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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길에서, 여행에서 삶을 배우다 : 길터여행협동조합|작성자 베네핏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enefitmag&logNo=220241340726
길이 곧 교실이고, 자연이 스승이며, 마을 주민들이 친구가 되는 그런 학교를 꿈꾸어 본 적이 있는가? 20대가 되어 배낭여행을 해야 경험할까 말까 한 일들을 수업으로 하는 아이들의 미래는 과연 어떨까. 길터여행 협동조합은 길배움터 학교의 아이들만을 건강하게 길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 청소년들의 여행 문화에도 적극 힘쓰고자 한다. 그게 곧 건강한 미래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길터여행협동조합 강상헌 대표
삶과 여정의 베이스캠프
원주의 조용한 마을에 자리 잡은 길터여행협동조합의 사무실이자 길배움터 학교의 첫인상은 친근한 서당 같았다. 겨울의 한기를 따뜻하게 덮어줄 방구들부터 한 켠에 마련된 주방, 어른들이 읽다 기증하고 간 책 꾸러미까지, 따뜻한 공간의 조건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곧 자전거 수업을 다녀온 아이들이 들어서자, 공간은 삶이라는 모험의 베이스캠프 같았다. 아이들에게는 온 마을이 교실이 었고, 배움은 어디에나 있었다.
길터여행협동조합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길터여행협동조합은 여행협동조합이자 여행사입니다. 다만 일반 여행사처럼 여행상품을 파는 게 아니고 청소년의 성장을 돕는 여행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어요. 조합 안에 길배움터라는 대안학교가 속해 있고요. 여행사업팀에서는 일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여행을 기획하고 진행합니다. 학교는 2012년에 1년 동안 준비해서 2013년 3월 1일에 창립했고, 조합은 2013년 12월에 설립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길배움터 학교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행은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지나요?
여행 전에는 사전모임을 통해 여행지에 대한 사전 교육을 하고, 끝나고 나서는 여행에서 느꼈던 점을 공유하고요. 학부모님께는 여행이 끝나고 아이들이 어떻게 지냈고,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나눕니다. 짧아서 변화 폭이 큰 건 아니지만 지켜보았던 점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요. 여행 한 번 갔다 와서 큰 변화가 있다기보다는, 교육의 연장인 거죠. 사실 교육이라는 말도 거창하고, 성장을 도와주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모든 교육이 다 여행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나요?
여행이 주된 테마이기 때문에, 1년에 두 번 정도는 2주에서 4주 정도 긴 여행을 가요. 2박 3일 정도의 짧은 여행도 자주 가고요. 여행을 가지 않을 때에는 중국어나 영어 같은 언어교육도 하고 난타나 리코더, 목공, 도예, 사진과 같은 예술교육도 해요. 농구 같은 체육수업도 하고요. 오늘은 자전거 수업이 있는 날이었어요.
주종목이 자전거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좋잖아요. 일단 아이들이 자기 힘으로 멀리까지 갈 수 있게 하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학교를 처음 만들 때도 마을학교 개념으로 생각했어요. 원주 곳곳에 배울 수 있는 곳이 많거든요. 지금도 체육은 원주대에 가서 하고 매주 금요일마다는 지역도서관에 가서 종일 책 보고, 도예 수업은 저 마을에 있는 도예하우스로 가요. 걸어가려면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죠. 하지만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으면 이동할 수 있는 범위가 굉장히 넓어져요. 여행도 마찬가지고요. 인천-부산도 걸어가려면 20일은 잡아야 할 거예요. 자전거로는 6박 7일이면 되죠. 한 번 다녀오면 뿌듯함이나 성취감도 굉장하거든요. 여러모로 봤을 때 자전거 아주 적절한 도구입니다. 자전거로 고갯길을 오를 때는 힘들지만 내려올 땐 신이 나잖아요. 도보는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도 힘든데 (웃음).
안전에 대한 우려는 없나요?
자전거 여행이라고 하면 위험성에 대해 걱정을 하시는데요. 지금까지 크고 작은 사고는 물론 있었죠. 가장 컸던 게 팔뼈에 금이 간 경우였고, 그거 말고는 다쳐서 까진거 정도지, 큰 건 없었어요. 사실 자전거로 여행하면 언제든 위험성은 있어요. 우리의 최선은 안전한 곳으로 가는 거예요. 인천에서 부산 종주할 때도 4대강길 따라 자전거 도로로 갔어요. 거의 80% 이상은 자전거 전용도로로 안전하게 갔죠. 안전교육이나 응급처치와 같은 부분도 마련이 되어 있고요. 아이들이 평소에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녀서 안전장비도 잘 점검하는 편이에요.
일반 여행은 어른도 대상으로 하시나요?
네. 이번 겨울에 캄보디아로 자전거 여행을 할 계획인데요. 프놈펜에서 시엠립까지 7박 8일간 자전거 타고 가는 거예요. 여기에 어른 10명 청소년 10명을 예정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자전거 동호회를 만들어서 같이 하는 방식 으로 고려 중입니다.
