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 행 지 : 화악지맥 4차(북배산~가평천) (경기도 가평군, 강원도 춘천시)
산 행 일 : 2022. 06. 11.(토)
산행코스 : 작은먹골 + 북배산(867m) ~ 갈밭재(740m) ~ 싸리재(615m) ~ 계관산/큰촛대봉(735.7m) ~ 작은계관산/작은촛대봉(665m) ~ 가일고개 ~ 월두봉갈림길 ~ 월두봉(460m) 왕복 ~ 월두봉갈림길 ~ 주을고개(235m) ~ 물안산(438m) ~ 마루산갈림길 ~ 보납산(329.5m) ~ 보납산 주차장 ~ 가평천 (20km + 1.8km, 10시간 20분 소요)
산행참석 : 5 백두.
<산행지도>
지난 화악지맥 3차 산행에서 북배산에서 하산하지않고 조금 더 진행하여 싸리재까지 진행했어야 했는데, 몽가북계 능선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북배산에서 구간을 나누는 바람에 이번 화악지맥 마지막 구간 산행이 무척이나 힘겹게 되었다. 그래도 많은 선답 산꾼들이 홍적고개에서 출발하여 27km를 진행했는데 비해 우리는 22km로 상대적으로 짧다라며 위안을 삼고, 평소처럼 6시에 과천을 출발하여 산행 들머리인 '가평군 북면 목동리 산253'으로 향한다.
지난 구간의 날머리인 먹골등산로 북배산 들머리에 도착하니 하늘에는 높은 구름이 떠다니고 바람도 잔잔하다, 이른 아침 산행을 시작하기에는 멋진 날씨이기는 하지만 과연 한낮의 등산도 이리 쾌청한 상태를 유지할지 걱정이 앞선다.
역시 산행에 이골이 난 베테랑들이라서 도착 5분여 만에 산행 준비를 마치고, 서 여사님에 아침식사 대용으로 준비해온 온갖 몸에 좋은 것들을 곁들인 과일쥬스로 활력을 충전시키고는, 1.8km 거리의 북배산을 향한 들머리로 들어서며 화악지맥 네번째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 출발지점의 고도가 340m 수준이고 북배산의 높이가 869m 이니,
1.8km 거리에 고도를 520m나 높여야 하는 북배산 오름길은 가파르게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울창한 참나무숲 능선에 풀한포기 자라지 않는 이유는 우측에 자리한 염소농장 탓인 듯하고,
가파른 오름길로 어느새 덥여지는 몸을 식히려 껴입었던 겉옷을 한꺼풀 벗어서 배낭에 넣고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가파른 오름길을 쉬엄쉬엄 오르면,
우측 지능선으로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는 능선갈림길 이정표를 지난다.
북배산을 향한 능선길은 바닥이 훤히 드러난 급경사와 완경사가 번갈아 나타나는 힘겨운 오름길이 이어지다가 드디어 풀이 덮고 있는 능선으로 들어서고,
잠시 완만하던 숲길이 다시 급경사 오름길로 바뀌더니,
다시 낙엽이 수북한 완만한 오름길로 바뀌었다가는 다시한번 급경사 오름길을 올라,
북배산 정상을 조금 지난 지점의 화악지맥 능선에 접속하여 좌틀하여 잠시 능선을 따르면,
이내 북배산 정상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기다렸다가 인증사진을 남기자던 분들의 자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북배산(北倍山, 869.6m)>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와 강원도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서상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북배산은 가평읍의 북쪽에 위치해 있어 유래한 지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배산의 북쪽으로는 몽덕산·가덕산, 남쪽으로는 계관산과 이어진다. 몽덕산에서 북배산을 거쳐 계관산에 이르는 주능선에는 폭 10m 정도의 방화선이 만들어져 있어 조망이 시원하다. 가을철에는 억새꽃이 피어나 풍경이 아름답다. 북배산은 주변에 위치한 몽덕산, 가덕산, 계관산을 함께 종주하는 몽가북계 등산 코스로 이용된다.
몽가북계 능선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 북배산의 조망 안내도.
북쪽 화악산과 가덕산 방향.
북동쪽 용화산 방향.
동쪽 춘천 방향.
북배산 정상 인증.
북배산을 뒤로하고 화악지맥 마지막 구간 종주길에 나서면 삼각점이 자리한 헬기장을 지나게 되고,
잠시 전에 올라온 '먹골등산로 입구' 방향 갈림길 이정표를 지나,
이내 서산.방동 방향 능선갈림길 이정표가 나오는데, 우틀하여 계관산 방향으로 들어서면,
잡목이 우거진 방화선 능선 위로 삼악산이 조망되고,
<삼악산(三岳山, 654m)>
강원도 춘천시 서면과 신동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주봉(主峰)은 용화봉이다. 서울시에서 북쪽으로 80km, 춘천시에서 남서쪽으로 10km 떨어진 지점에 있다. 경춘국도의 의암댐 바로 서쪽에 있으며, 북한강 강변을 끼고 남쪽으로 검봉산·봉화산이 있다. 주봉인 용화봉과 함께 청운봉(546m)·등선봉(632m) 3개의 봉우리가 있어서 삼악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3개 봉우리에서 뻗어 내린 능선이 암봉을 이룬다. 산을 구성하고 있는 주 암석은 규암의 일종으로, 약 5억 7000만 년 전 ∼ 2.5억 년 전에 퇴적된 사암(砂岩)이 높은 온도와 압력을 받아 생성된 변성암이다.
