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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해설(周易解說)
7, 서법(筮法)의 대요
서(筮)란 시를 헤아려 괘를 구하고 신명(神明)에 등대하며, 미래에 있을 일의 길흉득실을 미리 아는 도로서 역의 시원적(始原的) 의의는 주로 이 '점서'에 있었다. 그것은 설괘전 첫머리에 [옛날 성인이 역을 만듦에 있어 천지 신명의 활동을 깊이 탐구하여 이를 찬조한다는 의도아래 시(톱풀)를 써 괘를 세우는 점서의 법을 시작했던 것이다.(皆者聖人之作易也 幽贊於神明而生蓍)]고 했고, 계사 상전에서도 [이에 시라는 것을 만들어 사람이 그 행동을 일으킴에 앞서 미래의 길흉을 미리 알게 했다(是興神物以前民用)], 즉 시를 신비로운 걸로 받들고 시의 발생을 신명이 내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서법이 태요는 계사 상전 제9장에서 [대연의 수 쉰, 그 사용은 마흔 아홉.......]이라고 했듯이 역의 점서에 있어선 50개의 시책(蓍策) 즉 서죽(筮竹:산가지)를 써서 천지의 변을 추연(推衍:멀리 미루어 봄)하여 길흉을 점친다. 어째서 50개의 수를 쓰느냐 하는 점에 대해 경방은 10일(10간) 12진 28수의 수라 했고<주역 경씨장구>, 마융은 북진(북두칠성), 양의, 일월, 사시(사철),5행, 12월, 24기라 하였고<주역 마씨전>, 청나라 호위(胡渭)는 천지의 수는 55인데 그 개수(槪數)를 들어 50으로 하고 한 포기의 시초수는 100인데 사용의 편의상 이를 양분하여 50의 수를 얻었다고 한다.<역도명변(역도명변)>
이 50개 중에서 하나를 뽑아 점서의 중심 본체로서 태극을 형성하므로 실제로 운영하는 바의 산가지 수는 49개이다. 태극은 신명이 깃드는 중심 본체이므로 이를 받들어 따로 둘 뿐 사용치 않는 것이다.
49책(策)은 경건한 마음으로 양손에 갈라쥐고, 그러니까 천지의 양의를 본뜨고서 왼손에 가진 것을 천책(天策), 오른 손에 가진 것을 지책(地策)으로 한다<제1영>. 다음에 지책을 상 위에 놓고 그 중에서 일책을 뽑아 이것을 왼손의 무명손가락과 약손가락사이에 끼우고 <이것을 륵(劧)에 건다고 함>이로서 천지인 삼재를 나타낸다<이상제2영>. 다음에 천책을 넷씩 헤아려 이것으로 사시를 본뜨고<이상 제3영 전반> 남은 1 ,2, 3, 또는 4책을 가운데와 약손가락 사이에 끼어 잡고 이로써 윤달을 형상하고<이상 제4영 전반>, 지책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넷 씩 세고<제3영의 후반> 나머지를 가운데와 집게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잡고 이로서 5년 재운을 형상한다<제4영의 후반>, 이와같이 4영(營)한 뒤 륵에 건 책을 세면 최초의 1책과 뒤의 두번에 걸쳐 낀 것과 합쳐 반드시 5 또는 9 이다<이상 제1변 즉 4영하의 1변이 된다>
다음에 5 또는 9를 49책부터 뺀 44책 또는 40책에 관해 전술과 같은 4영의 방법을 반복하면 , 이 때 륵에 건 나머지 수는 반드시 4 또는 8이다(이상 제 2변). 이것을 또 44혹은 40책으로부터 빼고 그 나머지에 대해 세번째로 4영을 반복하면 , 이때 륵에 낀 나머지 수도 반드시 4 내지 8 이다<이상 제 3변>
여기서 세번 귀륵한 책의 합계는 반드시 25, 21. 17, 13의 어느 것인가 되고 이것을 49책으로부터 빼면 나머지는 24, 28, 32, 38 즉 4의 6,7,8,9배가 된다, 그리하여 역의 수는 6을 노음, 7을 소양, 8을 소음, 9를 노양이라고 하는 것이다. 왜 양을 일컫는 데 9로서 하고 <초구 , 구이 등처럼>, 음을 일컫는데 6으로서 하느냐 <초육, 육이 등처럼>하면 9를 노양으로 하고 6을 노음으로 하는데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비로소 1효의 음양을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4효하의 1변이 되고 , 3변하여 1괘의 6효를 얻자면 36 = 18변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얻은 괘는 우괘(遇卦) 또는 본괘(本卦)라 하지만 , 역은 정점에 이르면 변하는 성질이 있어 노음은 소양으로 , 노양은 소음으로 변하는 필연성이 있는 것이므로 이 법칙을 좇아 우괘 외에 우괘의 노음노양을 소양소음으로 바꾼 지괘(之卦)라는 것도 세울 수 있다. 여기서 점서자는 이 우괘, 지괘에 의해 혹은 일괘 전체에 관해 , 혹은 상하에 내외호괘에 관해 또는 각각의 효에 관해 갖가지로 숙려 고찰하여 일의 길흉 득실을 예단(豫斷)하는 것이다. 이것들에 관해서는 주자의 [계몽]을 보아야만 하리라.
