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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의 말로써 따르는 복과 저주
20.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
하게 되느니라 21.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잠언18:20-21)
여러분! 제가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랑이 성영님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에 부은 바
되어, 내 영에 오신 성영님, 곧 내 영이신 성영님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과 성영님을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그 사랑을 우리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영님께 고백해 올립니다. 또한 그 사랑
으로 여러분을 사랑하고 사랑합니다. 믿음의 길이 어려운 길이지만 우리 함께 성영님과 잘 이기고
올라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멈춰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오늘도 여러분이 예배의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의 회개와 함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새 힘을 얻는 예배의 시간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여러분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아멘
그리고 우리가 우리 믿음의 입장,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의하여 비쳐볼 때 잘못된 찬송
가 가사가 너무나 많아 더는 그것을 찬송이라고 하면서 부를 수는 없는 것이어서, 이미 여러 곡을
개사하여 찬송으로 불러왔습니다만, 이번에 더 많은 곡을, 많은 부분 개사를 하게 되었고, 그 작
업을 은혜 가운데 마칠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하고 기쁩니다. 이제부터 우리 믿음에 합당한,
말씀에 합당한 은혜로운 가사, 성영님이 오신 우리 영이 기뻐하고 하나님 아버지가 기쁘게 받으실
가사로 찬송을 부르고 올려드리게 되었으니,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제 가사가 믿음의 기도요, 믿
음의 고백이요, 삼위 하나님께 감사요,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요, 레마의 말씀에 합당한 사랑의
노래이니, 마음껏 마음의 기쁨을 입으로 찬송하여 영광을 돌리는 찬송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늘 말씀 제목은 <혀의 말로써 따르는 복과 저주>입니다. 우리의 언어 사용은 신앙이 성공하느냐,
성공하지 못하느냐가 달려있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입의 언어의 중요성에 대해서 여러
분에게 한번 말씀을 드렸지마는 오늘 다시 더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에 권세에
달렸다는 잠언서 말씀을 우리가 살펴보았고, 자기 혀의 말로써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고, 또 남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는 야고보서의 말씀도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
인지를 말씀드린 것을 여러분이 다 알고 받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그 입의 말은 그 마음에서 나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으니, 그러므로 믿는다
는 사람들의 마음에 쌓은 것이 무엇인가, 언어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하는 진정 믿는
사람인지, 그 사람의 믿음 상태를 알 수가 있고, 또한 믿는 것과 상관없는 사람인지, 무지한 사람
인지, 개념이 없는 사람인지, 사리분별 못하는 사람인지, 아무튼 그 말로 그 사람의 인품이나 인
격이 드러남으로 말로써 그 사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사람은 입에서 나는 열매로 배가 부르게 되고,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만족하게 되
고, 죽고 사는 것이 혀에 권세에 달렸고,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는다 말했습니다.
성경은 이같이 사람은 자기 입에서 나는 말로 배가 부르고, 만족하게 되고, 또 죽고 사는 권세고,
혀를 쓰기 좋아하면 그 열매를 먹는다는 말씀을 하셨으니, 그러면 우리 믿는다는 사람들이 자기의
말한 대로 자기 생을 끌어간다고 하는 언어, 이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너무나 분
명하고 확실한 이 같은 말씀들에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권위를 두고 자기 혀를 다스림으로
써 예수님의 말씀의 인격으로 변화 받기를 힘써,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이 되어 있나 자기 언어를
엄밀히 살펴 보아야 합니다.
본문 21에서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했으니, 이것이 무슨 말뜻인지 지난 말씀에서
이해하고 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혀의 말은 사람 자기가 하는 말인 것 같지만, 그것이 아
니라 그 말의 출처가 있는데, 그 출처가 두 군데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서 혀의 권세라고 말합니다. 혀의 권세로 죽고 산다 했으니, 그러면 죽는
것은 누가 혀의 권세라는 말입니까? 사단입니다. 사단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산다는 것은 그
럼 누가 혀의 권세라는 것입니까? 바로 성영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
과 그 말씀으로부터 비롯된 말로써 성영님이 권세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의 언어 근거는 곧 예수
님과 그분의 말씀입니다.
마13장에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다. 즉 예수님
께서 오셔서 좋은 씨를 뿌리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좋은 씨를 받은 예수님의 밭이
면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근정적인 말이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는 나의 말을 하지 않는다. 나의 보내신 자, 아버지의 말을 한다고 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그 출처가, 그 말씀의 근거가 바로 아버지의 말씀, 아버지의 가르치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요12:49,50에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
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요17:14에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
이니이다 요17:6에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요17:26에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
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셨습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이 뿌리신 좋은 씨를 여러분이 받았으면, 여러분 안에 뿌려졌으면, 여러분에게
서 좋은 씨의 열매가 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열매로써 예수님과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생명이
나와야 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이 믿는 자의 언어근거가 어디여야 하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의 근거는 아버지의 명령하여 주신 영생의 말씀이라고, 아버지가 말
씀하신 그대로 이른다고 하셨으니, 우리 또한 예수님께로 말씀을 받았다면 우리 입의 언어도 무엇
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 입의 언어의 출처가 어디여야 하는가 말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이 곧
예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의 말씀이 곧 성영님의 말씀이니, 우리 입의 언어도 같은 말이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과 생각도 같고 뜻도 같은 예수님의 것이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사람들은 곧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것인데, 예수님께서 세상에 속하지 아
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다고 하셨고,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한다고 하셨
습니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고 예수님도 우리 안에 있게 하려 하심이
라 한 것입니다. 이로써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어 내가 예수님 안에 있게 되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내 안에 있게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은 세상
에 속하지 않아야 하는 것과는 관계없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알지 아니해도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다고 하셨지, 세상에 속한 자에게 주었다고 하
지 않았습니다. 잘 알아듣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뜻을 사람이 변개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아야 하나님 구원의 뜻과 관계가 되어 예수님을 아는 눈이 열리고 말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으로 배가 불러야 하고, 생명의 충만으로 만족한 영혼이 돼야 합니
다. 예수님으로 배가 부르게 되니, 그 만족을 입의 언어로 또 내게 되니, 그것이 열매요 또 그 열
매가 다시 자기 안으로 받는 생명이 되어 늘 배부름의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입의
말의 출처는 곧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 영이요 생명의 것이 돼야 하고, 예수님께 받은 말씀이
언어의 근거가 돼야 합니다. 그래서 이 믿음이 되는 것은 세상에 속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조건이
요, 예수님께 속한 자가 돼야 하는 것이 조건입니다. 아멘입니까?
