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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완전케 하신, 폐지된 일곱째 날의 안식일 법
31.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2: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2.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
식하셨음이더라. (창1:31-2:1-3)
오늘 말씀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지으시던 모든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시고 그 일
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 창조의 마지막
날이 사람을 지으신 일이요 그리고 일곱째 날이 이르렀으므로 그날에 안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창1:31에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창조의 계획하신 뜻대로 여섯째 날 동안 지으시고 그 지
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뜻을 담아 지으
신 눈앞에 펼쳐진, 조화가 완벽한 천지 만물을 보시고 매우 만족하셨다, 흡족해 하셨다는 것입니
다. 하나님의 만족하신 마음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째 날까지 모든 것을 다 지으시고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일곱째 날에 '안식 하시니라'하셨습니다. 안식하셨다는 것은 하
나님께서 창조의 일을 하시느라 피곤하셔서 일 마치자 쉬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으신 모든 것
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신 하나님의 그 기쁘심, 아주 행복하심, 매우만족하심, 그
것이 바로 안식의 뜻이요 그래서 '안식하시니라'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은 안식이신데 그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되었으므로 안식
에 들게 된 기쁘심의 표현입니다. 기쁨, 행복, 만족, 이것이 안식의 뜻이에요. 평안, 평강이라는
말입니다. 안식은 하나님 아버지 나라의 특성입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이 안식이시요, 안식하시
는 분이요, 안식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뜻이 바로 이 안식 안
에 들이려는 것이기 때문에 지은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신 것이요, 지으신
사람을 곧바로 하나님의 이 안식 안으로 이끌어 들이신 것입니다.
창2:15에 지으신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셨다는 그 에덴동산은 '기쁨' 또는 '행복'이라
는 뜻입니다. 바로 이것이 천국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을 낙원이라고 말합니다. 에덴동산
은 하늘의 모형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따로 창설하셨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하늘의 모형
인 에덴동산을 따로 창설하셨다는 것을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것 하늘
의 뜻을 말씀하시는 것이 거기에 있고 우리가 온 관심을 둬야 하는 것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
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뜻을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 동안 천지 만물을 다 지으시고 그다음 창2:8에 동방의 에덴에다 동산을
따로 창설하셨음을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지으신 사람을 이 에덴동산에다 이끌어 두시고(창2:15)
이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하나님의 안식을 경험하는 영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안식과 또 일곱째 날에 복 주고 거룩하게 하셨다'하는 부분을 중점으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오늘 이 안식에 대한 말씀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뜻을 한눈에 내다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기록된 성경의 영적 역사에 대하여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훤히 알게 되는 내용이 될 것입니다. 참으로 여러분에게 너무나 귀한 복, 진짜 복을 받는 말씀
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오늘날 안식교가 구약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법으로 주신 안식일을 고집
하며 지키고 있는 그 안식일에 대하여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그 해답이 여기에 다 있기 때문
에 오늘날 안식일을 고집하며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그들에게도, 만일에 구원
받을만한 자가 있다면 그에게 열리는 말씀이 되어서 구원 안으로 돌아오는 복이 있게 될 것입니
다(행13:48).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다 열린 성경임에도 아직도 비밀처럼 열리지 않은 것이면
열린 말씀이 되기 원하면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안식 안에 들어간 첫 사람이 맞이한 환경은 아주 아름답고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풍
요로움이었습니다.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는 평화로움의 극치였어요. 그야말로 지음을 받자 바로
맞이한 환경 외에 인간사에 대한 모든 것은 전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태입니다. 앞에서 다 말
씀드렸으나 오늘 말씀과 연결 되는 것이기에 또 말하게 됩니다. 그들은 인간사에 대한 어떤 것도
알고 있지 않을 뿐더러 경험한 바도 없어서 마음속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는 아주 순수하고 깨
끗한 빈 그릇과 같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처음 맞이하여 안식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
함께한 에덴은 그들 마음에도 행복과 평화가 넘쳐나는 경험이 되었어요. 모든 것이 새롭고, 새로
움은 그들에게 놀라움이 되고 환경과 마음은 행복감으로 평안함으로 안식에 거하였습니다. 하나
님과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곳, 그래서 하나님도 행복하시고 사람도 행복하고 자연도
행복한 그 관계가 이루어진 곳이 바로 에덴(낙원)입니다. 이것이 장차 이루어질 낙원(천년왕국)
의 모형이요, 예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을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안식 안에 이끄시고 안식을 경험케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에덴의 안식은 몸과 마음이 평안한 상태의 안식입니다. 다시 말해 여기 에덴의 안
식은 환경적 안식이지 영혼에 이루어진 참안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사람을 안식
안으로 이끌어 경험케 하신 것으로 이 안식은 만약에 환경이 바뀌면, 환경이 나빠지면 깨지는
안식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에덴의 안식은 참안식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부터 해야
합니다. 하나님깨서 의도적으로 그 안식 안에 이끄셨다는 것을 이해부터 하라는 말입니다. 그
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안식은 우리가 예수님 안에 들어가는 것이요 또한, 예수님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것으로 환경과 상관없는 영혼에 이루어진 영
원히 깨지지 않는 참안식이요, 그래서 이 참안식 안으로 들이시기 위해 그림자와 같은 그 에덴
의 안식을 경험케 하시고 그 참안식을 향해서 걸어오게 하신 것입니다.