역은 원래 점서의 책이었으나 공자에 이르러 의리(義理)로서 해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점서와 의리의 두가지 의의는 역을 읽는데 있어 치우쳐선 안되는 점이다. 그리하여 점서를 하는데도 물론 성의가 바탕이 아니면 안된다. 성의가 없다면 신명과 통할 수가 없다. 몽괘(蒙卦)에 [초서엔 알린다.재삼이면 더럽힌다. 더럽혀지면 알리지 않는다.(初筮告 再三瀆 瀆則不告)]고 함은 성의가 없기 때문이다. 또 역은 성의 있는 자가 마음에 의문이 있어 결단을 할 수 없을 때 점쳐야만 하는 것으로, 성의없는 소인이라든가 또는 비리나 위법되는 일, 악한 일엔 점을 사용치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이 <논어>자로편에서 [그 덕이 항구적이 아니면 , 혹은 이것에 부끄러움을 권하리라 .자왈 점치지 않을 뿐이다.]고 함은 마음이 왔다 갔다하는 소인은 점서를 기다리지 않아도 치욕을 받는다는 것을 안다는 의미이고, <좌편> 소공 12년조에 [역으로서 험을 점치지말라]고 함은 부정한 일을 점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처음부터 사리가 명백한 것은 점칠 필요도 없다. <좌전> 환공 11년조에 [복(卜)으로서 의문을 결단하다. 의문이 없다면 어찌 복하랴]고 했고 이것은 '귀복'에 관해 말한 것이지만 , 점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행동을 조심하고 덕을 쌓고 지혜도 밝아 도리에 도달하는 자는 점서를 쓰지 않더라도 길로 나아가고 흉을 피할 수가 있다]고 했으며 , <장자>에도 [점치지 않고서 길흉을 안다-정상초편] 고 했고 <순자>대략편에서도 [역을 잘 다스리는 자는 점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소강절(昭康節)은 그의 <황극정세서>에서 [역을 아는자, 반드시 인용하고 이를 말하며 해석코저 않는다. 이를 가리켜 역을 안다고 한다. 맹자의 말로서 일찌기 이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 사이 역도는 있었고, 다만 사람으로 이를 보는 자가 적었다. 사람으로 능히 역을 사용한다. 이를 가리켜 역을 안다고 한다.] 맹자같은 이는 역을 잘 썼다고 하고, 청나라의 초순(焦循)은 <맹자>의 '호연지기'장에 주석하여[이는 맹자로 주역의 취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역에 깊은 자로 맹자같은 이는 없다. -맹자정의권6]고 했을 정도이다.
점서법에 있어 <계사전>의 '대연장'에 근거하여 설명해 왔는데 , 이 18변의 법은 꽤나 복잡하고 시간도 걸리기 때문에 후세에 이르러 이를 간략하게 만든 '중서법(中筮法)'이나 '약서법(略筮法)' 이 있고 '대연장'에 의한 것은 '본서법(本筮法)'이라고 한다.이하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중서법과 약서법을 소개하겠다.
