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코스 : 율곡 습지 공원 – 장남교
경기 둘레길 8코스를 걷고자 율곡 습지 공원에 다시 서니 코스 모스 축제는 끝이 났지만, 아직도 코스모스는 활짝 피어 있다. 버려져 있던 습지를 생태 공원으로 개발하여 파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재탄생한 꽃밭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에서 개과천선 改過遷善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아름다운 코스모스는 가을의 정취를 한없이 느끼게 하는데 나는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백만 송이에 이른다는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그저 심술로써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람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라고 자위하며 지나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에 경기 둘레길 8코스의 첫걸음이 무겁다.
관광객들은 기쁨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고 있지만, 율곡 습지 공원에서 율곡을 만나지 못함을 아쉬워할 때 학자의 숲이 있었다. “ 율곡 이이는 13세 때 진사 초시에 합격하고 이후 아홉 차례의 과거 시험에 모두 장원해 ‘구도 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어졌다.
23세 봄 예안의 도산으로 이황을 방문했고 그해 겨울의 별시 문과 초시에서 천도책을 지어 장원급제하였다. 장원급제 답안지 천도책의 첫 문장에서 ‘만 가지의 변화의 근본은 하나의 음양陰陽일 따름입니다. 이 기氣가 움직이면 양陽이고 고요하면 음陰이 됩니다. 한번 움직이고 한번 고요한 것은 곧 기氣이고 움직이게 하고 고요한 것은 이理인 것입니다.”<학자의 숲 안내문에서>
알 수 없는 말이다. 뜻이 하나로 일치하여 가는 길이 서로 같은 벗들과 함께 학당을 이루어 학문을 함께 논함을 인생에서 하여야 할 일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여 놓고도 배움을 게을리하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자가 눈앞에 있어도 그 어른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으니 눈먼 소경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을 바라보니 비가 올 것 같이 구름이 잔뜩 하다. 어쩌면 지금의 내 마음과 같을까? 오늘 장남교까지 18.3km를 걸어가야 하는데 첫 출발부터 쇠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 속에 걸어간다.
마을의 이름은 율곡리이고 수목원은 율곡 수목원이며 공원은 율곡 습지 공원이고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율곡 선생을 배향한 자운 서원이 있고 학문을 논한 화석정 등 율곡의 온기가 가득한 곳에서 그가 지은 격몽요결擊蒙要訣의 한 구절을 떠 올릴 뿐이다….
“ 처음 배우는 이는 먼저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聖人)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해야 하며,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별 볼 일 없게 여겨 물러나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일반 사람[衆人]도 그 본성은 성인과 똑같다.
비록 기질에는 맑고 흐림과 순수하고 뒤섞인 차이가 없을 수 없으나, 참답게 알고 실천하여 젖어 온 구습(舊習)을 버리고, 그 본성(本性)을 되찾을 수 있다면, 털끝만큼도 더 보태지 않아도 온갖 선함을 다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반 사람이라 해서 성인이 될 것을 스스로 기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맹자가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하시면서 말했다 하면 요순(堯舜)을 들어 실증하면서, ’사람이면 누구나 요순처럼 될 수 있다.‘. 하였으니, 어찌 우리를 속인 것이겠는가. “<격몽요결 입지에서>
두포 삼거리에 이르니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글자 아래 단양 우씨 충정공, 안정공 망향 제단 입구를 알리는 돌비석이 세워져 있다. 돌 비석의 망향이란 두 글자에서 이산의 아픔을 감내하며 고향을 그리며 선조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란 생각에 잠시 이산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였다.
휴전선과 매우 가까운 이곳은 눈으로 훤히 북녘땅을 보면서도 갈 수 없는 현실에 분노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인데 고향을 북녘 하늘 아래에 두고 피난 온 실향민들에게는 피가 역류하는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다.
