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그 찬란한 ‘낙화(落花)’, 내 영혼의 슬픈 눈>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완연한 봄철인 4월 달이 돌아왔다. 개화기가 지나자마자 벚꽃나무에서 꽃비가 내린다. 우리는 봄의 장관인 벚꽃의 낙하(落花)를 보면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 찬란한 계절은 어김없이 또 돌아오지만, 한번 떠나가 버린 사랑했던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서글프다.
“어제는 꽃이 한창 좋더니 오늘은 꽃이 한창 시드네. 그대는 꽃 가의 세월을 보았나? 어제의 소년이 오늘은 백발 늙은이인 것을....”
봄꽃의 임종에서 환희를 만끽하며 봄날의 깊은 맛을 음미한다. 우리는 앞으로 살면서 꽃잎이 만든 흰 꽃눈의 낙하를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올해도 靑春의 꽃이 눈물의 悲歌되어 하늘에 흩날리고 있다. 그 슬픈 노래는, 실은 또 새로운 시작을 위해 준비하는 유희요(遊戱謠)이다.
낙화가 없으면 열매도 없는 것처럼 슬픔과 이별 없는 인생은 허무한 죽음뿐이다. 그 슬픈 시련을 내 삶의 디딤돌로 삼아 내 가치를 만들고 영원을 꿈꾼다.
○ 오늘밤에는 미친 봄바람에 꽃잎이 떨어져 온통 바닥에 꽃눈을 흩뿌려 놓았다. 그래서 당나라 시인 이백(李太白 701~762)은 술로써 봄밤의 허허로운 적막을 달래며 ‘스스로 달랜다’는 뜻의 ‘자견(自遣)’이란 시를 읊었다.
“저무는 줄 모르고 술잔 들이켰다. 취해 쓰러진 사이 옷 위에 수북이 꽃잎 쌓였네. 비틀거리며 일어나 달 비친 냇가 걷다 보니. 새는 어디론가 돌아갔고 길엔 사람 그림자조차 끊겼네(對酒不覺暝 落花盈我衣 醉起步溪月 鳥還人亦稀)”
술에 취해 잠든 사이 꽃이 져서, 옷 위에 꽃잎이 쌓였다. 옷 위에 내린 꽃비는 술 취한 사람에 대한 위로이기 보다 영원 속의 짧은 생명을 누리는 인간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이다. 인적 없는 봄밤, 달빛 어린 냇물을 바라보니, 외롭고 쓸쓸한 나그네의 신세가 서글프기만 하다.
● 우리나라 현대 시편 중에는, 조지훈과 이형기 시인의 낙화(落花)가 가장 유명하다. 2편의 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시인의 ‘낙화(落花)’는 삶의 무상함과 비애, 절망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꽃'은 만물이 약동하는 봄이란 계절의 덧없음, 또 아름다움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반대로 죽음의 실재를 생각나게 하는 생의 기쁨에 대한 자극이 되기도 한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이 시를 읽으면 자연스레 우리나라 옛 가택의 방안에서 주렴 너머 밖을 바라보며 그린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 이형기(李炯基 1933~2005) 시인의 ‘낙화(落花)’는 꽃이 떨어지는 자연 현상을 통해 이별의 아픔이 영혼의 성숙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순환을 인간의 ‘사랑’과 ‘이별’이라는 삶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이다. 이 시는 꽃이 지는 모습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사랑이 끝났을 때 미련 없이 떠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꽃이 진다는 것은 상실이나 허무가 아니라 더 큰 성숙이나 만남을 위한 과정을 의미한다. 꽃이 져야만 열매를 맺는 것처럼 사람도 이별을 겪고 나서 정신적으로 더 성숙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제 의식은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라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압축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 조선시대 우리나라 옛 시인들 또한,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시드는 청춘에 울적한 마음을 달래며, 세월의 덧없음과 인생무상을 노래했다. 어제의 꽃들은 오늘의 시듦이요, 또한 내일의 낙화(落花)가 되리니, 그런 꽃이 이렇게 '어제의 아름다움이었고', '오늘의 슬픔'이 되어 지고, '영원(永遠)하지 못한 탄식(歎息)의 내일이 되리라. “바람 따라 날려 가는 만 점 꽃 이파리, 나부끼는 봄빛이여~ 어디로 가려하나”
1) 낙화(落花) / 장유(張維 1587∼1638) 조선중기 문신.
自是殘春倍可憐 본래 지는 봄은 더욱 어여쁜 법이건만
病來歡意却茫然 병든 뒤론 즐거운 마음도 시들해졌소
飛花萬點隨風去 바람 따라 날려 가는 만 점 꽃 이파리
飄落年芳若箇邊 나부끼는 봄빛이여~ 어디로 떨어지려나
2) 낙화(落花) /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조선전기 문신 학자.
莫恨顚狂昨夜風 한할 것 없어라 어젯밤의 미친 바람에
落花無數滿庭中 무수히 떨어진 꽃잎 뜰에 가득한 것을
明朝留與客同賞 내일 아침에 손 만류해 함께 완상할 테니
休遣僮奴掃地空 종아이 보내서 땅을 쓸지 말게 해야겠네
3) 낙화탄(落花歎) /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조선전기 문신 학자.
東風驀地吹暖回 봄바람이 갑자기 따스하게 불어와서
滿城紅白花滿開 붉고 흰 꽃들이 도성 가득 만발했는데
昨夜風狂雨復顚 어젯밤에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落花如雨翻成堆 비처럼 쏟아진 꽃잎이 가득 쌓이었네
一年春色已闌珊 한 해의 봄 경치가 이미 시들었는지라
坐對落花空長歎 떨어진 꽃 보고 앉아 길이 탄식할 뿐이네
空長歎可奈何 길이 탄식한들 또한 어찌할 수 있으랴
鏡裏倏忽凋朱顔 거울 보니 어느새 내 청춘도 시들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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