산의 규모가 크거나 웅장하지는 않지만 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명소 가운데 등선폭포(登仙瀑布, 또는 경주폭포)는 높이 15m의 제1폭포 외에 제2·3 폭포가 더 있고, 그 외에 등선·비선·승학·백련·주렴폭포 등 크고 작은 폭포가 이어진다. 정상에서는 의암호와 북한강이 내려다보인다.
험준한 산세를 이용한 천혜의 요새로서 능선 여기저기에는 삼국시대 이전 맥국(貊國)의 성터 또는 후삼국의 궁예가 쌓은 것이라고도 전해지는 대궐터의 흔적이 470m 정도 남아 있다. 그 외에 문화재로는 부근에 금선사(金仙寺)·신흥사(新興寺)·흥국사(興國寺)·상원사(上院寺) 등이 있다.
한동안 방화선 정비를 하지 않았던지 잡목들이 웃자라 걷기에 힘이 드는 방화선 능선길을 따르면,
이내 우측 목동리 먹골과 싸리재 버스종점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네이버 지도에는 이곳을 갈밭재로 표기해 놓았지만 옛 산행기와 개념도에는 조금 더 가면 나오는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안부를 갈밭재로 표기하고 있다. 아마도 5분여 더 진행하여 나오는 안부가 갈밭재가 진짜인 듯하다.
거친 방화선 능선길을 내려서며 살짝 당겨본 삼악산이 산꾼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3km 남짓 떨어져 있는 계관산이 무척이나 가까워 보이더니,
'싸리재 버스종점' 방향 갈림길에서 5분여 만에 커다란 참나무가 서 있고 좌.우로 희미한 길흔적이 있는 안부인 갈밭재를 지난다.
우측 목동리 방향으로 명지산에서 연인산으로 이어지는 명지지맥 능선이 조망되며,
작은 봉우리를 지나는데 뒤쪽으로 잠시 전에 떠나온 북배산이 어느새 멀어 보이고,
계관산이 2.5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 봉우리 오름길을 오르는데,
돌아본 북배산 좌측으로 화악산도 살짝 보이더니,
이내 '준.희'님의 675.9봉 표지기가 걸린 봉우리를 지나게 되는데, 개념도의 690봉 위치다.
전방으로 가야 할 계관산이 훌쩍 가깝게 다가서는가 싶더니,
오늘 산행에서 가장 어렵게 지나게 되는 물안산을 무너뜨리고 있는 채석장이 가늠되고,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앞서 갔던 두 분을 만나,
키를 넘게 자라난 잡목들로 뒤덮인 방화선 등로를 더듬어 계관산을 향하면,
모처럼 좌.우로 조망이 트인 자라바위 상부 전망바위에 서게 된다.
우.후방 화악산 방향.
좌전방 삼악산 용화봉 조망.
서쪽 연인산 방향.
자라바위 내림길에는 가드 로프가 메여 있고,
어렵잖게 내려서서 자라바위를 찾아보는데, 마치 자라가 목을 뺀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자라바위를 바위절벽에서 찾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싶다.
내려서서 돌아본 자라바위 전경.
뜨거워지는 햇볕에 고스란히 노출된 거친 방화선 능선 등로를 따라,
잡목들이 자라난 헬기장 봉우리를 지나서 내려서면,
커다란 갈참나무 한그루가 지키는 싸리재를 지나게 된다.
<싸리재(610m)>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 싸리재마을에서 강원도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정상에는 커다란 갈참나무 노거수 한그루와 이정표가 있다. 좌.우로 춘천과 가평을 잇는 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지 등로의 흔적이 희미해진 거의 잊혀진 고개가 되어 버린 듯하다. 예전 자동차가 없었던 시절에 가평에서 춘천으로 가는 민초들이 넘었던 길이었으며, 싸리재의 지명 유래는 고개 주위에 싸리나무 군락지가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방화선 주위에 싸리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계관산이 1.2km 남았다는 싸리재 이정표.
내리쬐는 햇살을 고스란히 느끼며 계관산으로 이어진 잡목으로 뒤덮인 방화선 등로를 따르면,
계관산이 400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고,
돌아본 사명산과 부용산 방향.
그리 가파르지 않은 몇 번의 계단식 오름길을 오르면 앞쪽으로 계관산 정상쯤이 다가서고,
통나무 계단을 따라 잠시 오르면 지맥길은 직진의 '계곡리 등산로입구' 방향으로 이어지지만, 우측 20m에 계관산 정상이 있다는 표지목을 따라 잡목숲을 헤쳐나가면,
오석의 정상석이 자리한 계관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계관산(鷄冠山, 735.7m)>
강원도 춘천시 서면 덕두원리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목동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은 방화선 임도에서 우측으로 20여 미터 벗어나 있으며 오석으로 된 정상석과 나무로 된 기다란 의자 세 개가 있다. 계관산이라 불리게 된 유래를 보면 산아래 가평 쪽으로 '달개지'라는 마을이 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닭개지'라 변음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계관촌이라 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산 이름을 계관산이라 불렀다고 하며,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산의 지형이 마치 모이를 쪼는 닭 부리같이 보인다고 해서 계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큰촛대봉 이라고도 하는데 산행지도에는 계관산(큰촛대봉)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계관산은 북배산과 가덕산·몽덕산 등과 연이어 있는데, 이 산들을 연결하여 종주하는 '몽가북계' 산행코스가 일품이다. 사계절 어느 때고 멋진 풍광을 보여 주는데, 봄에는 꽃이 만발하며, 여름에는 초록빛 초원이, 가을에는 억새군락이, 겨울에는 설경이 아름답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능선을 따라 구축된 방화선은 마치 만리장성을 연상케 한다. 방화선을 따라 길이 잘 뚫려 있고 굴곡이 심하지 않아 겨울철에도 종주산행이 쉽다. 능선에 나무가 한 그루도 없어 여름철에는 매우 무덥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멋이 있다.