환경과 상관없이 환경이 좋든 나쁘든, 있고 없고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 영혼에 이루어져야
할 참안식, 아무도 빼앗지 못하고 깨지지 않는 그 안식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신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참 안식을 주시는 이가 누굽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의 참안
식을 주시는 분, 환경과 상관없이 있고 없고 상관없이 우리 영혼에 안식이 이루어져 자유와 평
안의 영적 안식을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의 안식은 그 영적
안식이 아니라 환경적 안식이다 하는 것, 이해됐습니까? 바로 참생명이시고 참안식이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에 하나님께서 첫 사람이 환경적 안식 안에 들어와 안식을 경험케 함으로써
그 안식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영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안식이 영혼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안에 계신 자는 환경과 상관없는 그 배에서 올라오는
영적인 안식, 행복함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얻으면 안식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
안식 안에 들어가면 환경에서 또는 세상에서 또는 사람에게서 행복을 찾지 않습니다. 환경이
무너뜨릴 수 없고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세상을 초월한 하늘의 평안,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주는 영적 안식이 영혼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세상이 가져다주는 것들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에덴의 안식은 사람이 하나님께 영원히 안식하러 간다는 것을 보이신 것이요. 그러
므로 이 땅에서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으로 사는 자는 환경과 상관두지 않는 것이요, 안식 안에
살다가 그대로 하늘 아버지께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믿은 지 오래든 오래지 않든 다 환경을
통해서 만족을 얻기 위해 애쓰고 거기서 안식을 찾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
서도 사실은 예수님에 관해서 관심 없음을 저는 너무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상은 내가 머물 곳이 아니다, 나는 하늘로서 왔다, 다시 내 아버지께로 간다' 하시고 세상 환
경이 행복한 안식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님을 실제로 보이신 삶을 사시면서 예수님을 따라오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을 따라야 함에도 예수님의 삶(말씀대로 사신
삶)과는 관계없음이 돼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오신 뜻,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영의 생명과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맞
춘 믿음, 예수님과 연합을 이룬 온유하고 겸손한 믿음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 예수님과
방향이 다른 자기 편리한 대로 믿는 믿음이 되어 자기 길로 다니면서 환경을 통해 안식을 얻으려
고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한편으론 거짓 영들이 뿌려 놓은 영적인 것들을 추구하고 그 마음이 따
라가는데 열심을 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오실 날이 가까왔습니다! 예수님 오실 때가 곧 가까워
졌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 소리가 여러분은 들리지 않습니까? 참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께 부탁하고 또 부탁하고 진심으로 당부합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이 다
가 아니라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오늘 죽이시면 죽을 것이요 살리시면 살 것이라 결단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모셔들여 따르십시오. 예수님과 사귐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의 신부라면 신랑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신
랑만 사랑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의 신부라면서 죽은 신랑을 왜 그렇게 좋아하고 좇아 살려
합니까?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신랑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요? 안 그래요? 만일에 예
수님만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그는 예수님을 믿는 것 아닙니다. 하기야
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인지 다른 신랑의 것인지 스스로 아는 지식이 없으니 하나님이 말씀하는 믿
음에 대한 영적 이해도 없고 분별할 영감 또한 없는 것은 당연지사요, 그러므로 자기만 아는 믿
음이 되어 자기 길로 갈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참 신랑만이 우리에게 생명이고 참평안의 안식입
니다. 그 신랑의 말을 듣고 그 안에 거하는 것이 신부입니다. 신부만이 그 신랑의 말을 듣는 것
입니다.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 성경이 쓰인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창조를 통해 예수님이 계
시지 않은 곳이 어디 있었습니까? 오늘 이 말씀 또한 예수님으로만 된다는 것을 계속 가르쳐주고
있지 않습니까? '신랑이신 예수님이 무엇을 주시기 원하는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는가?'를 말
씀하는 거잖아요. 그러므로 말씀을 따르기 위해 듣고 받아들이는 것만이 복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복 주시고'가 아니고 무엇에다 복 주셨다 했나요? 일
곱째 날입니다. 바로 일곱째 날에다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 첫 사람이 안식한 그 날을 복이라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시는 복이 안식임을 말합니다. 사람이 지음받
자 들어간 일곱째 날을 복 주사 사람의 복은 바로 안식임을 공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을 지으신 목적이 그 복(안식) 때문입니다. 그것만이 참된 영원한 복으로 환경을 통해서도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얻게 되는 것 아니요, 오직 예수님께 있는 복입니다.
창조 때 에덴동산에서의 안식은 앞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임재하심과 함께 환경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환경이 바뀌면 깨지는 안식으로, 참안식에 대한 예표입니다. 몸과 마음이
평안했던 이 안식을 경험케 함으로써 바로 참안식은 오직 예수님께 있음을 가르쳐 보이신 것입니
다. 그래서 사람에게 주신 참권리는 바로 행복입니다, 평안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입
니다. 그런데 이 행복할 권리, 평안할 권리 이 생명의 안식이 누구로부터 주어지는가? 바로 예수
님입니다. 우리의 신랑이신 예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께서는 이 권리의 행복, 즉
예수님으로 행복합니까? 예수님과 함께 안식 안에 있느냐는 말입니다.
온 세상이 신종 플루니, 메르스니, 가축의 구제역이니 하는 악성 바이러스의 전염병들로 날마다
죽는 소식과 소문으로 불안하고, 두려움에 휩싸이고, 전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고 또한 북한의
도발적인 행동들은 전쟁의 위협으로 불안감을 조성하고, 세계가 홍수나 지진 태풍 등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재해와 재난으로 사상자들이 속출하고 온갖 질병들이 기승을 부려 병들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런 위협적인 것들이 사방에 널려 둘러싸고 있는 이때에 여러분은 그런 것과 전혀
상관없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믿음에 의해 평안에 있는가 말입니다.
세상에 소문이 아무리 흉흉해도, 천지를 지으신 예수님, 천지의 주인이신 에수님, 나를 지으신
예수님 나를 죄에서 구원하여 하늘의 생명주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안식 가운데 사는
것이지 그런 것에 왜 두려워하고 우왕좌왕 한다는 말입니까? 물론 짐승처럼 감각 없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는 예수님을 확실히 알고 믿는 분으로 한 몸을 이뤘기 때문에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안식에 있는가 말입니다. 모형으로 창조하신 에덴의 안식이 아닌
그 에덴으로 보이신 진짜 하늘의 안식이신 분 그 예수님 안에 자기가 있고 예수님이 자기 안에
계신 그 관계로 있는 안식, 영원히 깨지지 않는 참안식이 있으므로 어떤 경우라도 안식 가운데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다음 3절에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했습니다. 그럼 '거룩'의 뜻이
뭐라고 했습니까? '거룩'을 다른 말로 뭐라고 한다 했습니까? '구별'이라고 했습니다. 창조된
육 일의 것과는 구별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거룩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날로 구별되었다.