1, 중서법 : 본서법 18변은 비교적 장시간이 소요되고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긴장을 지속하는데 약간 곤란을 느끼는 점이 있으므로 이것을 간략하니 9변과 6변을 사용하지만 보통은 6변서법이 사용된다. 그 방법은 태극을 세우고 천, 지, 인의 삼책을 만드는 것은 갖지만 천책을 8개씩 세우고 그 나머지 수에 인책의 1개를 더하기 한것은 효괘로 한다.
처음에 생긴것이 초효가 되고 그리고 이것을 반복하여 2효, 3효를 얻고 3효를 얻어 속괘가 완성된다. 그리하여 6번 반복함으로서 건괘를 합친 6효의 대성괘가 되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만일 점서하여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고 하자(도해 참조)(역은 역수라는 말이 있듯 아래로부터 위로 향해 셈한다.)
이리하여 얻은 괘를 본괘 또는 우괘라고 하며, 건(노양)과 곤(노음)은 바뀌고 다른 4괘는 바뀌지 않는다. 여섯개의 효 전부가 건곤 어느쪽의 괘라면 전부 바뀌고 , 예시한 본괘처럼 초효와 4효만이 바뀌는 경우도 있으며, 또한 효괘가 건곤을 포함하지 않을 경우는 전부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지괘은 없다는 일도 있을 수 있다. 6변 중서법은 간이한 방법이고 각효괘를 봄으로서 점고(占考)의 상세를 기할 수 있으므로 널리 사용된다.
2, 약서법: 가장 간략한 것은 3변의 약서법이다. 점치는 사람이 일체의 잡념이나 망상을 버리고 성의를 다하여 점서한다면 , 일념이 신령과도 통하여 그 계시를 받을 수가 있으므로 약서법이라고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이미 말한 본서, 중서와 중복되는 점도 있으나 다시 한번 말한다면 먼저 목욕 재계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단정히 않아 잡념을 떨어버리고 50개의 산가지를 잡는다. 이때 정신을 통일하여 신명에 대한 경건한 심정으로 이마 언저리까지 산가지를 받들며 예배하고 점치고저 하는 일을 신명에게 알리며 기도한다. 그 방법으로 주자의 문서사(問筮辭)란 것이 있다.
<너에게 늘 있는 태서를 빌리노라. 너에게 늘 있는 태서를 빌리노라 모관(벼슬) 성명은 지금 모모의 일로 아직 그 성사 여부를 알지 못하므로 의심하는 바를 신령께 묻고저 하노라, 길흉득실회린우우는 이것이 너의 신에게 있노라. 아무쪼록 이를 나에게 밝혀주기 바라노라(假爾泰筮有常 假爾泰筮有常 其官姓名 今以某事云云 未知可否 爰質所疑于神于靈 吉凶得實 悔吝憂虞 惟爾有神尙明告之乃)>
그리고서 산가지 중에서 한개를 뽑아 산통속에 세워 태극으로 비기고 신령의 깃드는 곳으로 삼는다. 나머지 49책은 가는 쪽을 밑으로 하여 왼손에 잡고 끝 쪽을 부채꼴로 별치고서 정신을 집중하며 이를 둘로 나눈다. 천지 음양의 양의로 비기는 것이다. 좌측으로 나누어진 것이 천책 우측으로 나누어진 것이 지책이다. 이 우측의 지책을 상위에 놓고 그 중의 한개를 뽑아 왼손의 새기와 약손가락 사이에 낀다. 이를 사람으로 비긴 인책으로 한다. 이리하여 천지인의 삼재로 비유하는 것이다.
이 천책을 2개씩 네번, 즉 8개씩 단계적으로 세어간다. 결국에 8개를 떨어내고 그 나머지에 새끼손가락 사이에 낀 한개(인책)을 더하여 그 수에 의해 팔괘의 괘를 정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내괘가 정해지고 같은 방법을 반복함으로서 외괘가 얻어 진다. 이리하여 대성괘가 나타나는 것이다.