계관산 정상 이정표.
계관산 정상에서 본 북배산 방향.
계관산 정상 인증.
계관산 직전의 이정표로 돌아나와 '개곡리 등산로입구' 방향 화악지맥길로 들어서서 헬기장을 지나면,
온갖 잡목과 덩굴로 뒤덮인 방화선 등로 위로 세계 전쟁사에서도 찾기힘든 용문산전투가 벌어졌던 용문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용문산 전투(龍門山戰鬪)>
국군 제6사단이 1951년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용문산 일대에서 방어하여 큰 타격을 입힌 전투다. 국군 제6사단은 1951년 4월 공세 시 사창리에서 시련을 겪은 후 가평에서 영국군이 대규모의 중공군 공세를 3일간 막아주는 사이에 용문산(1157고지) 일대에서 방어준비를 갖추여 대규모의 중공군을 격퇴한 천투였다. 중공군은 제19병단 제63군 3개 사단(제187, 제188, 제189사단)을 동원하여 1951년 5월 16일 5월 공세를 개시하여 혈전이 시작되었고, 이후 20일 새벽까지 계속된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치다가, 국군이 반격을 전개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6사단은 사창리 전투의 불명예를 씻고 설욕할 수 있었으며, 용문산전투의 대승이라는 기록을 세워 국군의 위용을 내외에 과시하였다.
용문산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이 저 어디쯤일 터이다!
빼곡한 잡목으로 뒤덮인 방화선 능선길은 허리를 굽혀 기어가다시피 힘겹게 나아가면,
앞쪽 방화선 위로 작은계관산이 다가서고,
잡목으로 뒤엉킨 통나무 계단길을 오르면,
돌아본 계관산 방향.
석파령 방향 이정표와 삼각점이 있는 작은계관산 정상에 도착한다.
<작은계관산/작은촛대봉(665m)>
방화선 임도상에 있는 봉우리다. 그냥 밋밋하여 봉우리라는 느낌도 없는 곳에 삼각점이 있고, 작은촛대봉이라는 이름도 있다. 아마도 계관산과 비슷하게 생겼다하여 그리 부르는 모양이다.
바닥에 떨어진 작은촛대봉 표지기를 세워놓고 작은계관산 인증을 남긴다.
작은계관산 표지기.
작은계관산에서 50여 미터 진행하면 좌측 '삼악산.석파령' 방향 능선길과 우측 보납산 방향 화악지맥 갈림길 삼거리가 나오는데,
오래되어 해독이 불가능한 이정표에는 삼악산이 8km 떨어져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고,
화악지맥은 우측 계곡리 등산로입구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화악지맥 방향 능선길 들머리 전경.
'삼악산.석파령' 방향 능선 분기점까지 이어지던 지긋지긋한 방화선은 가일고개 방향 능선으로 들어서면 언제그랫냐는 듯이 없어지고 그늘이 드리워진 싱그러운 능선 숲길이 이어지며,
헤어지지 말고 사이좋게 살자며 어깨동무 한 참나무.
가일고개로 이어진 화악지맥 능선은 잣나무 그늘이 싱그러운 완만한 내림길로 이어지며 걷기에 더없이 좋고,
';개곡리 등산로 입구'까지 1.2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는데,
아마도 '개곡리 등산로 입구'는 가일고개를 말하는 듯하고,
가평 숲의 진면목을 만끽하며 편안한 걸음으로 작은 돌탑을 지나니,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잠시 전에 지나온 계관산쯤이 조망되고,
이내 가일고개를 지나는 임도 절개지 위 조망이 트인 곳에 도착한다.
우전방 명지산과 화악산 방향.
돌아본 계관산 방향.
절개지를 내려서니 가일고개를 지나는 임도가 나오며 앞서간 분들이 나무 그늘에서 점심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가일고개>
가평군 북면 개곡리 달개지 마을에서 춘천시 서면 당림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차량이 다닐 수 있을 만큼 넓은 임도가 지나고 있다.
이곳이 능선에서 보았던 이정표의 '개곡리 등산로 입구' 기점인 듯.
가일고개 나무그늘에서 서 여사님이 남기고 간 떡과 열무김치로 맛난 점심 식사를 하였는데, 윗통을 까고 식사를 한 탓에 찍어둔 사진을 차마 올리지 못함이 한?스러울 뿐이다.
가일고개 전경.
