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마르코 성당 베네치아는 아드리아 해 연안에 자리잡은 독립된 도시국가로,이탈리아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정치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로마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었다.그리고 베네치아는 다른 도시국가들과는 달리 통치자인 총독을 선거로 선출했고,군주정치·과두정치와 민주정치를 이상적으로 혼합한 정치를 펼쳐‘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공화국’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유럽과 동양을 잇는 최고의 무역도시였던 베네치아는16세기에 경제적인 부를 바탕으로 하여 번영의 절정에 달했다.로마는 교황의 치하에 있는만큼 음악이 보수적인 경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반면에,베네치아에서는 도시의 부와 영광에 부합되는 사치스러운 음악적 전통을 과시하며 색채감 넘치는 화려한 교회음악이 성행했다.특히 도시의 회당인 성 마르코 성당은 총독의 관할하에 있는 성당으로,베네치아 총독의 정치적·종교적 권위의 상징이자 도시의 문화적 중심 역할을 했다. <성 마르코 광장의 행렬>. 벨리니(1429~1507)
▲ 빌레르트(Adrian Willaert, 1490경~1562) 그는 플랑드르 악파의 일원이었지만 공화국의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당시 유럽에서 가장 선망하던 성 마르코 성당의 성가대장직을 맡아 성가대를 교황청 성가대에 필적할 정도로 향상시켜,뚜렷한 베네치아 양식을 키워나가 베네치아 악파의 창시자가 된다. 성 마르코 성당 내에는 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개의 성가대석이 있으며,각 성가대석에는 오르간이 비치되어 있었다.이러한 성당 구조는 자연히 다양한 공간적 배치 및 음향적 실험을 가능케 했고,베네치아 양식의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다수 합창적(polychoral)작법이 이로부터 태동하게 되었다.빌레르트는 두 개의 합창단을 위한 시편송이나 모테트를 작곡하여,전례적 가사의 교창식(antiphonal)작법을 위한 훌륭한 모델을 제공했다. ▲ 안드레아 가브리엘리(Andrea Gabrieli,1510경~86)와 조반니 가브리 엘리(1553~1612) 빌레트의 뒤를 이어 성가대장직을 맡았던 로레와 차를리노(1517~90)를 이어 최초의 이탈리아인 성가대장이 된 안드레아 가브리엘리와 그의 조카인 조반니는 베네치아의 음악을 최고의 경지로 올려놓게 되며,이것이 바로크시대에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되는 주요한 발판이 된다. 안드레아와 조반니 가브리엘리는 성 마르코 성당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첫 이탈리아 인들이다.안드레아는 다산의 작곡가로, 6곡의 미사, 100곡 이상의 모테트, 200여 곡의 마드리갈,기악곡들을 남겼다.그는 성당의 건축 디자인이 제공하는 공간적 가능성을 십분 활용하여,악기 연주자들과 가수들을 몇 그룹들로 나누어 각기 다른 회랑에 배치시킴으로써,다양한 방향으로부터 메아리식으로 음악이 들려오는 환상적인 효과를 창출했다.이 분리된 합창대(cori spezzati)기법은 성 마르코 성당이나 베네치아만의 독점적인 것은 아니었지만,두 가브리엘리의 천재성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베네치아 양식의 완성은 조반니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조반니는2, 3, 4,때로는5개의 각기 다른 성부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위한 모테트들과 다른 종교 작품들을 작곡했다.이처럼 조반니의 작품 규모가 커짐에 따라,그가 일할 당시 성 마르코 성당의 연주자 수는 대폭 늘어나,제3오르간 연주자와 제2성가대장이 필요할 정도로 확대되었고,그리고 필요시에는 많은 임시단원들까지도 고용했다. 조반니의 작품들은1587년에서1615년 사이에 모음집 형태로 출판되었다. 1587년에 그는‘콘체르토들(Concerti)’이라고 불리는 곡집을 출판했는데,여기에 실린 음악들은 자신과 안드레아가 작곡한,주로 가수들과 연주자들로 구성된 다수의 그룹을 위한 곡들로,교회음악·마드리갈과 다른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이것은콘체르토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경우로 알려진다. 1597년에 출판된 조반니의〈종교적 교향곡(Sacre Symphonia)〉은14개의 칸초나와2개의 소나타를 수록하고 있는데,이중에서 ‘피아노와 포르테 소나타’는 정확한 악기편성을 명시해놓은 것으로도 주목할 만하지만,역사상 최초로 피아노와 포르테의 강약 표시가 사용된 곡이기도 하다. 플랑드르 악파의 주도권이 가브리엘리들이 이끄는 베네치아 악파로 넘어오면서,유럽 음악계는향후100년 이상을 이탈리아 작곡가들이 주도하는 현상이 이어지게 된다. <출처:서양음악사100장면(1),pp.188~192.>
● 감상 ◆ 가브리엘리, “피아노와 포르테 소나타(Sonata pian’e forte)” 1597년 작곡 (5:13) ◆ 가브리엘리 : In ecclesiis (8:24) 하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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