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과 곰탕, 가자미 조림이 있는 곳
향기 이영란
통영시 강구안길 29번지에 있는 산양식당.
기본 메뉴가 곰탕과 비빔밥 정도이다. 최근에 급속도로 올라버린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둘 다 12,000원의 가격은 다소 비싸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집 주인의 후덕한 마음씨와 별스럽지 않은 양념을 넣은 것 같지만 맛있는 깍두기, 자극적이지 않고 조금은 덜 익어 아삭거리는 김치, 그리고 함께 딸려 나오는 가자미조림을 먹다보면 그럴 수 있겠다는 수긍을 하게 된다.
네이버에는 대체로 깔끔하고 맛있다는 평이 많지만 ‘큰 기대하고 가면 실망하고, 그냥 점심 먹으로 간다 생각하고 가서 먹으면 맛있음’이라는 중간 정도의 리뷰와 아주 인색한 별점을 달아놓은 사람도 있다. 뭐 사람의 취향은 다들 조금씩 다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점수를 매겨보라고 한다면 나는 식당 주인의 됨됨이나 반찬의 질이 늘 한결 같아서 실망하지 않는다, 주인 아주머니의 친절하고 편안한 말로 좀 더 맛있게 생각되는 밥을 먹고 올 것이다 정도인데, 뭐가 어떻다는 건지 긍정적이긴 한데, 정확하게 알 수는 없는 애매한 추천평인가?
이렇게 말길을 열었다. 내게 산양식당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들어간 수향수필 문학회의 시간이다. 2개의 좌식탁자가 놓인 방에서 너 댓명이 앉아서 회의를 하면서 수향의 사람들을 만나고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상상하기도 하고, 또 글로써 만나기도 했다. 그곳에서 늘 깔끔한 곰탕과 비빔밥과 가자미 조림과 부추전을 먹었다. 임기가 2년인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조직의 사람들과 분위기를 거의 알지 못하는 나, 전임 회장님과 회원 2분이 감사였고, 또 한 분은 두루두루 인맥을 맺고 있는 편집장이 주로 모였다.
그곳에서 가졌던 첫 회의의 당황스러움을 나는 잊지 못한다. 나는 사무국장이라는 자리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다. 자율성의 범위가 넓고, 또 여러 가지 번거로운 업무도 많은 자리였는데, 내 머리 속에는 기본적인 구도가 그려져 있지 않았다. 한번도 해 보지 않았던 일이었기에 기본적인 회의진행 방식도 잘 몰랐고, 그렇게 딱딱한 회의 격식이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지도 않았다. 아무런 정보 없이 참석했기에 회의자료 준비를 해야하는 것인지, 무엇을 해야하는지도 몰랐다. 당연하지 않은가. 회장님도 사정은 비슷하여서 어설프게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감사 두 분 중 한 분이 자신보다 훨씬 연배가 있는 회장님에게 이러쿵 저러쿵 가르치기를 시작했다. 회의는 엄격한 식순에 따라서 진행해야 하고, 식순에 어울리는 회장 인사말과 진행 멘트에 따라 흘러가야 한다고 얼굴에 핏대를 올리며 이야기했다. ‘회장님이 되어 가지고, 그게 뭡니까?’는 막말에 가까운, 감정을 잔뜩 실은 성토를 해 대었다. 나는 설령 그런 게 있다 치더라도 자연스럽게 앉은 식당에 앉아 그토록 딱딱한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에 수긍이 어려웠고, 그렇게 예의에 어긋나는 방식과 처음 보는 사람(나)에 대한 어려움도 없이, 처음 자리를 맡은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모습에 나는 그만 몹시 빈정이 상하고 말았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담? 나이도 있고, 적어도 글을 쓴다는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이라니’ 나는 기가 막혔고, 보기 흉하기 이를 데 없었다. 2년여 정도가 지난 일이지만 글을 쓰는 사람의 복수는 이런 식으로 가능하다. 그렇다. 나는 나 혼자 글로 쏟아내는 이런 식의 복수를 꽤나 통쾌해 한다.
