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7)
2022년 8월 7일
아침 일찍 루체른 선착장으로 갔다.
유람선 첫 출발이 9시 10분이었다.
표를 사고 시간이 남아 카펠교를 구경했다.
지붕이 있는 목조 다리로 한 번의 화재 후 복원되었다.
그 자리에 가면 그가 생각난다더니 카펠교 그 자리에 가니 한규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년 전 같이 여행하며 루체른 호수에 헤엄치는 백조를 바라보던 웃음짓던 그가 또렷이 기억이 났다.
그가 하늘나라로 간 지 일 년이 되어 사실, 여행 전 한규의 산소에 들려 같이 못 가고 혼자 다녀올게 하고 인사를 하려는
생각이 있었다.
갑자기 호수의 물결을 따라 잠재된 기억이 수면 위로 솟구친다. 감정을 누그러트리고
리기산에 가기 위해 루체른역 앞 선착장에서 유람선에 올랐다.
(1인 120프랑, 유람선.산악열차 왕복)
날씨는 많이 흐렸다.
한 시간 남짓 배를 타고 가는 동안 호수 주변의 아름다운 집들이 뽐내듯 펼쳐진다.
몇 군데의 선착장을 거쳐 50 여분 만에
비츠나우 선착장에 내려 코앞에 있는 빨간 산악열차를 탔다. 리기 칼트바드를 거쳐 리기쿨름에 도착했다.
단체 관광객인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덕이 부족한가 보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리기쿨름 전망대에서 루체른 호수를 바라보는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데 그것을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다행히 나는 먼젓번 왔을 때 보긴 했다.
한국 관광객들은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사진찍기 바쁘다.
날씨만 좋았다면 한 정거장을 걸어 내려가면서 산책하기도 좋고 리기 칼트바드에서 물속에 몸을 담그고 호수를 바라볼
수도 있다. 그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베기스 선착장으로 내려가기도 하는데 오늘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우리는 내려가기로 했다.
실망감을 달래고 조용한 폭포의 마을 라우터브루넨에 들려 300m 이상 낙차를 자랑하는 슈타우프바흐 폭포를 봤다.
인터라켄은 관광객이 얼마나 많은지 인터라켄 안에 있는 호텔은 방이 없어 예약할 수가 없다.
할수 없이 툰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산의 중턱에 호텔을 비싼 가격에 예약하고 인터라켄 시내의 한인 식당으로 갔다.
두수가 알고 있는 식당의 주인 부부가 우리를 반긴다.
스위스 한인 식당은 역시 비싸고 양이 적다. 돈 많이 버는 두수가 또 부러웠다. 돈도 많이 벌고 자연도 좋은 곳에 살고
있는데 친구가 없어서 외롭다는 그의 넋두리가 공허하게 들린다. 툰 호숫가의 도로는 양평에서 서종으로 가는 드라이브
코스 같았다.
언덕길을 한참 올라 호텔 체크인 시간을 지나 도착했다. 썰렁한 산 중턱의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호텔 문은 굳게 잠겨있다.
메시지를 확인하니 현관 앞 조롱 밑에 키가 있다고 적혀있다. 호텔에 들어가니 조그만 거실이 있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맘에 들었다. 방에서 창문을 열면 툰 호수와 초록의 풍경이 보여 좋았다.
한 방에 모여 간단히 음주를 하면서 여행 일정을 상의했다. 계획은 인터라켄 융프라우를 가려고 했지만 날씨가 안 좋아
루체른 리기산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을 대비해 융프라우를 포기하고 체르마트로 가기로 했다.
(룸1. 210프랑.조식포함)
2022년 8월 8일
툰 호수의 호텔에서 체르마트로 향했다.
차량을 싣고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는 칸더슈테크까지
한 시간을 넘게 가야 한다. 이곳에서 타쉬까지는 사람은 차량에 타고 지붕이 있는 열차에 실어 산 하나를 통과해야 한다.
(열차비용 27유로)
긴 터널을 지날 때 어두워 조금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마치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젠 죽을 날이 가까우니 착하게 살자. 위대하고 웅장한 자연에 비하면 먼지 같은
인생일 텐데 잘났다고 거들먹거리지 말자. 교만과 오만을 버리고 배려와 존중으로 진실하게 살아야겠다.
어느덧 타쉬에 도착했다. 체르마트에는 차량을 가지고 갈 수가 없다. 전기차만 운행하는 곳이라 이 곳에 주차하고 열차를
타고 가야 한다.
한 사람에 16.5프랑을 내고 체르마트로 가는 열차를 탔다.
하늘에 구름이 많다. 불안한 마음이 든다.
여기까지 어렵게 왔는데 마테호른을 봐야 한다.
체르마트는 해발 1.600m의 청정 지역이다.
체르마트에서 산악 열차를 타고 고흐너그라트까지가서 빙하도 밟아보고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마테호른을 볼 수 있는데
산악 열차 비용이 많이 올랐다. 한 사람에 120프랑이다. 너무 비싸기도 하지만 구름도 많고 예전에 한번 갔다 왔으니
고흐너그라트에 가는 열차를 타지 않고 체르마트 마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마테호른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갔다.
마테호른은 구름에 감겨있다. 역시 안 가길 잘했다.
우리의 이마트 같은 슈퍼마켓이 스위스에서는 쿱이라는 곳이다. 쿱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서 먹으며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렸으나 온전한 모습의 마테호른은 볼 수가 없었다. 온전한 것이 결코 완전한 것은 아니니 구름에 휘감긴 마테호른의
풍경도 멋있었다.
우리는 다시 제네바에 돌아와 뷔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프랑스 땅이긴 하지만 두수네 레스토랑에서 파는 육개장 가격으로
뷔페를 먹을 수 있다니 주인이 걱정되었지만 손님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