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사임당(申師任堂)
사임당 신씨(師任堂申氏) 1504년 12월 5일(연산군10년생)~1551년 6월 20일(명종6년졸)는 조선시대 전기의 문인이자 유학자, 화가, 작가, 시인이다. 유교적 여성상에 만족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삶을 개척한 여성이다. 조선시대 중기의 성리학자 겸 정처인 율곡 이이, 화가 이매창의 어머니이시다. 강원도 강릉 출신으로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조상은 고려의 개국공신이자 왕건 대신 전사한 신숭겸의 후손으로, 고조부는 문희공(文僖公) 신개 이시다. 아버지는 신명화이며 어미니는 용인이씨로 이사온(李思溫)의 딸이다. 남편은 증좌한성 이원수(李元秀)이다. 본명은 신인선이라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으며 사임당은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을 본받는다는 뜻의 당호(堂號)이다. 이밖에 시임당(媤任堂)·임사재(姙思齋)라고도 한다. 명종 6년 이원수가 맏아들 이선과 셋째아들 이이를 대동하고 관서지방으로 물자를 운반하러 떠난 사이 병석에 누워 이들을 기다리다 48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예술적 성취를 이뤘고, 그밖에도 적극적인 내조, 올곧은 자녀 교육을 통해 진보적인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낸 여성상이지만 현재는 현모양처의 상징으로만 전해진다. 자녀는 5남3녀로 셋째아들 대유학자 율곡 이이(李珥), 넷째아들 조선중기 대표화가 이우(李瑀), 장녀 화가 이매창(李梅窓)이다. 아들 이이는 ˂행장기˃를 지어 사임당의 예술적 재능, 우하한 천품, 순효한 성품 등을 기록했다.
신사임당이 속한 평산 신씨는 강원도의 대표적인 명문가 중 하나로, 증조부가 성균관 대사성, 조부는 영월군수, 부친 신명화는 벼슬을 일부러 나가지 않았지만 당대에 이름이 높았다. 증조부인 신자승(申自繩)은 멀게는 태종과도 인맥이 이어진다. 신자승의 장인인 남휘는 태종(이방원)의 딸인 정선공주와 혼인했기 때문이다.
외가 쪽도 이름이 상당히 높고 부유해서 엄청나게 강한 집안 내력이 있는데, 외조부 이사온만 해도 강릉 최씨 집안에 둘째 사위로 장가를 들었고 신명화의 경우도 이사온의 외동딸과 결혼을 해서 초년 생활을 처가 오죽헌에서 했으며 신사임당은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 댁에서 교육을 받았다. 오죽헌만 해도 이사온이 장인에게 받은 것을 다시 사위인 신명화에게 넘겨준 재산으로 신사임당이 죽은 이후에 유산을 나눈 분재기를 보면 이 집안의 노비가 100명이 넘는다.
사임당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그림은 40폭 정도인데 산수·포도·묵죽·묵매·초충 등 다양한 분야의 소재를 즐겨 그렸다. 산수에서는 안견파 화풍과 강희안 이래의 절파 화풍을 절충한 화풍으로, 16세기 전반에 생겨난 산수화단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출처] 위키백과, 다음백과 발취
◆ 의산위 남휘, 정선공주는 신사임당의 외고조할아버지, 할머니
정선공주는 남이장군의 할머니이자 신사임당의 외고조할머니이시였다. 정선공주와 남휘(南暉)와의 소생에는 1남 1녀가 있었다. 그중 1남은 남빈(南份)으로 남이장군의 아버지이고, 1녀는 평산 신(申)씨 신자승(申自繩)에게 출가하였다. 신자승은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한 평산 신씨의 시조 신숭겸의 17대손으로, 세종 27년에 좌의정을 지낸 신개(申槪,1374~1446)의 둘째 아들로 1469년(예종1년)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으며, 그의 형 자준(自準)은 관찰사, 동생 자형(自衡)은 집의(執義)로 명문대가 집안이다.
