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원본(原理原本) - 제1권
[08] 왜 타락하게 내버려 두었는가
하나님이 본래(本来) 사람을 지으신 것은 개성실체(個性実体)가 하나로 완성하여 영원할 수 있는 한 이상존재(理想存在)를 보존(保存)할 수 있도록 지으셨는데 그 기간(期間)까지가 사람에게 있어서 성숙시기(成熟時期)까지 표준완성(表準完成)해야만 영원하신 존재의 터가 확보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실체(実体) 사랑을 주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 기간까지 성장을 통하여 완성까지 도달하게 하시는 것은 직접 하나님의 주관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고 그저 창조원리(創造原理)를 통하여서 완성 성숙단계(成熟段階)까지 도달하게 하도록 지으셨기에 하나님은 원리 주관격(主管格)으로 계셔서 그 결과를 보아가면서 하나님은 기뻐하시었으며 빨리 이상(理想) 성사(成事)가 지극한 요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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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하나님의 사람 대한 이상(理想)은 즉 하나님의 이상은 자유이상(自由理想)을 표준(表準)하고 사람을 지으셨으며 그 이상(理想)이 조금도 손실이 없도록 지으셨다.
그러므로 그 자유이상(自由理想)을 찾아 성사할 수 있는 중심궤도(中心軌道)는 선(善)을 중심하고 하나님의 뜻을 성사할 수 있는 제1존재(第一存在)이다. 생심(生心)이 사람 자신에게 있어서 부여받은 근본 터로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완성기(完成期)까지 도달(到達)할 때 자기도 하나님이 이러쿵저러쿵하여서 자유이상장성(自由理想長成)을 간섭하지 않아도 뜻에 함께 할 수 있도록 양심과 생심은 그 중심 뜻인 선(善)을 곧바로 향하여 나가도록 지향(指向)하여 가게끔 지으셨기 때문에 간섭하거나 주관(主管)하지 않았다.
그것은 제1존재(第一存在)의 창조완성을 무시하게 하는 것인 동시에 원리(原理)를 어기는 것이므로 즉 원리적으로 완성하여 뜻을 성사(成事)하고자 하는 것이 근본으로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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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나님이 그 자체를 직접 주관하여 사랑하지 아니하였는가 하면 하나님은 원리미완성(原理未完成)을 하여 개성(個性) 자체(自體)를 미완성(未完成)한 것을 사랑하여 일체적(一体的) 이상(理想)을 성사(成事)하였으면, 미완성체(未完成体)의 불완전적(不完全的) 사실(事実)을 아심으로 그 근본(根本) 원리표준(原理表準)까지 도달하기를 기다리심이 중심적 뜻이었다.
만일 미완성(未完成) 때에 사랑을 받으면 사랑받은 그 자체는 사랑만을 요구하여 근본 개성원리완성(個性原理完成)을 할 수 없는 사실이 되며, 또 원리자체(原理自体)를 반(反)하는 것 자체나 사랑하는 자체가 즉 이상(理想)사랑을 성사(成事)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고로 사람을 지극(至極)한 사랑 이상형체(理想形体)를 완성코자 함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완전한 하나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로 성숙(成熟)하였으면 원리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완전한 아름다운 모습으로써 보여질 수 있는 동시에 그 자체들의 사모(思慕)하심이 직접 하나님의 자체로서 통할 수 있는 작용의 시작을 볼 수 있게 지으셨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계셔서 사람이 갖고 있는 사랑이 완성되면 자연적(自然的) 원리(原理)로 사랑할 수 있는 자극(刺戟)을 느껴 사랑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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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하늘 사랑은 양(陽)이면서 완전한 음(陰)적 사랑의 대상성체(対像性體)는 사람이 사모하는 사랑하는 마음의 기동(起動)의 그 상대존재(像対存在)였다. 그러므로 그때까지는, 하나님은 원리주관격(原理主管格)으로 계시였다. 그 시기에 사람들의 타락(墮落)이 시작되었다.
사람도 자유궤도(自由軌道)로 천사장(天使長)도 자유이상궤도(自由理想軌道) 세계의 법리(法理)로 활동하면서 살 수 있는 자유존재(自由存在)들이었다.