가일고개 나무 그늘에서의 꿀맛 같은 점심시간을 즐기고는 다시금 배낭을 메고 화악지맥 능선길로 들어서서,
완만한 능선 오름길을 따르면 통나무의자가 있는 339봉쯤을 지나게 되고,
이내 화악지맥은 좌측으로 벌목이 된 벌목지대로 접어드는데,
좌측 춘천시 서면 안보리 방향으로 가야 할 월두봉이 조망되고,
작은 봉우리를 오르는데,
뒤쪽으로 지나온 계관산과 화악지맥 능선이 조망된다.
좌측 나무둥치에 아프리카돼지열병 모니터링 장비 설치 안내판이 걸린 봉우리를 넘고,
아무런 특이점이 없는 봉우리를 또 올랐다가는,
우측 빼곡한 잣나무 숲에서 풍겨오는 숲 내음을 맡으며 급하지 않은 오름길을 오르면,
그냥 그저그런 봉우리를 또 넘게 되고,
"북면 개곡리로 가는 길이므로 넘어가지 마세요"라는 암스트롱요양병원 표지판이 있는 희미한 갈림길을 지나 오르면,
앞서간 분들도 지쳤는지 앉아서 쉬고 있는 봉우리에서 쉼을 하는데,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아니면 능선길에 봉우리가 많아서 그런지 평소보다 많이 지치고 힘이 든다.
무성한 숲으로 덮여 어디쯤 가고 있는지 짐작조차 안 되는 능선길을 더듬어,
이런 봉우리를 올라서는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서고,
이런 봉우리는 직진 방향으로 넘어서기도 하며,
또 이런 봉우리는 등로의 흔적이 희미하여 잠시 망설이기도 하고,
잣나무 숲이 좋은 봉우리에서는 다리를 쉬게 한다.
짧은 쉼을 쉬었다고 제법 깊은 안부를 지나 오르면,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올라 또 내려가는 가 싶더니,
이내 고도를 높이며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게 되는데,
우측 조망이 트인 곳으로는 화악산이 조망되고,
다시 잘록한 안부를 지나서 오르면,
월두봉갈림길 직전 능선 갈림길에서 화악지맥은 직진의 능선길을 두고 우틀하여 이어진다.
이곳은 많은 선답자들이 직진의 능선길을 따라 알바를 많이 하는 지점으로,
우측 아래로 이어지는 화악지맥 등로에는 몇 개의 표지기가 걸려있으므로 주의를 하여야 한다.
능선 갈림길에서 우틀하여 내려서면 앞쪽 나뭇가지 사이로 세 개의 작은 봉우리들이 보이는데 멘 좌측 봉우리가 월두봉이고,
낙엽이 수북한 안부를 지나 오르면,
월두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 갈림길에서 5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월두봉을 대부분의 화악지맥꾼들이 다녀가는 듯하고 나도 다시 또 오게되지는 않을 듯하여 갈림길에서 기다리겠다는 송 사장님을 두고 월두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월두봉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따라 작은 봉우리를 넘고,
꾀나 깊은 안부를 지나 오름길로 들어서면,
등로는 암릉을 좌회하여 가파른 비탈 오름길로 이어지고,
서 있기조차 힘든 가파른 비탈을 가냘픈 로프를 잡고 힘겹게 오르면,
뒤쪽으로 화악산이 뚜렷이 조망되고,
한번 더 가파른 암릉 비탈을 치고 오르면 낙엽이 수북한 정상부가 나오는데,
마침 월두봉에서 기다리던 김 전무가 되돌아 내려오고 있고,
월두봉 정상부를 막아서는 암릉을 우회하여 오르면 작은 돌탑이 자리한 월두봉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월두봉(月頭峰, 453m)>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춘천시 경계에 있는 산이다. 우리말로는 달머리봉이라고 하며 계관산(작은촛대봉) 옆 북한강변에 있다.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화악산·응봉·가덕산·북배산·계관산이, 동쪽으로 삼악산·등선봉·북한강 등이 바라보인다. 정상에서 남동릉으로 40m가량 따라가면 북한강과 춘성대교의 아름다운 경관이 잘 보이고 멀리로는 서릉이 보이며, 동쪽으로는 보납산 능선 뒤로 가평읍과 노적봉(옛 구나무산:858m)도 보인다. 하지만 이런 조망은 옛날의 일인 듯하고 지금은 월두봉 정상이 숲으로 둘러져 있어서 조망은 없다.
산행은 춘성대교를 건넌 뒤 나타나는 삼거리를 기점으로 삼는다. 주을길에서 정상을 거쳐 남동릉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주를 이루는데, 거리는 약 7㎞이며 4시간 정도 걸린다.
월두봉 정상 인증.
월두봉 정상부 암릉을 돌아 내려서고,
돌아본 월두봉 정상부 암릉.
서북쪽 연인산과 운악산 방향.
절벽 내림길 등로를 찾지 못해 잠시 헤매다가 가파른 절벽내림길을 되돌아 내려서서 봉우리를 넘으니,
월두봉 갈림길에서 두 분이 기다리고 있다.
뒤늦게 도착한 나는 잠시의 쉴 겨을도 없이 월두봉 갈림길을 뒤로하고 주을길고개 방향 들머리로 들어서면 급경사의 내림길이 이어지다가,
이내 완만한 능선길로 바뀌더니,
작은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화악지맥 311.4봉' 표지기가 걸린 봉우리를 지나게 되고,
완만한 능선을 잠시 더 따르는데 앞서가던 두 분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쉼을 하고 있다.