다 같은 여행은 아니다.
“사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여행길에서 다 배울 수 있어요. 나에 대한 존귀함, 상대 방에 대한 배려, 감사할 줄 아는 것 등 수없이 많죠. 여행하다 보면 고마운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강상헌 대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득 여행에도 정답이 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특별한 여행 이야기가 더욱 궁금하다.
길터여행협동조합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길터여행협동조합의 신세균 사무국장님과 저는 대안학교에서 근무를 했었습니다. 그 곳에서 일하다 보니 아이들이 여행을 통해 성장하는 바, 변화되는 바가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길배움터라는 대안학교를 먼저 세우고 여행 중심의 교육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소수이다 보니 이런 여행을 보다 많은 청소년들에게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행 협동조합을 창립한 것이죠. 우리가 많이 하는 여행 형태가 자전거 여행인데요. 아이들을 데리고 인천에서 부산까지 국토 종주를 한다든지, DMZ 종주를 하는 식의 성장 여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시는 성장은 어떤 의미인가요?
학교에 있는 아이들은 현재 6명이고, 중2부터 고1까지 있어요. 이 시기의 아이들은 한창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급격하게 성장해 나갈 때라서 이때 환경적인 부분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아예 무기력하게 게임에 빠져서 지내기도 하죠. 책에서 지식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기에는 아이들이 잘 성장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이건 공부한다고 나오는 게 아니고 생활에서 나오는 거예요. 낯선 공간에 자기가 던져졌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부분 같은거죠. 힘든 여행들이 많은데, 자전거 종주나 백두대간 도보 종주, 15kg씩 되는 배낭 메고 지리산에서 추풍령까지 17박 18일 동안 산만 타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러면 애들끼리 싸우고 토라지고 풀어지고 해요. 나중에는 자신에 대한 힘든 얘기도 상처도 자기들끼리나 같이 간 길잡이 선생님께 말하고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자란다고 봅니다. 이런 것들이 쌓여서 저력같은 게 생긴다고 생각해요.
교육 비용 부담이 있을 수 있겠어요.
아무래도 부모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사실 협동조합 세운 건 학교에 재정을 지원하기 위한 측면도 있어요. 그러면 아이들 학비를 좀 낮출 수 있을테니까요. 소수의 학생으로 꾸려가려고 하니 보통 중고등학교보다 등록금이 많아요. 이런 걸 줄이려고 후원행사를 기획하기도 하고 프로젝트를 따려고 지원하기도 해요. 아, 대신 우리는 호텔에서 자본 적이 없어요(웃음). 여행 가면 마을회관이나 텐트에서 자니까요. 애들은 마을회관이나 텐트에서 자면서 밥 지어먹고 지내는 걸 좋아해요.
제 개인 경험으로도 그렇지만, 여행이라는 게 정말 터닝포인트가 되는 것 같아요.
한 녀석은 제주도를 갔다가 벌떼를 만났는데, 다들 자전거를 버리고 도망가고 자전거 를 가져오지 못하니까 용감하게 가서 자전거를 가져오는 거예요. 그걸 보고 애들이 ‘너 남들 도와주는 일 잘하는구나’, ‘남 도와주는 일 하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자기도 그 런 부분에서 인식이 생기고. 그래서 자기 소방관 하겠다며 준비하는 아이도 있어요. 여행하면서 자기의 진로를 생각하고 만나게 된 거죠. 여행이라는 것이 그런 다양한 경험들을 만나게 해주는 배움터예요.
그런 경험을 1년에 몇번이나 하면 정말 삶이 어떨지 가늠이 안되네요.
요즘 아이들이 게임이나 스마트폰 등으로 정서적으로 참 팍팍한 환경에서 지냅니다. 대안학교는 특히 아이들이 관계 맺기를 어려워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여행의 경험들을 했을 때 바로 아이들에게 극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입학할 때랑 지금 보면 ‘참 많이 컸다’ 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화를 막 내고 부딪치기도 했던 애들이 여행을 다니면서 많이 부드러워진 걸 보면 여행의 역할이 컸다는 생각이 들죠.
그럴 때에는 정말 보람 있으시겠어요.
좋죠. 그래서 하는 거죠. 학교가 3년 과정이라 우리 아이들이야 꾸준히 하고 지속적으로 체크가 되고요. 일반 학교 학생들도 4박 5일 다녀와서 돌아보기 해보면 이러저러한 점이 달라졌다는 걸 듣게 됩니다. 많이 가려먹던 애가 잘 먹더라, 말수 없던 자녀가 여행에 관해 얘기 많이 하더라, 애들도 수학여행보다 훨씬 재밌었다고 하는 얘기들 하는 것 보면 보람 있죠. 당장 돈은 안 남아도요(웃음).
모두의 여행을 새롭게
좋은 건 다 같이 나누는 법. 길터여행협동조합은 길배움터에서의 성장 여행이 더 좋은 여행을 꿈꾸는 누구나의 여행이 되길 꿈꾸고 있다. 개별 여행부터 수학여행 과 같은 큰 규모의 여행까지, 길터여행협동조합이 이끄는 여행은 진정한 배움과 성장의 통로가 될 것이다.
