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아침 저녁으로 한층 선선해진 바람이 부릅니다.
그녀들과 통영의 길을 걸어보기로 약속했습니다.
중앙동 우체국 앞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만나러 가는 걸음이 설렙니다.
도착, 유치환 시인의 '행복' 시비가 그녀들과 같이 인사합니다. 시인의 삶, 사랑을 듣고 묻고 나누며 이야기합니다.
걸음을 옮깁니다. 예전 통영성 남문 자리를 지나 얕은 오르막 길을 들어섭니다. 좁고 가느다란 실핏줄 같은 통영의 길속으로 걸음을 나섭니다. "내가 사는 통영에 이런 길이 있었나?! 통영 살면서도 이길은 첨 와본다." 우리들은 연신 신기해하며 눈아래 보이는 강구안을 내려다 보고 옛기관장들이 사택으로 사용했다는 집들을 지나 서피랑에 닿습니다. 땀을 식히며 눈에 들어온 통영의 모습에 감탄사를 내지릅니다.
"좋다! 예쁘다!"
내가 사는 곳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슴에 다시 꾹 눌러 담습니다.
다시 길을 찾아 걸음을 내디딥니다.
골목을 따라 박경리 작가님의 흔적을 찾고 훑습니다. 작가님의 글귀가 곳곳에 새겨진 좁은 골목길이 정겹습니다. 작가님의 작품 '김약국의딸들'에 나오는 하동댁의 모델로 추정되는 한옥 게스트하우스도 보고 맞은편 두석장인의 집도 확인해봅니다. 윤보선 대통령의 영부인이셨던 공덕귀여사 생가도 지납니다. 작고 좁은 골목에 문학과 예술과 역사가 있어 크고 넓어 보입니다.
걸어서 누비다 보니 출출해집니다. 목도 마릅니다. 몸이 카페인을 원합니다. 충렬사 내부는 여러번 다녀간 곳이라 통과합니다. 대신 건너편 작은 도너츠집에서 도너츠를 사고 조금 걸어 내려와 일찍 문을 연 카페에 들릅니다. 커피를 주문하고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도너츠를 흡입합니다. 아~~커피와 함께합니다.
우리들의 얼굴이 웃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도 웃습니다.
오늘 날씨 만큼이나 맑고 환합니다.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예전 장공장 터와 굴뚝을 보고 복개천 골목을 따라 해방교를 지나 통영시립박물관에 들릅니다. 통영군과 충무시로 각각의 행정구역 지명을 갖고있던 시절 통영군의 군청사였던 곳입니다.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사라지거나 없애지 않고 지금은 이렇게 시립박물관으로 역사를 더해가는게 좋습니다. 전시를 구경합니다. 이순신과 삼도수군통제영, 선조들의 생활예술품들과 그속에서의 문화를 배웁니다.
걸음은 다시 골목을 들어서 윤이상선생께서 작곡한 각학교 교가가 골목 담벽에 조용히 있습니다. 예전 고등학교 다닐때 매일 다니던 길입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고등학교 교가도 있어 기억을 되새겨 힘차게 불러봅니다.
웃음이 나고 재밌습니다. 지금 이 골목을 다니는 사람들도 오고 가며 자유롭고 편하게 보면서 한번씩 불러 볼 수도 있겠지요.
골목길은 계속 이어져 윤이상기념관에 다다릅니다. 여기도 내부는 여러번 들른 곳이라 통과하고 외부에 전시된 통영의 옛사진들을 보며 그시대에 그와 함께 했던 문화 예술인들과 지난 날들을 이야기합니다.
걸음은 이어져 해저터널로 항합니다.
어릴적 이곳을 빨간버스를 타고 다닌 기억을 떠올리기도하고 전시된 해저터널의 역사도 한 번 더 배우는 시간을 가집니다.
바다속을 지나 환한 육지섬 미륵도에 닿습니다.
계속 걷습니다. 봉수로를 오르면서 오른쪽으로 살짝 방향을 옮겨 열녀 효자 비석군도 보고 몇걸음 옮겨 인간문화재들의 비석군도 지납니다. 걸음이 멈춘곳은 작은 책방과함께 출판사까지 하고 있는 '봄날의 책방' 입니다.
책구경 통영구경, 그녀들의 눈이 반짝입니다.
마스크에 가려진 입가에 행복의 미소가 가득함이 눈에 비칩니다. 손에 행복과 통영을 집어 듭니다.
이번 그녀들과 함께하는 통영길 걷기는 이곳에서 마무리합니다.
실핏줄같은 통영의 골목길을 걸음 걸음으로 마주하고 경험한 날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내가 살아가는 곳의 역사 문화 예술 자연경관을 만났습니다. 가슴이 가득해지고 마음이 뿌듯해졌습니다. 걸으며 보고 익히는 통영은 다음 걸음도 기대하게 합니다.
202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