그다음 믿는 사람이 예수님께 근거한 말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언어의 자원을 삼으면 말씀
과 같은 긍정적인 행동으로 바뀌어져 가는 것입니다. 행동에도 생활에도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입
니다. 왜냐? 하나님께서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라고 하셨으니 말씀하신 대로 믿는 자의 말
에 대한 열매를 내시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것은 사단이 권세이니 사단이 그 말의 열매
를 내주는 것입니다. 저주가 떠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로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거
예요. 이 말은 새김질 잘하십시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그 입의 말로 그가 믿음이 산 자인지 죽은 자인지 구별이 되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언어 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러분이 알고, 이 같은 원리를 참으로 알고 받
는 것이 돼야 합니다. 만일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말하면 그 기쁨이 항상 자기 안에 있고,
계속 기쁨을 말하면 그의 행동도 그 기쁨을 향해서 움직여가는 거예요. 사는 길에 있다는 말이에
요. 그러므로 자기가 늘 하는 말대로 그 행위가 따라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만
일에 "나는 안 되는 가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면 안 되는 데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나는 복이 없어"하는 말을 입에 두고 있다면 복 없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경에 어려움이 있을수록 그것을 벗어나는 길은 예수님께 근거한 긍정적인 언어로 바꾸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께 근거한 긍정적인 말씀으로 입에 담는다면 그 말은 곧 자기를 이끌어가고
자기 마음으로 들어가 양식이 되어 배부름의 만족을 얻게 될 것이며, 그것이 입술의 열매가 되고,
그 열매를 또 자기가 먹고 또 먹으니, 영적인 것 예수님의 것으로 배부름의 만족을 얻는다 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것도 이와 같은 원리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말씀으로 말미암은 긍정적인 것은 성영님이 권세이고, 부정적인 자기 성품의 것은 사단이 권세라
는 것, 아셨습니까? 이같이 말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열매를 내신다고 하셨고, 입의 말로써
자기 삶이 좌우된다는 것, 얽히고 잡힌다는 것을 성경은 강력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것을 아주 명심하여 받아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히브리서가 말씀했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현재 아주 좋지 않
은 환경이나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진정 믿음은 그것을 보고 붙잡히지 않는 것이요, 말씀을 믿고
현재 환경이나 상황을 믿음으로 뛰어넘어서 이뤄진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입으로 시인하고 시인하
여 축복하고 입에 담는 언어가 돼야 그것이 믿음이요, 믿음이 있는 자라고 하는 것이요, 그러므로
결국 입의 열매가 된 믿음대로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 낙심하고 환경을 보고 좌절하고 낙심의 말, 좌절의 말이 입에 있으면 그것은
마음에 있다는 것이니 마음에 있다는 것은 구원받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부
정적인 생각과 말들은 그것으로 입의 열매가 되어 그것을 먹음으로써 배가 불러질 것이고, 배부른
그것을 또 입으로 내놓고 자기만족이 되고, 그러므로 그것은 사단을 만족케 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낙심의 말 좌절의 말 무엇이 되었든지 부정적인 말은 자기 힘, 혀의 권세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 부정적인 말들 또는 원망의 말, 불평하는 말, 시기 질투의 말, 이런 것들이 입의 열매가 되어
자기 배가 불러있으면 반드시 배부른 그것을 또 입으로 힘있게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힘이 되어있고 자기 만족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습관처럼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기하는 것입
니다. 그것으로 배불러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것을 입의 열매라고 말하는 거예요. 누구든지 여기
서 이것을 진정으로 깨닫기 바랍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을 지키는 것에서 나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그러므로 마음을 지키라
고 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임에도 감각 없이 하면서 혀의 권세, 즉 사단에게 자기 혀를 내주고
있으니 이것이 웬 말이냐 말입니다. 이런 악한 것들에서 자기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이 없다
는 것을 말합니다. 사단의 권세를 행하고 있으니 어떻게 구원이 있습니까? 그렇기에 이런 부정적
인 말들을 쓰고 산 것들을 회개하고, 자기 마음을 지키는 것에 마음을 다하고, 입의 말을 항시
점검하고 살피는 훈련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저의 말은 지난 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제목의 말씀까지 포함합니다. 습관이
되어 의식 없이 쓰는 악한 말들, 그것은 마음에 있다고 하니, 입에서 나올 때마다 혀를 깨물어서
라도 입 밖으로 내뱉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결박하여 버리라는 말입니다. 정말 진심으로 원
하는 진정의 마음이면, 예수님의 이름이 역사하여 결박해 주실 것입니다. 혀를 잡힌 악한 말들,
부정적인 말들을 성영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처리하고 하늘의 생명의 언어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
의 말씀, 그 언어를 마음과 입에 담는 훈련을 부지런히 하십시오. 포기하지 않으면 승리할 것임