조직의 구성원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나요?
상근으로 일하는 사람이 저와 사무국장님, 그리고 행정 업무를 담당해 주시는 분 이렇게 셋이고요. 5명의 인솔자분들이 설립 때부터 함께했어요. 대부분 조합원이십니다. 우리는 이사장님도 여행 인솔을 많이 하십니다. 처음에는 아무 관계 없는 학부모였는 데, 애들을 학교로 보내고 나서 점점 발을 들이다가.... (웃음) 이렇게 학부모가 조합원 인 경우도 많아요. 우리는 혼합형 협동조합이라, 소비자도 생산자도 직원도 조합원이 될 수 있어요. 협동조합의 틀에 맞게 이사회는 한 두 달에 한 번씩 하고 총회는 1년에 한번합니다.
여행사업팀에서는 어떤 수익사업을 하나요?
일단 길배움터 학교 여행도 여행사업팀에서 기획합니다. 이와 별개로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 쪽을 전부터 기획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한 중간지원 조직으로부터 통해도 교육청과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와서 준비하고 있어요. 바라는 거 였어요. 일반학교 수학여행을 재미없게 가지말고 소수로, 한 반이 가는 거죠. 또 한 반에서도 인솔자가 되는대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정말 소수로 가는 거예요. 보통 여행 할 때 15명 미만으로 산을 타거나 자전거를 타는 게 재밌어요. 50명, 100명은 통제할 수 없으니까요. 요즘은 세콤이 수학여행 간 아이들을 통제한다고 해요. 사실상 수학여행이 아니죠. 통제의 연속이니까요. 애들은 그런 데 가서라도 숨통 트이고 싶은데 사실 수백 명이면 어렵잖아요. 저 때만 해도 버스타고 사진 찍고 돌아오는 게 전부였어요. 여행으로서 나에게 성장이 되는 부분은 전혀 없었거든요. 세월호를 계기로 해서 교육청에서도 다수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여행이 대신 이런 쪽으로 변화의 방향을 찾으려고도 하는 것 같아요. 어쨌든 그 프로젝트는 ‘도내 관광벨트’와 같은 타이틀로도 교육청과 도내 사회적기업들, 우리랑 동네방네, 커뮤니티 워크 이렇게 원주, 춘천, 강릉에 여행하는 사회적기업들이 같이 만들어보려고 해요. 11월 초에 기획단 회의를 해요. 준비해서 잘 되면 내년부터 가시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우리도 개인 모집을 했는데, 이게 쉽지는 않아서요. 학교나 교육청에 연계되어서 하는 게 좋죠.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협동조합간의 협동 활동도 있는지요?
우선 아주 활발하진 않지만, 원주 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에는 소속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청소년 성장 여행을 하지만 일반적인 여행상품도 판매하거나 항공권 발권 대행을 하는 일을 기획하고 있어요. 그러면 이 부분이 안정적인 수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목적사업으로만 지속 가능하기가 힘들다면, 협동사회 안에서 해외에 나가는 일도 많을테니 이 부분에서 그런 역할을 해보자고 얘기하고 있어요. 여행분야의 협동조합으로서 원주 쪽으로 오는 인바운드, 아웃바운드도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해요. 아, 신용밝은신협이라고 계좌로 신협을 이용하고 있는 부분도 포함될 수 있겠네요.
이곳을 거치는 아이들이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시나요?
지금 행복한 삶을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미래의 내 삶을 저당 잡히지 않고 지금 길배움터에 다니는 하루하루가 행복한 시간이 되면 좋겠다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목표를 뒤로 미루지 않고 지금 행복한 삶을 사는거요. 훈련을 거쳐 멋진 사람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순간에 의미를 찾고 행복하면 됩니다. 어떤 학생이 어느 날 자기는 오르막길이 좋다고, 그 힘든 길을 올라가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엄청 놀랐죠. 이런 순간의 의미들을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과정을 마친 소감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여행사를 고민하다가 육성사업을 통해 본격적으로 꼴을 갖추 게 된 거거든요. 육성사업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법인이 설립되었어요. 기업이라는 것을 처음에 어떻게 할지에 대한 맛을 보도록 도와주셨어요. 회계도 대충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웃음).
지금 길터여행협동조합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요?
무엇보다도 여행을 기획하고 진행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합니다. 4~5분이 계시기는 하지만 항상 같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여행이 우리 생각과 다르게 갈 수도 있고, 사무국장님이 답사나 여행도 모두 전담해서 하시거든요. 기획하고 진행도 계속할 수 있 는 사람이 필요해요.
사회적기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사실 우리도 아기라..(웃음) 무엇을 할 때 행복하냐를 아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사회적기업은 한다고 해서 바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지원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되는 게 아니니까요. 사회적기업 지원의 바람을 타고 하는 것도 있지만, 지원 자체에도 한계가 있고요. 내가 이걸 할 때 정말 행복한가를 생각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