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판에 관하여서는 공지글에 자세히 안내했습니다.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후원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계시가 가득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들께만 먼저 살짝 공개할 게 있는데 다음 달 9월 말 경에 출간될 워맥 목사님 책의 주제가 교만과 겸손에 관한 것입니다. (제목은 ‘더 큰 은혜, 더 큰 은총’) 교만과 겸손에 대해서는 야고보서와 베드로전서에 다음과 같이 나오는데, 교만과 겸손에 대한 것 외에 공통점을 하나 찾아보십시오.
(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벧전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벧전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벧전 5: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찾으셨죠? 제가 미리 표시해 드렸습니다. 흥미롭게도 두 서신 다 교만과 겸손을 설명하는 가운데 ‘마귀’가 등장합니다. 교만과 마귀가 깊은 연관이 있어서 그렇겠지요.
두 서신 모두 다음의 잠언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잠 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잠언 3장은 매우 유명한 장입니다. 제가 위에 비교적 많은 구절을 제시해 드렸지만 말씀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언 3장, 야고보서 4장, 베드로전서 5장 전체를 모두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겸손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만 교만한 자는 대적하십니다. 그 이유는 더 길게 얘기할 필요 없이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겸손은 예수님의 성품이고(마 11:29) 교만은 마귀의 성품(겔 28:5)이기 때문입니다.
교만과 겸손을 영혼몸에 대입해서 생각해 볼까요? 우리 혼의 영역이 겸손하면 우리 영 안에 있는 모든 영광과 축복이 아무 어려움 없이 우리의 몸과 현실 세계에 풀어지지만, 우리 혼의 영역이 교만으로 가득 차 있으면 그 교만이 우리 영의 문을 꽉 막아서서 아무것도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된다더니 안 됐던 이유’는 우리의 교만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교만과 겸손을 성경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은 9월에 책이 나오면 자세히 아실 수 있고 오늘은 성경 본문에 나온 교만의 대표적 증거, 염려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벧전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6절에서 겸손하라고 하고 7절에서 바로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염려를 다 주께 맡기는 것이 겸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8절에 깨어 있으라고 하면서 마귀가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염려를 다 주께 맡기지 않고 스스로 염려한다면 마귀에게 삼킨 바 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 제가 방금 ‘염려는 교만이고, 교만이 우리 영의 모든 축복을 막아선다.’고 말씀드렸는데 진짜 그런지 성경 속 또 다른 증거를 같이 살펴 보겠습니다.
(마 13: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예수님께서 “내 말이 영(요 6:63)”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했다’는 것은 ‘영이 막혀 결실하지 못했다’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 염려 때문에 말씀(영)이 막혀서 결실하지 못했다, 염려 때문에 영에 있는 모든 축복이 현실로 나타나지 못했다’라는 말이 됩니다. 또 겸손하면 염려하지 않고 주께 맡기기 때문에 염려하는 사람은 교만하다고 할 수 있고, 교만은 마귀 사탄의 성품이기 때문에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다니는 원수 마귀에게 삼킨 바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연결고리가 잘 보이십니까?
다시 한번 베드로전서 말씀을 봅시다.
(벧전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겸손 – 염려를 주께 다 맡김 – 그렇지 않으면 마귀에게 삼킨 바 됨. 이 연결이 잘 보이십니까?
그러면 염려를 “다” 맡긴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기 빌립보서에서 하는 말을 보니, 우리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평강으로 가득하지 않은 이유는 염려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도 여기에서 염려하지 말되,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염려를 다 맡기라’는 베드로의 말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바울의 권고는 거의 동일한 말입니다. 정말, 그 어떤 것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염려를 전부 다 주님께 맡기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는 사람들이 한심하게 보이거나 생각이 없는 사람들로 보일 것입니다. 또 내가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기 시작하면 주위에 좋은 의도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한두 마디씩 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물론, 저는 여기서 아무 생각 없이, 계획도 없이 살자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계획을 세우고 문제가 발생했을 땐 대처하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그렇게 계획이 없는 것 말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길 줄 아는 사람들은 우리 가운데 얼마나 될까요?
일단 저부터도 그렇게 하지 못해 왔습니다. 저는 육신적으로는 매우 일 중심이라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이건 어떡하지? 저건 어떡하지?’하면서 염려하기 시작하는데 저는 그것이 하루를 계획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성령께서 그것은 일종의 염려라는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계획과 염려는 다른데 저는 하나로 뭉뚱그려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저도 지금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저는 제가 염려하고 있다는 것이 캐치되면, 곧바로 '주님, 이 염려를 주께 맡깁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을 제일 먼저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요한 단계가 있습니다. 먼저 ‘나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저도 그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염려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보여 달라고 성령님께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염려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타락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염려를 하고 있으면서도 모를 수 있습니다. 염려는 가시떨기처럼 말씀을 막는다는 것을 꼭 기억합시다. 우리가 염려를 하지 않는다면 그동안 우리 마음에 심은 말씀을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않는 삶이란 얼마나 놀라운 삶이겠습니까!
그런데 너무 신기하게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기로 결단하는 순간, 염려할 일이 생길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한번 실험해 보십시오!) 그때 꼭 기억합시다. 그때가 말씀의 기운을 막을 찰라 라는 것을! 염려를 주께 맡기지 않고 내가 스스로 하는 순간, 하나님께서 대적하시는 교만을 품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염려를 받아들이고 나면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와서 나를 삼킨다는 사실을!!! 염려는 정말 끔찍한 결과를 가져다 주는 존재입니다.
염려를 다 주께 맡기는 것은 가시떨기를 떨쳐 버리고 좋은 땅이 되는 첫 걸음입니다. 드디어 열매를 맺는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동안 우리 마음에 심은 말씀들이 30배, 60배, 100배로 열매 맺는 모습을 상상하며, 남은 여름 염려를 다 주께 맡기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는 연습을 해 봅시다. 100배라니! 정말 엄청난 일 아닙니까!!! 그러니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내가 염려하는 그 순간을 캐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전에 주님의 말씀대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겠다는 결단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번 달에는 이것을 놓고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도우심이 저와 여러분께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