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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자산
6.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24~25
설교 목적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으로 물려받을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를 전망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자산’이라는 시리즈 설교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망하는 사람들이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히브리서 10장 24~25절에서 제안하는 권고를 중심에 놓고, 특히 ‘그 날’의 의미를 살펴볼 것이다.
설교 개요
1. 들어가는 말
2. 하나님 나라는 어떤 모습인가?
3.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4. 하나님 나라는 언제 임하는가?
5. 완성된 하나님 나라는 어떤 모습인가?
6. 예수님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7. 성경이 말하는 ‘그 날’은 언제인가?
8.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이 힘쓸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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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자산에 대한 다섯 번의 설교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영적인 자산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를 가볍게 여깁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자산인 상급을 이 세상 그 어떤 보물보다 더 크고 귀하게 여깁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유산을 상속받을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장남들입니다. 모두 상속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녀들에게 주시는 유산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세상이며, 현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은 미래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세상인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기대합니다. 그 소망과 기대가 선명한 사람은 영적인 자산이 많은 사람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은 영적으로 파산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잘 배우고 이해할 때 오늘을 바르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2. 하나님 나라는 어떤 모습인가?
예수께서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막 1:15)고 선포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통하여 죄 사함을 받고 기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믿었고 예수님이 주시는 죄 사함과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이방인이나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을 친 백성이 된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태복음 11:12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고 사람들에게 외친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였습니다. 그의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와서 세례를 받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므로 사람들이 몰려와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물건을 매우 싸게 파는 바겐세일 기간에 백화점으로 몰려들어가는 사람들처럼 사람들이 천국을 침노하여 각자의 유산을 챙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은 목마른 사람들이 생수를 마시고 즐거워하듯이 죄인이 용서받고, 병자가 치료받으며, 귀신들려 사람 구실 못하던 사람도 자유를 얻어 새 사람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실 때 천국이 바로 그들 가운데 임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2:28, 눅 11:20).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은 죄 사함을 받고 새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기쁨 가득한 삶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말하기를,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롬 14:17).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실 때 거기에 즐거운 잔치가 열린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그렇게 기쁨이 가득한 세상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새롭게 누리는 삶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세상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삶을 영생이라고 부르는데, 영생(Gk. zoe aionion)은 ‘오는 세상의 삶’이란 뜻입니다. 우리의 찬송가에 나오는 가사처럼 우리는 ‘영생을 맛보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고 다짐하며 기뻐하는 사람들입니다(찬송가 436장).
그러면,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3. 하나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 나라를 마태는 천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천국이라고 하면 하늘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천국이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다스리시므로 하늘에는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온 땅을 다스리므로 온 세상이 모두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말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 나라가 땅으로 임하기를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새 예루살렘 도시가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오는 환상이 묘사되어 있습니다(계 21:2).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기도에 나오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의 그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임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한번 더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늘에 있으며, 또 땅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될 때 예수께서는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귀신이 떠나고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고 하셨습니다(마 11:28, 눅 11:20).
이렇게 보면, 하나님 나라는 본래 하늘에 있고 땅에 있는데, 하늘에서는 천군과 천사들이 하나님께 복종하여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는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땅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으므로 고통과 어두움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심사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딤전 2:4).
우리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여 그리로 올라가기를 원했지만, 성경을 자세히 보니 하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임하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원하십니다.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께 올라가서 안식을 누리다가 우리 주 예수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 우리를 깨워 이 세상으로 데리고 오신다고 사도 바울은 가르쳤습니다(살전 4:14). 우리가 몸으로 다시 살아 새롭게 된 세상에서 영생을 누린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하고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고 한평생을 산다면 그것으로 족하며 하나님이 반드시 상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특별한 몇 명의 사람들만이 천국에 들어간다느니 언제 휴거가 있다느니 하는 거짓말을 가볍게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임합니까?
4. 하나님 나라는 언제 임하는가?
우리는 앞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으며 우리가 천국의 삶을 누리고 있다고 배웠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은 우리 손에 잡힐 듯이 우리 앞에 왔다는 말입니다(Gk. enggizo, be at hand< enggus, near, 가까이 < angkale, a curved arm, 품). 그래서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고 사도 바울도 말했습니다(고후 6:2).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우리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죄 사함을 받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과 약속을 기뻐하며 그 나라와 그 뜻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이미 천국이 임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하셨습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이미 하늘의 뜻이 그의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에게 있는 새로운 꿈과 소원은 하나님의 뜻을 펼쳐 나가라고 하나님의 성령이 주신 것입니다. 이제 그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더 확장될 것입니다. 그에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점차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바뀔 것입니다. 주님이 그와 함께 하며 그를 통하여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땅에 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은 아닙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로 통일되는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엡 1:10). 우리는 기쁨이 충만하며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과 희망이 있지만 온 피조세계는 아직도 함께 탄식하고 함께 고통을 겪고 신음하면서 구원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롬 8:22).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벧후 3:13). 우리는 하나님이 성령 안에서 주시는 떳떳함과 기쁨과 평화를 누리지만 여전히 우리는 썩을 몸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우리 몸이 새롭게 되어 썩지 않을 몸을 입게 될 날을 소망하면서 참고 기다리고 있습니다(롬 8:25).