정선공주의 딸과 신자승에게서 난 자녀는 자그만치 8남 5녀이다. 장남 숙정(叔楨))은 평산 신씨 장령공 종중을 이루고 있으며, 2남은 숙모(叔模), 3남은 숙근(叔根)이다. 4남은 영월군수를 지낸 숙권(叔權)으로 군수공 종중을 이루고 있으며, 그의 아들 신명화(申命和,1476∼1522)의 딸이 신사임당(申師任堂)이다. 5남은 숙삼(叔杉), 6남은 숙회(叔檜), 7남은 숙지(叔枝), 8남은 숙완(叔椀)으로, 신씨(申氏) 중에 평산 신씨가 70%이상 차지할 만치 번창하게 된 것이, 이에서 비롯되었다 할 만하다.
평산 신씨와의 자료는 숙종 19년(1693년)에 발행한 남구만(南九萬,1629~1711)에 의해서 의령남씨 족보가 최초로 발행한 계유보(癸酉譜)에서 참고한 것이다.
※ 의산위 남휘 - 의령남씨 충경공 의산위공파 7세 (태종의 부마)
※ 약천 남구만 - 의령남씨 충경공 충간공 간성공파 15세
[출처] 태종의 딸, 세종대왕 여동생, 남이장군 할머니 ‘정선공주 묘’- 낭만도사
▶ 평산신씨 가계도
◆ 의산위 남휘 가계도
◆ 정선공주의 가계도
◈ 부왕 : 태종 이방원(太宗, 1367 ~ 1422)
◈ 왕후 :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 1365 ~ 1420)
▸ 장녀 : 정순공주(貞順公主, 1385 ~ 1460)
▸ 차녀 : 경정공주(慶貞公主, 1387 ~ 1455)
▸ 3녀 : 경안공주(慶安公主, 1393 ~ 1415)
▸ 장남 : 양녕대군 제(讓寧大君 褆, 1394 ~ 1462)
▸ 차남 : 효령대군 보(孝寧大君 補, 1396 ~ 1486)
▸ 3남 : 세종(世宗, 1397 ~ 1450)
★ ▸ 4녀 : 정선공주(貞善公主, 1404년 ~ 1424년 1월 25일)
▸ 4남 : 성녕대군 종(誠寧大君 褈, 1405 ~ 1418)
★ ▸ 부마 : 의령남씨 의산위 남휘(宜山威 南暉, ? ~ 1454) 1남 1녀
- 장남 : 남빈(南份, 1421년 ~ ?)
- 며느리 : 홍여공(洪汝恭, 1377~1440)의 딸 남양 홍씨(南陽 洪氏, 1421년 ~ ?)
▸ 손자 : 의산군 충무공 남이(宜山君 忠武公 南怡, 1443 ∼ 1468)
★ - 장녀 : 의령남씨
- 사위 : 평산신씨 대사성 신자승(大司成 申自繩) - 신개(申槩)의 차남
▸ 외손자: 신숙권(申叔權)
▸ 외증손자: 신명화(申命和, 1476 ~ 1522)
★ ▸ 외현손녀: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 ~ 1551)
의령남씨 남휘, 의성위 남휘, 정선공주 , 부마남휘, 태종, 세종, 충무공 남이장군, 평산신씨 신자승, 평산신씨 신명화, 신사임당
남휘 신사임당 외고조부, 정선공주 신사임당 외고조모
<참고문헌>
의령남씨 족보
태종실록
세종실록
문종실록
단종실록
한국중앙연구원
첫댓글 남씨가 왕가의 적손과 혼인하였다는 것은 대단한 연줄이 되어 명문가로 대내외에 과시하는 경사였다. 신사임당과연계하여 도표로 알기쉽게 해 5만원권에 있는 신사임당이 우리와 무관한것이 아님을 일개워주는 것이다.
한편 신씨들은 이로인해 번창하였는데, 남이장군 처형당한 이후 신자승은 공주의 묘소근처인 평택에 정착하여 부곡 구산리로 이전하기까지 묘소를 돌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