을 여러분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부정적인 언어를 쓰신 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에게서 성영님의 능
력이 나타나 병이 치료되고 귀신이 쫓겨 가고 말씀하신 대로 이적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 그렇지 우리가 뭐 하나님이냐!'하는 마음의 불평이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
히 말씀하셨습니다. 요14:12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슬퍼하라, 고민하고 고통하라, 원망하고 불평하라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것은 말로써 사단의 권세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 곧 형제의 마음을 불쾌
하게 하고, 책임전가하고, 상처가 되게 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 등입니다. 이 같은 것들은 자
기에게 구원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니 마음에도 입에도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에라고 하는 그 애벌레를 아실 것입니다. 누에가 뽕잎을 좋아하고 신기할 정도로 그
뽕잎을 아주 잘 먹습니다. 그런데 먹은 뽕잎을 소화하여 다시 입으로 내보내서 제 몸이 감싸는 집
을 지어냅니다. 그것을 '고치'라고 하지요. 사람들이 그 고치를 가지고 명주실을 뽑아 옷을 지어
입습니다. 그런데 누에는 자기가 먹은 것을 입으로 내보내 제 집을 지어내고 그것으로 사람에게도
유익을 줍니다. 벌레이면서 자기를 굴레 씌우는 것으로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입의 언어도 이와 같이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거나 자신과 남을 해롭게 한다는 것
을 비유합니다. 생의 바퀴가 자기 입의 말에서 난다. 배의 키 하나가 방향을 잡아 가듯이 혀에서
나는 말로 자기 생을 좌우한다. 작은 불씨 하나가 온 산을 태우듯 길들여지지 않는, 재갈 먹이지
않은 세치 혀의 말로도 자기 생을 무서운 결과로 이끌어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입에서 나오는 열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왜 열매입니까? 그 마음에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 열매입니다. 또 그 열매로 배가
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말 여러분! 지금까지 2회에 걸쳐 들은 말씀 중에서 자기 마음에 걸림이 있다면, 그래도
지금 여러분 앞에 기회 있잖습니까? 이 기회를 생명 얻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영,혼,육이 다 구원
얻는 기회로 삼아야지요. 정말 정말 마음들 지키십시오. 정말 정말 입의 말을 살펴 부정적인 악한
말들을 철저히 버리십시오. 믿는다는 사람들이 왜 여기에 머물러 있고, 곤하고, 힘들고, 고통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기하고, 난체하고, 교만하고, 남을 아래로 보는 이런 생명 없는 망할 것들
에 잡혀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을 잠6:2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
느니라 라는 분명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준 것 아닙니까? 이것을 어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자에게 복을 아주 명하셨는데, 왜 그렇게 믿는다 하는 세
월이 오래임에도 그 복이 마음에도 입에도 없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돌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복을 주시겠다고 아주 작정하여 선포하셨습니다. 한번 입으로 내신 것은 후회하지 않으시고, 식언
치 않으시고, 돌이키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 엄청난 복이 무엇이 부족해서
도대체 이 복을 사단에게 혀의 권세가 되게 하는 말로써 거절하는 것입니까?
우리 믿는 자에게는 환경이나 어떤 상황이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키지 않고, 악
한 언어를 마음에 두고, 입에 담고, 부정적인 언어들을 쓰는 것으로 그 복을 거절한 것입니다. 자
기가 거절하는 것이다 말이에요. 정말 알아듣기 바랍니다. 마음을 지키지 않았으니 입에 무슨 복
이 있을 것이며, 혀를 단속하지 않으니 마음에 무슨 복이 있는 것입니까? 그러니 환경도 복 없는
것입니다. 구원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그 입의 말을 보면 그가 지금 무엇으로 배불러 있는지, 무엇으로 만족을 삼고 있는지 그냥
나타나는 거예요. 원망하는 말로 배불러 있으면 그 입으로 꼭 원망하는 말을 해야만 그 속이 편한
겁니다. 자기 심사가 만족한다 그 말입니다. 불평하는 말로 배불러 있으면 그 불평하는 말을 해야
만 자기 마음이 만족하는 거예요. 그래서 원망하는 사람은 그 혀에 원망의 말이 붙어 있게 되어서
계속 원망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원망의 말을 해야만 그 속이 만족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만족
을 위해서 원망하는 겁니다. 남에게 탓을 돌린다는 말입니다. 불평하는 것도 다 같습니다. 불평을
입에 담는 것으로 자기 힘을 삼는 거예요. 이 같은 것은 전부 사단의 마음이요, 혀가 사단의 권세
에 잡혀있는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무엇으로 배불렀고 만족하는 것입니까? 무엇으로 배불러 있는지 자기 배를
좀 들여다보실까요? 보이지 않으세요? 그러면 무엇으로 만족을 얻어 살고 있습니까? 배불러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얻은 생명으로 말미암아 배불렀으므로 만족하게
되어 천국을 누리고 예수님 계신 보좌를 바라보고 나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죽겠다, 안 된다,
못한다, 두렵다, 불안하다, 괴롭다, 못살겠다 하는 이런 부정적인 것들로 자기 배를 채웠으므로
늘 그런 것으로 배불러 있습니까? 원망의 말로 불평의 말로 또는 배를 채워 배불렀습니까? 지난
번 말씀에서 말했지만 우쭐하는 말 우월감의 말, 잘난체하는 말, 경우 없는 말, 부리는 말, 막무
가내의 말, 명령의 말, 자기주장의 말, 신경질적인 말, 불평을 달고 하는 말, 말의 무게 없고 생
각 없이 함부로 하는 말, 유익 없는 것들로 말 많은 것, 이런 것들은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입으
로 내놓는 것으로서, 자기가 진짜 예수님을 믿는 것인지 거짓 믿음인지를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
는 것임을 알기 바랍니다.