다음은 효위(爻位)를 구하기 위해선 다시 따로 설서(說筮: 산가지를 세는 것)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약서와 본서, 중서와의 다른 점으로 ,본서 중서에서 노양, 노음은 필연적으로 바꾸어 득괘중에 바뀌는 효위가 나타나 특별히 효위를 구하는 방법이 필요하지 않지만, 약서에 있어서는 이때 괘를 구하는 방법은 같더라도 다만 산가지를 여섯개 떨어낸다. 즉 본서나 중서법에서는 두 개씩 세번 세어가고, 그 나머지의 수와 인책의 한개와 합산했는데, 약서법에서는 두개씩 세번 세어가고, 그 나머지의 수와 인책의 한개를 합산한다. 괘의 수는 여덟이지만 효의 수는 여섯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여섯개 씩 덜어간 나머지의 수와 새끼손가락에 낀 인책의 한개를 더하기 하여 한개가 남으면 (천책이 완전히 나누어져 제로가 되었을 경우 포함) 초효, 두개 남으면 2효, 세개 남으면 3효, 네개 남으면 4효, 다섯개 남으면 5효, 여섯개 남으면 상효가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괘와 효가 얻어지면 단 상사에 의해 점친 사항의 대략적 길흉을 보고, 다음에 그 효사에 의해 세밀한 판단을 하여 점단(占斷)이 내려지는 것인데 그 옳은 판단을 하기가 꽤나 어렵다.
예를 들어 점서하여 구하는 괘나 효를 얻었다 해도 그 구득(求得)한 본괘 중에는 이미 지괘나 효괘가 포함되어 있고, 그 위에 포괘(包卦), 복괘(伏卦), 반괘(反卦) 등이라 하여, 필연적으로 다른 괘의 의상(意象)이 내포 반영되어 있는 것이며, 극단하게 말하면 하나의 본괘 중에 다른 63개의 전부가 표현되어 있는 것이 되므로, 이것을 꿰뚫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셈이다. 점이 맞느냐 하는 것도 이 판단의 옳고 그름에 달려 있는 것이다.
[一陰一陽, 이를 도라고 한다]고 했듯이 음양이 서로 변화되며 무궁무진한 것이므로 길도 흉이되고, 흉도 길이 될 수 있어, 충분히 숙독하고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점치는 이의 학식, 경험, 수양이 요청되는 이유이다.
저 남소의 대유(大儒) 주자는 당시의 황제 영종(寧宗)의 시강(侍講)이 되어 성심 성의 천자의 마음을 격몽하고, 나라 힘을 일으키고저 힘썼다. 그런데 당시의 재상 한타주는 권세를 부려가며 사사로운 당을 조직하고 청렴한 선비를 물리쳤으며, 특히 주자를 미워했다. 주자는 국사를 근심하고 스스로의 위험을 돌보지 않고서 한타주를 탄핵하는 수만어에 이르는 상소문을 쓰고 천자에게 올리려 했다.
제자들은 이를 알고 화가 스승에게 미칠것을 염려하여 주자를 만류했지만 주자는 듣지를 않았다. 주자가 이 상소문을 올리면 한타주에게 죽을 것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채원정(蔡元定)은 제자 대표로 주자의 사실에 들어가 마지막 간을 하였고, 시서(蓍筮)에 의해 결단을 달라고 했다. 주자도 마침내 그 요청을 받아들여 점을 쳤드니 돈의 가인(家人)으로 가는 괘를 얻었다. 주자는 이를 보고 묵묵히 상소문 원고를 불태워버렸고 벼슬에서 물러났으며, 이로부터 '돈웅'이라 호하며 전원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이상은 점서의 한 보기로 들었다. 역에는 본래 '점서'와 '의리'의 양면이 있다고 앞에서 말했다. 이 양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양자를 겸비하기란 쉬운 노릇이 아니다. 한역(漢易)과 송역(宋易)이 갈라지는 곳이다. 상수(象數)를 떠나 역리(易理)를 떠들어대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부질없이 점서만 일삼는다면 미신에 빠질 염려가 있다. 이렇다면 역을 모독하는것이 된다. 역의 신비에 참여하는 성현의 예지를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