하나님의 것 하늘의 것을 복 주신 날로, 구별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창조의 날마다 하루하루 창조를 마치시고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
째 날이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라고 여섯째 날까지 그 날의 시작과
끝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창조하신 이 우주 만물은 시작이 있
었듯이 또한 끝나는 때가 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 끝나는 날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일곱째 날은 시작과 끝을 말씀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시작과 끝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곱째 날은 끝이 없음을 말
합니다. 바로 영원한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영이신 하
나님의 나라, 사람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의 사명을 마치고 하나님께로 들어가 영원히 산
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섯째 날까지의 창조는 물질세계에 대한 것이고, 창조된 것은 시작과 끝이 있다는, 그래
서 자연 세계는 유한하다는 것과 그리고 일곱째 날은 하나님이 계신 곳 하나님의 나라 영원히 존
재하는 영적 세계라는 것과 그리고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 안식
안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복이요 복 주신 날로, 여섯째 날과 구별되었다는 것
을 말하는 것입니다. 안식의 날은 창조된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임을 의미한다는
것 이해됐습니까? 유한과 무한의 것으로 구별되었다 말입니다. 바로 에덴동산이 창조된 자연세계
와 구별되었다 사람이 하나님께로 들어갈 것으로 구별 되었다 안식하시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
시는 복이 바로 해함도 상함도 부족함도 없는 에덴임을 구별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을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을 전함으로써 듣는 사람
들에게 하나님을 오해하고 잘못 알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인간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도록 지음을 받았는데 첫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 먹는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
벌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영에 죽음이 들어왔고 육체까지 죽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 먹은 것은 영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지 육체가 영원히 사는데 살지 못하고 죽게 되
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선악과 먹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인간은 육체의 죽음을 보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었다.
죄 때문에 죽음이 들어온 것이지 죄를 짓지 않았다면 그대로 영원히 살았을 것이라는 말이 인간이
듣기에는 합리적인 말 같지만 사실은 이것은 성경이 말씀하는 뜻도 아니고 이 선악과 안 먹었으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이구나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는 없는 거짓말입니다. 창조 전, 사람이 지
음 받기 전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정하신 뜻에는 육체로 영원히 사는 뜻은 없습니다. 그
것은 인간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정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 인간 머리에서 나온 무지한 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뛰어넘어, 안 먹었으면 영원히 육체로 산다는 것을 아는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
으나 하나님은 전혀 아시는 바 없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선악과 먹지 않을지라도 이미 말했듯이
죄와 상관없이 흙으로 된 것이기에 백 년이든 이백 년이든 천 년이든 존재할 수는 있어도 그러나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고 창조의 하루하루 시작과 끝을 말씀한 것은
바로 흙으로 된 육체는 언젠가 끝나는 것임을 말씀하신 뜻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죄와는 상관없는 것으로써 흙으로 되었으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의 이치입니
다. 육체는 물질이기에 완전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지혜는 완전한 사람, 영원히 살게 하는
사람으로 재창조 하시기 위해 흙으로 육체를 먼저 지으시고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을 넣으시고,
불완전한 그 육체의 사람이 먹지 말라는 말씀을 불순종하여 죽음이 들어오면 예수님께서 오셔서
생명으로 살리시고 영원히 사는 신영한 몸으로 재창조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조 전에
가지신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첫 창조는 그 완전한 창조로 나가기 위한,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들일 그릇과 같은 모습으
로 지어졌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히8:13에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했고, 그러니까 낡아져 가는 것 때문에 그렇게 목숨 걸지 말자 말입니다.
히1:10-12에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그것들은 멸
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
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이같
이 지은 것은 멸망할 것이요 낡아지는 것이라고, 변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또한, 고
후4:16-18에 보이는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이는 이 육체는 낡아지는
것인데 보이지 않는 속사람, 예수님의 생명을 얻은 성영님의 사람은 날로 새롭다고 했습니다. 그
러므로 육체에서 떠날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참으로 믿으면 영의 사람으로
나날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는 것 가지고 거기에
온 마음 다 쓰고 생각 다 쓰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목해야 하는 것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주시는 참평안,
참행복, 그 안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있는 것입니다.
여섯째 날에 창조된 사람이, 일곱째 날 하나님의 이 안식에 들어간 것은 바로 창조된 사람, 즉
모든 인간은 다 육(육체와 정신)으로 태어나서 그다음 영(성영님)으로 다시 나 하나님께로 들어
가야 하는 존재로 지음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섯째 날까지의 창조와 일곱째 날의
에덴(안식)으로 구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죄짓지 않았다면 육체로 영원히 살았을
것이라고 아담이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여 육체에 죽음이 들어왔다고, 그렇게 아담에게 죄를
물으며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여 속이는 자들의 말을 듣고 따라다니다 그들이 받을 심판의 자리로
똑같이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로 들어가 안식하게 하는 것이요 그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으로 살게 하려는 것이니 이것을 깨달아 예수님으로 사는 믿음의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요(롬5:14) 아담은 사람으로 오실 예수님을 예표한 사람이요, 첫 여자는
예수님으로 구원 얻을 사람의 예표요, 여자가 아담의 갈빗대로 지어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부터 나올 교회(믿는 나)의 예표입니다. 또한, 일곱째 날은 예수님의 생명으로부터 나온
교회(신부)가 들어갈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예표입니다. 그러므로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 날에 들어오는 자가 참안식에 든 것이요, 세상과 구별된 나라요, 물질과 구별된
영적인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흙으로 된 우리 육체도 먼저 주신 장막 집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장막 집에 영원한 소망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것처럼 그같이 흙인 우리 육체는
무너지고, 예수님의 생명(성영님)으로 다시 부활해야만 영원한 몸인 것입니다. 흙으로 된 육체는
신영한 몸을 입기 위한 임시 거처하는 장막 집으로 낡아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흙의 기질 때문에 영의 본능보다 육의 본능이 더 강합니다. 그것이 흙으로 지은 인간의
약함입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 먹으면 진짜로 죽는다'하셨음에도 선악과를 먹은 그것이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기에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눈이 열려 영혼이 벌거벗은 자기 실체를 보게 되었고 보는 그 순간 마음도 몸도 안식이
깨지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한 영이 된 것입니다. '죽으리라'는 말씀이 그의 영에 들어와
두려워하는 영이 된 첫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가졌던 에덴에서의 관계가 평안이요, 큰 행복인 것
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고, 에덴을 쫓겨나 그 안식을 사모하는 영이 된 것입니다.