경기 둘레길은 두포삼거리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온 길을 버리고 산길로 진입하였다. 딱딱한 포장도로에서 보드라운 흙길이 되어 사뿐사뿐 걸어가는데 나이가 지긋이 들어 보이는 노인(?)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이 노인은 서울에서 경기 둘레길을 걷고자 첫차를 타고 와서 걷다가 간식을 먹고 잠시 쉬고 있다고 하였다. 이 땅을 걸어가야 할 젊은 사람은 걷지 않고 휴식을 즐겨야 할 나이 드신 분들이 우리 땅 걷기에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먼저 가겠습니다. 라고 인사를 드리고 걸어가는데 박찬일 사장에게 전화가 왔다. 너무 앞서나가 회원들이 따라갈 수 없으니 잠시 쉬었다가 가자고 한다. 오늘은 세 사람이 우리의 걷기를 지원해 주기 위하여 참여하였다.
부부로 참가하신 분은 김포시에서 왔고 또 다른 한 분은 가평에서 첫차로 오신 것이다. 서울 백두 클럽의 회장 박찬일 사장님과 인연이 있어 오늘의 걷기에 참여하였다. 비록 경기 둘레길 완주를 위해 오시지는 않았을지라도 우리의 걸음을 축하해 주기 위해 그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오셨으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잠시 기다리니 모두가 도착하여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휴식을 취하며 간식을 먹었다. 과일을 먹고 있을 때 서울에서 첫차로 왔다던 그 나이 드신 분이 지나가는데 다리가 굽어 절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까? 그 나이가 드신 분의 다리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경기 둘레길을 걷고자 아침밥도 먹지 않고 몇 백릿길을 이웃 동네 방문하듯 찾아와 꿋꿋하게 걷고 있는 불굴의 의지를 본보기로 삼아야 할까? 하지만 걱정도 앞선다.
간식을 먹고 내려서는 산길의 끝자락에서 길 찾기에 주의를 요했다. 다행히 표지목이 세워져 있고 표지기를 부착하여 힘들이지 않고 올바르게 둘레길을 이탈하지 않았지만 방심하면 길을 잃기 쉬운 지역이다.
산길을 내려서니 북파주 농협 저장소가 있는 파주 읍내였다. 도로를 따라 걸어가 금파교를 건너서 둘레길은 좌측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37번 국도와 헤어지고 눌노천의 제방을 걷는다.
뒤로는 파평산이 솟아 우리를 보살펴 주고 앞에는 동산이 어서 오라 손짓하는 길이었지만 곧바로 37번 국도를 횡단하여 좌측에는 임진강, 우측에는 37번 국도를 벗으로 삼고 걸어가지만, 자동차 소리가 요란하였다.
임진강을 따라 걸어가면서 길가의 무성한 나무들로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을 바라보지 못하여 매우 아쉬움을 느낄 때 둘레길은 적벽 산책로란 이름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우레탄을 깔아 걸어가기에 매우 편안하였다.
적벽 산책로를 따라 임진강 적벽 안내문이 세워진 지점에 이르니 쉼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임진강은 삼국시대 때는 칠중하라고 불렀다. 철원지역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그 용암이 강을 따라 흘러 검붉은 수직 바위가 병풍처럼 이어져 졌는데 이 구간의 적벽이 그 형상이나 경관 면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장단 석벽 좌우로 비단처럼 펼쳐지는 가을 단풍인 적벽단풍赤壁丹楓은 임진강 8경 중 제7경이라고 한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아직 되지 않았다. 적벽 산책로에는 2개의 쉼터가 있는데 이곳이 2번째의 쉼터가 되어 여기서 점심을 먹지 않으면 적당한 장소가 없을 것 같아 간식을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5명이 준비한 음식물을 한곳에 모으니 진수성찬이었다. 떡, 약식, 향기를 품는 현미밥, 김치, 고추장, 상치, 치커리 된장. 국 등 한정식이 한 상 차려졌다. 이렇게 배불리 먹고 걷게 되면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다.
밥에 과일로 배를 채웠다. 아쉬움이 있다면 커피 물이 없어 식후 커피 한잔을 못 한 점이 아쉬웠지만 어디 완벽할 수가 있을까? 샘솟는 힘으로 장파리에 이르니 장남교(원당리) 9.4km를 알린다.
율곡 습지 공원에서 자신을 경책하며 부지런하게 걸어왔지만 이제야 걸어가야 할 거리의 반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급할 것이 없다. 결국, 우리의 느림보 거북이 같은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지라도 그 걸음이 쌓이고 쌓이면 금새 목적지에 이를 것이다.