나무둥치에 기대어 쉼을 하던 송 사장님은 주을길고개에서 탈출을 하겠다고 한다. 오늘 산행에서 물안산 구간과 보납산에서의 조망이 최고인데, 고생만 진탕하고 탈출을 하게 되어 아쉽기는 하지만 산행이 예상보다 만만치 않아서 탈출을 만류할 수도 없는 상황이고, 같이 가던 김전무는 '그럼 후딱 먼저 진행을 하겠다'며 자리를 떠나버린다.
편평하고 넓은 안부를 지나,
소나무숲 능선을 따라 잠시 내려서면,
옛 고개의 흔적이 뚜렷한 주을고개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송 사장님은 좌측 안보리 방향으로 탈출키로 하였던지라, 탈출 후 차량을 부르는 장소를 협의하여 차량회수팀에게 연락하게 하고는, 송 사장님을 홀로 남겨두고 물안산 방향으로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데,
이내 임도가 지나는 주을길고개가 나타난다. 잠시 전에 지나온 주을고개는 옛 고개라 길이 끊어졌을 가능성이 커 보여 부리나게 송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이곳으로 와서 임도를 따라 탈출하시라고 전하니, 다행히 걸이 없어 머뭇거리고 있었다며 이곳 주을길고개로 오겠다고 한다.
<주을길고개>
경기도 가평군 북면에서 강원도 춘천시 서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줄기리 고개'라고도 부른다. 구한말까지만 해도 가평에서 춘천으로 넘어가는 길은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가평에서 강원도 춘천지방으로 가기 위해서는 언제나 개곡리(開谷里) 가일 부락에 있는 큰 고개(일명:줄길이 고개)를 넘어 다녀야 했었다. 자라목 고개를 넘어서 북한강변으로 가는 길은 험해서 사람이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로 서울 등지로 오가는 수많은 길손들이 연일 이 고개를 넘나들었고, 북면 지역에서도 가파른 노루목 고개를 넘기보다는 차라리 능머루 쪽으로 돌아다녔던 관계로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져서 주막이 생기고 점차 저잣거리가 형성되어 이곳은 면소재지가 아니면서도 가평에서는 유일하게 5일장인 개곡장(開谷場)이 열렸었다고 한다. '개곡'이란 이름은 고을(谷)이 열린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데 이곳에 흐르는 계곡의 모습이 마치 수만의 대군을 이끈 장수가 좁은 협곡을 빠져나가 허허벌판으로 내달리는 형국의 지형이라고 한다. 자연 부락으로는 능머루, 안말 등이 있다. 혹자는 장차 규석광산이 개발되어 마을 입구의 산이 발굴되어 골이 넓게 열리게 된다는 것을 예견한 현인들의 선견지명이 이런 지명을 미리 지었다고도 한다.
물안산 방향 들머리는 고개 우측 개곡리 방향으로 10여 미터 지점에 있는데,
들머리에 있던 이정표는 석산개발로 물안산 등산로가 폐쇄되며 없어진 듯하다.
주을길고개 물안산 방향 들머리로 들어서서 가파른 잣나무숲 능선길을 오르면,
뒤쪽으로 화악산 능선이 가늠되더니,
비탈길은 설치된 가이드 로프를 잡지 않고는 오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가팔라지고,
등산로가 폐쇄되기 이전에 설치한 안전시설이 암릉으로 이어져 있는데,
오름길이 너무 가파르고 힘들어 도중에 밧줄을 잡고 잠시 쉼을 하고서야 다시 오르니,
우측으로 채석장이 넓게 펼쳐진 절개지 중턱에 서게 된다.
채석장 절개지에서 본 화악산 방향.
홍적고개 방향.
북배산과 계관산 방향.
발 아래로 보이는 채석장은 KCC에서 유리 원료로 쓰이는 광석을 채석하는 곳으로, 채석장 옆에는 암석에서 유리 원료와 도자기, 내화재 등으로 쓰이는 규석을 분리해내는 공장이 자리하고 있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굻어짐에 따라 배낭덮개를 씌우고는 절개지 암릉을 좌회하여 한번 더 치고 올라,
잘려나간 물안산 정상이 있던 채석장이 내려다 보이는 절개지 상단에서 본 화악산 방향.
홍적고개와 몽가북계 능선 조망.
가파른 물안산 비탈을 오르느라 영혼까지 써버린 모습으로!
불과 몇 년 전 산행기를 보면 주을길고개에서 물안산 주능선으로 오르면 물안산 갈림길 안부 삼거리가 나오고, 우측으로 물안산 정상이 자라하고 있고 좌측 능선을 따라 봉우리를 하나 넘으면 아래 사진의 쉼터가 나온다고 되어 있는데, 이제는 채석장 절개지가 이곳 쉼터까지 파고 들어와 물안산 정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이다.