첫 사람의 안식이 깨졌음을 창3:24에서 하나님이 에덴에서 그 사람을 쫓아내셨다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다음 안식의 동산에서 쫓겨나 땅이 쉬지 않고 가시와 엉겅퀴를 내주는 속에서, 즉
자연도 아담(사람)을 도와 순조롭게 내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허리가 휘도록 땀 흘리는 수고를
해야 되게 되었다는 것은 바로 안식이 깨졌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제 처음 지음을 받은 육의
사람으로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으며 하나님께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 것입니
다. 또한, 육의 행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 않다는 것도 확연히 드러난 것입니다. 그
리고 가인의 죄악으로 인해 이후 사람은 하나님과 아주 원수가 되었고 완전히 단절되어 버렸습니
다. 그러므로 아담으로부터 사람의 영은 안식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
단에겐 감추신 길로 아담(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참안식 안으로 들이시기 위해 둘째 아담이
신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기 위해 일을 행하시는 데, 다시 말해 하나
님께서 이제 안식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오시게 하는데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할 이스라엘에 십계
명을 주시고 큰 안식일 법을 주셨던 것입니다.
출20:8-11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섯째 날 동안 자연계를 창조
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으므로 안식하신 그 날을 복 되게 하여 거룩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백성
이 엿새 동안은 힘써 모든 삶의 일을 행하여 일하되 일곱째 날은 하나님의 큰 안식일인즉 모든 가
족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손님일지라도 집에 키우는 가축도 물론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라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안식일 법은 성전이나 어디 가까운 제단에 가서 제사를 드린다거나 하는 것이 아
니라, 쉬라 하신 대로 처소에서 아무 일도 안 하고 그냥 쉬는 겁니다. 그것이 안식일의 일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이 삶을 얻는 것이라 여겨 몸과 마음을
쉬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하나님의 일 하는 것으로 보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에
게 주시기 원하는 복이 바로 하늘 안식이요, 그러므로 이 땅에서 엿새 동안을 지나면 하나님께로
들어간다는 것을 상징하여 안식일을 지키라고 법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백성이 안식일
을 지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쉬러 들어가는 것의 의미였습니다. 쉬라 하신 날을 살리라(레18:5.
겔20:11,21.롬10:5,갈3:12)하신 하나님의 살리는 법인 줄 알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
을 다해 지키면, 그것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온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그같이 안식일 법을 준수
하여 하나님의 안식 안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있다는 증거로 엿새 동안 하는 모
든 일에 형통함이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을 순종하여 계명을 잘 지키면 그 나라가 다 평안하였더라.
하나님께서 복 주사 평안하였더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안식일 복은 환경으로 나타나 보이더라는
얘기에요.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신 안식일의 복은 삶의 환경까지 평안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쉬라 하시는 안식일을 잘 지켜 하나님을 섬기느냐 안식일을 범하느냐에
따라 복과 저주로 나뉘어졌던 겁니다. 만일에 안식일에 쉬라 하신 하나님의 명을 받고도 자기의
사는 세상 것을 위해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돌로 쳐 죽이라 명하셨습니다. 안식일은
말씀 그대로 쉬라는 것인데 그날에 육신을 위한 여섯째 날의 것을 끌어들여 일하는 자는 안식일을
더럽힌 사단과 같은 자이니(사단이 하나님이 안식에 침범하여 여자를 속여 죄짓게 하여 안식을 깨
고 더럽힘)그러므로 죽이라 명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무시하
는 것이요 육체의 것 때문에 안식을 범하는 그것은 하나님께 도전하는 사단의 교만과 탐욕과 같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회중에 둘 수 없으니 그를 돌로 쳐 죽이라 하신 것입니다. 안식
일에 엿새 동안의 것을 끌어들여 범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죽이겠다고까지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셨다고, 성경에 없는 거짓말로 사람들을
미혹하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귀한 영혼을 돌로 쳐 죽이라 하십니까? 한 영
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해 놓고....,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으면, 그냥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으니 좀 봐주시고 '안식일 지키면 복 주신다 했잖니?'하면서 좀 깨달을 때까지 기회를 주
시고 그 옆에 지도자한테 '야, 저 영혼을 위해서 네가 기도해 주면서 네가 잘 이끌어 주어라'하셔
야 맞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라고 여기신다면 말입니다. 그러
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법을 존중하지 않고 어기는 것은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보이는 것이니 그들을 돌로 쳐
죽이라 하셨습니다.