가는 길이 일자로 뻗어있다. 끝도 보이지 않는 길은 걸을 때마다 만나 이제는 다정한 친구가 되어 오히려 반가웠다. 이 길의 마을도 예외는 아니다. 멀리 작은 동산이 솟아있어 그 산을 의지하여 집을 지었고 넓은 땅이 있어 곡식을 심어 밭이 되었다.
아름답게 지으려고 연구하고 탐구한 인간의 지혜로 완성한 마을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생활의 터전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생기가 넘치는 정겨운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런 곳을 걸으면서 고즈넉한 마을로 불렀고 논, 밭에서 넉넉함과 풍요로움을 느꼈는데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기에 걸으면 걸을수록 즐거움이 샘솟아 피곤한 줄 모르고 걸었으니 우리의 걷기가 바로 삶의 활력소가 아니고 무엇이라! 자장리를 지나면서 37번 국도와 다시 만나고 서로의 친구가 되어 나란히 걷고 있는데 빗방울이 굵어져 비옷을 입었다.
두지리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내려서니 두지리 나루였다. 이곳의 명소는 황포 돛배이다. 황포 돛배는 조선 시대 조운선을 모델로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배가 출발하여 맑은 날이면 개성의 송악산이 뚜렷이 보이고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고랑포 여울목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데 뱃놀이의 백미는 자장리 적벽의 경관이라 한다.
아니다! 황포 돛배를 타고 이미자 선생의 히트곡 황포돛대를 부르며 뱃놀이를 하는 것이 제 일경일 것이다.
황포돛대 / 이미자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배는 어데로 가느냐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
파도소리 구슬프면 이마음도 구슬퍼
아~~ 어데로 가는배냐
어데로 가는배냐 황포 돛대야!0
콧노래를 부르니 불현 듯 황포 돛배를 타고 싶은 충동이 인다. 욕망을 참아내는 것이 자재력이었기에 황포 돛배에서 적벽을 감상하는 적성 8경의 제1경인 임진강 적벽 뱃놀이를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미산 윤의섭 선생의 시 황포돛배를 읊조리며 대신한다.
임진강 황포 돛배- 미산 윤의섭
임진강 고랑포에
장단長湍의 옛 추억이 아른거리고
반구정의 청백리 혼
후세의 귀감이요.
화석정의 우국혼
오늘에 되새기는
명인의 발자취 수없이 많아
강변의 참게
풍어 이야기.
장단콩 두부 요리
술상의 정담이 끝이 없구나.
강물 위의 오리들은
금줄을 넘나드는데
갈라진 장단 사람 서로 소식 모르니
가을마다 찾아오는
울음 없는 기러기
혹시나 소식 올가 울며 반긴다
빗방울이 그치어 우비를 벗었다. 멀리 감악산이 손짓한다. 경기 오악의 하나인 감악산은 산의 바위가 검푸른 빛을 띠어 감악산이라 하였는데 고스락에 올라 바라본 임진강의 유장한 흐름과 개성의 송악산의 풍광이 십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속에 남아 있다.
최근에는 감악산에 출렁다리를 설치하였고 임꺽정 봉을 바위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하늘길을 조성하여 감악산의 새로운 명소로 거듭나 그 옛날의 감악산이 아니다.
감악산이 나를 부르는 것일까? 장남교는 앞에 있는데 자꾸만 뒤를 바라보며 걷는다. 장남교를 건너면 연천군이다. 경기도의 3개 시 김포시, 고양시, 파주시를 지나 연천군에 이른 것이다.
● 일시 : 2022년 10월2일 일요일 흐림
● 동행 : 박찬일 사장님 . 김헌영 총무. 후니파파. 레인보우
● 동선
- 09시40분 : 율곡 습지공원
- 10시15분 : 두포삼거리
- 11시20분 : 금파교
- 11시55분 : 임진강 적벽안내문. 점심
- 13시55분 : 자장리
- 14시40분 : 두지리 쉼터
- 15시20분 : 두지 나루 황포돛배
- 15시35분 : 장남교
- 15시51분 : 고랑포길 들머리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18.5 km
- 소요시간 : 6시간1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