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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금신상을 세운 느부갓네살(다니엘 3:1~12)
* 본문요약
느부갓네살왕이 높이가 약 27미터나 되는 거대한 금신상을 만들고는 바벨론의 모든 백성들에게 절하게 하고 이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고 공포합니다. 이에 방백과 수령들을 비롯한 바벨론의 모든 관원들이 신상의 낙성예식에 참여하여 집행자의 신호에 따라 악기가 연주되자 모인 모든 자들이 그 우상 앞에 절하나,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갈대아 사람들이 이를 느부갓네살 왕에게 참소합니다.
찬 양 : 137장(새 251)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184장(새 252) 나의 죄를 씻기는
* 본문해설
1. 금신상을 향한 강요된 경배(1~7절)
1) 느부갓네살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는데, 그 신상의 높이는 60규빗(27미터)이요
너바는 6규빗(2.7미터)였습니다. 그것을 바벨론 도(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습니다.
2) 느부갓네살 왕이 왕의 전령들을 보내어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고문관, 謨士)와 법률사와 각 도(각 지방) 모든 관원을
느부갓네살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 예식에 참집하게(참석하게) 하였습니다.
3) 이에 방백과 수령과 도백과 재판관과 재무관과 모사와 법률사와
각 도(각 지방)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왕의 세운 신상의 낙성 예식에 참집하여
느부갓네살왕의 세운 신상 앞에 섰습니다.
4) 그때 반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이르기를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5)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가 들리거든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라.
6)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하고 말하였습니다.
7)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리어 절하였습니다.
- 금 신상의 규모(1절) :
높이가 60규빗(약 27미터), 너비가 6규빗(약 2.7미터)
고대 근동에서 발견되는 신상들 중 큰 것이 5미터 정도라는 것을 볼 때
이 신상은 다른 어떤 것보다 컸으나, 키에 비해 너비가 좁은 형태입니다.
일반적으로 나무로 만들고 금으로 도금하여 입혔습니다.
- 예식에 사용된 음악들(5절) :
감각적인 선율, 강렬한 리듬으로 인간을 감정적으로 흥분상태에 이르게 하여
강렬한 영적 감흥이 일어나게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느부갓네살은 그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권세를 부각시켰습니다.
- 극렬히 타는 풀무불(6절) :
금속을 녹이는 용광로이거나 벽돌을 굽기 위해 사용되는 가마를 뜻합니다.
위에 뚜껑처럼 문이 있고, 아래쪽에 완성품을 꺼낼 수 있는 문이 있었습니다.
2. 굴복되지 않는 사람들(8~13절)
8) 그 때에 어떤 갈대아(바벨론) 사람들이 나아와(앞장서서)
유다 사람들을 참소(고발)하였습니다.
9) 그들이 느부갓네살왕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10) 왕이여, 왕께서 명령을 내리시기를 ‘무릇 사람마다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리어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
11)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2) 그런데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께서 세워
바벨론 도를 다스리게 하신 자이어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 참소(8절) : 케라츠
‘케라츠’는 ‘씹어 먹다’는 뜻에서 파생된 단어로 ‘중상모략’을 뜻합니다.
남을 해할 목적으로 사건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고발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다니엘의 친구들은 단지 금신상에 절하지 않았을 뿐인데,
적대자들은 여기에 두 가지를 더하여
왕을 높이지 않았고, 왕을 섬기지 않았다고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고발합니다.
* 묵상 point
1. 너무나도 쉽게 은혜의 감동을 잊어버리는 사람들
1) 금신상을 만들어 모든 백성에게 절하라 명한 느부갓네살 왕(1~7절)
다니엘이 자신이 꾼 꿈과 해석까지 말하자 온 천하에 신은 오직 하나님뿐이라며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하고 경배했던(단 2:47) 느부갓네살 왕이
또 다시 광기를 부립니다.
이번엔 높이 60규빗(27미터)나 되는 거대한 금신상을 만들어 놓고는
이에 절하게 한 것입니다.
만일 이에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고
바벨론의 모든 곳에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금신상이 완공되자 방백과 수령들을 포함하여
바벨론의 모든 관원들을 낙성예식에 참여시킵니다.
