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구] 경의선 옛 철길 흔적 따라 걸어볼까 현직 기관사가 들려주는 경의선에 담긴 이야기들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홍대앞은 문화와 트렌드를 이끄는 특유의 분위기로 사람을 끌어들였던 곳이다. 지금도 그런 분위기가 어느 정도 남아있지만 최근에는 다른 목적으로 홍대앞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경의선 책거리’와 ‘경의선 숲길’을 걷기 위해서다. 길 이름에 ‘경의선’이 붙은 데서 알 수 있듯이 이 길들은 예전에 경의선 철로가 놓였던 곳이다. 이 구간을 달리던 경의선이 지하로 들어가자 지자체와 철도 당국이 협의해 공원으로 만들었다. 경의선 책거리는 홍대입구역에서 경의선 서강대역 근처까지 약 1km 구간이고, 경의선 숲길은 홍대입구역에서 경의선 가좌역 근처까지 약 1.2km 구간이다. 경의선 책거리의 간이역 구조물.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경의선 책거리 전경.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책을 테마로 한 경의선 책거리 서울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경의선 책거리를 만날 수 있다. 이 거리의 특징은 열차 모양을 한 서점들과 전시 공간이다. 이 거리는 한국출판협동조합이 조성에 참여했고 지금은 (사)한국작가회의에서 운영 중이다. 공원 폭은 좁지만 길게 이어졌고 공원 바깥 양편 길에는 카페와 식당들이 이어졌다. 예전에는 기찻길과 주택가였던 곳이 공원과 상업지역으로 바뀌어 가는 듯했다. 지금도 주택가이긴 하지만 곳곳에 상업시설로 공사 중인 모습을 볼 수 있다. 경의선 책거리를 걷다 보면 예전에 이곳으로 열차가 다녔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간이역과 플랫폼을 본뜬 곳이 있고 곳곳에 철로와 열차 관련 시설을 볼 수 있었다. 철도 건널목 차단기도 있는데 추억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땡땡 땡땡”하며 차단기가 오르내리던. 마침 그 건널목 인근은 ‘땡땡거리’라는 별칭이 있었다고 한다. 홍대 인근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찾던 식당과 술집이 모여 있던 거리라고. 지금도 당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선술집 여러 곳이 눈에 띈다. 철도 건널목의 차단기. 예전에 이 근방은' 땡땡거리'로 불렸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철로가 갈라지는 곳에 설치된 선로전환기. 왼쪽 철로가 경의선 본선이고, 오른쪽 선로가 경성순환선이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산책로 중간에 철로가 두 곳으로 갈라지는 곳이 있었는데 어떤 장치가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선로전환기에요. 예전에 이 지점에서 경의선과 경선순환선이 갈라졌습니다. 이 전환기로 선로의 방향을 바꿀 수 있었지요.” 이번 경의선 옛 철길 답사에 함께한 ‘박흥수’ 기관사의 말이다. 그는 현역 기관사이며 <철도의 눈물> 등 철도 관련 책을 여러 권 낸 작가이기도 하다.
연남동과 함께 뜬 경의선 숲길 홍대입구역에서 연남동 방향으로 길을 건너면 ‘경의선 숲길’이 나온다. 찾기도 쉽다.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곳으로 가면 된다. 어림잡아 봐도 경의선 책거리보다 사람이 많아 보였다. 인근 연남동 골목들과 함께 SNS 사진 명소로 뜬 곳이기도 하다. 경의선 숲길 분위기는 책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공원 폭은 더 넓은 듯 했다. 이면도로들과 연결되어서 차량도 많이 지나다녔다. 상업시설도 경의선 책거리보다 많고 다양해 보였다. 경의선 숲길 입구.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경의선 숲길 옆에는 각종 상업시설이 들어섰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공원을 끼고 양쪽 도로에는 각종 카페와 레스토랑, 의류가게와 타로점, 그리고 미용실은 물론 성형외과도 보였다. 그래서인지 책거리를 걸을 때는 산책하는 느낌이었는데 숲길을 걸을 때는 한낮의 유흥가를 걷는 느낌이 들었다. 경의선 숲길의 묘미는 연남동 방향으로 이어진 골목 탐험에 있다. 그 골목들에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레스토랑은 물론 갤러리와 독립서점들도 숨어있다. 만약 책을 좋아한다면 연남동 독립서점들 순례를 권한다. 눈에 띄는 건 공원 내에서 전동킥보드를 타지 말아 달라고, 자전거는 내려서 끌고 가라고 당부하는 플래카드들이었다. 그런데도 킥보드는 달렸고, 자전거도 그 뒤를 따랐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경의선 숲길에는 전동킥보드와 자전거 통행 안내 플래카드가 여러 곳에 걸려있었다. (사진: 뉴스프스트 강대호 기자) 경의선 숲길 양 옆으로는 아파트 등 주택가도 이어진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산책길이 생겨서 좋기는 한데 밤낮없이 붐벼서 탈이에요. 주말에는 밤늦도록 소란스러워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어요. 예전에는 버스킹까지 해서 더 시끄러웠지요.” 경의선 숲길 바로 옆 아파트에 사는 한 주민의 말이다. 동교동과 연남동에서만 50년 넘게 살았다는 다른 주민은 예전에는 기차 소리로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사람들 소리로 소란스럽다고 하소연했다.
경의선에는 어떤 이야기가 “지금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공원이 되었지만 경의선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아시아 병탄을 위한 병참 물자 운송을 도맡았던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분단 후에는 철길이 끊긴 아픔도 있고요.” 박흥수 기관사는 경의선 부설 과정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1906년 4월 3일 용산과 신의주 사이의 철도로 개통된 경의선은 경부선과 연결되어 한반도를 동남에서 서북으로 연결하는 철도로서 역할을 했다. “경의선 부설은 여러 열강이 군침을 흘린 이권 사업이었는데 러일전쟁 와중에 일본 군대에 의해 군용철도로 부설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일본이 자행한 토지수용과 노동력 수탈이 매우 가혹하여 한국인의 반철도 항일투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경의선은 해방 후 단축 운영되었다가 전쟁이 터지자 완전히 중단되었다. 2000년에 평양에서 열린 6ㆍ15 남북정상회담에서 경의선 복원사업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었고, 2003년 6월 14일에는 연결 행사가 군사분계선(MDL)에서 열렸다. 현재 경의선은 중앙선과 한데 묶인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박흥수 기관사.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열차가 다녔던 자리를 시민들을 위해 활용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철도가 공공(公共)적인 가치가 크니 그 시설도 공공의 목적으로 이용하는 게 당연한 거지요.” 박흥수 기관사는 이용이 줄어드는 철도 노선들을 폐선하며 관련 시설과 공간을 상업시설로 바꾸려는 철도 당국의 이익 추구 현상을 지적하기도 했다. 도시재생은 사람의 관심이 멀어지는 곳을 개발해 새로운 관심을 불러오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그러한 관심으로 그 지역을 활성화를 하려는 목적도 있다. 경의선 폐선 지역의 공원화를 그런 관점으로 보면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지역 사람들을 관광객으로 불러모으는 것에 성공했으니까. 다만 주택가들이 차츰 상업시설로 변하자 그곳에 살던 주민들이 떠나야 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었다. 가로수길과 경리단길 사례를 보자. 주민이 떠난 자리를 상업시설이 가득 메우고 관광객도 불렀지만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불러왔다. 반면 그 지역을 유명하게 만든 독특함은 사라졌다. 경의선 숲길과 책거리는 산책하기 좋은 공원이다. 아직까지는.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혹시 유원지처럼 변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생기는 건 왜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