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2월 18일 주일 설교
시리즈 제목: 땅을 위한 하늘의 대리인들 7
설교 제목: 하늘의 문이 열리는 곳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창세기 28:16~17
설교를 위한 묵상:
땅을 위한 하늘의 대리인들은 이 땅에 하늘의 뜻을 펼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그렇게 할 때마다 하늘의 문은 열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다. 성경에는 그처럼 하늘의 문이 열리는 곳이 여러 번 나온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하늘의 대리인들로서 우리의 삶에도 하늘문이 열리는 경험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길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인생에도 하늘문이 열리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이 왜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는지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될 것이다.
설교 개요:
1. 하늘의 문이 열리는 곳: 벧엘
2. 성경이 들려주는 하늘과 땅의 이야기
3. 하늘의 문이 열린 곳: 시내산
4. 하늘의 문이 열린 곳: 모리아산과 오르난의 타작마당
5. 하늘의 문이 열린 곳: 예수님의 변화산과 감람산
***************
1. 하늘의 문이 열리는 곳: 벧엘
얼마 전에 강화도에 다녀왔습니다. 강화도 마니산에는 참성단이 있습니다. 참성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입니다. 단군은 하도 오래 전의 이야기라서 신화라고 여겨지지만 참성단이 지금까지 있는 이유는 아마 우리 조상들이 그 이후에도 계속 하늘에 제사를 지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국경일에는 개천절이 있습니다. 개천절(開天節)은 문자 그대로 보자면, 하늘이 열린 날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하늘을 우러르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늘이 열린 순간들이 나옵니다. 가장 먼저 우리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예수님의 위에 임했다는 복음서의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세 사람의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그 역시 하늘이 열리는 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구약성경으로 돌아가서 보면, 하늘의 문이 열린 이야기가 여러 곳에 나오는데,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아마 야곱이 형 에서로부터 피하여 하란으로 가다가 벧엘이라는 들에서 만난 사건일 것입니다. 야곱은 들에서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그때 땅에서 하늘까지 다다른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천사들은 그 사닥다리를 통해서 하늘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창세기는 그 장면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창세기 28:23~17
야곱은 꿈에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이 그 위에 서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들은 바로 그 약속이었습니다. 그에게 복을 주며 그의 자손이 큰 민족이 되고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하나님이 이 땅을 향해 가지신 원래 계획입니다. 아담에게도 같은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하늘이 열리는 때는 바로 이처럼 하늘의 하나님이 자신의 계획을 땅의 사람에게 보여주실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꿈에서 깨어 놀라서 하나님이 그 들판에 계신 줄은 몰랐다고 말하면서 이곳이 바로 하나님이 계신 곳이니 하나님의 집이고, 여기는 하늘의 문이 열리는 곳이라고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의 이름을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땅의 본래 이름은 루스였습니다. 아몬드 숲이 우거진 땅이라는 의미였습니다.
오늘 저는 하늘의 문이 열리는 곳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성경에서 하늘의 문이 열리는 곳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보고 오늘 우리의 삶에도 하늘의 문이 열리는 곳은 어디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2. 성경이 들려주는 하늘과 땅의 이야기
성경의 시작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이야기를 소개할 때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라고 설명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이 하늘과 땅으로 구성된다고 봅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며 땅은 사람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사람에게 땅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땅을 다스리게 하실 때 그 통치의 목적은 이 땅을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땅을 향하여 복을 명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땅을 다스려 충만하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형상을 땅에 비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땅에 나타내면 땅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형상을 땅에서 실천한다면 땅에는 공의가 강물처럼 흐를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복되게 하고 충만하게 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받아 이 세상에 그 영광을 나타낼 때에는 하나님이 인간과 만나시고 그들에게 은혜와 지혜를 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시고 보여주시기 위하여 하늘의 문을 열고 강림하십니다. 그곳이 바로 에덴동산입니다. 에덴동산은 다른 곳보다 높은 지역에 있어서 물이 그곳에서부터 흘러나오며 인간은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경배합니다.