그래서 우리는 이미 천국의 삶을 누리고 맛보지만 동시에 우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소망하는 일도 그리스도 예수의 날에 완전히 이루실 것을 확신합니다(빌 1:6). 그날에는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모습입니까?
5. 완성된 하나님 나라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새롭게 만드신다는 말씀을 찾을 수 있습니다(계 21:5, 사 65:17, 43:19). 현재 세상과는 다른 질서와 체제로 운영되는 세상이 온다고 합니다. 그것은 낡은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새롭고 충만한 세상입니다. 그처럼 새로운 세상을 가리키는 성경의 표현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은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다가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그들의 고난이 끝나면 하나님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그 세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지 이전 세상은 기억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 65:17). 그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을 섬기는 기쁨이 충만하며, 건강하여 장수하고, 풍요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음과 같이 비유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설명하셨습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이사야 65:25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언급은 요한계시록에도 나옵니다. 짐승이 어지럽힌 세상을 다 바로잡으신 후에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십니다. 그렇게 새로 만들어지는 세상은 어떤 모습입니까? 그것은 에덴동산처럼 생명수가 흐르며 강물이 그 도시를 가로질러 흐릅니다. 거기에는 생명나무가 달마다 과일을 맺습니다(계 22:2). 계시록이 보여주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에덴동산과 성전이 확장된 모습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합니다. 옛 성전에서는 대제사장의 가슴에 다는 흉배에 열두 개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면, 새로운 세상에서는 성의 기초석들이 보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성의 대문은 진주로 되어 있으며 그 성의 길은 유리처럼 맑은 정금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이런 묘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상징적인 설명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 모든 비유들과 상징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세상이 생명이 충만하고 기쁨이 가득한 곳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이 지금 하늘 어디에 건설 중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많은 오해가 발생합니다.
그런 오해 때문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지옥을 보고 왔다느니 천국이 어떻게 생겼다느니 하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완전하게 하심으로 만드시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이 세상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천국 비유는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6. 예수님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예수님은 천국에 대하여 여러 가지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어떤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는데 씨앗들이 각각 다른 땅에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이 심은 겨자씨가 자라 새들이 깃들일 정도로 크게 자랐으며, 여인이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넣어 전부 부풀게 한 것과 같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천국은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는 것과 같으며, 또한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자기 전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산 것과 같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들려주신 천국에 대한 비유는 엄밀하게 말하면, 천국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천국이 어떻게 임하는가를 설명하는 그림언어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인데,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때 땅에 임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 땅에 임하는가 하면, 작은 겨자씨와 누룩 같은 사람들의 순종을 통해서 결국 전체가 변하게 되는 방식으로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천국 비유를 통해서 겨자씨와 누룩 같이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도 자신이 주님의 뜻을 순종하고 있다면 반드시 주님은 그 결실을 풍성하게 하실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자신에게 보여주신 꿈과 소원이 얼마나 귀한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겠다는 깨우침을 얻은 사람에게 밭에 감추인 보화의 이야기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맞아요, 주님, 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루실 일을 생각하면 제가 잠시 겪는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통해서 이 땅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부여하시고, 끝까지 진실한 믿음의 절개를 지킬 수 있게 하십니다. 그 비유들을 마음에 새긴 사람들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성장할 것입니다.
7. 성경이 말하는 ‘그 날’은 언제인가?
그런데 성경을 읽어보면 ‘그 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대목이 여러 곳에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눅 21:34).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실 ‘그 날이 온다’고 말했습니다(롬 2:16). 또한 각 사람의 신앙생활이 불 시험을 통해서 그 공적을 시험받을 ‘그 날이 온다’고 말했습니다(고전 3:13). 늘 깨어 빛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는 ‘그 날’이 도둑 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살전 5:4).
히브리서 10장 25절에서도 그 날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그 날이 가까이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부지런히 모이라는 당부입니다. 여기서 ‘그 날’은 ‘주의 날’입니다. 주님이 도적 같이 오시는 날이며(살전 5:2),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는 날이며 땅에 있는 모든 은밀한 일이 드러나는 날입니다(벧후 3:10).