<물안산(438m)>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와 개곡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화악산을 비롯한 가평과 춘천의 명산들과 북한강이 멋지게 조망되는 아름다운 산이지만, 지금은 KCC에서 규사광산으로 개발하여 산을 절개하여 채광하는 바람에 정상부는 없어져 버렸다. 돌산으로 이뤄진 물안산은 유리 원료로 쓰이는 규석을 얻기 위한 채석작업으로 정상은 벌써 없어졌고, 아직도 계속해서 산이 깎여나가고 있다. 더욱이나 네이버지도를 비롯한 공식적인 어디에도 물안산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쉼터에서 보납산 방향으로 들어서면,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기가 걸린 경계 줄과 원형철조망이 쳐져 있고,
좌.후방으로는 북한강변의 백양리역이 내려다 보이며,
우.후방 수덕산 뒤쪽의 화악산은 비구름에 덮여 있다.
잠시 더 능선을 따르면 전망 좋고 그늘이 드리워진 소나무 쉼터가 나오는데,
동남쪽 서울과 춘천을 잇는 46번 국도가 지나는 춘성대교 방향으로 무지개가 떴다!
그간의 생고생을 조금이나마 보상해 주려는 듯 무지개가 드리워진 북한강 조망.
조망이 멋진 암릉을 지나니 보납산이 3.3km 남았다는 이정표와 함께 출입금지 금줄이 처져있고,
가이드 로프가 설치된 암릉을 내려서는데,
우.전방으로 화악지맥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마루산이 조망되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한 바위암릉 우측 아래로 이어진 가이드 로프를 따르는데,
우측 아래로 가평천이 휘감아 돌아가는 가평읍 마장리 일대가 내려다 보이더니,
누가 설치한 조각품인 듯 서 있는 자라바위를 지난다.
우측 아래로 까마득이 내려다 보이는 가평천이 아찔한 느낌으로 다가오고,
왼쪽 발바닥의 통증이 심하여 신발을 벗고 파스를 붙이고서야 안전시설이 설치된 암릉을 지나니,
날카로운 바위 암릉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낙엽이 수북한 숲길이 나타나더니,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진 벙커를 지나 오르면,
벙커봉이라고도 하는 428.7봉을 지나게 된다.
바위들이 나뒹구는 완만한 능선 내림길을 내려서면,
쓰러진 KCC의 안내판과 빛바랜 이정표를 지나게 되고,
좌측으로도 희미한 길흔적이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 능선길을 따르면,
우측 마루산 방향 갈림길 삼거리에서 직진의 보납산 방향 능선길을 따른다.
원래는 우측 1km 지점의 마루산도 밟아보려 했지만 체력도 시간도 고갈되어 마루산은 후일을 기약하고,
마루산 갈림길에서 직진의 거친 바위들이 산재한 능선길을 따르면,
이내 바위들은 사라지고 한결 편안해진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잣나무들이 무성한 전형적인 육산 능선길에 호젓한 간이 쉼터도 지나고,
힘겨웠던 물안산의 암릉길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멋진 능선 숲길이 편안히 이어지다가,
235봉 능선 갈림길에서 직진의 평촌/중촌 방향 능선길을 두고 좌틀하여 진행하게 되고,
편안한 능선길을 따라 주변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벗겨진 쌍분묘지를 지난다.
완만하고 호젓한 능선길이 이어지며 간이 쉼터를 지나고,
다시금 완만한 오름길로 바뀌더니 좌측 강변산책로 방향 갈림길에서 직진의 오름길을 따르면,
이내 보납산 방향 능선갈림길 봉우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화악지맥은 좌측 강변산책로 방향 능선을 따라 늪산으로 이어지지만, 최근의 지맥꾼들은 우측 500미터 지점의 조망이 좋은 보납산 정상으로 진행하여 화악지맥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우리도 우측 보납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좌측 능선 방향의 원 화악지맥을 두고 우측 보납산 방향 완만한 능선 내림길을 따르면,
이내 대형 태극기가 걸린 체육시설이 있는 보광사 갈림길 쉼터가 나오는데,
보납산 정상은 직진 400m 지점이지만,
오늘 저녁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좌측 보광사 방향으로 들어서서 하산길로 들어선다.
밟지 못한 보납산 정상은 후일을 기약하며,
보납산 정상으로 진행했던 김 전무가 남긴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래 본다.
보납산 정상 직전의 전망대에서 본 북한강 상류 방향.
<자라섬>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달전리에 있는 섬으로, 1943년 우리나라 최초의 발전전용댐인 청평댐의 완공으로 북한강 수위가 높아져 생긴 섬이다. 중도·서도·남도 3개의 섬으로 이루어졌고, 서로 도보 이동이 가능하며, 1945년 8·15 해방 이후 중국인이 참외, 수박 농사를 지어 '중국섬'이라고 부르다가, 1986년 가평군 지명위원회가 맞은편의 자라목 마을과 자라산 등에 착안하여 ‘자라섬’으로 명명하였다. ‘자라처럼 생긴 언덕’이 바라보고 있는 섬이라는 유래도 있다.