성경 이야기의 시작부분에서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한 곳에서 사람과 동행하시고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 이야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강림하셔서 자신을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성경 이야기의 마지막에서는 아예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 전체가 이 땅으로 내려와 하늘의 도시와 땅의 도시가 하나 되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그 대목을 요한계시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 21:2~4
성경 이야기는 하늘의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사시던 이야기로 시작하여 마침내 다시 하늘의 문이 열려 하나님의 거룩한 성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와 그 둘이 하나가 되고 아예 하나님이 온 세상을 성전으로 삼으시고 사람들과 함께하신다는 이야기로 완성됩니다. 그 완성을 위해서 하나님은 계속 자신을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시는데 그때마다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하늘의 문이 열린 장면 몇 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3. 하늘의 문이 열린 곳: 시내산
앞에서 우리는 야곱이 하늘의 문이 열린 곳이라고 말한 장소가 벧엘이었음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벧엘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그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 언약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늘의 문을 여시고 나타나십니다. 야곱은 부모의 뜻을 따라 생면부지의 장소 하란으로 갑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살라는 아버지의 축복기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늘의 문이 열리는 곳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나타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최초의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을 맡아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와 같이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는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늘의 뜻을 계시하실 때 바로 그 때가 하늘의 문이 열리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하늘로부터 큰 광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자신이 거스르지 아니하고 이곳 저곳에서 복음을 전했다고 했습니다(사도행전 26:19~20). 하늘의 문이 열리는 곳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여 주시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그렇게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건짐을 받아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살게 된다는 하나님의 뜻을 계시받은 곳은 정말 하늘의 문이 열린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시내산입니다. 시내산에서 모세는 영광 중에 하나님을 만났으며 자기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 전달했습니다. 또한 모세는 산에서 율법을 받고 하나님의 집을 보았습니다. 그 집의 형상을 그대로 지은 것이 성막입니다.
우리는 성막을 회막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성막(聖幕)은 거룩한 천막이라는 뜻이며, 회막(會幕)은 만남의 천막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이 회막인 이유는 바로 거기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나타나시고 그들과 만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성막의 지성소 위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는 광채가 있는 것은 그곳이 바로 하늘의 문임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저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고향인 전남 완도 신지도를 떠나서 광주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광주에서 교회에 다녔는데 어느 주일 오후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평상시에는 주일 오전에 학생부 예배만을 드리고 집에 갔는데 그 날은 오후예배를 드리러 다시 갔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마지막 시간에 목사님의 축도가 끝나고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는지 울면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무언가 저를 덮어주는 따뜻한 기운이 있었습니다. 설교도 기억나지 않고 찬송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저를 감싸준 그 느낌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그후 1996년도에 제가 서울에 와서 새소망교회에 처음 출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마침 학생들을 위한 부흥회가 저녁에 열렸는데 저는 맨 뒷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흥회의 기도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랫동안 마음 속에 응어리진 무언가가 풀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에 교회에 등록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하실 때 하늘의 문을 열고 강림하십니다. 벧엘에서 돌 베개 베고 자던 야곱에게 나타나신 것처럼 말입니다.
4. 하늘의 문이 열린 곳: 모리아산과 오르난의 타작마당
하늘의 문이 열리는 장소는 정말 특별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소개하고 싶은 또 하나의 장소는 모리아산입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백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칩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의 유일한 핏줄인 이삭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아브라함도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살았습니다. 비록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기 고향과 아버지집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왔지만 가뭄을 만나면 그곳을 떠나 애굽으로 갔으며, 그곳에서는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했다가 들통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기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부인의 몸종을 통해서 후사를 보기도 했지만 그 일 때문에 그 가정에는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길 것이냐 아니면 자신의 살 길을 스스로 마련할 것이냐 하는 기로에서 아브라함은 자기의 보기에 좋은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쓰라린 결과를 보았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 앞에 다시 섰습니다. 그는 아들을 바침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가문을 온전히 맡겨야 하는지, 아니면 자기의 생각대로 아들을 지켜야 하는지 선택해야 했습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자기가 죽는 길이며, 다른 하나를 선택하면 자기 목숨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불 같은 시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택을 하기로 했습니다. 마치 에스더가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마음으로 결단했던 것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복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이 급하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들을 살리시고 그 대신에 숫염소를 제물로 바치라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칠 때 하나님이 바로 그곳에 강림하십니다. 그곳이 바로 하늘의 문이 열리는 장소입니다.
저는 또 한 사람에게 하늘의 문이 열렸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사람은 다윗입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골리앗을 죽이고 블레셋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나라를 견고하게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가 노년에 불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나라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에 자기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장정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자 인구조사를 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일이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잘못된 일이라고 충언했지만 다윗은 자신의 생각대로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그때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언자 갓을 통해서 다윗에게 세 가지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삼년 기근이나 적군에게 패하여 그들의 칼에 쫓기거나 아니면 삼일동안 하나님의 사자가 전염병을 온 이스라엘에 내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세번째를 선택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긍휼이 크시므로 하나님의 손에 자신을 맡기겠노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의 사자가 전염병으로 이스라엘을 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쓰러져 죽어갔습니다. 다윗이 환상 중에 보니 하나님의 사자가 큰 칼을 빼어 들고 이스라엘을 향하여 팔을 펴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더 이상 백성들의 죽음을 볼 수 없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
역대상 21:16~17
자기를 죽이시고 자기 백성을 살려달라는 다윗의 눈물어린 기도에 하나님은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오르난에게 가서 그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리겠다고 말할 때 오르난은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그 땅을 그냥 쓰시고 필요한 것을 모두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모든 비용을 합당하게 지불한 후에 정성껏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때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서 그의 제물을 모두 태웠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다윗이 환상 중에 다시 보니 여호와의 천사가 칼을 다시 칼집에 꽂아 넣었습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는 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은 불 같은 시험이 있지만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순종의 자리입니다. 바로 모리아산입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 차라리 자신이 벌을 받겠다는 헌신이 있는 곳입니다. 그곳이 바로 오르난의 타작마당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다윗에게 나타나셨습니다.