그러므로 그 자유이상(自由理想) 중심한 자유 성사(成事) 세계를 조성하여서 그 창조 전(全) 자유이상(自由理想)을 완성하기 위하여서 개성완성(個性完成)과 자유체세계이상(自由体世界理想) 존재들이 하나님의 근본이상(根本理想)이었다. 그러면 사랑 이상(理想)을 완성하여야만 목적이 달성된다.
그러므로 자유이상(自由理想)을 기대(基台)로 하고 그 이상의 사랑 이상(理想) 원리(原理) 창조체(創造体)들이 영원히 존재하여 하나님의 근본(根本)사랑 이상(理想)을 표현화(表現化)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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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인간세계에서는 자유를 찾기 위하여 지금 야단하고 있는 이 원인은 타락한 연고(緣故)이다. 이 자유를 찾으면 이상자유(理想自由)를, 자유이상을 알고 찾으면 사랑으로써 이상적인 사랑으로 역사(厂史)는 필연적(必然的) 궤도(軌路)를 밟게 될 것이다. 그것은 원리(原理)를 봐서도, 이론적(理論的)으로, 가져다주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자유와 사랑 이상(理想)이 한 기대(基台)로 하여 개성완성(個性完成)이 요(要)하는 곳으로 인류 역사는 흘러 나가는 것의 시작(始作)을 보려 하는 복귀(復帰)로 되는 사실(事実)을 알려주는 증거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왜 타락(墮落)하도록 내버려 뒀는가라고 모든 사람은 말한다. 사람들이 자유무대(自由舞臺)의 세계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완성점(完成點) 도달 때까지는 원리주관(原理主管)이니, 그 자체(自体)들의 행동을 직접 간섭하지 않고 양심(良心)과 생심(生心)을 통하여 본래의 노선 확보를 요구하게 하였기에 사람으로서도 하나님을 직접 붙들 수 없는 원리적(原理的) 거리(距離)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고로 부를 수 있는 정도(程度)는 완성한 사랑이 성사(成事)하여야만, 생각만 하여도 하나님을 알게 되며 응(應)하게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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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때까지는 직접적으로 알리려는 사람 자체 행동이 나타나지 않고 그 행동의 결과만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고로 사탄의 행동에 따라 움직이는 그때는 사람이 양심적으로나 생심적(生心的)으로나 합하여 행동하여 하나님이 직접 자극할 수 있는 행동으로는 아직 도달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행동 결과를 보아 그 타락된 사실을 아시게 되신 것이었다.
이렇게 지으신 것은 완전한 사랑을 하기 위하여서 간접적 대립성을 두신 것은 극(極)에 계시는 하나님이 사람도 유형체(有形体)의 극에 존재(存在)로 있어, 서로 합체(合体)할 수 있는 전기원리(電氣原理)와 한가지로, 지극히, 큰 사랑을 시작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㊉라고 하면 사람의 사랑 ㊀은 직접 대할 수 있는 것으로, 존재 완성이 미완성한 것이니 타락행동(墮落行動)들은 ㊀에 작용함이었다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감응(感應)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지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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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고로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자체로서는 극(極)에서 극의 속내(属內)를 통하는 사랑을 하시고자 하여서 지었기에 만물(萬物) 자체들의 사랑까지 인간을 통하여야만 연결되게 되었음을 우리는 알려야 한다.
이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일이 타락(墮落)이면서 선(善)의 존재 외(外)의 존재인 비원리존재(非原理存在) 법리무대(法理舞臺)로 출현하여지게 되니 선(善)과 악(惡)의 분기점(分岐点)을 만들어 놓고야 말았다.
그러나 원리적으로 사람의 중심이니 이 사람의 번식발전(繁殖發展)과 함께 역사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발전하는 세계의 역사 궤도는 자연계의 원리적 움직임 위에 그냥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세계는 악(惡)에 속하는 주관 본의(主管本意) 아닌 비공식 주관궤도(主管軌道)로 목적 없는 세계로 달리는 예(例)로 시작되니 그 세계의 생존(生存)을 대(対)함이 어찌 안락하고 평안했겠는가? 이렇게 된 것은 사탄의 공작(工作)이라고 지금 알게 될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를 타목적처(他目的處)로 끌어온 그 중심목적(中心目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인생은 무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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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렇게 되는 것이 창조본의(創造本意)가 아니심에 하나님은 근본(根本)대로 다시금 찾아 창조본의(創造本意) 이상체(理想体)로 회귀(恢帰)하고자 하는 것이 역사를 통하여 복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노정(摂理路程)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중심하고 선신(善神)과 악신(惡神)의 대립 시작의 결과는 역사발전사(厂史發展史)를 지배하게 되었다. 즉 사탄은 원수(怨讐)의 부모격(父母格)으로 사람을 주관(主管)하고자 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근본(根本) 자녀(子女)를 찾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것을 안 우리는 어찌 아버지 어머니 앞에 회개(悔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이 기독교(基督敎)의 회개의 근본의의(根本意義)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회개하지 않았을 나(우리)의 존재가 지금 회개하는 것은 부모를 몰라보고 박대해 왔다는 것을 애달픈 마음으로 통분(痛憤)하게 되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결합(結合)의 정경(情境)이다.