제가 그 동안 성도들 중 몇몇에게서 마음을 지키지 않는 이 언어 사용하는 것과 생명을 지키지 않
는 이 모습들을 보고 듣게 되었으므로 하여, 저의 마음이 대단히 불쾌하고 분노가 일어났었습니다.
어떤 면에선 교회를 능욕하는 것으로 볼 수밖엔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심히 고민이 되었고,
아버지께 긍휼함을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하면서 저의 마음도 긍휼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분에 대해서 말씀도 전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어요. 성경을 스스로 보면서 깨닫지 못하고 새
김질하지 못하는 그 약함, 다시 말해 아직 육이 드세고 강한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아직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그 악한 마음과 생각과 언어가 죽지 않은 이들에게, 아버지 뜻을 말로 전해주면 귀
는 있어 말의 뜻은 들을 수는 있을 것이니, 듣고 깨닫고 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하여서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망하는 자리에 있지 않기를 너무나 원해서, 제가
이제는 말씀을 준비한다는 것이 참 힘든 작업이지만, 성영님께 힘을 구하고 지혜를 구하여 이 말씀
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여러분이 진정 온전한 구원이 되려면 저의 이 말뜻을 잘 새김질 하십시오.
참으로 깨닫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또한 앞으로는 누구든지 유치하고 더럽고 음란적인 농담의 말도 삼가십시오. 육에서 나는 모든 추
잡한 농담의 말, 다 삼가십시오. 아니, 자기 속에서 그런 것이 아예 없어야 합니다. 그것은 음란
하고 더러운 귀신의 것입니다. 그런 것은 귀신과 한 몸이 된 것에서 나오는 육의 추잡함 입니다.
분명히 경고로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 믿는 자들을 말씀이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고전3:9에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했습니다. 고후5:20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했습니다. 고후3:3에 너
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했습니다. 딤후 2장에 군사로 다니는 자라고 했습
니다. 요1:12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했습니다.
그러면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라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좋은 씨를 뿌리셨다고 하셨으니, 좋은
씨는 예수님 자신을 말씀한 것이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말씀이요, 생명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
씨가 싹터 자라서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향하신 뜻이니
까요. 그러면 자신이 이 좋은 씨를 받은 밭이면, 그 속에 있는 것이 표현되어 나와야 하지 않습니
까? 예수님은 좋은 씨를 심었는데 그 속에서 부정적인 것이 나오는 것이라면, 좋은 씨가 심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집이면 그 집에는 누가 계셔야 합니까?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영님이 주인으로 계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집의 역할인 나는 문, 곧 입을 열면
집 주인이 보여야 하고 집 주인이 나와야 하는 거예요. 입의 언어가 긍정적인 것의 열매가 되어
나와야 하나님의 집이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신이라고 했으니, 사신은 대사라는 말입니다. 국가의 명령
을 받고 외국에 사절로 나가 외교 하는 사람입니다. 나라를 대표해서 가는 것이니 본국의 지시대
로 공식적인 말을 해야지, 만일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그거 처벌을 받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같이
우리가 예수님을 대신하는 사신이면 우리 입에서 무엇이 나가야 하겠습니까? 여기에 대해 설명이
필요 없잖아요?
또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으니 내가 편지면 사람들이 나에게서 들어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읽어야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기 무슨 설명이 더 필요 합니까? 또 군사로 다니는 자라 했으
니 영, 혼, 육체가 영적 전투에 갖춰야 할 무기가 무엇인지, 저의 말씀을 들은 것이면 여기에도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러면 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는
것이 여러분 그냥 쉽게 "아, 예수님 영접합니다. 이름을 믿습니다"하는 것으로 자녀의 권세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여기 권세는 성영님과 함께 온 천사로 말미암
은 것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무엇으로 배가 불러 있으며 만족하게 된 것이 무엇입니까?
여전히 부정적인 말이 입에 있다면 그 속도 부정적인 것에 지배받고 있다는 증거이잖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찬송가의 가사들도 개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왜이겠습니까? 물론 기존의 가사도
하나님 말씀의 뜻에 합당한 가사도 있고, 영감으로 된 가사도 더러 있어서 기쁜 찬송이 된 것은 있
지만은, 그러나 입에 올려서는 안 될, 아주 잘못된 인본의 가사, 사람의 양심에서 난 가사가 많이
있어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되었지 않습니까? 과거에 제가 불편한 가사들에 대해서 고민이 크게 있었
는데 어느날 성영님께서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같이 자기 혼에 맞는, 인본에서 나
온, 인간 양심이 만든 가사가 되었고, 또 이미 주셨고 이루어졌음에도 이루어주시라고 구약을 가사
로 하여 찬송한다고 하니, 도무지 시대적 감각도 없어 믿음의 능력이 서지 못하고, 사람들의 영혼
이 도무지 영의 믿음으로 돌아올 수가 없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저 다 자기 감정과
기분에 취하여 부르는 것이 되어 하나님과 상관 있는, 받으시는 찬송이냐 하는 것은 놔두고라도,
자신들이 받은 믿음, 영의 믿음으로 올라설 수 없게 하는 것을 도모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성경적이지 않고 영적이지 않은 그것을 입으로 부르니, 그것이 입의 열매가 되어 사단이 영광을 받
는 사단의 찬송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영이 깨어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영적인
관계로 열릴 수가 없는, 성영님이 친히 사람들의 영혼에 역사하시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 되어있다
고 했습니다. 인본의 양심에서 난 것들로 가사가 되어있다는 것을 모를뿐더러 그것을 모두가 종교
심의 감정으로 부르도록 사단이 영의 눈과 귀를 다 막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용
하는 개사한 이 찬송가 가사를 마음의 감동으로 받는 영의 사람은 극히 드물 뿐 영으로 받아야 하
는데, 영으로 받지 못할 이 종교인들이 자기의 흙 대가리, 죄로 아주 캄캄한 그 머리에 가진 고정
관념으로 우리의 찬송을 대하면서, 이단이니 삼단이니 비난하고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 그런 구약적인 인간 양심에서 난 초등적인 것과 같은 어린아이의 찬송을
언제까지 부를 수는 더는 부를 수는 없습니다.
