런지
그러나 도시에서 태어난 나는 명절날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 하기도 하였다.
나는 지금 생각해도 유아시절 고향친구(?)하나 없는 도시의 아이였던 것이다.
"향우회 "
평생 가입한번 못하고 사라질 단어인것이다.
그리고 2번째 고향은
바로 정신적인 마음의 구석진 곳에 아른거리는 사람들인 것이다.
어릴적 앞마당에 목줄을 묵고 키운 백색의 견일지라도, 물통에 놓고 가지고 놀던 물방개도, 소꿉장난하던 동네 아이들도, 한여름 슬그머니 월담 하여
도둑질 하려던 도둑님도 모두 지금 생각하면 추억거리가 되고 만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존재이거니 수십년이 지난 과거의 모든 이들이 보고싶은 것을 나만의 생각일까?
아닐것이다
두살박이가 한여름 복날 태어난 생일날.
땀이 뻘뻘흘리며 미역국을 끓였을 어머님의 땀내음이
더 그리울지도 모른다.
2살이 된 나는 지금의 내 손녀,외손녀.손자들을 보고 짐작컨대 부모님에게 칭얼대며 밥 달라고 땡깡 부리며 절대생명의 지원자 보호 아래 묵묵히 자라난 것이다.
후계자도 없는 고요한 외아들의 애틋함이 주위의 사랑을 독차지 하였을 것이다.
죽은 바로 밑에 남동생(?)이 4년후에 태어나기까지는
나의 독무대인 것이였다.
세상 회고록을 쓰며 두살박이 모습을 회고록으로 쓰는것은 전후무후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억한다.
남산밑 단칸방에서 촛불키고 잠을 설치고 아침에는 물지게 지고 빨래하고 연탄 지고 날으며 밥을 했을 부모님이 내 기억에는 없지만 틀림없이 기억나고 있다.
누구든 짐작과 착각을 혼돈할 것이다
유아시절 증인도 없이 단독으로 그당시 상황을 종결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부당할까?
내 어깨쭉지에 난 천연두 예방 주사자국을 보아라,
내 오른쪽 배밑에 그어진 맹장수술의 칼자국을 보아라
누가 나의 추종자요 손오공의 분신이 아닌 이상 가능한 것일까?
과거로 갈수 있는 타임머신을 탈수만 있다면 옛날로 돌아가 인생을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무엇이 지금의 나의 인격을 형성시켰고 지금의 쇠락을 초래하였는지 다시 돌아가고 푼 두살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