북한강 가운데의 섬이기 때문에 「하천법」,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적용을 받는다. 중도에 4㎞의 수변 산책로를 따라 코스모스·해바라기·맨드라미·유채꽃 등의 야생화 군락지와 미루나무·버드나무·갈대밭으로 이루어진 자연수목휴양림이 조성되었다. 자라섬이 일반에 알려진 계기는 2004년 개최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이다. 자라섬과 가평 읍내 일대에서 9~10월 중 3~4일간 개최되는 음악제이다. 자라섬오토캠핑장은 자라섬 서도에 28만 3,040㎡ 규모로 조성된 캠핑존이다. 4~6인용 캐러밴 10대와 모빌홈 40대 등의 야영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수상 클럽 하우스·인라인 스케이트장·잔디광장 등도 갖추었다. 또한 가평군은 2009년부터 1월에 약 3주간 자라섬 일대 가평천에서 ‘자라섬씽씽겨울축제’를 주최한다. 송어 얼음낚시와 눈썰매·얼음썰매·겨울 민속놀이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필 한석봉을 상징하여 붓을 모형화 한 보납산 정상석.
<보납산(寶納山, 329.5m)>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읍내리에 위치한 산으로 가평읍의 진산이다. 북한강(北漢江)과 가평천(加平川)이 합류하는 지점에 솟아 있는 잔구상(殘丘狀)의 산으로 주변 풍광이 뛰어나다. 고도는 높지 않으나, 두 강 사이에 솟아 있어 경치가 아름다운 데다가 산의 남쪽 끝에는 또 하나의 잔구인 늪산(141m)이 솟아 있다. 두 잔구 간을 경춘선 철도와 경춘가도가 통과하며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과 푸른 숲이 절경을 이룬다. 가평 군민들이 매년 새해 아침 신년의 해돋이를 보면서 한 해 소원을 비는 곳이기도 하다. 보납산 산행은 가평읍 자라목에서 올라 가평읍 개곡리의 개문사 방향이나 반대편인 주을길로 내려오는 방법이 있다.
보납산은 조선 전기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이었던 명필 석봉 한호(韓濩)[1543~1605]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한석봉이 가평 군수로 부임한 것은 1599년(선조 32)으로, 부임할 당시에 보납산(寶納山)은 부래산 또는 래산이었다. 가평에 온 석봉은 2년가량을 가평군수로 지냈다. 가평군수 재직 시 보납산을 유달리 좋아했는데, 보납산 전체가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석봉이라서 그 이름을 따 호를 석봉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2년 후 가평을 떠나면서 보납산에 벼룻돌과 아끼던 보물을 묻어 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내려온다. 이렇듯 보물을 묻어둔 산이라 하여 보납산이라고 하는 설과 가평벌 앞에 있는 산이라 하여 ‘벌 앞산’이라 불리던 것이 발음을 따라 ‘버랖산’에서 ‘보납산’으로 변하였다는 설이 전해진다.
※ 우리나라의 명필(名筆)
㉠ 조선시대 4대 명필(四大 名筆)
안평대군(세종의 셋째 아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시조로 잘 알려진 봉래 양사언,
추사 김정희,
석봉 한호.
㉡ 우리나라 4대 명필(四大 名筆)
신라의 김생,
고려의 대감국사 탄연,
조선 전기의 안평대군,
조선 후기의 추사 김정희.
㉢ 우리나라 2대 명필(二大 名筆)
신라 김생(金生),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우리나라 명필가 한 명은! 추사 김정희!
보납산 정상부 전망대에서 본 가평읍과 북한강 자라섬 방향.
<가평읍(加平邑)>
경기도 가평군의 동중부에 위치한 읍이다. 관내에 군청이 소재하며, 읍의 북쪽에는 가평 8경 중 제3경이라 불리는 용추구곡이 있다. 읍내리(邑內里)·대곡리(垈谷里)·달전리(達田里)·하색리(下色里) 등 14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이 지역은 원래 군내면(郡內面)으로 1896년(건양 1) 관제개혁을 통해 내서면(內西面)을 통폐합하여 읍내리·대곡리·달전리 등 10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이후 1932년 가평면으로 개편되었고, 1973년 읍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평이라는 지명은 신라 757년(경덕왕 16)부터 붙여진 이름으로 이 지역의 옛 지명인 '가라바라' 혹은 '가라버러'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고지도에서 이 지역은 가평군의 중심지로 관청과 향교 등이 묘사되어 있다. 『해동지도』에서 지명은 군내면만 기록되어 있으나, 『1872년지방지도』의 『가평현지도』에는 고을 동쪽에 위치한 군내면의 남서쪽으로 내서면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펄럭이는 태극기의 배웅을 받으며 좌틀하여 보광사 방향 내림길로 들어서면,
가파르지 않은 내림길이 이어지다가,
이내 보광사 진입 도로에 접속하여 우측 100m 지점의 보광사를 다녀오기로 한다,
일반 가옥같은 보광사 전경.
<보광사(寶光寺)>
보납산 보광사는 1905년(을사)에 중건했다. 경기교악 화악영봉이 남으로 뻗어내려 산수경개 아름다운 이곳에 정기를 수(繡) 놓으니 천하명산 보납산이라. 산 전체가 바위로 되어있어 예부터 석봉(石峰)이라 불러왔으며 풍수적으로 가평관좌의 안산(案山)이자 문필봉으로 유명하다. 일찍이 명필 한호가 이곳 군수로 부임하여 왔는데 수려한 보납 풍광 속에 한석봉으로부터 보광(寶光)이란 휘호를 받고 보광사라 개명하였다. 이곳 대웅전 서쪽 기슭의 산신각 안에는 한석봉이 군수로 재임하던 당시 글을 쓰기 위해 참선하며 마음을 다스리던 동굴이 있으며 동굴 속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은 머리가 맑아지는 신비의 약수로 전해온다.