제가 조화들을 생화인 줄 착각하고 속은 적이 꽤 있습니다. 세상에나! 어떻게 그렇게 진짜 꽃처
럼 만들어 낼 수가 있는지, 그 감탄이 절로 났습니다. 얼마나 정교하게 잘 만들어내는지 정말 속
지 않을 수가 없었고 속을 때마다 감탄부터 나온 겁니다. 생화보다 오히려 색감도 참 아름답게
보였어요. 그래서 조화인지 생화인지 만져 봐도 구분이 잘 안 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름
답고 예쁜 조화라 할지라도 그곳에 벌이나 나비는 날아들지 않습니다. 벌, 나비는 꽃이 예쁘고
안 예쁘고는 상관없고 생명을 지속시키기 위한 꿀을 얻어야 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꽃만을 찾아
서 날아듭니다.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사람도 진리요, 생명을 주는 레마의 말씀, 성영님의 말씀을 찾
아 들어야 하는데, 아주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조화의 말씀을 찾아 다니는 겁니다. 생명이 아닌,
생명을 줄 수도 없는 것을 찾아 다니고, 그 조화 같은 말씀들에 속아 그 말에 취하고 다니는 것이
다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자기 속이 거짓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참 말씀으로는 도
무지 살 수 없는 죽은 자이기 때문에 참 말씀을 들으면 견디기가 힘든 거예요. 그래서 참 말씀인
것처럼 만들어 전해주는 조화 같은 말씀들이 자기한테 아주 듣기 편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편한 조화 같은 말씀을 찾아가는 거예요. 또한 그들에겐 찬송가 가사도 조화 같은 것이 너무나 편
하고 맞는 것입니다. 그 영이 맞지 않으니 어떻게 성영님의 것을 입에 담을 수가 있겠습니까? 있
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분명히 갈라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감상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생명을 얻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듣고 '그 말씀 참 좋아' 할 수 있습니다. '아 오늘 말씀 참 좋았
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좋은 말씀으로 끝나야 하는 것일까요? 자기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서,
자기에게 적용하여, 그 말씀으로 사는 능력까지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구원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영생을 주고, 내 병을 치료하고, 나를 말씀으로 양육하시고, 하
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돌보시며, 나로 하여금 이 사실을 전하며 살게 하신다는 것을 연결시
켜 연속성을 가질 때 그 모든 말씀이 그대로 자기에게 생명으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
경의 사실을 알아야 하나님의 약속을 알 수 있고 자기에게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냥
교회오면 한 절 읽고 그 다음에 설교자가 열심히 설교하는 것 듣고 또 돌아가 나대로 열심히 살
다가 또 예배의 날 한 자리 채우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믿음이 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죄 용서, 자기 구원, 자기 복이 되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언약을 알아야 됩니다. 자기가
알고 체험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 때 하나님의 약속의 복이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전
지전능하셔도 못하시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한번 입으로 내신 말씀은 안 했다고 거짓말 하지
못하신다고 하셨고, 회개하지 않은 자를 구원하지 못하시고, 하나님이시라도 회개를 초월하시지
못하신단 말입니다. 회개, 메타노에오 라고 하는 그 말의 뜻이 뭐에요? 하나님 말씀에 죄라고 하
는 것에서 바로 유턴해 버리는 것, 돌아서 버리는 것 이것이 회개입니다. 입으로만 "잘못했습니
다, 회개합니다"하는 것이 회개가 아니라, 돌아서 버리는 것, 깨끗이 돌아서는 것이 회개에요. 그
러니까 하나님은 회개하지 아니한 사람 구원 하지 못하신단 말입니다.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구원하시는 능력은 하나님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살아있다고 했습니다. 살아있다고 하는 것은 오늘도 그대로 이행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어서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역사하시는 말씀이므로 그 말씀
이 자기에게 와 있으면 그대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오게 하려면 성경을 봐야 되
겠죠? 말씀이 자기에게 있게 하려면 성경을 봐야 되겠죠? 말씀을 알아야 되겠죠? 그래서 예수님께
서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러셨어요. 그런데 말씀이 자기 안
에 있지도 않으면서 구하는 거 뭡니까? 그거 바로 육의 것이잖아요? 육체의 것 구하는 것이잖아
요? 말씀이 없는데 어떻게 말씀으로, 말씀이 말씀하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가지고 구할
수가 있겠어요? 예수님이 말씀하는 것은 영적인 것이다 말이에요.