5. 하늘의 문이 열린 곳: 예수님의 변화산과 감람산
예수님의 삶에도 하늘문이 열리는 시간이 자주 있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시간은 변화산에서 하늘문이 열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사건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 소개된 이 일이 있기 전 16장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그곳에서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붙들려 고초를 당하고 죽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기 전에 굳은 결심을 하셨다고 소개합니다(누가복음 9:51). 그 구절을 보면 예수님이 자신의 얼굴을 굳게 하셨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는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표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모리아산으로 올라가는 아브라함의 얼굴이 그랬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것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세상의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모든 죄와 악을 예수님은 한 몸에 단번에 짊어지시고 자기 백성들을 건지시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은 자기 백성들을 죄와 사망의 노예생활에서 건지시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하여 이렇게 그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골로새서 2:14~15
바로 그렇게 자신을 드려 백성을 구하는 자리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에게 하나님이 하늘문을 여시고 나타나셔서 그의 순종과 헌신을 기쁘게 받으셨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변화산의 기도 시간에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제자들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것은 다시 하늘의 문이 열려 예수님이 그리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하늘 문을 통해서 하늘의 지성소로 올라가셨습니다.
6. 하늘의 문은 왜 열리는가?
야곱에게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곳은 벧엘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곳은 모리아산 정상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곳은 시내산입니다. 그리고 성막과 성전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인 쉐키나는 그곳에 하늘의 문이 열려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세례식에서,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기도하러 올라가신 변화산에서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열린 문으로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하늘의 성소로 들어가셨습니다.
우리는 오순절날 제자들이 기도할 때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고 하늘로부터 각 사람에게 불이 임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순절 성령강림이 곧 하늘이 열린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지금도 우리들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계시가 내립니다. 우리는 그런 시간을 통해서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의 시민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하늘의 문을 여시고 이렇게 자신을 나타내실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이유는 그들을 통하여 일을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획은 무엇이며 우리를 통하여 무슨 일을 하시는 걸까요?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의 마스터플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시고 그것을 생명으로 충만하게 하도록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의 세계를 맡아 관리하는 대리인입니다. 그 대리인이 하나님을 배반하면 땅이 저주를 받아 황폐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대리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면 그들이 사는 땅은 복을 받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대리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면서 동시에 이 세상을 다스리는 왕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두 직분을 하나로 만들어 ‘왕 같은 제사장’(Royal Priests)이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이 그려주는 본래적 인간은 제사장처럼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왕처럼 자신에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을 가꾸고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비록 아담이 하나님의 동산에서 배반하여 쫓겨났지만 하나님은 계속 사람들을 부르셔서 자신의 계획을 보여주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경륜으로 초청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려주실 때마다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리인들이 제사장처럼 하나님을 경배할 때와 제사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 임하여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리인들이 이 세상의 어떤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때에 하나님은 감동하시고 하늘에서 일어나시고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발견하고 깨닫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도 하늘의 문이 열립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마다 하늘의 문은 열립니다. 히브리서에는 우리가 드려야 할 제사가 무엇인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히브리서 13:15~16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는 찬송의 제사를 드릴 때 그 찬송은 향기가 되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로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할 것입니다. 우리의 찬양으로 우리가 있는 곳이 하늘의 문이 되고 하나님의 집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하늘의 문이 열린 곳이 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우리의 교회와 우리의 지역에 하늘의 문이 활짝 열리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또 하나의 제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그런 제사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필리핀 임마누엘교회에 우리의 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에서 감사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그 편지를 받을 때 우리의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면 사람들의 마음 문도 열리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말씀 속에서 하늘의 문이 왜 열리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일상은 하늘의 문이 열리는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는 성도의 삶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하늘은 저 멀리 구만리 창천에 있는 아득한 곳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하늘은 지금 자신이 있는 바로 그곳에 그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여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일생 다가도록 하늘의 문이 활짝 열린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고 주님이 부르시면 그 열린 문으로 주님께 올라갑시다. 할렐루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