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700
효석문학 100리길 3코스: 강 따라 방림 가는 길 10.4Km
일시: 2019년10월17일 목요일 흐림
동선
장터입구→대화 감리교회→대화초등학교→대화 성당→대화중고등학교→대화
교→대하면하수처리장→반정1교→하안미교→무명교→사초교→구포교→방림
농공단지
동서울터미널에서 08시에 떠난 진부행 버스는 예상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장평터미널에 9시46분에 도착되었고 대화행 시내버스는 10시10분이라서 운
전기사와 오늘 코스에 대한 의문나는 곳 몇가지를 자문 받으려니 그는 효석
문학 100길 전코스를 잘 알고 있었다
떠나기전에 방림농공단지의 현황을 잘 몰라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교통편이
어떨할 가 염려스러웠는데 운전 기사가 영월쪽으로 시내버스를 탈 수 있단
다
10시26분
장평에 도착되었다 우선 대화장터를 찾아 갔더니 장날이 아니라서 썰렁했지
만 장터입구에는 정자가 있는 곳이 있고 안내문이 보이는데 “호랑이를 감동
시킨 위홍연의 효심” “일천석 최부자” “구룡소의 전설” “허균과 임세척”의
대화면의 전설이 안내문에 있다 그리고 빨간 고추 조형물이 보이는데 대화
고추는 영양고추와 청양고추처럼 우수성으로 알려져 있다
대화장날- 강선녀
-대화초-
오대산 맑은 물
감싸 흐르는 길 따라
평호롭게 자리한 대화면 소재기
전통 깊은 5일장
없는 것 없이 다 있는 좌판
그중 돋보이는 대화초
풋고추부터 빨갛게 익은 고추까지
임금님 수랏상에 올랐다는
대화초
• 호랑이를 감동 시킨 위홍연의 효심
위흥연(魏興演)은 지극한 공경과 지극한 효심(極敬極孝)으로 아버지가 연
어를 먹고 싶어하여 강릉에 가서 연어를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대관령을
넘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대관령에는 호랑이가 많아서 홀로 넘는 것을 사
람들은 꺼려 했지만 위흥련은 관계치 않고 밤중에 넘다가 호랑이를 만났지
만 “나를 잡아 먹고 싶으면 잡아먹어라 그렇지만 이 연어를 아버지에게 갖
다 드린 후에 나를 잡아 먹어도 될 것이라 하니...” 호랑이가 위흥연을 업어
다 주었고 아버지가 죽자 위흥연은 묘지 곁에서 3년간 시묘살이를 했는데
호랑이도 3년간 함께 하였다는 Story.
• 일천석 최부자
며느리 황씨가 나물 뜯으려 산에 갔는데 나물 바구니에 구렁이 한 마리가
기어들었지만 황씨가 쫓아 버리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서 장롱에 모신 뒤로
재산이 늘어나서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 허균과 임세척
홍길동의 저자 허균이 113살이나 장수하는 임세척을 만나 장수비법에 대
한 인터뷰 내용으로 임세척이 말하기를 “옥수수나 먹으면서 찬 음식은 먹지
않고 소식하며 40세에 상처하고 재혼하지 않았고 아들들이 잘 보살펴 준다고 했는데-
• 허균의 양생법
부드러운 밥으로 위(胃)를 保養하고 푹 익은 고기로 온 몸을 보양하고 홀
로 잠으로써 정신을 보양한다 이는 일용(日用)의 묘법(妙法)이며 집에서 거
처하는 자가 천성(天性)을 온전히 보존하는 방법이다
장터입구에 머물면서 안내문을 읽고 대화 감리교회 대화초등학교 대화성
당 대화중고등학교 앞을 지나니 대화교가 나왔고 땀띠공원과 방림농공단지
방향표식이 있고 다리를 건느면 남부교회가 있고 역시 방향표식이 있는데 31번 일반국도를 벗어나서 교회 앞으로 대화강을 따라서 걸게 된 다
강변에는 갈대숲이 자연스럽게 어울어졌고 하늘은 엷을 구름으로 덮였지만
구름이 쪼개진 틈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기도 하였고 전방으로 먼 산 앞
이 종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좌우로 작은 산 높은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어우러 젔고 옆산과 옆산 사이로 주택가와 전답에 있어서 논에는 누렇게 벼
가 익었고 밭에는 고랭지 채소 밭으로 가을걷이가 시작되었고 배추를 수확
하는 배추밭에서 상큼한 배추 냄새가 바람에 실렸다 긴급방역으로 우회하라
는 안내판이 나오면서 우틀하니 위흥연 비각이 도로 곁에 있어서 찾아 보았
고 도로 따라 걷다가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니 대하면하수처리장이 나왔고
잠시후 정자기 있는 반정1교에 “부사 이응우 청덕선정비”가 있어서 찾아보
니-
“千秋一功 民逢善公 傾綠救幣 國有賢俠”
비문내용으로 청덕선정비의 주인공 이응우는 강릉부사 시절에 보폐전을 민
초들에게 나누어 주고 휘리세(揮罹稅)를 경감 시켜주며 곡식 100석을 기부
하고 선비들을 양성하였기에 민초들이 뜻을 모아 영세불망비를 세웟다
※ 휘리(揮罹)