출31:14-15에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하나님과 백성이 안식하는
날, 세상과 구별된 날, 하나님의 복 안식의 복을 받는 날이니 지키라는 것입니다.) 무릇 그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지며 무릇 그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엿새 동
안은 일할 것이나 제칠 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일하는 것은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이니 반드시 죽이라
고 명하신 겁니다.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로, 즉 하나님과 직접 관계되는 날, 하나님이 안식하시
는 날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날로 구별된 하나님께 거룩한 날이니 그날에 사단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과 육체의 것들을 끌어들여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를 반드시 죽이라 하신 것입니다. 하
나님을 섬기는 날로 온전히 구별되었으니 이날을 더럽히는 자는 안식하기를 거부한 것이니 죽이
라 하신 겁니다. 심지어 안식일 날에 처소에서 음식 만드는데 필요한 불 피우는 것도 금하셨습
니다(출35:3). 불 피우는 것이 일하는 것이 된다면 먹는 것도 일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음식
은 안식일 전날 준비하였다가 안식일에 먹도록 하셨습니다. 불 피우지 말라 하신 것은 왜냐? 불
은 성경이 심판에 관계된 것들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안식하러 들어간
자는 더 이상 심판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불 피우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 주신 날로 백성에게 복이 있게 하셨습니다. 에덴의 평안으로 복
주시니 복 있는 사람이 되어 그 사람이 있는 곳과 환경에도 그 복이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과 함께 안식 안에 있는 자는 들어가도 복 받고 나가도 복 받고 가는 곳마다 복 있다고 신명기에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복이 있으니 땅의 복이 있더라는 말입니다. 땅의 복이 있다는 것은 하나
님이 함께하는 안식의 복이 사람에게 있으니 그 사람의 가축도 땅의 소산물도 다 저주 아래 있지
않게 되었다. 사단의 저주를 받은 땅의 것들이 안식의 복에 들어와 함께 복이 있게 되었다는 말
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들에 복을 베푸시는 날로 구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창조를 마치고 사람
과 함께 안식에 들어가셨음에 대한 기념의 날로 구별하셨습니다. 세상과 절대적으로 구별된 날입
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구별하신 하나님의 날이라 하여 엿새 동안에 하던
모든 일 다 내려놓고 오직 이날은 하나님만 섬겨 거룩히 지킬 때 안식이신 하나님이 함께하시니
엿새의 삶도 형통함이 따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에 말 그대로 아무 일 안 하고 쉬었습니다. 그날 성전이나 회당에서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쉬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하나님 품에서 평안히 쉬는 겁니다. 이
것이 구약의 안식일 지키는 법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가? 참으로 순종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이라 믿고 존중하는가?'는 엿새 동안 하던 일 미련 없이 다 놓고 안식일에 그
어떤 것도 끌어들이지 않고 하나님 품에서 몸과 마음이 쉬는 거였습니다. 그까짓 것 쉬는 것 누가
못 하겠느냐? 하고 쉬는 것을 우습게 여길 수도 있지만 그 마음이 어디에 있고 무엇에 있느냐? 즉
온전히 하나님께 있느냐? 육체가 사는 육 일의 것들에 있느냐? 만일에 마음이 육 일의 것들에 있다
면 그것은 안식하는 것이 아니요 안식일을 마음으로 범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거룩하게 구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죄에서,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의미입니다. 안식을 다른 말로 하면 자유입니다. 해방입니다. 예를 들어 말도 행동도
구속받고 있다면 거기서 자유를 참으로 갈구하지 않겠습니까? 옥에 갇힌 몸이면 자유를 얼마나
소망하겠습니까? 바로 이 안식일이 사단의 사망 권세와 죄와 죽음에서 놓여나기를 원하는 하나님
의 백성에게 자유를 얻게 하시는 언약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창조된 물질세계, 즉 하늘과 땅과 바다 가운데 있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명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스려야 할 하등 짐승의 말을 듣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신 선악과를 먹었
으므로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고 하신 말씀대로 아담의 통치권이 마귀에게로 넘어가 버렸습
니다. 그래서 사단이 엿새 동안 창조된 물질세계를 지배하여 주인 행세하는 것입니다. 사단이 피조
물계의 주인 노릇 하면서 물질계를 타락시키고 더럽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엿새 동안 창조하신 날 수대로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
다. 바로 엿새 동안은 사단이 주인 노릇 하는 세상임을 말합니다. 이것은 첫 사람이 먹는 것 때문
에 사단의 말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였으므로 에덴에서 쫓겨나 사단이 주인 노릇 하는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고, 그곳은 가시와 엉겅퀴요(안식할 곳이 없다는 뜻) 땀 흘리는 수고의 날이
요 안식이 없는 고달픈 곳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하라는 것은 평안
없는 수고와 고생이 있는 곳, 사단이 가져다주는 엉겅퀴와 가시들로 찔리고 아프고 상처로 고통을
겪으며 인간에게 왜 이런 고통이 있는가를 고민하며 결국 안식을 사모하게 하는 데 있었던 것입니
다. 그래서 엿새 동안 사단이 주인 노릇하는 그 가운데서 사는 것을 위해 땀 흘리며 힘써 수고하고
제칠 안식일에 들어와 그 쉼을 가지므로 그날의 쉼이 얼마나 평안한지를 경험케 하신 것입니다. 힘
써 네 모든 일 하라는 것이 바로 그 수고로움을 겪으며 안식을 사모하는 영의 소원을 따라 그 안식
에 들어가기를 또한 힘써 알도록 하신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큰 안식일인즉 지키라 명하신 말씀을 순종하여 안식일을 거룩히 지킬 때
에, 힘써 네 모든 일을 하라 명하신 그 육 일 동안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실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거
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은 곧 에덴의 풍요와 평안의 복이 따
르는 것이었단 말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에 몸은 쉬면서도 마음은 육 일의 것들에다 두고 염려와 근
심을 갖고 있으면 그것은 거룩히 지키라 명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없는 것이어서 육 일도 함
께하실 수 없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 영적 원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율법
속에 들어있는 영적 원리는 세상 끝날까지 이어지는 것이란 말입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한편으론 안식일을 지키면서도 자기도 언제 안식을 범하여 돌에 맞아 죽
을지 모르는 불안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그날을 더럽히는 자니 반드시 죽일
지니라 하셔서 안식일 법을 어긴 자를 죽이면서 자신도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혹 알지 못하는 중에 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 속에서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
안식일의 법이 완전한 것입니까, 불완전한 것입니까? 절대로 불완전한 것입니다. 지킨다 해도 그
법에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메시아가 속히 오셔서 지키지 못하면 죽는 이 불안한 법에서
구원해주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구약 이스라엘에게 지키라 주신 그 안식일을 오늘날에 와서도 굳이 지켜야 한다
면 그 안식일을 고집하는 것이면 구약 백성이 지키던 것과 같아야 하겠습니까? 같지 않아도 되겠습
니까? 같아야 합니다. 금요일 저녁 해 질 무렵부터 그 다음 날 토요일 저녁 해 질 무렵까지 어느
장소로 예배한다고 다닐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아무 일도 않하고 평안히 그냥 쉬어야 합니
다. 그리고 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어디까지고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아내서 꼼짝없이 그 모든 규
제 사항들을 지켜야 하고 안식일 날엔 음식을 요리하기 위해 어떤 불이 되었든지 간에 불을 사용해
서도 안 되는 것이고 또한 메시아가 오셔서 불안한 안식일 법을 자유의 법으로 완성해 주기를 기다
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천 년 전에 오셔서 불완전한 안식일 법을 이미 완성하셨기
때문에 또다시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구약의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고집
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예수님을 믿는 것 아닙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메시아가 오셔서 안식일 법
을 완성하셨으므로 이제 그 법에 매였던 것에서 자유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절대로 성영님의 가르침도 아니요, 성영님께 속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관계없는 속는 것이요,
속이는 자입니다. 이 부분은 뒤에 가서 좀 더 나누겠습니다.