집행자의 신호에 따라 악기가 연주되고, 참여한 모든 자들이 금 신상 앞에 절합니다.
2) 꿈 해몽을 들은 감동을 금방 잊어버리고
우상을 만들어 온 백성에게 절하도록 명을 내리는 느부갓네살 왕(1~2절)
다니엘 2:47에서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에게 엎드려 절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인 다니엘 3장에서 느부갓네살 왕은
거대한 신상을 만들어놓고는 이에 절하지 않으면
강렬한 풀무 불에 던져 넣겠다는 포고령을 온 나라에 반포하게 합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분명 이 세상에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고백을
그것도 왕의 신분에서 포로백성에게 절까지 하면서 고백했었는데,
지금 그 감격과 감동은 어디에 가고 이런 기가 막힌 광기만 남은 것일까요?
3) 쉽게 감동하고 쉽게 잊어버리는 느부갓네살 왕
느부갓네살 왕은
너무나도 쉽게 은혜의 감동을 잊어버리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영적인 즐거움을 아무리 강렬하게 경험한다고 할지라도
다시 자신의 삶의 자리로 돌아오면
곧바로 세상의 욕심과 탐욕의 질서 속으로 빠져드는 자들입니다.
출애굽 때의 애굽의 바로 왕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10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지만,
다시 자신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면 애굽 왕으로서의 욕심과 탐욕에 사로잡혀
끝내 하나님의 참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고 참담한 비극을 경험하고 맙니다.
4) 강렬한 영적 체험보다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더 원하십시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그가 경험한 영적 즐거움 그 자체를
곧 자신의 신앙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느부갓네살 왕의 경우와 같은 아주 강렬한 영적인 체험을 했을지라도
그 경험 자체가 곧 나의 신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강렬한 영적 체험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다면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서 하나님과 사귀는 삶을 살아야만
그 영적 경험이 비로소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은 극적인 경험을 할 때만 반짝 기뻐했을 뿐입니다.
그는 이 엄청난 경험을 하나님을 사귀는 기회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 왕처럼 강렬한 영적 체험만을 찾으려 하지 말고
말씀과 기도로 날마다 주님과 사귐을 가지십시오.
2. 강렬한 영적 즐거움 속에 감추어진 치명적인 위험
1) 전율을 느끼게 하는 감동적인 종교집회(3~7절)
황제가 명령하자 집행자가 신호하고 악기가 연주됩니다. 그러자 곧바로
지방 하급관리까지 일사분란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진행됩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그 엄청난 광경은 감동스럽기까지 합니다.
강렬한 리듬의 음악과 더불어 펼쳐지는 엄청난 군중들의 이 군무(群舞)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건한 전율을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마치 이슬람 국가에서 시장바닥이든, 대로변이든 간에 가릴 것 없이
각자 지닌 담요를 펼치고는 이슬람의 성지 메카를 향하여
엎드려 절하는 모습에 강렬한 전율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왕이 세운 거짓 우상 앞에서 행하여지는 거짓 예배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강렬한 종교적 감흠을 일으킨다 할지라도 구원이 없는 거짓 축제입니다.
2) 강렬한 영적 즐거움에 속지 마십시오.
역사를 보면 독재자들이 그들의 권세를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이런 강렬하고도 경건한 전율을 이용했습니다.
독일의 히틀러가 그랬고, 소련의 스탈린과 북한의 김일성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모인 군중들로 하여금 강렬한 엑스타시에 빠지게 했고,
그 강렬한 환호 속에서 백성들은 그들을 자기들을 구할
민족의 위대한 메시야로 여기고 눈물까지 흘리며 경배하였던 것입니다.
강렬한 영적 집회에 이런 가짜들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3) 감동적인 집회에서 느끼는 종교적 황홀경(7절)
그 속에 참여한 무리들은 이 강렬한 분위기 속에서
강력한 제국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여
마치 구원받은 것과 같은 황홀한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누가 이 경건하고도 황홀한 즐거움의 잔치를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 그러나 그 즐거움 속에 우리의 영을 파괴하는 악마의 치명적인 독이 담겨 있습니다.
3. 위장된 종교의식의 실체를 보십시오.
