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을 품다 / 강표성
연초록 물결이 출렁인다. 절 입구에서 경내까지 5리나 된다는 오리 숲길이다. 느티나무, 팽나무, 갈참나무 이파리들이 봄빛을 쟁이느라 부산하다. 춘 마곡 추 갑사라는 옛말이 무색하게 봄만 되면 나는 갑사 쪽으로 기운다. 초록이 고픈 게다.
매일 백색 풍경에 젖어 사는 에스키모인들은 흰색을 수십 가지로 말할 수 있다는데, 이른 봄의 녹색도 그렇지 싶다. 한 나무에서도 색감이 다르다. 며칠 전에 나온 이파리와 오늘 나온 그것이 다르고, 앞 뒤 혹은 위 아래에 따라 색의 깊이와 파장이 제각각이다. 햇살이 미끄럼을 타는 애채는 파릇파릇하고, 새싹을 피워낸 나무초리는 푸르스름한가 하면, 거친 줄기마다 푸르죽죽하고, 오래된 졸가리는 검푸레하더니, 뿌리에 가까운 밑동은 녹갈색으로 기운다. 저마다의 색감으로 봄맞이에 나선다.
숲은 나무들의 신전이다. 꽃은 피어 열흘 붉지만 초록은 날마다 새로운 그늘을 펼친다. 그 초록 신전에 서면 박하사탕을 깨문 듯 속이 화안~해진다. 세상의 삿된 것은 끼어들 수 없는 신록의 그늘, 나도 한 그루 나무가 된다.
서 있는 문장들이다. 읽고 읽어도 질리지 않는 명문장에 눈 맛이 시원하고, 온몸으로 읽는 줄글들은 얼마나 아늑한지. 괜찮아괜찮아, 속삭이는 잎새에 파묻혀 내가 걸어온 길을 내려놓는다. 말없이 어깨를 다독이는 푸른 잠언의 숲, 그곳에는 위로의 편지와 따뜻한 처방전이 출렁인다.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 잃을 때면 녹색을 기웃거린다. 입에 쓴 물이 고일 때, 마음이 쑥대밭 같을 때면 그것을 떠올린다. 이 세상에 녹색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보이는 곳마다 하얀 알래스카 지방, 회색으로 빛나는 툰드라 지역, 붉은색에 빠져드는 사막 지대는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풀빛의 넉넉함과 나무의 생기를 맛볼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먼 유배지에 내몰린 듯하다.
삶의 현장에서도 초록은 필수다. 길을 가다 보면 도처에 신호등이 있다. 성급한 마음에 길목을 지나치려면 금지표시가 발목을 붙잡는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작은 길 하나 건너는 일도 그러한데 하물며 인생은 어쩔 것인가. 머잖아 초록불이 나오겠지, 그 믿음으로 생의 횡단보도 앞에 멈춰 선다. 이럴 때는 희망의 색이자 질서의 색이 된다.
빨강이 뜨겁다면 파랑은 차가운 색이다. 이를 중화시켜주는 것이 녹색이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보다는 한발 물러나 중립을 지킨다. 어디서나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참을 줄도 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는 포용력이 있기에 보색인 밤색과도 잘 어울린다. 나무와 땅처럼 서로를 받쳐주니 주위에 생기가 흘러넘친다. 하여 조물주도 해가 바뀌면 연둣빛 붓으로 대지를 채우시나 보다.
초록을 볼 때마다 내 삶도 그리 물들기를 바란다. ‘온유’와 ‘생기’가 주는 기쁨을 배우고 싶다. 편안하고 넉넉한 배경으로 자리하길 빈다. 꽃처럼 주목받지 않으면 어떤가, 존재 자체로 바탕이 되는 것도 좋다. 온화하고 믿을 수 있는 분위기면 족하다. 잠시 반짝이는 것보다 오래 바라볼 수 있는 편안함이 좋고, 비바람에 쉬 흔들리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어린 시절부터 녹색은 특별했다. 대여섯 살 무렵에 아버지가 새 옷을 사오셨다. ‘아빠가 간따앙구 사왔당’, 이웃집에 달려가 자랑을 하자마자 ‘아따, 참말로 이쁘다잉’ 하는 추임새가 이어졌다. 원추리 이파리 같은 그걸 입고 얼마나 깡충거렸던지. 원피스보다는 ‘간따앙구’라는 일본말에 익숙하던 시절이라, 나일론 소재의 연초록 원피스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것이다. 치마 부분에 자잘한 주름이 달려있던 그 옷은 나를 소공녀로 만들고도 남았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도 초록색 계열을 보면 손이 먼저 갔다. 얼마 전에 딸아이의 옷장에서 비슷한 원피스를 발견했다. 순간, 작은 요정이 내게로 걸어오는 것 같았다. 삼십여 년이 지났어도 보석같은 순간들이었다. 내 아버지가 그러신 것처럼 나도, 딸애에게 연초록 원피스를 입히면서 뿌듯했다. 그 애 인생이 봄날 같기만을 바랐고, 맑고 부드러운 심성으로 어디서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길 빌었다. 그 원피스를 차마 버릴 수 없어 장롱에 다시 넣으며 새로운 주인공을 기다리기로 한다. 머잖아 우리에게 올 또 다른 생명. 나이 들수록 초록을 탐한다. 이와 비슷한 시간대가 많지 않아서인지도 모른다. 나무들이 광합성을 하듯, 사람도 해마다 푸른 시간이 돌고 돌면 좋으련만. 나무로 치면 밑동이 완만해지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거친 옹이를 가득 키운 채, 속절없이 속만 비어가는 그루터기를 닮을까 봐 눈길은 우듬지를 더듬고 또 더듬는다.
숲에 와서 인생을 다시 생각한다. 사람 또한 새순일 때가 있고, 울울창창 빛나기만 할 것 같은데 낙엽으로 내려앉을 때가 있다. 주어진 시기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때를 즐길 줄 아는 것, 미련 없이 자리 내어줄 준비를 하는 게 바로 초록이 주는 깨달음이 아닐까 싶다.
시간을 아끼며 즐기려 한다. 머잖아 기회가 오면 딸을 빼닮은 아이를 앞세우고 갑사의 오리 숲길을 거닐고 싶다. 순하지만 빛나는 생명과 손잡고 걷는 길, 상상만으로도 봄물이 고인다.
[출처] 초록을 품다 / 강표성|작성자 이래춘
첫댓글 나도 연초록을 좋아한다. 젊은날 친척에게 받은 초록 원단을 양장점에서 원피스로 맞추어 입었다.
이쯤이면 나도 강표성 작가님처럼 옛 추억을 꺼내 한편의 수필을 쓸 수 있으련만.. 언젠가는 작품으로 승화시켜 보고 싶다. ^^♡
그래서일까, 4월 초쯤이면 가로수에 연초록이 솟아 오름을 보고 환희한다. 지금도 해마다 기다리는 것 중의 하나 연초록의 가로수다...^^
방순자 샘,
수필 소재 한가지 선택.
ㅎ
4월의 가로수 연초록은 ㅡ음 그 뭐랄까 앳띤 설레임 유치한 줄 알지만 ㅡ 근데 그런 감성을 올 봄에도 느낄수있음 참 좋으련만 3월 목포 유달산에서 같이 봅시다
결론은 버킹검인것 같은데요.
아하핫^^
3월에는 연초록 물결이 출렁이는 유달산으로 갈까요? 참신한 소재가 생길지~~~~ 가장 일찍 피는 꽃을 보는 마음으로 ~~
겨울이 지나는 길에 입춘을 맞이하는 글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