이스라엘은 메시아가 속히 오셔서 이 불안한 사망의 법에서 건져주시기를 고대하며 기다렸습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라 하신 그 세상으로부터, 사단의 참소와 가시와 엉겅퀴의 고통과 두려움에
서 구원하여 완전한 자유를 주실 것에 대한 그 언약이 이루어지는 날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안식의 날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엿새 동안 사단의 훼방과 참소 받는 가운데서,
사단의 사망 가운데서 구원하신다는 언약의 예표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너희가 종을 샀느냐, 부리기 위해 종을 샀으면 일곱째 해, 칠 년 해에는 놓
아주어 자유인이 되게 하라 하셨고(출21:2) 땅도 여섯 해 동안에는 파종하여 소산을 거두되 일곱째
해는 파종하지 말고 땅도 쉬게 하라(출23:10,11)하시고 그때 씨앗이 떨어져서 나는 곡식들이 있거
든 네가 거두지 말고 나그네나 가난한 자들이 거두어 먹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다음 칠 년의 안식년을 일곱 번 계수하여 사십구 년이 된 그다음 해, 오십 년 되는 해는 거룩한
희년, 즉 온전하게 구별하신 희년이니 안식과 자유를 이스라엘 온 백성에게 선포하고 종 된 자는
종의 문서까지 폐기하여 자유를 주고, 빚진 것들은 다 탕감해주라고 명하셨습니다. 또한, 만일에
가난한 자가 살기 힘든 일로 돈을 빌렸을 경우 갚으려는 마음과 의지는 있지만 갚을 능력이 되지
않으면 다 탕감해주고 죄수들도 다 풀어주고 땅도 안식을 누리고 모든 것에 자유가 있게 하라고 하
셨습니다. 바로 이 '희년'의 의미는 안식이 되는 예수님이 오셔서 이같이 마귀의 속박 가운데 죄에
묶여 죽음 아래 있는 온 인류, 즉 안식을 사모하여 얻기를 원하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참자유의 안
식을 주실 것임에 대한 예표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서 이 모든 뜻을 이루어 마귀와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시고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기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생명 안으로 들어와 안식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사십 일 동안 땅에 계시다가 하늘 보좌로 가셨는데 하늘로 올리
신지 열흘 후에, 즉 부활하신 오십 일째가 되는 날 성영님이 오순절 날에 하늘에서 오셔서 온 땅
과 온 하늘에 구원이 완성되어 마귀와 죄와 죽음과 저주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이 선포된 날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자에겐 성영님이 내주하신 날입니다(행2장). 보혜사 성영님이 하늘에서 오실
때 구원하시는 일을 돕는 하늘의 천군 천사들과 함께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지키라고 주신 그
희년의 해, 칠 년을 일곱 번 계수한 그 뒤 오십 년이 되는 해, 그 희년에 있었던 자유의 역사가
마침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성영님이 오심으로 선포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구약의 그림자와 같은 그 한 날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한 날 안식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너희 죄를 갚아 주실 피 흘릴 분이 오리라, 마귀의 속박에서 건져 줄 분, 죄에서 건
져 줄 분이 오리라, 이분이 오시면 너희에게 영원한 자유와 참평안을 주실 것이라는 언약의 말씀을
가지고 안식일 지키도록 하시다가 바로 일곱째 날의 주인이신 계명에 완전하신 분 그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날에 대한 언약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안식 후 첫 날에 죽음에서 다
시 사셨고 또한 예수님께 나오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성영님이 오신 것도 안식년 후
첫해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 날이 이르매 하늘로부터 성영님이 오셨음을 말하고 있잖
습니까? 오순절이라고 하는 것은 구약에서 칠 년을 일곱 번을 계수하여 사십구 년이 된 그다음 해,
오십 년의 해를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그것을 희년이라고 했습니다. 희년은 성영님께서 오순절에
오실 것에 대한 예표입니다. 말하자면 안식 후 첫날과 같은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성도들을 데
리러 공중 강림하실 때도 안식 후 첫 날인 이 예수님의 날에 오실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런데 오늘날 구약의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이 상식적으로라도 맞는 것인지 여러분이 좀 생각해
보십시요.