이 시간의 기쁨이야 무엇에 비하랴! 그러고 보니 근본만사(根本萬事)는 평안(平安)으로 원리(原理)로 시작하니 양심적 해방의 시작도 참 기쁨의 시작이다. 이것이 새 복음(福音)의 중심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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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세상은 악(惡)이 먼저 시작하였기에 그 뒤를 이어 선(善)의 완성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 목적하는 하나님의 뜻이나, 또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될 의무이니 기필코 이룰 때까지 하늘은 승리하고야 만다.
그러므로 세상은 지금 악(惡)이 주관하는 시기이니 악한 자가 이기는 세계에서는 선(善)한 자들이 악(惡)에 많이 밟히고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는 거짓 것이 먼저 왔다가 가는 것이 세상에서 보이는 지금 현(現) 사회실상(社会實狀)이다. 그 이후에 선(善)은 비로소 시작하여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리로 지음받은 온 천주(天宙)는 이 뜻 성사에 노력하고 있는 것을 현재 기독인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통분(痛憤)할 일이다.
악(惡)이 시작하였으니 그도 원리노정(原理路程)을 밟아 결실(結實)하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악(惡)의 완성시기(完成時期)가 곧 기독교의 말세시기(末世時期)인 재림(再臨) 때이다.
그러므로 세상(世上)이 절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지상(地上)에서 지상천국(地上天囗)을 완성(完成)해야만 하는 게 근본목적(根本目的)이다. 그러기에 오시는 주(主)도 완성주(完成主)로 사람 몸을 쓰시고 오신다. 그것은 원리(原理)를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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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육신완성(肉身完成)을 못하였기에 근본(根本)을 찾아 맞추는 시기가 말세(末世)며 심판시기(審判時期)다. 곧 근본(根本) 사람, 아담 해와를 찾아야 하며 선(善)을 찾아 터로 세워야 하는 시기가 말세다.
그러니 악(惡)은 자기본체(自己本體)의 노정(路程)으로 향(向)하기 시작하는 때가 곧 말세다. 이상(以上)의 원리(原理)를 살펴볼 때 하나님은 원리를 통하여 모든 일을 이루시고자 하는 것이 근본적인 뜻이다.
그러므로 사탄까지 강제굴복(强制屈服)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굴복(自然屈服)을 요구하고 육천 년 역사를 나오심은 전(全) 원리창조세계(原理創造世界)를 완전히 찾고자 하는 것이니 그래야만 창조이상체(創造理想体)를 시작할 수 있으니 사탄까지 자유로이 행동하게 하시는 것을 잘 알아야 한다.
성경역사(聖経厂史)를 통하여 사탄과 하나님에 대하여 말한 것이든가 참소한 것이든가 또는 예수님의 시험이든지 다 보아도 그 자유허락(自由許諾) 이상(理想) 무대(舞臺)를 근본의의(根本意義)로 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바로의 마음을 난폭하고 못되게 만드는 것도 완전굴복(完全屈服)과 자유굴복(自由屈服)을 원하셨기 때문인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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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스라엘 백성을 그 결과적 행동 여하(如何)를 가지고 하나님이 안타까워한 사실은 인간의 근본 자유행동(自由行動) 결과를 주관함을 알려주는 사실이다.
이러하므로 하나님 전 우주이상(全宇宙理想)과 천주이상(天宙理想)을 완성하고자 하여서 지금까지 고심(苦心)하시는 그 자체를 우리는 어떻게 대하여야 하겠는가? 이것은 생각할 여지(余地)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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