1) 경건으로 위장된 우상숭배
우리는 여기에서 양심도 자유도 모든 것이 박탈된
위장된 종교의식의 실체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느부갓네살은 다인종 다언어 국가인 바벨론 제국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처음부터 가졌습니다.
그 위기감 속에서 매일 악몽도 꾼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휘하에 있는 모든 백성들을
철저히 자신의 지배 아래 두어 복종하게 하기 위해
거대한 금신상을 만들어 그 앞에 경배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경건한 종교의식으로 위장된 황제숭배, 국가숭배인 것입니다.
2) 경건으로 위장된 악마의 의식
마치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통해 로마의 황제숭배가
사탄의 지휘 속에 진행되는 것임을 알리기 위해 ‘666’이라는 숫자를 사용했듯,
다니엘서는 이 거대한 신상의 높이가 60규빗이고, 그 너비가 6규빗이라고 하여
소위 악마의 숫자인 ‘6’이 주는 상징성을 사용하여
이와 같은 위장된 종교의식에 참여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3) 오늘날에는 위장된 종교의식이 내 손에까지 들어왔습니다.
오늘날에는 이런 위장된 종교의식이 강렬한 리듬의 음악이나,
너무나도 빨리 변하는 각종 전자제품들을 통해 사람들을 잠식합니다.
스마트폰으로 발전한 휴대폰, 입체영상까지 나오는 텔레비전...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이 세상의 화려한 문명 속에서
사람들은 마치 느부갓네살 왕의 금신상 앞에서 펼쳐지는 엄청난 군무에서 느껴지는
종교적 전율을 느끼고 있습니다.
● 묵상 :
어쩌면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경고하는 마지막 대혼란기에 이미 들어와 있는지 모릅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위장된 종교의식에 함몰되어
악마의 치명적인 독에 빠질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4.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세 친구의 믿음
1) 다니엘의 세 친구를 참소하는 바벨론 사람들(8절)
그러나 그 엄청난 군무 속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머리를 곳곳이 세우고
금신상에 절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위장된 종교의식을 거절합니다.
모두가 다 절하며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데
세 사람만 머리를 곳곳이 세우고 서 있으니 금방 눈에 띄어 붙잡힙니다.
그들은 그들이 왕을 높이지도 않고 왕을 섬기지도 않았다고 참소합니다.
‘참소’라는 말은 남을 해칠 목적으로
사건을 악의적으로 왜곡하여 고발하는 것을 뜻합니다.
요즘말로 말하면 가짜뉴스를 만들어 고발하는 것입니다.
● 묵상 : 오늘날 날마다 홍수처럼 밀려오는 가짜뉴스에 조심하십시오.
가짜 뉴스는 다윗 시대에도 있었고 심지어 예수님 때에도 있었습니다.
악한 자들은 특정한 것을 강조하고 부풀려 거짓 뉴스를 만듭니다.
이렇게 거짓 뉴스를 만들어 사람을 미혹하는 자가 더 나쁘지만
이들에 넘어가 거짓을 믿고 가짜를 섬기는 자 또한 멸망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매일 홍수처럼 밀려오는 뉴스들 중에 참과 거짓을 분별할 지혜를 구하십시오.
2) 종교적 즐거움 속에 숨겨진 악마의 흉계를 꿰뚫어 본 다니엘의 세 친구
그 엄청난 군무 속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머리를 곳곳이 세우고 금신상에 절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위장된 종교의식을 거절합니다.
강렬한 분위기로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위장된 종교의식에 함몰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풀무불의 권세로 압박하는 왕의 권세에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 모든 것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사탄의 음모를 꿰뚫어 본 것입니다.
그들은 그 어떠한 유혹이나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고,
이 세상에 우리가 섬겨야 할 참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고백합니다.
이 믿음은 참으로 목숨을 걸만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여겼고,
그들은 그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 묵상 :
이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 지혜대로 참되게 살아가십시오.
* 기도제목
1. 흥분된 영적 감동만을 찾고
하나님과의 사귐을 멀리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게 하옵소서.
2. 위장된 종교의식의 실체를
바로 보게 하옵소서.
3.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세 친구의 믿음을 본받게 하옵소서.
4. 날마다 들려오는 많은 소식들 중에서
어떤 것이 참이고 어떤 것이 가짜인지를
분별할 지혜를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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