살아있다는 것은 이야기도 할 수 있고, 달라고 하는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다고 성경에 약속했으니 주시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에 약속이 있으면 그대로 믿으라는 말이에요. 내
가 다시 온다 하면 그대로 믿으니 성영님이 오셨잖아요? 오셔서 우리 안에 오셨잖아요? 이 피가
너의 모든 죄를 사하신다 하셨기에 우리는 그 피를 믿으니 그 피가 우리 죄를 다 씻어 버리셨잖
아요? 예수님 다시 오신다 그랬는데, 지금 기다리는 거잖아요? 기다리는 그 믿음 되었으니 그 믿
음대로 다시 오신다 말입니다. 그래서 내 것으로 받아들여서 그것을 기도하란 말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대로 된다는 것, 그것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자신을 말씀에 맡겨버리고, 약속을 믿고, 하
나님의 약속을 나의 것으로 끌어들여서 하나님의 약속이 나를 주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정말로 생명력이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을 분명히 가르쳐주셨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여러 사람에게 계속 말씀으로 언약
하시고, 신9:11-15절에 약속을 돌판에다 새기고, 신28:58, 신31:24,25에 책에 기록하여 궤 옆에 두
었다고 했고, 왕상8:9에 역대하6:11에 돌판에 기록한 것을 언약궤에 넣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셨고, 히8:8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 언약을 두셨고, 히9:18에 언약을 피로 세우셨다고 했어요.
그런데 성영님의 강림이 최후의 언약입니다. 이 모든 언약을 가지고 오셔서 이루신 분이 누구예요?
예수님이세요. 그다음 예수님이 이루어놓으신 이 언약의 모든 말씀을 또 가지고 오신 분이 누구예
요? 성영님이세요. 예수님께서 수천 년 동안 언약하신 것을 다 이루시고, 그 이루신 그 모든 언약
의 뜻을 내 안에 가지고 오신 분이 바로 성영님입니다. 그래서 히8:10에 언약을 우리 마음에 기록
했다고 했습니다. 바로 성영님이 그 모든 언약을 가지고 오시니 우리 마음에 기록이 되었다. 기록
을 했다고 말씀하는 거예요. 예수님 피 흘리실 언약으로 구약의 모든 언약을 한 점으로 모으시고
이 모든 것을 성영님에 의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루어지게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전 언약의
역사이기 때문에 신약과 구약은 천육백 년이라는 긴 세월을 두고 서로 만나 적도 없고 보지도 못
한 사람들이 쓴 책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영강림은 최후의 언약입니다. 우리는 그 성영님을 받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 성영님이 하
나님의 약속을 다 가지고 우리 안에 와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 못 믿을게 뭐 있습니까? 우리 안에
언약을 다 가지고 오셨는데 못 믿을게 뭐 있느냐 말입니다. 믿지 못할 게 뭐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성경을 통해서 배우는 겁니다. 배운 그것을 내 안에 계신 성영님
이 보증해 주시는 것이기에, 그 약속을 내 것으로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복 된 삶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창세기의 창조를 통해서 깨달아 본 것은, 사람이 짐승인 뱀과 대화했다는 것이 바로 언어
사용에 모순이었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잖습니까?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으로 타락이 들어왔
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 뱀하고 동등한 자격으로 대화를 한 그때부터
타락이 왔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샤머니즘의 세계를 보면은 알 수 있잖아요? 타락한 인
간이 똑같이 용이나 뱀 등 온갖 짐승들의 형상들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빌면서 그 형상에게 이야
기하잖아요? 그래서 이미 언어로 하나님께 대적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죄지은 모습입니다. 타락
은 바로 언어에서부터 시작이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하나님께 언어로 대적하고 나오는 것이 인간
의 모습이고, 하나님은 없다고 주장하는데 언어가 사용된 것입니다. 사람의 말은 그 근원이 분명
히 하나님께 있고, 그 말은 하나님과 대화하게 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스스로 주인이 되
어서 자기가 욕하고 싶을 때는 욕하고, 자기가 부정적인 생각이 있으면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자기
에게 자포자기가 있으면 그대로 자포자기하는 말을 내뱉기 때문에, 그런 말들이 어느 순간 자기에
게 맞아 떨어질 때는 자신을 그 말로써 파괴시키는 것입니다.
히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혼을 치료하고 영을 고치고 관절과 골수를 다 찔러 쪼개
기까지 한다고 하는 말은 다 고친다는 말입니다. 영, 혼, 육체, 삶까지 다 고친다는 말입니다. 말
씀이 고친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에 찔러 쪼개기까지 하는 그 같은 역사가
일어나는데, 마찬가지로 사람의 말도 혀의 권세, 그 힘이 있기 때문에 말한 대로 자기 삶에 나타
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늘 슬프고 힘들고 고통이 있는 것은 왜냐? 자기 마음에다가
그것을 두고 그것을 입으로 늘 시인하고 살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러니까 남 탓하지 마세요. 자기
탓입니다. 자기에게, 자기 마음에 그것을 두고 살면서 입의 열매로 자꾸 내고, 그 열매 또 먹고,
또 배불러서 또 내야만이 속이 편한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우리의 타락한 언어를 회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회복시켜야 합니다. 성영님이 오
순절에 오시자 제일 먼저 사람들의 혀를 사로잡았습니다. 행2장에 마가의 다락방에 성영님이 임하
시자 거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혀를 사로잡아서 성영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했습니다. 언어
때문에 인격에게 타락이 왔고 혀 때문에 죄를 졌기 때문에 성영님이 오시자 가장 먼저 붙잡은 것
이 바로 혀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성영님이 오셔서 임하신 것이 참으로 큰 복입니다. 과거 몇 년 전 어느 예수님
의 날, 예배시작 때 성영님께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이날에 예배할 수 있는 것이 너희에게 얼마
나 복인 줄 아느냐? 이날에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는 것, 이 특권이 너희에게 얼마나 큰 복인 줄
아느냐' 하셨습니다. 제가 크게 감동이 되어서 "예 복입니다 아버지. 정말 우리에게 이 날이 없었
다면 우리는 질식해서 죽었을 것입니다. 이날이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힘들고 고통이 있을지라도
예배하러 나와서 아버지의 말씀의 복을 받고, 말씀의 능력을 입고, 나가서 승리하며 살고, 삶 속에
서 예배생활 하면서 사는 이것이 얼마나 복인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날을 아버지께서 복
되게 하셨고 우리에게 큰 복을 언약하셨으니 이 예수님의 날의 이 복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
알게 하여 주옵소서"하고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성영님이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 너무나 큰
복이라는 것 여러분이 아십니까? 진정 아십니까?
