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김명암
나는 자전거가 타고 싶다.
벼 이삭이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의 들녁을 하얀 머플러를 날리며 달리고 싶은 충동을 가끔씩 느낀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지인이 고구마, 토란, 배추를 농사지은 것이라며 자전거에 한 바구니 싣고 왔다. 고마운 마음에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는 내 권유에도 볼일이 있다며 능숙하게 페달을 밟고 왔던 길로 사라져가는 모습이 씩씩하고 건강해 보인다.
시내버스로 두 정류장쯤 떨어진 곳에 사는 그녀는 가끔씩 나를 만나러 올 때 자전거를 타고 온다. 젊은 시절 고등학교 교사를 했다는 그녀는 성격이 활발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다. 다소 내성적인 나와는 대조적인데 우리는 묘하게 마음이 잘 맞아 두터운 정을 나누며 잘 지내고 있다. 일흔이 다 된 나이지만 그녀는 자전거로 볼일을 많이 본다고 한다.
내가 신혼시절이었던 40여년 전 남편은 직장이 경산에 있었다.
어느 날 자전거를 한 대 가지고 오더니 대구에서 경산까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겠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대구에서 경산까지는 제일 높은 담티재와 작은 언덕들이 있었고 도로도 좁고 구불구불해서 힘들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 말렸지만 남편의 고집을 꺽지는 못했다.
24살의 철없는 새 각시는 신랑이 퇴근해올 때가 되면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리고 있다가 골목 어귀에서 따르릉 따르릉 귀에 익은 벨소리가 들려오면 시부모님 눈치를 살피며 살며시 대문을 열고 그를 마중 나가곤 했다.
땀에 젖은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내 손을 잡아주던 남편이 그 땐 너무나 좋았었다. 지금도 가끔 자전거를 타고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볼 때면 그때의 남편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르고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남편이 대구로 전근을 오게 되면서 일년 여의 자전거 출퇴근은 끝이 났지만 남편의 자전거에 대한 애착은 유별났었던 것 같다. 휴일이면 갓 돌이 지난 딸아이를 태우고 강변길로 산책을 다녀오기도 하고 웬만한 볼일은 자전거를 이용했다.
남편은 내가 자전거를 못 타는 것을 늘 아쉬워 하더니 내 나이 50이 넘어 여자들이 타기 쉬운 나즈막한 자전거를 사가지고 왔다.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사왔다고 투덜거렸지만 그의 설득에 못이겨 집 가까이에 있는 망우공원에서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섭기도 하고 두려웠지만 한 달쯤의 남편의 끈질긴 노력으로 나도 자전거를 탈 줄 아는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그 후 우리 부부는 주말이면 자전거 데이트를 했다. 금호강변으로, 단산지 못으로, 월드컵 경기장으로, 대구 근교를 두루 다녔다. 물만 한 병 휴대해 가지고 달리다가 시장기를 느끼면 맛있는 것도 사먹고 마치 신혼으로 돌아간 것처럼 둘이 한마음이 되어 많이도 다녔다.
그렇게 자전거에 푹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시장을 보러 갔다가 맞은 편에서 스마트폰에 정신이 빠져 걸어오는 청년과 부딪혀서 넘어졌다. 청년은 멀쩡한데 나만 무릎을 다쳐서 일곱 바늘이나 꿰매는 사고를 당했다. 그 때 다친 왼쪽 무릎은 아직도 나를 불편하게 한다.
그 후로 자전거 타기를 그만두었지만 나와 한 몸이 되어 함께하던 나의 애물은 지금도 창고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며 녹슬어가고 있다.
이제는 남편도 자식들도 못타게 해서 복잡한 창고에서 잠만 자고 있는 애물단지를 쉽게 잊지 못하는 것은 오랜 시간 추억을 함께한 친구와 헤어지지 못하는 애틋한 미련이 남아서이리라.
가을여행
김명암
오늘은 신나는 날이다.
시골에서 코흘리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는다. 모두가 바쁘게 사는지라 모임은 저녁식사로 끝내곤 하지만 일 년에 한번씩 하는 행사로 가을 여행을 가기로 했다.
오늘이 그날이다.
여행지는 거제도와 해금강, 외도를 돌아 오기로 하였다.
우리 아줌마들은 며칠 전부터 재래시장과 이마트로 간식거리 장을 봤다. 떡도 사고 과일과 음료수도 챙기고 넉살 좋은 친구가 분위기 잡자며 와인도 한 병 샀다.
15인승 렌트카는 시내를 벗어나자 가로수 단풍 밑을 미끄러지듯 달려 나간다. 열두 명의 60대는 소년소녀로 돌아가 한껏 들떠 차창 밖의 풍경이 바뀔 때마다 탄성이 터져 나온다.
청도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으로 분위기를 잡고 갖은 모양새를 내면서 사진도 한 컷 찍었다.
운전대를 잡은 친구는 30년을 대구에서 부산 신항만까지 수출품 화물 운송을 했다면서 노련미를 과시했다.
그는 화물 운송을 끝내고 돌아올 때는 잠도 깨울 겸 반야심경을 소리내어 외웠었다고 했다. 몇 구절 그의 반야심경 외우는 소리에 들뜬 분위기가 잠시 가라앉았다. 우리나라 수출의 최일선에서 젊은을 다 쏟은 그가 작은 사고로 몸이 안 좋아져 지금은 이선으로 물러나 있다며 아쉬움을 보이는 그에게서 무언가 외로움이 느껴졌다. 나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수고했다고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가덕도 해저 터널을 지나자 곧 우리들은 거제도에 도착했다.
거제도에서 합류할 또 하나의 친구가 있다.
그는 자기네 집으로 먼저 들리라고 연락이 와서 그 친구의 집부터 찾아갔다. 와!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친구의 집은 잘 가꾸어진 넓은 정원을 갖춘 2층 주택으로 어느 재벌집 같은 분위기였다.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점심으로 배를 채우고 그의 안내로 해금강과 외도로 가는 배에 올랐다. 오래간만에 맞이하는 바닷바람은 속이 탁 트이도록 시원했고 해금강은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장관이었다. 바위섬 위를 분주히 나는 갈매기들이 주위의 작은 섬들과 잘 어울린다.
외도에 당도할 무렵에 배멀미가 나서 고생을 했지만 말로만 듣던 외도는 참 잘 다듬어져 있었다.
어느 한 사람의 노력으로 조각처럼 가꾸어져 우리같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와 감탄을 선사해 주고 있다.
돌아오면서도 배멀미는 있었지만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에서 내리기가 바쁘게 친구가 횟집으로 안내했다. 친구들이랑 추억을 곁들여 하하호호 하면서 먹는 회 맛은 유달리 맛있었다. 거제 친구과 작별하고 돌아오면서 낯선 객지에서 성공해 그 지방의 유지로 대접받고 있다니 마음이 흐뭇했다.
좁은 차 안은 웃음소리와 노랫소리로 즐거움이 넘쳤다.
아무 가식도 없는 순수한 행복한 여행이었다.
첫댓글 언제나 모범생이신 선생님! 작품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