석봉 한호가 가평군수로 재임하던 당시 참선하며 마을을 다스리던 곳이 보광사라 한다. 그리고 2년 재임을 마치고 가평을 떠나면서 평소 아끼던 벼루와 보물 등을 묻어두었던 동굴이 보광사에 있다고 한다. 한석봉이 참선하며 마음을 다스리던 동굴이 자꾸만 훼손되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영구히 보존하고자 그 앞에 산신각을 건립하여 한석봉의 영정을 봉안하고 수호해 오고 있다고도 한다.
보광사 유래 안내판.
보광사를 뒤로하고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좌측 화악지맥이 지나는 능선(강변산책로)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지나고,
잠시 후 또다시 화악지맥 능선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지나면,
우측 보납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등로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이내 이정표의 '종합안내도'로 표시된 보납산 산행 주차장에 도착하여 화악지맥 종주를 마감한다.
보납산 의병 전투지 안내판.
<보납산 의병 전투지>
보납산 의병 전투지는 가평 춘천 연합 의병이 일본의 사주를 받은 정부 관군과 전투를 벌인 곳이다. 1895년에 명성황후 시해 사건과 단발령이 내려졌다. 이에 가평 출신인 이충응, 신재가 등이 분개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이들이 주도한 가평 의병은 1896년 1월 20일 이소웅이 이끄는 춘천의병과 연합하였다. 2월 22일에 가평 춘천연합의병은 일본의 사주를 받고 출동한 조선 관군과 보납산에서 충돌하였다. 그렇지만 이들은 관군에 비해 훈련과 화력이 부족하였다. 결국 관군에 패하여 가평 북면으로 물러났다. 이 전투에서 신재가는 관군에게 체포되어 참형에 처해졌다.
돌아본 보납산과 보광사 들머리 전경.
한북정맥 도마봉에서 분기하여 가평천이 북한강에 합류하는 가평2교 아래 북한강변으로 잦아드는 화악지맥을 걸으며, 6.25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의 공세를 분쇄하여 전세를 역전시켰던 국군 제6사단의 흔적들을 더듬어 볼 수 있었기에 더욱 의미있는 걸음이었지않나 생각한다. 화악산 오름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사창리가 그러하였고, 몽가북계 능선을 따라 가평읍으로 힘겨운 걸음을 옮기며 보는 화선의 산들과 용문산이 그 옛날 패전의 아픔을 딛고 승리를 거둔 장도영 장군 이하 국군 6사단 장병들의 고뇌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다소 미진한 보납산갈림길에서 늪산을 거처 가평2교로 이어지는 구간은 후일 보납산과 마루산 그리고 아직도 그 찢기어 나가는 아픔을 격고 있는 물안산을 둘러보는 마무리 산행으로 채울 것을 기약하며 화악지맥 종주를 마무리한다.
※ 중공군의 공세를 분쇄하여 6.25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용문산 전투는!
사창리천투는 1951년 국군 제6사단이 중공군의 춘계공세에 맞서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와 화악산 일대에서 4월 22일부터 24일까지 벌인 전투로, 국군 제6사단은 사기 관리에 실패해 부대가 와해되어 패전하고 가평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이때 가평군 북면 일대를 방어하던 영연방군(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군)이 1951년 4월 22일~25일까지 중공군의 춘계대공세에 맞서, 서울에서 춘천 간의 도로를 향해 진격하던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3일간 막아내어 사창리전투에서 패퇴하던 국군 6사단과 유엔군의 퇴로를 확보하여 막대한 피해를 막아내게 된다.
영연방군의 분전으로 전력을 가다듬은 국군 제6사단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일대에서 중국 인민지원군 3개 사단(63군 187사단, 188사단, 189사단)의 공세를 격퇴하고 패잔병 무리를 춘천 지암리를 거쳐 화천호(화천 저수지, 현 파로호)까지 쫓아가 섬멸하여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를 용문산전투라 한다. 이러한 용문산전투는 작게는 1951년 4월부터 1개월 동안 계속된 공산군의 춘계공세를, 좀 더 크게는 6.25 전쟁 초반 1년간의 치열했던 전면전을 마무리 지은 전투로 평가된다. 6.25 전쟁은 이 전투 이후로 전면전에서 전선교착전으로 전쟁의 양상이 바뀌게 된다.
첫댓글 힘든 산행이였지만 아름다운 산행이였습니다.즐 감했습니다.감사 감사 감사 드립니다.다음에 홍적고개에서 몽가북계보 산행한번 합시다.
제목에서 무지개가 나와 뭐지 했는데
산행기에서 무지개를 봤어요
발다닥이 아파 고생하셨어요
대장님의 산행기는 역사 공부도 하게 되는거 같아요
그래서 늘 느끼는거지만 수필을 읽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글자도 읽는 분이 계시네요.
감사드립니다.
방화선 가시잡목에 눈이 계속 찔리고 바람한점 없는 더위에 월두봉까지 왕복하느라 개고생 했는데 마지막 힘을 짜내서 올라간 채석장 봉우리부터 보납산까지 멋진 조망에 피로가 싹~~~