말씀을 믿는 사람은 혀가 성영님께 붙잡히는 혀가 되기 때문에 참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영님으로 혀의 권세가 된 자는 먼저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하나님께 믿음을 주시라고, 하나님 뜻대로 믿는 믿음이 되게 해주시라고 하는 기도를
하게 되는 거예요. 성영님께 혀를 사로잡혀 기도하게 되는 것이다 말이지요.
그리고 말씀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어납니다. 그래서 성영님에 사로잡혀서 말씀 공부를 사모하여
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을 말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이야기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
는 거예요. 마음이 달아요. 다는 거예요. 성영님이 임한 사람은 세상 이야기, 먹고 사는 이야기가
아주 듣기 싫어지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예수님 이야기 하고 싶어서 기회만 보는 거예요. 이것은
자기 안에 오신 성영님이 그러시는 것으로 아시면 됩니다. 이렇게 성영님이 임하여 계시면 예수님
이야기 하고 싶어서 마음이 안달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놓고 기도를 하게 되는 거예요.
누구에게든지 예수님을 알려주려고 힘씁니다.
그리고 성영님께 혀를 잡히면 마음에서 감사가 올라와 입에 감사의 열매를 내는 겁니다. 불평이
나오다가도 감사로 덮어버리게 되고 진정한 감사가 나오게 되는 거예요. 범사에 감사하게 되면 또
다른 감사의 조건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랑하여 늘 가까이 하는 자는 말씀으로 하나님과
교제가 되고 축복할 권리와 권세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16:19에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셨는데 바로 매고 푸는 권세를 말하는 것입
니다. 매고 푸는 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천국열쇠를 받은 자가 저주하면 저주를 받고 축복하면 축
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영님의 온전한 지배를 받음으로 말씀의 능력이 온전히 선 자,
믿음이 말씀에 의해 성영님으로 된 자를 통해서 나타내시는 하늘의 권세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권
세를 가진 자는 천사를 부릴 수 있는 권세이므로, 누구도 그를 주관할 수 없고 오직 성영님만이 그
를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저주하면 저주받고 축복하면 축복받는다, 이것도 상식선이 있
지요? 그렇다고 여러분이 누구나 저주할 수 없는 거지요. 그쵸? 저주한다고 해서 저주받으면 좋을
것이 뭐 있어요? 그러니까 저주 못하죠. 그렇다고 축복 아무나 할 수 없죠. 축복한다고 해서 축복
받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매고 푸는 권세를 말하는 거에요.
그 다음에 성영님이 임하신 자는 악한 영들을 복종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에
초점을 맞춘 사람은 그 입의 말로 만물을 인격화 시킬 수 있고, 인격화 시킨 만물에 명령할 때 그
명령을 따라 복종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믿는 자에게 주어진 권세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 권세
가 와 있는 자에게는 자연만물이 해 끼치지 않습니다.
모든 자연만물은 누구를 위해 지어졌을까요? 예수님을 위해 지어졌습니다. 우리 사람을 위해 지어
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누구를 위해 지어졌어요? 예수님을 위해서. 그러니까 모든 피조물은 다 예
수님을 위해 지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믿는 자 안에 예수님이 오셔 계시면 만물이 복
종할까요? 복종하지 않을까요? 복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 계시면, 만물이 복종하는 것입
니다. 이 얼마나 멋진 권세냐 말입니다. 예수님께 복종했듯이 예수님이 내 안에 와 계시면, 내 안
에 계시는 예수님 때문에 만물이 복종하는 것이라 말입니다. 만물이 내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고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셔 계신 것이면 만
물이 복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이 해 끼치러 들어올 수 있습니까? 없는 거예요. 예수님이 계신 곳은 해 끼칠 수 없
습니다. 오늘날 인간이 자연의 해를 많이 받습니다. 그 이유는 사단이 자연만물의 주인처럼 행세
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만물을 섬기도록 하고 있잖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사단이 자연만물을 통
해서 또 사람에게 해를 끼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
의 아들입니다. 자연만물이 해 끼치러 들어올 수 없는 것입니다. 전쟁도 하나님 아버지가 허락지
않으시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북한이 위협하는 것들로 불안해해야 할까요? 두려워
할 것도, 불안해 할 것도 아니라는 것 이미 여러분에게 누차 말씀한 바 있으니, 진정 자기가 하나
님의 아들로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 계시면 전쟁에 의해 죽거나 해 입을 일은 없으니 그 믿음을
확실히 갖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우리 할 일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아버지가
대신 일을 다 치르시고 역사하십니다. 전쟁을 하려는 그 배후는 악한 마귀의 궤계이니 그 마귀의
권세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게 철저히 깨져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이미 마귀의 권세가
깨졌으니 불안 조성하는 것들 예수님 이름으로 물리치고 결박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
께서 그 믿음 있는 자를 통해서 일하시는 거에요. 믿음 있는 자를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사는 동안에는 이런 해 끼침을 받는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분명히 말씀을 드립니다. 자연만
물도 믿는 자에게는 해 끼치지 않는다는 것 복종하게 되어있다는 것 여러분 이 믿음이 있습니까?