구약의 안식일은 한 주간이 끝나는 토요일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그 전날 금
요일입니다. 그런데 금요일은 무슨 날입니까? 창조의 여섯째 날, 사람이 지음을 받은 날입니다. 하
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
하시니라 하신 그 일곱째 날, 안식의 날에, 첫 사람(아담)이 들어갔고 하나님께서 선악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그 안식의 날에 들어와 첫 사람(여자)
을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고 '정녕 죽으리라'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이 하나님과 사람과
의 안식을 깨고 그 날의 질서를 어지럽혔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첫 사람에게 하늘과 땅과 바다
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고 통치하라 명하신 권세가 사단에게로 넘어가게 되어 사단이 여섯째 날 동
안 창조하신 자연계를 지배하고 주인 행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첫 사람이 육(육체와 정신)
의 것을 위해 사단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으므로 이제 그 육(혼의 지정의, 즉 자
기, 자아)은 죽음에 내줘야 하게 되었는데, 그 후손 가인부터는 사단이 아주 육체와 함께 육을 지
배하게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창조된 사람의 육(자아)은 죽음에 내줘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이 지음을 받은 그 여섯째(금요일) 날, 그 육의 것 때문에 안식일 날에 죄를 지었으
므로 사단이 주권을 행사하게 된 여섯째(금요일) 날에, 죄지은 그 육의 자아를 못 박아 죽음에 내
주려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여섯째 날 금요일에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시고
토요일 그 안식일에, 안식이신,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죽어서 무덤 속에 장사되어 버렸습
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12:8,막2:28,눅6:5)고 말씀하신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안식일 날 무덤 속에 장사되어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것은 누가 죽는다는 말입니까? 바로 예수
님이 오셔서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죽기 위해서는 사단에게는
감춰져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예표한 아담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정
녕 죽으리라'는 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죽는다는 말씀이기 때문에 아담은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고,
예수님은 오셔서 아담이 지음을 받던 여섯째 날에 못 박혀 죽으시고 안식일에는 무덤에 장사지낸
바가 돼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지 않으면 죽는 법 앞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을까
요, 없었을까요? 두려움 가운데 있었다고 했습니다. 구약은 안식일을 지켜도 온전한 자유가 없습
니다. 혹시 잘못 지켜서 죽임당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으로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 지켜 온 아주
불완전한 법입니다. 그러므로 죽는 법과 사는 법을 가진 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라 하신 것은 예수님 자신이 죽는 법이 되신 분이라는 말이요 또한 사는 법이 되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죽임을 당하는 이 법을 죽음이 없는 생명의 법으로 완전케 해 주실 메
시아(예수님)가 오시기만을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장사되어 버렸으니 그러면 그 안식일도 함께 죽
은 것이 되었을까요, 안되었을까요? 아니, 여러분! 안식일의 주인이 죽었는데 안식일이 어떻게 있
는 것입니까? 그날은 예수님과 함께 죽어서 장사 돼 버렸습니다. 이제 안식일을 범하여 죽임당하는
그 법과 그 날도 함께 죽었으므로 구약의 안식일은 끝났습니다. 그러면 죽는 법이 되신 예수님이
안식일과 함께 죽으셨으나 또한 사는 법이 되신 예수님이 언제 다시 사셨습니까? 생명으로 부활하
신 날이 언제입니까? 바로 안식 후 첫날에 죽음을 이기시고 생명의 부활로 나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겐 영원한 안식이 되는 분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에
덴을 통해 보이셨던 그 안식,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깨지지 않는 참안식을 얻게 된 것
입니다. 이것이 하늘 안식으로 들이시기 위하여 에덴으로 보이신 안식의 뜻입니다.
창조 때부터 안식을 사모하는 영이 되게 하시고 사천 년을 거쳐 하나님의 뜻을 그 영들에 알리시
고 또 알리시면서 마침내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어 주심으로 완성이 된 것입니다. 또한 그 일이 마
침내 저와 여러분에게까지도 알리신 바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날은 끝나 버렸습니다. 불완전한 그
날은 죽음에 들어가 버렸고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제 안식일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
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 들어와 안식하느냐? 안식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지, 만일에 안식일을 고집
한다면 그는 예수님 안에 들어온 것이 아니요, 예수님을 온전히 부인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
수님이 안식 후 첫날, 다시 한 주가 시작되는 첫날에 살아나셨기 때문에 이날은 곧 예수님의 사신
날이요, 예수님의 날이 된 것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주중 첫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이 날에 모여서 떡을 떼며 예배드리고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복을 받고 또 성영
님이 우리 안에 부활의 생명을 가지고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생명 얻게 하는 복음을
가지고 나가서 한 주를 승리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으니 또한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에게 성영
님으로 와 계신다면 당연히 안식, 즉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안식 가운데 있어야 그것이 예수님과
연합된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을 능히 이기는 것입니다. 구약은 육
체만 쉬었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영에 생명이 들어와 평안이 임하였으므로 세상의 어려운
일을 당해도 담대할 수 있고 하늘나라의 소망을 확실히 가지고 아버지 나라를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 보면 구원받은 자들을 보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했습니다.
나중이 아니라, 미래의 것이 아니라 하늘에 '앉혔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들
어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미 우리는 하늘에 들어간 자들입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 육체를 입고 있
지만 우리는 하늘에 들어간 자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입니다. 여러분! 이 믿음 되었습니까?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 하늘에 앉은 자가 되었느냔 말입니다(고후13:5). 죽어봐야 안다고 하
는 것은 구원받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이 앉히시니의 헬라 원어로는 '평안에 들어갔다, 안식에 들
어갔다'는 말입니다. 이미 하늘에 앉힌 바 되어 평안한 상태, 안식에 들어간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자기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평안이 있다면 구원받은 증거요, 하늘에 앉힌
바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만났든 또는 고난 가운데 있다 해도 누구도 빼앗지
못할 영적인 평안이 자기 안에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에서 예수님과 하늘에 함께 앉힌 바인지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안식일은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끝났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후에는 더 이상 날이
라는 것에 의미가 없습니다. 구약에서 지키라 하신 날에 대한 불완전한 법은 예수님이 다 이루어
완성하시고 폐하신 것이 되어 이제 날이나 절기, 규례 등 의문에 속한 법은 이천 년 전에 다 끝났
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규례라, 대대로 지킬지니라, 영원한 언약이라고 하신 그 속에 넣으신 본뜻,
영적인 뜻은 이제 예수님 안에서 강화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행해야 할 믿음의 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언약은 곧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위한 계시와 언약을 이같이 연결하여 깨
달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이 되고 행함이 돼야지, 성경은 반드시 짝이 있다 했을 때 이것을