초기 교회 성도들은 그 날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성도들은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무엇을 보고 알았을까요? 성경이 기록되던 시절에 성도들은 대부분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생활을 했습니다. 신실한 유대인은 매년 세 차례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으며 성전이 있는 곳을 하나님의 산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신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마 24:2, 막 13:2, 눅 21:6). 제자들은 그 날이 언제인지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과 그 시는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마 24:36). 그 날에는 성전이 더럽혀지고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해야 합니다. 그날은 온 세상에 재난의 날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날은 예루살렘 성이 멸망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때 성전도 무너질 것이고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군인들에게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 달아날 것입니다. 그때 두 여자가 맷돌을 갈다가 한 사람은 젊었는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늙었는지 버려둠을 당할 것입니다. 군인들이 예루살렘 성을 넘어 쳐들어올 때 밭에서 일하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붙들려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칼에 맞았는지 버려둠을 당할 것입니다(마 24:40~41). 이것은 큰 재난의 날에 일어날 일입니다.
언제 그런 징조가 보입니까?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징조가 보이는 법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미국은 그 조짐을 알아차리고 미리 예고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심판으로 말씀하신 그 날도 가까이 왔음을 보여주는 징표들은 곳곳에서 나타났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파괴는 우리에게는 과거의 사건이지만, 초기교회 성도들에게 그 일은 천지개벽의 일대 사건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피난길에 나서고 고관대작들은 죽거나 끌려갑니다. 여성들은 유린을 당하고 아이들은 부모를 잃고 길거리에 헤매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재앙이 있겠습니까?
그 일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으로 일어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초기 교회는 ‘그 날’이 올 것을 준비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 날은 예수님의 예언이 성취되는 날입니다. 말씀대로 주님이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날은 모든 사람에게 재난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런 날이 가까이 온 것을 보거든 더욱 모이기에 힘쓰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 날’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신약성서에서 ‘그 날은 예루살렘 멸망의 날’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는 그 날이 없을까요? 우리 시대에는 재난이 없을까요? 우리 시대는 심판을 받지 않을까요? 저는 우리 시대에도 심판과 재난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오는 심판과 재난의 그 날은 언제이며 어떤 일일까요?
초기교회에게 그 날이 재난과 심판의 날이자 전쟁의 날이었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올 수 있습니다. 이미 전 세계는 2년반 전에 코로나 판데믹이라는 병으로 큰 고통을 겪었으며 아직도 그 고통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저 먼 나라의 이야기이지만 당장 우리 생활에서 기름값 상승 등의 여파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이 외에도 이상기후로 인한 산불과 살인적인 더위와 가뭄으로 인한 식량문제 등은 앞으로 우리에게 큰 고통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경제위기와 함께 오기 마련입니다.
그 재난과 환난은 자연질서를 깨뜨리는 체제와 사람들에 대한 심판일 수도 있습니다. 그 날에는 은밀한 가운데 행하던 모든 부끄러운 일들이 밖으로 드러날 것입니다.(엡 5:12, 13)
이처럼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우리들이 더욱 힘써야 할 일이 있습니다.
8.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이 힘쓸 일
이처럼 세상에 난리가 나고 재난이 닥쳐오는 날이 다가올수록 그리스도인이 힘써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 10장 24절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고 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의 습관을 좇지 말고 그 날이 가까이 옴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합니다.
우리의 삶이 안정적이면 좋겠지만 늘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삶은 불확실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 지 알 수 없습니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서로를 돌아본다는 말은 서로를 생각한다는 말입니다(Gk. katanoeo, consider < kata- + noieo, think, 생각하다 < nous, mind 마음). 그의 형편이 어떤지 그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생각해 보고 미흡한 부분이 있는지 살피라는 것입니다.
서로 돌아보면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일이 재난의 날이 가까이 올 때 우리가 힘써야 할 일입니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격려한다(Gk. paroksyno, to stimulate)는 말은 ‘자극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서로에게 사랑과 선행을 할 수 있도록 자극할 수 있을까요? 사람에게 사랑과 선행을 자극하려면 우리가 먼저 그 사람에게 사랑과 선행을 베풀어야 합니다. 어떤 선한 일을 다른 사람도 할 수 있게 하려면 우리가 먼저 그 일에 나서서 헌신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재난이 닥치는 날에도 집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지혜 있고 충성된 종들은 칭찬을 받을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 24:45). 경제상황이 나빠지고 삶이 어려워질수록 돌아보아야 할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서로 돌아보는 일이 정말 귀합니다. 재난의 날에는 사람들이 실망하여 모임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서로 권면하여 모이기에 힘쓰고 서로를 돌보아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이것이 재난의 날에 하나님의 백성이 더욱 힘써야 할 일이라고 들려줍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재난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인 히브리서 10장의 마지막 부분에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권면의 말씀이 있습니다: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브리서 10:34~39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