그렇게 나의 수향수필 사람들에 대한 첫 대면은 다소 충격적이었고, 실망스러웠고, 사무국장 자리를 수락한 나의 선택에 대해 후회가 따라 붙는 시간이 상당히 오래갔다. 회원들 사이의 불화, 회원들에 대한 사정도 일에 대한 사전지식도 거의 없는 내게 서로 불쾌함을 숨기지 않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첫해의 가장 중요한 행사였던 49집 발간 출판기념회를 무사히 마치고, 학교 주무관님들의 도움을 받아 수십 군데에다 우편발송을 하고, 예산지원사업 시스템이 잘 이해되지 않아 몇 날 며칠을 버벅거리며 정산보고를 마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계 정산 때에는 영수증이 없다고, 입출내역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소한(?) 이유로 지적을 들었다. 평소에 내가 관계 맺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과 전혀 다른 성격의 대화가 내게는 무척 스트레스였다. 나는 그만둘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내가 그만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번거롭게 될 것이고, 또한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지 못하게 된다는 자책과 또...... 또 그 마지막 이유가 결정적으로 1년을 더 지속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어떤 일에는 반드시 동전의 양면이 있으며, 내가 지낸 1년은 어두운 면만 잔뜩 보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보건대 틀림없는 일이었다. 나머지 면을 얻지 않고 중도에 포기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도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2년 임기를 거의 다 마쳐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사무국장으로서의 자질은 거의 무능에 가까울 정도로 평가 받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코로나 시국이어서 많은 부분 업무가 덜어진 상태였고, 신출내기 사무국장의 역량을 고려하여 편집장도 따로 있어서 그나마 수월했다. 나는 무능한 국장이라는 평이 괜찮았고, 앞으로도 그런 평을 받아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면 그만큼 내 안은 가벼워진다고 생각한다. 높은 점수든, 낮은 점수든 어쨌든 나는 그 일을 놓지 않고 완수해 내었다. 마라톤을 완주해 내었다. 기록이야 어떻든 완주하는 것 자체가 큰 일이 아닌가.
동전의 다른 면을 보았냐고 물어봐 주길 바란다. 물론이다. 올 한해 많은 회원들이 책을 출간하였다. 첫 책을 낸 사람, 시집만 예닐곱 권을 내다가 수필집을 낸 사람, 작년에 이어 또 출간한 사람, 어디 어디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사람, 예술인 지원금을 받아서 낸 사람, 그냥 자비 출간한 사람 등 여러 경우의 수가 있었다.
작년에는 자신의 프로필에 수상경력 한 줄을 빠트렸다고 역정을 내는 꼬장꼬장한 노인네를 보았다면, 올해는 80세가 훌쩍 넘어서도 열심히 글을 쓰고 다듬고 다듬어 책 한 권으로 엮어낸 열정 가득한 한 인간이 보였다. 미국을 오가며 지내는 온화한 퇴직교수님은 수향이라는 정거장을 애정어린 발걸음으로 들러 주신다. 어떤 퇴직 교사 분은 돌아가기 몇 달 전까지 글을 써서 수향 문집에 글을 내어 주셨다. 출판기념회에서 배우고 갈고 닦은 시조창을 긴장감 없이 편안한 자세로 한 곡조 뽑아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70이 넘으셔도 긴 파마머리와 예쁜 화장을 하시고,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하루 4시간만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도 계셨다. 시를 쓰고 싶어하시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닳기는커녕 더 선명해지고 반짝거린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혹시나 어깨너머로 그 비법을 훔쳐 볼 수 있을까 싶어 한번 놀러가기로 했다. 그 선생님이 내신 책을 책갈피에서도 한번 읽고, 그 아름다운 선생님을 모시고 한번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수향수필의 모든 이야기는 산양식당에서 발현한다. 내게 산양식당은 그런 사람을 만났던 이야기와 어려웠던 시간과...... 그리고 비빔밥과 곰탕, 가자미 조림이 있었던 시간이다. 제철이 돌아오면 일도 없이 무던히 가서 아직 먹어보지 못한 멍게비빔밥을 먹어보려고 한다.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