말하는 것이지, 도대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지니라, 거룩히 지
키지 않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 하신 것을 신약에서도 지켜야 한다고 나오는 이것이 말이 되는가
말입니다. 도대체 이 무지함이 왜 있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안식일 지켜야 구원 있다고 고집하고
나오는 사람들이 안식일에 하지 않아야 할 것은 다 하고 있으니 다 돌로 맞아 죽을 일이지 살아남
을 자 한 사람이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 날을 지켜라, 십일조를 해라, 환
난 전에 들림 받는다, 하는 말씀들을 하셔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무엇 때
문에 그런 뜻을 다시 재현하여 말씀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성영님에 의해서 믿는 참 믿음은 뿌
리가 되는 구약의 말씀에서 그에 대한 본질이 뭔지, 근본 뜻이 뭔지, 연결하여 그 열매에 대하여
성영님으로 깨달아 알고 하나님의 뜻으로 된 확실한 열매의 믿음이 돼야 하는 것이지, 안다고 자
부(바리새인 서기관 같은 자들)하는 거짓 믿음(인본)들에게 뭐하려고 신약에서 다시 언급해야 할
이유 0.1%도 없는 것입니다. 성영님에 의한 참 믿음은 성영님으로 알아지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는 잠언의
말씀이 있듯이 예수님의 사람은 다 알아듣는 것이니 여러분이 알아듣는 예수님의 사람이면 그런
미련한 자 앞에서는 떠나야 할 것밖에는 없다는 것 알기 바랍니다.(잠14:7)
그러므로 '신약에 주일을 지키라 한 곳이 어디 있느냐? 있으면 찾아와 봐라, 신약에 십일조 내라
한 곳이 어디 있느냐? 있으면 찾아와 봐라''안식일을 지켜야 구원받는다''십일조는 십자가에서 폐
지됐다'하는 이런 귀신의 가르침의 말들로 성경의 뜻, 하나님의 생명 얻게 하시는 뜻을 갈라놓고
잘라내고 토막 내고 하는 짓들을 왜 하는지, 여러분이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사이를 갈라놓는 이간질임에도 불구하고 죽을 짓들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제 오늘날 날이나 절기 등 안식일을 가지고 나오는 것, 십일조 폐지됐다고 나오는 것, 다 미혹이
요 그 말에 미혹되는 것은 성경(하나님)의 뜻을 전혀 모르는 무지에 속한 종교인이요, 인본으로
성경을 알고자 한 불쌍한 자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 얻는 영원한 뜻을 법으로 주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신 것이요,
예수님이 이루신 뜻은 이제 예수님 안에서 행할 믿음의 법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같이 안식일을
완전케 하신 하나님의 전 뜻을 확실하게 열어서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말씀을 드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어느 누가 되었든지 상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분
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생명으로 부활하신 이 주의 날, 즉 죽음에서 살아나 생명을 얻게 하신 이 '예수
님의 날'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 안에서 생명으로 시작해서 영원한 영생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에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로 하여금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이미 창조하신 날부터 예표로 보이셨습니다. 사람들이 눈이 가려 보지 못해서 그 같은 온
갖 잡다한 설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어지럽히고 복잡한 성경이 되게 하는 것이지, 성경은 절
대로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으로 부활하여 믿는 자에게 생명이 있게 하실 것도 창조 때 예표로 보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여섯째 날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는데 그러면 그 날 중에 창조물에 생
명이 있게 하신 날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까? 그것이 언제 였습니까? 바로 첫째 날입니다. 창1:
3-5에서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
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이 다 들었으니 긴 설명은 안합니
다만, 여기 빛이 있었고 가 무엇을 말씀한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예
수님이 창조의 첫째 날에 모든 창조물에 빛을 보내셨다, 즉 흙에서 나는 창조물들에 생명이 있게
하려고 '빛이 있었고'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하신 일곱째 날은 영원한 하늘나라를 의미하
는 것이지만, 안식 후 첫째 날은 창조물들에 생명을 부여한 날로써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생명을 주실 것에 대한 예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 주의 날, 즉 주중 첫날인 이 예수님의 날에 우리를 죄와
마귀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하늘의 생명,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신 삼위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
하기 위하여 이날에 모이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을 더 깊이 아는 관계가 되고 말씀대로 사는 능
력을 갖추고자 말씀을 듣고 배우려고 이날에 모이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신 날, 생명의 날, 바로
예수님의 이 날에 우리가 예배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으로 더욱 생명으로 풍성함을 얻고 나가서 한
주간을 살 때 세상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이기며 생명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
람들을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도록 하는데 계속하여 교회로 이끌어 함께 자라가게 하시는 거룩
하게 구별된 예수님의 날입니다.
교회들이 부활주일이다, 고난주간이다, 성탄절이다, 하고 열심히 지키는 데 힘쓰고 있지만 그런
것 또한 하나님의 뜻하시는 바는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 것은 예수님의 뜻엔 없습니다. 그저 인
간이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것 같으니까 하는 것일 뿐, 예수님의 날의 예배가 바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만난 날이요,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을 우리 영혼에 충만히 얻게 된 날이요
이날에 예배를 드림으로 더욱더 생명의 충만을 얻는 날인 것입니다. 위로부터 내리는 신영한 복
을 받는 날이요 그러므로 점점 더 예수님의 안식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과 함께 앉는 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날에 우리 믿는 성도들이 말씀으로 생명을
공급받고, 예배의 복을 받고,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성장시켜 나가도록 마음을 다하고 뜻
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예배와 예배의 삶이 되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하는 이 날이 누구의 날이라 했습니까? 예수님의 날입니다. 예수님이 곧 안식입
니다. 예수님이 곧 생명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안식일 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들어
가는 것이 바로 안식입니다. 이제는 날과 상관없습니다. 이 예수님의 날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예수님 밖에 있는 날입니다. 이해가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네가 예수님 안에 들
어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안식하느냐? 안식 가운데 있느냐? 이것이 오늘 본문 말씀에서 '안식하
시니라'하신 안식의 뜻입니다.
그러면 한 부분만 정리해 보겠습니다. 창조 첫날에, 한 주 시작의 날에 창조물들에 인성(예수님)의
생명을 넣으시는 빛이 있었고 했습니다. 그다음 안식 후 첫날에, 한 주 시작의 날에 예수님이 죽음
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다음 안식년 후 처음 해에 성영님이 예수님의 구원과 생명을 얻게 하
시려고 하늘에서 오셨으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람들이니 예수님의 이 날에 모여서 예배하
고 떡을 떼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사심을 기념하는 것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성영님으로 된 믿음인
것을 여러분 모두 아멘으로 받습니까? 또한, 예수님이 다시 오심도 이 예배의 날이 되리라는 것도
여러분 믿어집니까?
이제 안식과 안식일과 주의 날, 즉 예수님의 날에 대한 관계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하여 여러분이
알게 되었습니까? 여러분의 분명한 지식이 되었나요? 여러분의 믿음이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안
식하시니라'하신 예수님의 이 안식에 들어가 안식하시는 여러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
늘 아버지의 전 뜻입니다.
우리로 깨닫도록 도우신 성영님께 감사드리며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안식이 우리의
안식이 되게 하신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아멘!!
제5장 완전케 하신, 폐지된 일곱째 날의 안식일 법.p101-p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