병도 인격화 시킬 수 있어요. 말의 근거가 예수 그리스도께 있잖아요.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 근거
를 둘 때, 병이 그 근거에 의하여서 명령을 듣는 겁니다. 눅4:39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렸
을 때 그 열병을 꾸짖으셨다 했습니다. 병이 무슨 귀가 있고 눈이 있습니까? 인격화 시켜서 열병
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했어요. 눅8:24에 제자들과 예수님이 배타고 호수를 건너가다 광풍을
만났는데 예수님께서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했습니다. 꾸짖었다
했어요. 마21:18-22절에 무화과나무에 열매 없는 것을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
지 못하리라고 눈도 코도 귀도 없는 나무에게 명령하니 그대로 복종하여 말라 버렸다고 했어요.
이같이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만물을 인격화 시켜서 명령하면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근가를 예수님의 말씀에 두고 기쁨도 인격화 시켜서 '내게 예수님의 기쁨으로 넘쳐나라'
'예수님의 평안으로 넘쳐나라'하면 내 안에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권세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영님이 나에게 오신 증거입니다. 성영님이 오실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명예에요. 하나님의 명예가 걸려있기 때문에 예
수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 하나님의 명예로 보장해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
하노니 불안아 물러가라'하면 그냥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에게서 근심 걱정은 사라져라'하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근심걱정이 인격화 되어서 도망가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자기에게 필요 없는 것이 들어왔다면 물리쳐 버리면 되는 거예요. 받아들
이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쳐 버리란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만물이 인격화가 되니까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들어와라 명령하면 들
어오는 것이고, 필요 없는 것은 물리치면 떠나간다는 말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쉬
운 방법을 주셨어요. 그런데 너무 쉬우니까 안 믿는 거예요. 무엇인가 힘을 써야 하는 줄 알고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말씀을 이루어 주시겠나,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나겠나"하는 겁니다. 약속
하신 아버지의 복을 자기가 막는 겁니다.
우리의 언어에 예수님의 것으로 담으면 담을수록 하나님의 복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언
어가 변하면 마음도 변하고 그 다음 우리 존재 전부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의지적으로라도 노력하시란 말입니다. 타락된 언어를 바로 하나님의 생명의 언어인 말씀
으로 변화시키시는 그것을 여러분의 의지적으로 노력하시란 말입니다. 무엇보다 성경은 성영님이
우리 언어의 자원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10:20에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
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영이시니라고 말씀하셨으니 그러므로 성영님이 우리 언어의 자원
이 되시는 분으로 믿고 알고 있으니 혀를 잡아주시기를, 친히 자기 안에서 말씀하여 주시기를
기도하고 의지하면서 도움을 구하여야 합니다.
막16:17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
언을 말하며 하셨습니다. 새 방언을 말하며 하신 새 방언은 무엇입니까? 그 동안 온갖 세상 말,
악한 말 해오던 혀를 잡아서 하늘의 언어, 방언을 말하게 하시고 새 언어인 하나님의 나라의 말을
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입에 담아 생명을 말하게 하시고, 예수님을 말하게 하시고, 예
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시는 그 엄청난 복을 말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언어의 자원이신
성영님을 의지하여 혀의 권세가 되어주시기를 구하고, 능력을 구하면, 언어가 바뀌어 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그리고 믿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사용하기를 원할 때 나타나는 것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제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 혀의 권세가 누구냐? 두 곳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으로서 한 곳은 사단인데 부정적인 모든 말은 사단으로부터, 또 한 곳은 하나님인데 하나님의
말씀, 우리가 이 말씀을 입에 담으면 그 말씀이 성영님께서 그 말씀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면서
마침내 그 말씀을 이루어주시는 그러한 복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 오늘 말씀을 통해서 확실히
깨달으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언어에 대해서 이렇게 두 번에 걸쳐서 나누어 보았는데요. 이제 언어 때문에 정말 자기자
신도 마음에 복이 있고 이 입에 복이 있고 그런 복이 우리모두 누구에게나 다 있게 되시는 그러한
은혜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성도로서의 복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복을 갖게 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말할
수 없이 말씀으로 가르치고 능력을 갖추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오늘도 말씀에서 사람은 입에
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된다고,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깨달아 보았습니다. 깨달아 알고 우리가 이 주신 말씀의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해주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 작은 것이라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능력을 갖추게 하여 주시옵시고 이 말씀 말씀들이 심영에서 떠내려가지 말게 하여주시옵시
고 늘 말씀에서 새김질되어서 능력을 갖추는 말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원수에게 혀를
내주는 그러한 정말 불편한 슬픈 일이 되지않게 하여주시옵소서. 오직 혀에 성영님이 권세가 되시
는 혀로 쓰여지게 하여주시옵소서. 오직 예수님의 말씀, 긍정적인 말, 생명의 말, 축복의 말, 감
사의 말, 찬성의 말 담음으로 말미암아 사람들도 은혜를 끼치게 하고 나 자신도 마음에 배불러지
며 그 배불러진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것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만족함을 얻는 그런
복된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원하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
로 축복하고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혀의 말로써 따르는 복과 저주. 소책자.p1-p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