강에는 강어휘리장(江魚揮罹場)이 있었다 강에서 후릿그물을 쳐서 담수어나 소하성 어류를 잡는 어장을 말한 것이다. 후릿그물은 과거 하천에서 많이 사용하였는데 과다한 세금을 징수하였다
그런데
대화 민초들은 항상 세금에 시달려서 휘리세 말고도 공삼세도 있었다
• 貢蔘弊端
금수강산에는 도라지꽃 피듯이 산삼이 널널했지만(시인 엄기종의 글에서)
징기스칸의 후예들과 矮人들이 쑥밭을 만들었고 조선시대 높은 대감들과 지방수령들이 산삼을 너무 좋아하여 민초들을 못 살게 굴어서 貢蔘制度 때문에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였다
히인미교에는 대화지원중고세터가가 있고 방림농공단지와 땀띠공원으로 가는 방향지시가 있고 직진하도록 되어 있다 다시 半程橋가 나오는데 반정에는 주막거리가 있었다 그리고 갈림길(Y)에서는 좌측으로 직진하고 무명교를 지나게 된다
엄기종 시인의 大和의 歷史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태종의 命이 대화 爲令峰에 오르면
모릿골 4박5일의 治道打圍 북소리
爲民災害의 호랑이는 혼비백산을 쳤고
巨和田 뒤풀이가 大和를 이었지
大和人 영경묘 평창이씨 조선 왕기가 여기부터
세종에게 위엄을 가르치던 태종의 행차에 이어
세종이 상왕을 모시고 외가 대화를 또 찾아
모릿재 講武行事로 연이었지“
대화에서는 강무제 행사가 있었는데 테종은 1415년9월29일 세종은
1419년11월6일 대화에 4박5일 머무르며 講武祭를 열었다는 내용이다
• 講武祭
평화로운 때에 해이해지기 쉬운 군사동원체제를 바로잡기 위하여 왕의 親臨 하에 농한기를
이용하여 수렵을 통해 군사를 훈련시키는 행사를 말하며, 이것은 군사훈련의 기능 뿐 아니라
백성의 곡식을 해치는 금수의 제거와 수렵으로 포획한 짐승으로 사직의 제사 제물로 바치는
의례적 기능을 구비한 행사였으며, 일년에 봄과 가을 두 번 행하였다
※ 강무제는 오늘날 군사훈련과 같은 다목적 행사인데 때로는 왕들의 사치행각으로 변질되어 연산군은 사냥놀이로 민초들을 괴롭혔다
수변과 제방둑을 걷다가 사초교가 나오면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면 사거리로서 길은
우측으로 진행하여야 하는데 금강계곡과 가평산촌마을 방향표시가 보이고 장평은 17Km로 사
과 오미자가공센터와 슈퍼가 있는데 슈퍼 앞 의자에서 배낭 벗고 물 한모금 마시면서 할멈과
통화를 한뒤 다시 걸으면서 대추나무에서 까치밥으로 남겨둔 대추 세알을 건져서 맛을 보니
무척 달았다
사초교를 건너서는 31번 일반국도로를 걸아야 하는데 차량통행이 많아서 조심스럽다 그리고
다리공사로 통행이 불편스러웠고 구포교는 방림4리로 이어지는 다리요 평창 영월 40Km 평창
12Km 방림 3Km라는 안내판이 보인 다
“아하~3Km 남았군... 힘이 솟는 다” 다 온것 같고 “거기 매운탕” 집 마당에는 승용차들이 꽊
차 있었다 군침이 돌고 동행이 있었다면 엉덩이를 깔았을 것이다
31번 일반국도를 걷다가 왼쪽으로 걸으라는 유도표찰이 보여서 따라가니 이곳이 방림농공단
지였다 진행하다보니 3코스와 4코스 안내도가 있다 13시13분이다
방림농공단지에서 트레킹을 끝내고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윗삼거리가 나오고 아래삼거리에서
는 대화행과 평창행 시내 버스를 탈 수 있다
더 걷고 싶어도 지난 토요일 오대산 옛길 1과2코스에서 혼쭐이 났으니 오늘은 이만 접기로 하
고 평창택시를 콜하니 10분쯤 기다리란 다
그런데 택씨기사도 효석문학 100길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 내가 다음번에 걸어야 할 4코스도
안내하여 주였다
평창시외버스미널에 도착하고 올림픽시장(전총시장)에 있는 “메밀나라” 집을 찾아들어 할멈
먹거리는 포장을 하고 메밀부침에 한 잔술로 피로를 풀고 15시35분 차표를 받으니 기다려야
할 시간이 한 시간이 넘어 평창강 둔덕으로 가서 평창강을 바라보면서 시긴을 보냈다
효석문학 100리 길 3코스를 걷기
2019년19월18일 목요일 날
대화장터에서
방림농공단지까지 10.4Km를
자연스럽게 우거진
갈대숲을 흐르는 강물 따라
방림 가는 길을 걷는 다
가을 하늘은
높게 엷은 구름 덮였고
구름 쪼개진 사이로
파아란 하늘에서 햇살이 곱다
고랭지 밭
배추냄새는
상큼하니
가을 걷이로
일손이 바쁘다
대화천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대화촌은
효심의 고장으로
위홍연의
효도 이야기는
가슴이 찡하고
타박타박
걷는 길손은
무념무상이 되느니...
2019년10월18일 목요일
大和面의 歷史
1415년9월29일
태종의
命이
위령봉으로 떨어지면
몰잇군 5천여명
세종은
1419년11월6일
몰잇군 9천여명으로
대화에
4박5일 머무르며
講武祭를 열어서
산천이
떠내려 갈 듯
민초들의 함성과
꽹가리 소리 울릴 때
위민재해의
호랑이는
혼비백산하고
허균은
113의 임세척을 만나
장수비법을
인터뷰하고
강릉부사 이응수는
어려운 민초들에게
보페전 나누어주고
휘리세(揮罹稅) 경감하는 청덕을 베푼 다
2019년10월17일 목요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